나이를 먹으면 웬만한 일에는 무덤덤해질 줄 알았습니다. 젊었을 때는 남이 무슨 말을 하거나 저를 어떻게 대하는지 신경도 많이 쓰고, 별것 아닌 일에도 자존심이 상할 때가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 그런 것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요즘은 누군가 저를 가볍게 대한다는 느낌이 들면 예전보다 더 마음에 남을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은 별생각 없이 한 행동일 수도 있는데 저는 혼자 기분이 상해서 한참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제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중간에 끊거나, 제가 의견을 내면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꼭 대놓고 무시하는 말을 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말투나 표정에서 제 이야기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 겁니다.
물론 제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바쁘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원래 말하는 방식이 그런 사람일 수도 있겠지요. 저도 그 정도는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비슷한 일이 몇 번 반복되면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기분 나쁘다는 표시를 하자니 별것 아닌 일에 자존심만 세우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고, 아무 말 없이 넘어가자니 제가 스스로를 너무 낮추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냥 웃거나 다른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그 순간에는 굳이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때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꼭 화를 내라는 게 아니라 제 생각 정도는 분명하게 이야기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가끔은 상대방보다 제 자신에게 더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 놓고 나중에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저도 참 피곤한 성격인가 싶습니다.
남이 저를 어떻게 대하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제 마음이 너무 쉽게 흔들리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존중받고 싶은 마음은 있을 겁니다. 저라고 특별한 대접을 바라는 건 아닙니다.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예의를 갖추라는 생각도 없고, 제 의견에 모두 동의해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서로 이야기할 때는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생각이 다르면 다르다고 이야기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굳이 상대방을 가르치려 들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제가 너무 권위적인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저를 더 존중해 줘야 한다고 은근히 기대하는 건 아닌지 말입니다. 머리로는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저보다 어린 사람에게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면 더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제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예전에는 자신 있게 이야기하던 일도 요즘은 괜히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잘 모르는 분야도 많아졌고 세상 돌아가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그렇다고 모르는 게 있다는 이유로 사람 자체를 가볍게 대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잘 모르거나 남보다 서툴다고 해서 그 사람의 생각까지 하찮게 여겨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정작 제가 그런 상황에서 당당하게 행동하지 못하니 더 답답합니다. 상대가 제 말을 대충 넘기면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작아지거나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괜히 위축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저를 좋게 볼 것이고 누군가는 별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데 그걸 전부 신경 쓰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문제는 그걸 알면서도 실제 상황에서는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그런 느낌을 받을 때는 더 그렇습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이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이 저를 대수롭지 않게 대하면 괜히 서운한 마음까지 생깁니다. 내가 그동안 이 사람을 너무 편하게 대해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러다 보면 사람을 만날 때도 조금씩 조심스러워집니다. 괜히 말을 많이 했다가 또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을까 봐 먼저 나서지 않게 되고, 의견을 물어봐도 적당히 대답하고 넘어가게 됩니다.
그렇다고 계속 그렇게 지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제 생각은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막상 상대방 반응이 좋지 않으면 금방 신경이 쓰입니다.
자존심을 지키는 것과 사소한 일에도 자존심을 세우는 것은 분명히 다를 텐데 그 차이를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때는 불편한 말을 듣더라도 그냥 넘기는 게 어른스러운 행동 같고, 또 어떤 때는 싫은 건 싫다고 이야기해야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조건 참는 것도 답은 아닌 것 같고 매번 따지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겠지요.
다른 분들은 누군가 자신을 가볍게 대한다는 느낌이 들 때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상대방 태도를 바로 지적하시는 편인가요? 아니면 별다른 반응 없이 넘기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시는지요.
나이가 들수록 남의 시선에서 좀 자유로워지고 싶은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 자존심을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 건지, 아니면 제가 다른 사람의 태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고 있는 건지 다른 분들 생각도 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