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묻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자기 자신에게 속할 줄 아는 것이다.”

— 미셸 드 몽테뉴, 《수상록》 제1권 〈고독에 대하여〉 (판본에 따라 38장 또는 39장).

 

언제부터인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묻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얼마 전 지인들과 식사 약속을 잡으면서 메뉴를 정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무엇을 먹고 싶으냐고 물었는데 저도 모르게 "아무거나 괜찮아요"라는 말이 먼저 나오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식당을 추천하자 그곳도 좋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이 다른 메뉴를 이야기하자 그것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몇 번 의견을 주고받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작 나는 오늘 무엇을 먹고 싶은 걸까.

별것 아닌 질문인데 바로 대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평소 다른 사람의 취향이나 선호는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 정작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그날 이후로 비슷한 상황들을 조금씩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몽테뉴의 명언을 읽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자기 자신에게 속할 줄 아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조금 더 복잡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묻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언제부터 다른 사람의 기준이 내 기준이 되었을까요?

예전에 옷을 사러 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색상의 옷이 있었는데 함께 간 사람이 조금 튀는 색이라며 무난한 색을 권했습니다.

결국 추천받은 색상을 구매했죠.

그때는 잘 선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옷에 맞춰 입기도 편하고 남들이 보기에도 무난할 테니까요.

그런데 나중에 옷장을 정리하다 보니 비슷비슷한 색상의 옷들이 유난히 많더라고요.

분명 제 돈으로 산 옷인데 하나하나 선택했던 순간을 돌아보면 다른 사람의 의견이 적지 않게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주변의 의견을 참고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닙니다.

혼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할 수도 있고, 더 좋은 선택을 할 때도 있으니까요.

다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참고하는 것과 그 의견을 자신의 취향보다 우선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부터 제 취향을 무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편이 편했고, 굳이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거나 설득할 필요가 없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작은 선택들이 하나둘 쌓였던 것이죠.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순간에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봅니다.

새로운 영화를 볼 때도 평점부터 확인합니다.

책을 고를 때도 베스트셀러인지 살펴보고, 식당을 찾아갈 때도 다른 사람의 후기를 먼저 읽습니다.

물론 이런 정보들은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됩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남들이 좋다고 평가한 것을 저도 좋아해야 할 것처럼 느끼게 된다는 겁니다.

유명하다는 영화를 봤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영화가 별로였다는 제 감상보다 왜 이렇게 평가가 좋은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취향이 다를 수도 있는 일인데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모든 사람이 같은 작품을 좋아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평범한 영화가 다른 사람에게는 오래 기억되는 작품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별로인 음악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우리는 가끔 자신의 감상보다 다른 사람의 평가를 더 신뢰합니다.

내가 좋다고 느꼈던 이유를 찾기보다 남들이 좋다고 말한 이유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죠.

 

언제부터인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묻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몽테뉴가 말한 자신에게 속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몽테뉴는 《수상록》의 〈고독에 대하여〉에서 다른 사람이나 외부의 조건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고 사회와 단절하고 무조건 혼자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더라도 자신의 내면까지 전부 외부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역할을 맡습니다.

가족 안에서는 부모나 자녀가 되고, 직장에서는 동료나 직원이 되며, 친구들 사이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각각의 역할에 맞게 행동하는 것은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일이겠죠.

그런데 그 역할들을 모두 내려놓았을 때 자신에게 무엇이 남는지도 가끔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의 부모도 아니고, 누구의 동료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춰 행동할 필요도 없는 순간 말입니다.

그때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어떤 음악을 듣고 싶고, 어떤 곳에 가보고 싶고, 무엇을 배우고 싶을까요?

이런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다면 적어도 자신의 취향을 잃어버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춰 살아왔다면 이런 평범한 질문조차 낯설게 느껴질 수 있겠죠.

 

 

남에게 맞춰주는 것과 나를 잃어버리는 것은 다릅니다.

사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매번 자신의 취향만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함께 식사할 때도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야 하고, 가족과 여행할 때도 각자의 희망을 고려해야 하죠.

양보와 배려는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을 지키라는 말이 무조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라는 뜻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양보하는 것과, 처음부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따라가는 것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정말 먹고 싶은 음식이 있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메뉴를 양보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자신이 선택한 배려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무엇을 먹고 싶은지도 생각하지 않은 채 언제나 남들이 정해주는 대로 따른다면 조금 다른 이야기겠죠.

저는 그동안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이런 작은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맞춰주는 것이 언제나 편했고, 그것이 특별히 불편하지도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불편하지 않다는 것과 만족스럽다는 것은 반드시 같은 의미가 아닐 겁니다.

 

 

나만의 공간이 꼭 별도의 방일 필요는 없겠죠.

몽테뉴의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내면에 혼자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라는 이야기도 떠올랐습니다.

저는 이것이 굉장히 현실적인 조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부담도 없고, 다른 사람의 기대를 충족해야 한다는 의무도 없는 시간 말입니다.

그 시간이 반드시 길 필요는 없겠죠.

잠깐 산책하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시간일 수도 있고, 혼자 서점에 들러 누구의 추천도 받지 않고 책을 골라보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평소 관심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반응 때문에 시도하지 않았던 취미를 시작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가끔 아무런 목적 없이 서점에 들러 책장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책 한 권을 고를 때조차 다른 사람의 평가를 먼저 찾아보곤 했습니다.

앞으로는 가끔 제목이나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혹은 몇 페이지 읽어봤는데 재미있어서 책을 골라보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추천할 만한 좋은 책이 아니더라도 제가 읽고 싶어서 선택했다면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겠죠.

 

언제부터인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묻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속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다른 사람과 원만하게 지내고 싶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도 받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 겁니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동안 자기 자신에게는 얼마나 솔직했는지 돌아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거절하지 못한 적은 없었는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척했던 적은 없었는지, 자신의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평가를 더 중요하게 여겼던 순간은 없었는지 말이죠.

물론 저도 앞으로 계속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참고하며 살아갈 겁니다.

혼자만의 기준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 배울 점도 많으니까요.

그렇지만 사소한 선택만큼은 조금 더 제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누군가 무엇을 먹고 싶으냐고 물으면 가끔은 정말 먹고 싶은 것을 이야기해 보고, 어떤 것이 좋으냐고 물으면 남들이 좋아하는 것보다 제가 마음에 드는 것을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죠.

다른 사람에게 잘 맞춰주는 사람으로 사는 것과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으로 사는 것은 서로 다른 능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몽테뉴의 명언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에게 속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밀어내는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동안에도 자신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일이라고요.

여러분은 요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바로 대답할 수 있으신가요?

혹시 언제부터인가 "아무거나 괜찮다"는 말이 가장 편한 대답이 되어버리지는 않으셨나요?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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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니
    저도 평소에 아무거나 괜찮아요 라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인데 다른 사람에게 맞춰주는 게 편하다 보니 정작 제 취향은 뒤로 미룰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배려와 자기 마음을 포기하는 건 다르다는 말이 와닿네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만큼 제 취향도 소중히 여기고 사소한 선택부터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들여다보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