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사연 하나 없는 집은 없겠지요.
저희 가족들도 참 힘든 시간을 보낸 적이 있어요.
부모 자식 관계는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라 그런지
쉽사리 인연을 끊어내기도,
그렇다고 무조건 다 참고 받아주기도 너무 어렵죠.
어릴 때 친구 중에 엄마와의 갈등으로 늘 고민이었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때 저의 고민은 그저 이성관계, 친구관계 또는 진로였어요.
가족은 안중에도 없었죠. 아니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늘 그 친구가 참 신기했어요.
도대체 왜 엄마와의 관계로 저렇게 힘들어하는걸까.
가족은 '늘 그냥 원래 존재하는' 그런 것 아닌가? 하고요.
이미 내 손에 쥐고 있고, 친구나 이성관계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힘든 시간을 지나면서 알게 되었어요.
나에게 가족이란 고민할 필요가 없는 존재가 아니라
'고민'이라는 단어로 풀어내기에는 너무나 크고 힘든 존재였다는 것을요.
20대 초반, 엄마에게서 온 문자 한 통은 저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어요.
사실 흔하고 뻔한 사연이에요.
집안의 몰락, 사고를 치는 혈육,
방관하는 아빠와 나를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끊임없이 의지하려는 엄마.
가족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나.
그 날 이후로 저는 셀 수 없이 많은 죽고 싶은 순간들을 지났고
실제로 죽으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고
날 서고 모진 말들로 수없이 부모님의 마음을 찔러댔습니다.
드라마처럼 다정하고 따뜻하지는 않아도
이 정도면 무난하고 평범하지 싶었던 가족이었는데
어느 순간 저에게 가족은 그저 짐덩이고 미움과 원망으로 가득찬 존재들이었죠.
내 젊음을 갈아 넣고
내 인생을 갈아 넣고
뭐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뻔한 드라마 내용처럼요.
가족의 얼굴을 보는 것이 괴로워서 집을 나왔어요.
계속 같이 있다가는 누구 하나는 죽겠다 싶어서요.
어렵게 집을 나왔는데 이제는 가족이 아프대요.
한번만 도와달라고 우는 엄마를 보니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어요.
있는거 없는거 다 끌어모아서 던져주고는
이제는 다시 보지 말자고 했죠.
그렇게 부모님 얼굴을 보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본가 근처에 갈 일이 생겼죠.
무슨 마음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엄마에게 연락하고 싶더라고요.
-오늘 집 갈께-
볼일을 마치고 집에 갔는데
엄마가 삼계탕을 한 솥 끓여두셨더라고요.
엄청 더운 여름 날이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요.
삼계탕을 먹는데 이상하게 그냥 마음이 풀렸어요.
수 십 년을 쌓인 미움과 앙금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그냥 풀렸어요.
저희 가족은 지금 너무 잘 지냅니다.
여전히 어렵긴 해요. 하지만 지금 저는 행복합니다.
지옥 같은 시간들이 없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벌어져 버린 일인 것을 어쩌겠나요.
이제 더는 원망하지도, 자책하지도 않고 그냥 그 시간을
잘 흘려보내는 중입니다.
언젠가 혈육을 만나게 된다면
어쩌면 웃으며 잘 지냈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저는 미워하고 원망하느라
부모님과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너무 속상합니다.
더 젊고 건강하실 때 여행이라도 같이 가볼껄.
맛있는 음식 더 많이 사드릴껄
이런 생각들이 많이 들어요.
우리 가족이 잃어버린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 목표 중에 하나가 부모님을 보내드릴 때
못해드린 것을 생각하며 후회하지 않는 것인데
지금도 눈물이 줄줄 나며 못해드린 것이 생각나는 것을 보니
그 목표는 백 년의 시간이 주어져도 이루지 못할 것 같네요.
제가 바라는 건 딱 한 가지 밖에 없어요.
부모님이 아프지 말고 제 곁에 오래오래 계셔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