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가 의심되는 상사에 대한 고민입니다_상위 1%가 나왔어요!

이번에는 제가 ADHD 여서가 아니라

성인 ADHD가 강하게 의심되는 상사의 산만함과 충동적인 업무 방식 때문에

저와 동료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이 분은 그 동안 ADHD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매번 소환되었던 분입니다.

소환되지 않았던 시간 동안에도 그 분은 기억에 남을만한 에피소드를 여럿 탄생시키셨죠.

저도 전해 들은 이야기인데, 올해 초에 저희 팀에 새로운 경력직 직원이 들어왔거든요.

상사 분이 업무가 워낙 많으시기에 거의 개인 비서 수준으로 일하는 직원들이 몇 명 있는데

그 자리는 저희 회사에서 퇴사율이 가장 높은 자리에요.

그 자리에 새로운 분이 들어오셨는데, 몇 달 동안 돌부처 마냥 감정의 기복도 보이지 않고 묵묵히 일을 하시기에

이번에는 좀 오래 버틸까 했는데, 얼마 전 퇴근길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그 직원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아마도 남편분?) 

"그만 둘꺼야!!!당장 때려칠꺼야!!" 하며 고함을 지르고 있는걸 다른 직원이 목격했다고 합니다.

 

몇 달 전에는 타 부서에서 경력도 오래 되셨고 기가 제일 쎈 분께서 그 상사 분의 방에 쳐들어가셨어요.

당연히 순화해서 말씀하셨겠지만 

요지는 '일 이따위로 시키지 말아라. 오히려 업무에 방해된다.' 라는 내용이었고

워낙 기가 쎄고 오랜 기간 동안 묵묵히 일해오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셔서 그런지

상사는 한동안 조금 잠잠해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때 이런 말을 했죠,

"길어야 2주 간다고 봅니다."

 

네.

2주 뒤에 다시 원상복구 되었습니다...

 

처음 입사했을 당시를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 때는 상사를 보며 "엄청나게 바쁜 사람인가 보다."라고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함께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분은 회사에서 높은 직책을 맡고 계신 만큼, 당연히 많은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계세요.

실무를 하는 것은 당연히 저희들이지만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지 않도록 조율하고 관리하는 것이 그 분의 일이죠.

그런데 A프로젝트 회의를 하다가 갑자기 C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협의가 되지도 않은 상태로 회의가 끝납니다.

A팀은 우르르 나가고 C팀은 뜬금없이 일하다가 회의실로 끌려들어오죠.(혹은 본인이 박차고 나가실 때도 있습니다.)

A팀은 나가면서 '하.. 회의 다시 해야 하네...' 라고 생각하고

C팀은 뜬금없는 폭격에 허둥지둥이 되고요.

 

업무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정말 희한합니다.

사내 전화->휴대폰->사내 메신저->직접 찾아오기

이 네 가지가 세트처럼 이어집니다.

전화벨도 한번 밖에 안 울려요. 

제 자리 전화가 울려서 받으려고 하면 끊기고 휴대폰으로 바로 전화가 옵니다.

휴대폰 번호를 확인하는데 전화가 끊기고 메신저가 오고요,

메신저를 클릭하는데 방에서 뛰쳐나오며 "OO씨 없어요?"라는 외침이 들립니다.

 

제 옆자리 동료는 이제 전화가 울려도 "응.. 곧 뛰쳐나오실거야..."라고 무념무상이 되는 경지에 이르렀고요. 

저는 제 동료가 전화를 받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제 전화를 받을 준비를 할 정도입니다.

 

그 외에도 업무 시간과 개인 시간의 경계가 전혀 없어서

새벽, 주말 할 것 없이 연락을 합니다.

몇 달 전에 그 분이 해외 출장을 다녀오셨는데 시차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저희 팀장님께 매일 새벽에 미친 듯이 전화를 하셨대요.

 

제가 가장 미쳐버리겠는 것은 그 분의 정신없음 때문에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회의를 시작하면 갑자기 "아! 그거 말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각났어요!" 라며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혼자 신이 나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떠들어요....

그렇다고 기존 안건을 없던 일로 할 수도 없는데 말이죠.

결국 그 분의 프리 토킹이 끝나고 나면 실무진들끼리 다시 회의를 잡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시간 낭비입니까...

회의 일정을 잡을 때 저희는 모두 그 분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으시길 기도할 정도입니다.

 

정리정돈 문제도 상당합니다.

그 분 방을 정말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오죽하면 청소 여사님이!! 평소에 말도 없으신 청소 여사님이 드러워서 일을 못하겠다고 하실까요.

TV에 나오는 쓰레기집도 다 이길거예요.

10평 정도 되는 방이라 하면 실제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1평 정도 일겁니다.

서류 더미, 머그컵 수 십 개, 테이크아웃 잔은 산처럼 쌓여있어요.

그 외에도 먹다 남은 음식, 이런 게 여기에 왜 있지? 싶은 잡동사니들까지 어마어마합니다.

 

그리고 그 분의 또 다른 특징은 종이문서에 대한 고집입니다.

사내 모든 문서는 전산화를 하고 있는데 이 분은 무조건 종이문서를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전산화를 하면 결재서류도 인트라넷으로 올리면 끝인데

저희는 전산에도 올리고 출력해서 종이문서로도 들고 가야 해요.

 

그럼 저희도 일을 두 번 해야 하고, 그 분도 결재를 두 번 해야 하는데 대체 왜 그런지 이해가 안갑니다.

문서도 절대 버리지 않아서 10년도 넘은 문서들이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채 널부러져 있어요.

심지어 폐기도 못하게 하고 정리도 못하게 합니다.

그 분 방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그 분이 직접 쓰레기통에 버린 물건들 뿐입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시간 약속을 전혀 지키지 못하신다는 점이에요.

한 달에 20일 출근 한다 치면, 평균 18일 정도는 지각을 하십니다.

출근 시간 뿐만 아니라 다른 업체와의 미팅, 사장님과의 약속, 기타 등등 전부 지각이에요.

사람들이 새벽 3~4시에 전화하고 문자하는 걸 보면 

잠도 거의 안자는 것 같은데 대체 왜 지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저는 추측하는 바가 있어요.

그 분은 일찍 집에서 나오시지만 

주차장에서 "아 맞다!!" 하고 집에 다시 들어가시는 것이 최소 3번은 될거예요.

 

이걸 제가 어떻게 아냐고요?

제가 그 분의 차를 타고 단 둘이 외부 미팅을 간 적이 있었는데 "아 맞다!!"를 대체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릅니다.

당연히 미팅에도 지각했고요.ㅠㅠㅠㅠ

 

저는 그 분을 성인 ADHD 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을 오랫동안 보았기 때문에 그동안 수집해온 그 분에 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번 트로스트 ADHD 자가 검사를 해보았거든요.

 

상위 1%가 나왔네요.

 

그 분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ADHD에 대한 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집중과 집중 유지의 어려움 혹은 과도한 집중으로 인해 다른 할 일을 잊어버리는 것,

비조직화와 건망증, 끊임없는 활동과 충동성 등등이 그 분의 행동과 너무 유사했어요.

 

특히 일을 한 가지씩 차근차근 끝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벌리는 것,

갑자기 새로운 아이디어에 몰입하는 것,

계획보다 극한의 즉흥성으로 움직이는 것,

환경 뿐만 아니라 일에서도 정리정돈이 전혀 되지 않는 것,

지나치게 잦은 연락을 하는 것 등이 그 분의 행동과 완전히 일치했죠.

어찌나 몸도 많이 움직이시는지 캐시워크를 하신다면 ADHD 처럼 걸음 수도 상위 1%를 찍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분과 밑에서 일하기 위해 직원들 간에 공유되는 수많은 지침과 솔루션이 있지만

퇴사를 하는 것이 아니면 사실 그냥 적응하는 것 밖에 방법은 없겠더라고요.

아직까지 살아 남은 직원들을 보면 그냥 다 포기하고 직원들끼리 전우애를 다지며 지내는 중인 것 같습니다.

 

저도 이 분 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가능하면 전화보다는 이메일과 메신저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지시 내용이 중구난방이라 구두로는 감당이 안되거든요.

피치 못하게 구두로 지시를 받을 때면 녹음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저를 포함한 직원들 모두 이 분 때문에 정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그렇다고 이 분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나오는 미란다 같은 상사는 아닙니다.

업계 최고의 실력자임에도 불구하고 겸손하시고요.

한 길만 죽어라 파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히려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어수룩한 면도 있으십니다.

어디 가서 사기 당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될 정도로요.

일을 저런 식으로 하는데 사람이 못되기까지 했다면 진작 저도 이직을 했겠지요.

그 분을 보고 있으면 '저런 게 천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경력이 오래 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트렌디한 아이디어를 제시하시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지각을 하는데도 사장님이 눈 감아주시는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해요.(예전에는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하셨습니다.)

 

사실 인성까지 나쁜 사람이라면 욕이나 한 바가지 해주면 그만일텐데

능력에 인성까지 갖춘 사람이니 제 마음이 더 복잡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배우고 싶은 점도 많고 인정받는 대단한 사람이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너무 지치니까요.

 

상사의 산만함과 충동적인 업무 방식 때문에 직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면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비슷하게 ADHD가 의심되는 상사나 동료와 일해보신 분들이 있다면

어떻게 업무 경계를 설정하셨는지, 어떻게 대처하셨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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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
  • 익명4
    저도 예전에 지시 내용 중구난방에 즉흥성 끝판왕인 상사랑 일할 때 멘탈 터진 적이 있어서, 작성자님이 메일·메신저 위주로 가고 구두 지시는 몰래 녹음 따두신다는 대목에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게 진짜 나를 지키는 가장 완벽한 업무 방어벽이에요! 여기에 대처 꿀팁을 하나만 더 얹어보자면, 그 상사분이 방에서 뛰쳐나와 갑자기 뜬금없는 일거리를 우다다 던질 때 말로 네네 대답하지 마시고, 그 자리에서 바로 수첩이나 메신저 화면에 받아 적은 뒤 "팀장님, 그럼 지금 던져주신 B 업무가 급하니 기존에 지시하셨던 A랑 C 업무는 뒤로 미루고 이것 먼저 컨펌 진행할게요?"라고 면전에서 대놓고 순위를 조절해서 확인 도장을 쾅 박아버리는 피드백을 해보세요. 상사 뇌는 어차피 금방 까먹기 때문에, 실무자가 대놓고 "당신이 던진 새로운 일 때문에 기존 일 스톱된다"는 시각적 제동을 걸어줘야 뇌 정지가 한 번씩 오더라고요.
    
    동료들이 업무 공백 때문에 지쳐 나갈 때마다 같이 소주 한잔하면서 전우애로 멘탈 잡아주시고, 상사가 악의가 없는 만큼 우리도 악의 없이 덤덤하게 쳐내는 기술을 부서 매뉴얼처럼 팁을 공유해 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천재 상사 밑에서 커리어 쏙쏙 빼먹으며 내 건강 지키는 게 최우선이니까요. 진짜 매일이 서바이벌일 텐데 버텨내시는 작성자님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 익명2
    인성도 좋고 업무능력도 뛰어난 분이라면 회사에서도 어쩔 수 없겠네요..
    예전에도 이분에 관한 글을 본적 있는데 상황이 바뀌지 않아서 힘들겠어요..
    
    저도 두서없는 분과 일을 해봤지만 결국은 참지 못하면 나가게 되더라구요..
    저는 같이 일할때 정말 이사람이 능력이 있는걸까 의심이 되더라구요..
    능력이란 일과 직원 관리까지 들어간다고 생각하거든요..
    
    결국 사표를 냈었고 부서이동을 했어요..
    물론 그분은 비서실까지 올라갔더라구요.. 그분의 장점이 회사에서는 더 필요했던거 같아요..
    그분 입장에서 보면 과도한 업무와 함께
    일을 빨리 쳐내야 하고, 열정적인 사람들 특징중 하나는 샘솟듯 나오는 아이디어일 수도 있거든요..
    
    상사를 파악하고, 본인의 방법을 찾아 잘 대응하고 계시네요..
    저라면 하극상도 불사할거예요..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라도 안되는건 분명히 해야할 필요가 있거든요..
    힘내시고 슬기롭게 잘 이겨내시길 바래요
    익명3
    작성자
    ADHD 에 대한 글을 쓸때는 늘 소환되는 분이죠. 글을 쓰지 않았던 몇달 사이에도 여러 건 해드셨답니다. 
    저는 이 분의 성향을 대부분 파악해서 적당히 무시할건 무시하며 스트레스 받지 않는 방향을 선택했는데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그게 쉽지 않은가봐요. 퇴사나 부서이동 하는 사람이 계속 생기니 업무공백을 메우는 것이 여간 힘들지가 않네요. 몇 차례 하극상도 있었지만 다시 돌아오고, 돌아오고, 무한 도돌이표이니 한두번도 아니고 정말 왜 저럴까 싶어요ㅠ
  • 익명1
    실제로 같이 일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진단명보다 업무 방식 자체가 더 큰 스트레스일 것 같아요. 저라면 구두 지시를 최대한 메신저나 메일로 남길 것 같은데, 혹시 업무 우선순위를 정해서 공유하는 방법도 써보셨나요?
    익명3
    작성자
    직원들 모두 메신저와 메일로만 소통하려고 하고 있는데 전화를 차단할 수도 없고, 뛰쳐나와서 우다다다 말하고 가는걸 묶어둘 수도 없으니 참 답답하네요. 우선순위 같은건 그 분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퇴근 시간10분 전에 새로운 일거리 던져주고 얼른 퇴근하라고 하는 분이거든요ㅋㅋㅋ 더 큰 문제는 저 행동에 정말 악의라고는 1도 없다는 점입니다. 지금 생각난건 지금 하지 않으면 견디질 못해요(이거 자체가 악의일 수도 있겠네요).  여러 번 말씀드려보았고, 그 때마다 조심하려고 애쓰시는게 보이긴 하는데 결국 얼마 참지 못하고 터져버려요.
    자기보다 높은 직급의 분들께도 그러니 뭐..할말이 없습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