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제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네 제가 할게요라는 대답인 것 같아서 매일 밤 자책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어요.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그저 둥글둥글하게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원만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부탁을 들어주기 시작했어요.
누군가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웃으며 수락하면 상대방이 고마워하는 그 찰나의 표정을 보는 것이 좋았고 제가 회사에서 쓸모 있고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 같아서 나름대로 뿌듯함도 느꼈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배려와 친절이 저를 옭아매는 끔찍한 족쇄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이제는 그 늪에서 혼자 빠져나올 힘조차 남아있지 않아서 너무나도 숨이 막혀요.
정말 화가 나는 건 상대방의 부탁이 합리적이거나 정말 제 도움이 절실해서가 아니라 그저 본인들이 하기 귀찮고 번거로운 일들을 만만한 저에게 떠넘긴다는 것을 저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거예요.
분명히 제 업무도 아니고 심지어 주말까지 반납해야 할 정도로 무리하고 뻔뻔한 부탁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뻔히 알면서도 막상 상대방이 다가와서 말을 걸면 그 사람의 표정이 조금이라도 굳어질까 봐 두려워서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고요.
그 순간 거절의 말을 꺼내려고 입술을 달싹여보지만 정적이 흐르는 그 몇 초의 어색한 공기와 저를 바라보는 실망 섞인 눈빛을 도저히 견뎌낼 자신이 없어서 결국 또 바보처럼 다 떠안고 말아요.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거절을 했을 때 돌아올 사람들의 싸늘한 반응과 험담이에요.
제가 만약 이번 한 번이라도 단호하게 안 된다고 선을 그어버리면 그동안 제가 쌓아왔던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이기적이고 협조적이지 않은 독불장군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봐 뼛속까지 공포를 느끼고 있어요.
행여나 제가 거절한 일 때문에 그 사람과 사이가 틀어지고 회사 생활 내내 불편한 얼굴로 마주쳐야 한다고 상상하면 차라리 내 몸이 조금 부서지고 고생하더라도 부탁을 들어주고 평화를 유지하는 게 낫다는 멍청한 합리화를 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제 성격을 기가 막히게 눈치챈 얄미운 동료들은 이제 부탁을 넘어선 강요를 아무렇지 않게 일삼고 있어요.
처음에는 커피라도 한 잔 사주면서 정말 미안한 기색으로 부탁하던 사람들도 제가 매번 군말 없이 밤을 새워서라도 다 처리해주니까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퇴근 십 분 전에 서류 뭉치를 제 책상 위에 스리슬쩍 올려두고 약속이 있다며 휙 가버리더라고요.
심지어 본인들이 업무를 하다가 큰 실수를 저질러서 수습하기 곤란해진 상황까지 저에게 은근슬쩍 넘기며 네가 엑셀을 잘하니까 이것 좀 수정해달라는 식으로 뻔뻔하게 나오는 걸 보면서도 저는 화조차 내지 못하고 그 쓰레기 같은 업무들을 말없이 치우고 있어요.
남들의 짐까지 짊어지다 보니 정작 제가 책임져야 할 본래의 제 업무는 뒷전으로 밀려서 데드라인에 쫓기듯 허덕이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어요.
남의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주느라 제 일은 대충 마무리해서 상사에게 혼이 난 적도 있고 매일같이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제 소중한 저녁 시간과 주말을 온전히 남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완전히 바닥이 나버렸어요.
주말에 침대에 누워 쉬고 싶어도 누군가 부탁한 그 일이 떠오르면 마음이 불안해서 결국 무거운 몸을 이끌고 책상에 앉아 남의 보고서를 대신 써주고 있는 제 모습을 볼 때면 정말 비참하고 억울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곤 해요.
이렇게 호구처럼 당하고만 있는 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서 화장실 변기에 앉아 혼자 엉엉 운 적도 셀 수 없이 많아요.
그렇게 억울해하면서도 막상 나를 이용하는 그 사람들 앞에서는 바보같이 실실 웃으며 괜찮다고 별로 안 힘들다고 거짓말을 하는 제 위선적인 모습이 세상에서 제일 징그럽고 혐오스러워요.
속으로는 그 사람들을 저주하고 미워하면서 겉으로는 천사표 코스프레를 하고 있으니 제 안에서 인지부조화가 와서 정신이 분열될 것만 같고 사람에 대한 불신과 분노만 겹겹이 쌓여가고 있어요.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그 알량한 욕심과 타인에게 미움받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 때문에 정작 저 자신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가혹하고 나쁜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요.
저를 보호하고 지켜야 할 유일한 사람인 저조차도 남들의 눈치만 보며 제 몸과 마음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자존감은 이미 지하 뚫고 바닥으로 꺼져버린 지 오래예요.
남들이 저를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이유는 결국 저 자신이 저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쉬운 사람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그걸 알면서도 행동으로 고쳐지지가 않아서 미칠 노릇이에요.
이 지독하고 병적인 거절 못하는 성격을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퇴근길에 서점에 들러 인간관계나 심리 경계선에 대한 책도 수십 권 사서 읽어보고 밑줄도 쳐가며 공부를 했어요.
혼자 방에 틀어박혀서 거울을 보며 단호하지만 부드럽게 거절하는 표정과 말투를 수백 번 연습도 해보고 메신저로 거절하는 문장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며 나름대로 실전 대비를 철저하게 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다음 날 출근해서 누군가 다가와 은근슬쩍 짐을 떠넘기려고 눈웃음을 치면 어젯밤 피나는 연습을 통해 다졌던 단호함은 온데간데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또다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억지웃음을 지으며 그 무거운 짐을 두 손으로 고스란히 받아 들고 있더라고요.
이제 와서 갑자기 태도를 바꾸고 칼같이 거절을 시작하면 사람들이 저보고 변했다고 수군거리며 배신자 취급을 할까 봐 도무지 첫발을 내디딜 용기가 나지를 않아요.
회사에서는 그렇게 한없이 굽신거리며 남의 비위만 맞추느라 모든 에너지를 다 털어버리고 정작 집에 돌아와서는 제게 가장 소중하고 만만한 가족들에게 피곤하다며 짜증을 내고 예민하게 구는 제 못난 꼴을 발견할 때마다 정말 혀를 깨물고 싶을 만큼 깊은 우울감과 죄책감이 몰려와요.
바깥에서는 천사 소리를 들으면서 집에서는 악마처럼 구는 제 이중적인 모습에 환멸이 나서 이러다가는 직장 생활뿐만 아니라 제 남은 인생 전체가 완전히 망가져버릴 것 같다는 끔찍한 공포감이 들어요.
그래서 코치님께 제 인생을 걸고 정말 간절하게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절박한 심정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인간관계를 망치지 않고 직장 내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제 몫이 아닌 부당한 요구들을 부드럽지만 아주 단호하게 쳐낼 수 있는 걸까요.
막상 용기를 내서 거절을 했을 때 찾아오는 그 미칠 듯한 죄책감과 나를 노려보는 듯한 상대방의 차가운 반응을 도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견뎌내야 하는지 당장 내일 출근해서 써먹을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화법이 너무나도 절실해요.
더 이상 남들의 눈치만 살피며 그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꼭두각시처럼 제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타인에게 미움받을 용기를 조금이라도 내서 부당한 상황에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을 기르고 이제는 남이 아닌 오직 저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며 당당하고 편안하게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싶어요.
거절을 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고 상대방이 나를 떠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느끼며 이 끔찍한 착한 사람 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부디 제게 꼭 필요한 지혜와 현실적인 행동 지침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