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참 무섭게도 빠릅니다. 엊그제만 해도 제 퇴근 시간에 맞춰 현관문 앞까지 맨발로 뛰어와 안기던 아이들이었는데 어느새 저보다 훌쩍 커버린 어른이 되어버렸네요.
아이들이 각자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자기만의 세상이 바빠지면서 자연스럽게 가족이 한데 모여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예전보다 턱없이 줄어들었습니다.
저 역시 한평생 직장 생활과 생업에 치인다는 핑계로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 살갑게 챙겨주지 못한 못난 애비라는 자책감을 늘 가슴 한편에 무겁게 안고 살아왔습니다.
이제라도 삶의 여유를 조금 찾고 아이들에게 든든하고 다정한 아버지가 되어주고 싶은데 머릿속으로 수없이 다짐하는 것과 막상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이 너무나도 달라서 매번 뼈저린 후회만 남는 상황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가장 마음이 무거운 순간은 퇴근 후 지친 얼굴로 집에 들어오는 아이들을 마주할 때입니다. 그 피곤한 어깨를 보면 오늘 하루도 바깥세상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싶어 따뜻하게 다독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속으로는 오늘 직장에서 힘든 일은 없었는지 밥은 거르지 않고 잘 챙겨 먹고 다니는지 너무나도 묻고 싶고 걱정이 앞섭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와 거실에서 눈이 마주치면 저도 모르게 얼굴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버리고 왜 이렇게 늦게 다니냐 피곤하면 딴짓하지 말고 일찍 들어가 자라 같은 잔소리나 지시하는 듯한 딱딱한 말투가 불쑥 튀어나와 버립니다.
아이는 제 말을 듣자마자 방금 전까지 미세하게 풀어져 있던 표정을 차갑게 굳히고는 짧게 대답만 남긴 채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립니다. 굳게 닫힌 방문을 거실에 우두커니 서서 쳐다보고 있노라면 내가 왜 또 저렇게밖에 말을 못 했을까 하는 자책감이 밀려와 그날 밤은 뜬눈으로 지새우기 일쑤입니다.
주말에 어쩌다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자리에서도 분위기는 영 어색하고 겉돌기만 합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서로 마주 보며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야기나 친구들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는데 저는 그 대화의 틈바구니에 어떻게 끼어들어야 할지 도무지 타이밍을 잡지 못하겠습니다.
용기를 내서 슬쩍 한마디 거들어 보려고 아이들의 관심사나 직장 생활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는 게 오히려 화근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깊은 관심을 표현한다고 묻는 것인데 목소리 톤이 너무 퉁명스럽거나 취조하는 것처럼 들리는지 아이들 입장에서는 간섭이나 평가를 받는다고 느끼는 눈치입니다.
아이들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다가도 제 굳은 표정과 건조한 반응에 말문이 막히는지 결국에는 대화의 꼬리가 툭 끊어지고 식탁 위에는 숨 막히는 정적만 무겁게 가라앉고 맙니다.
가장 뼈아프게 후회되는 기억은 큰아이가 회사 일로 사람에게 치여 며칠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넘기고 끙끙 앓았을 때의 일입니다.
부모로서 그 핼쑥해진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고 대신 아파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때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내어주면서 세상일이 다 그런 것이니 너무 네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넌 이미 충분히 잘해내고 있다고 등을 쓸어내리며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 입에서는 남들도 다 그렇게 치사한 꼴 참아가며 돈 버는 것이라며 나약한 소리 하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라는 매몰찬 소리가 비수처럼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 모진 말을 내뱉는 순간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아이는 제 말에 깊은 상처를 받았는지 눈시울이 붉어진 채 아무 말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위로해주고 품어주고 싶었던 제 진짜 진심과는 정반대로 아이의 여린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생채기만 내버린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제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처럼 얹혀 숨을 턱턱 막히게 합니다.
저 역시 이런 융통성 없고 꽉 막힌 제 모습이 너무나도 싫고 한심해서 혼자서 나름대로 뼈를 깎는 노력을 정말 많이 해보았습니다. 대형 서점에 혼자 찾아가서 대화법에 관련된 책이나 부모 자식 간의 소통에 대한 책들을 여러 권 사서 밤늦게까지 밑줄을 쳐가며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책에서는 무조건 공감해 주는 말을 먼저 건네고 상대방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읽어주라고 조언하길래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는 표정도 지어보고 다정하게 말하는 연습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실전에서 아이를 마주하면 수십 년 동안 제 몸과 뼈에 배어버린 굳은 표정과 무뚝뚝한 억양이 조건반사처럼 튀어나와서 그동안 배운 것들이 거짓말처럼 하얗게 지워져 버립니다. 쑥스럽고 어색하다는 핑계로 표현을 자꾸 미루고 덮어두다 보니 이제는 제 안에 있는 감정을 밖으로 꺼내는 방법 자체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아 덜컥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말로 다가가는 것이 너무나도 어색하고 벅차서 글로라도 투박한 마음을 전해보려고 문자 메시지를 수십 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해 본 적도 있습니다. 사랑한다 고생이 많다 이런 간지러운 말들을 직접 타자로 치려니 손가락이 굳어버릴 것만 같았지만 눈을 딱 감고 전송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단 한 번도 안 하던 짓을 갑자기 하니까 아이도 적잖이 당황했는지 그저 네 감사합니다 같은 짧고 사무적인 답장만 돌아왔습니다. 그 차가운 문자를 화면으로 마주하고 나니 우리 부자 사이에 가로막힌 보이지 않는 벽이 제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높고 견고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짧은 글 한 줄 남기는 것조차 지레 겁을 먹고 머뭇거리게 되었습니다. 말 대신 행동으로라도 챙겨주고 싶어 퇴근길에 아이가 평소 좋아하던 음식이나 과일을 사서 말없이 식탁 위에 올려두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따뜻한 온기가 담긴 말 한마디가 쏙 빠져 있으니 아이들과의 서먹한 심리적 거리는 좀처럼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엇갈림의 상황이 길게 반복되다 보니까 이제는 아이들도 집안에서 저와 마주치는 것을 은연중에 피하는 것이 제 눈에도 확연히 보입니다.
예전에는 텔레비전도 보고 물도 마시러 거실로 자주 나오더니 요즘은 제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아예 방에서 나오지를 않습니다. 가끔 화장실이나 주방에서 마주쳐도 눈을 길게 마주치지 않고 잰걸음으로 자기 볼일만 본 뒤 다시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는데 그 차가운 뒷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텅 빈 것처럼 시려옵니다.
제가 내 가족들 건사하겠다고 평생을 바쳐 열심히 일하며 살아왔는데 정작 내 삶의 전부인 아이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늙은 애비의 마음을 너무나도 서글프고 비참하게 만듭니다.
이대로 속절없이 시간이 더 흘러서 아이들이 각자 가정을 꾸리고 독립해 버리면 영영 돌이킬 수 없는 남보다 못한 사이로 굳어질까 봐 밤마다 가슴이 답답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제가 살아온 팍팍한 시대나 무뚝뚝했던 환경을 핑계 삼아 합리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예전 우리네 아버지들이 대부분 묵묵하게 속으로만 정을 삼키고 겉으로는 엄하게 살았다고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면 그건 그저 표현할 용기가 없었던 자들의 비겁한 변명일 뿐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아무리 태산같이 커도 그것을 입 밖으로 내어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다는 이토록 평범하고 단순한 진리를 왜 진작 젊었을 때 깨닫지 못했는지 제 자신의 어리석음이 뼈에 사무치게 원망스럽습니다.
이제는 정말 변하고 싶은데 반백 년 넘게 굳어져 버린 제 옹졸한 성격과 거친 혀끝을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뜯어고쳐야 할지 캄캄한 어둠 속에 갇힌 기분입니다. 혼자서 발버둥 쳐보고 몸부림을 쳐봐도 늘 제자리걸음이고 오히려 아이들을 더 숨 막히게 하는 역효과만 나는 것 같아서 이제는 전문가의 냉정하고 객관적인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아이들이 첫 월급을 타거나 어버이날이라고 용돈을 쪼개어 제 선물을 사 올 때조차 제 이 몹쓸 버릇은 어김없이 튀어나옵니다.
정성스레 포장된 것을 쑥스럽게 내밀 때면 속으로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대견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인데 정작 입 밖으로는 돈도 없을 텐데 뭐 하러 쓸데없이 이런 걸 샀느냐 나중에 너희들 장가갈 밑천이나 모아두라는 핀잔 섞인 쓴소리가 먼저 치고 나옵니다.
선물을 고르면서 우리 아버지가 이걸 받고 기뻐하시겠지 하고 기대했을 아이들의 그 예쁜 마음을 그 차가운 말 한마디로 처참하게 짓밟아 버리는 꼴입니다. 그래놓고는 모두가 잠든 새벽에 혼자 거실에 나와 그 선물을 어루만지며 소리 없이 가슴을 치는 제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고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고맙다 우리 아들 딸 덕분에 아버지가 참 행복하다 이 간단하고 짧은 말이 왜 제 목구멍에서는 그토록 천근만근 무겁게 가라앉아 단 한 번을 시원하게 나오지를 못하는 걸까요. 선물을 받을 때조차 그 온전한 기쁨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집안 분위기를 싸늘한 얼음장으로 만들어버리는 저의 이 지독한 표현 장애를 이번 기회에 제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고쳐내고 싶습니다.
벼랑 끝에 선 간절한 마음으로 묻고 싶습니다. 저처럼 평생을 무뚝뚝하고 메마르게 살아온 늙은 바보 같은 사람도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하면 다정하고 따뜻하게 말하는 방법을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것일까요?
머릿속에 맴도는 부모로서의 그 애틋하고 따뜻한 생각들을 입 밖으로 꺼낼 때 차가운 비수가 되지 않고 온전히 부드러운 온기로 전달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말하기 훈련법이 있다면 제발 가르쳐 주십시오.
그리고 이미 저의 수많은 날카로운 말들에 베여 상처를 입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 아이들에게 제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살갑게 다가가면 도리어 너무 가식적으로 느끼거나 소름 돋게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을까 몹시 두려운데 과연 어떻게 아주 자연스럽고 천천히 첫걸음을 떼야 하는 것인지 길을 알려주십시오.
철판을 까는 어색함을 무릅쓰고서라도 제 미안하고 사랑하는 진심을 단 한 톨의 오해 없이 전하고 싶습니다. 아이들과 예전처럼 거실에 둘러앉아 환하게 웃으며 눈을 맞추고 세상 돌아가는 편안한 대화를 밥 먹듯이 나눌 수 있는 그런 평범하지만 위대한 가정을 제 남은 생을 바쳐서라도 꼭 다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부디 못난 아버지에게 작더라도 가장 확실한 방향을 비춰주셨으면 합니다.
퇴근길에 마주한 아이들의 피곤한 어깨를 보며 온 마음으로 걱정하고 아껴주면서도, 정작 입 밖으로는 퉁명스러운 잔소리만 튀어나와 홀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셨을 아버지의 그 깊은 자책과 눈물겨운 애정이 글 한 줄 한 줄마다 저려와 마음이 아주 먹먹해집니다. 평생을 생업의 무게를 지고 치열하게 살아오느라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 아이들의 작은 선물 하나를 새벽에 남몰래 어루만지며 가슴을 치는 아버지의 그 뜨거운 마음은 이미 세상 누구보다 다정한 부모의 마음입니다. 반백 년 넘게 굳어진 습관을 바꾸는 일은 막막하고 두렵겠지만, 지금이라도 내 진심을 전하고 싶다는 그 절실한 간절함 자체가 이미 변화를 향한 가장 확실하고 위대한 첫걸음입니다.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고 굳어버린 말의 결을 부드럽게 바꾸어 나갈 수 있도록,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말하기 훈련과 다가가는 방법을 차근차근 짚어드립니다. 1. 혀끝에서 튀어나오는 퉁명스러움을 잡는 '3초 브레이크와 언어 전환 훈련' 머릿속의 따뜻한 진심이 입 밖으로 나갈 때 차가운 비수로 바뀌는 이유는, 생각이 감정을 거쳐 곧바로 반사 신경처럼 튀어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자동 반응의 고리를 끊어내려면 강한 물리적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 말하기 전 '3초 멈춤' 연습: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거나 마주치면, 대답하기 전에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며 입을 꾹 다무는 연습을 먼저 하세요. 이 3초의 침묵이 퉁명스러운 반응을 걸러내는 필터가 되어줍니다. * 지시·평가문을 관찰·인정문으로 바꾸기 : (기존 습관): "왜 이렇게 늦게 다니냐, 일찍 좀 자라" / "돈도 없을 텐데 뭐 하러 이런 걸 샀냐" (바꿀 말): "오늘도 늦게까지 고생 많았지, 피곤할 텐데 어서 쉬어라" / "아이고, 우리 아들(딸) 마음이 고마워서 어쩌냐. 아버지 가슴이 참 뭉클하네." * 거울을 보거나 혼자 있을 때 이 문장들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읽어보는 훈련을 매일 반복해 보세요. 혀끝에 익숙지 않던 부드러운 단어들이 점점 입에 붙기 시작합니다. 2. 거부감을 주지 않고 마음을 여는 '문자(글)의 힘 활용하기' 이미 마음의 문이 닫힌 아이들에게 갑자기 말로 다정하게 다가가면 아이들은 당황하거나 경계하기 쉽습니다. 낯간지러움을 이겨내고 '글'이라는 안전한 도구를 먼저 활용해 보세요. * 사과와 진심을 담은 편지 건네기: 말로 직접 하기가 너무 벅차다면, 손편지나 진심 어린 긴 문자 메시지를 추천합니다. * "우리 아들(딸), 아버지가 참 서툴러서 그동안 너한테 섭섭한 소리만 하고 상처 준 날들이 늘 가슴에 걸린다. 네가 힘들 때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하고 모진 소리 했던 거 정말 미안하다. 네가 내 아들(딸)이라는 게 아버지는 늘 고맙고 자랑스러워." * 반응을 기대하지 않는 태도: 문자를 보냈을 때 아이가 "네, 감사합니다"처럼 짧고 사무적으로 답하더라도 절대 실망하거나 조급해하지 마세요. "아이가 당황했겠지만 내 진심이 일단 아이의 마음에 가닿았다"고 믿고, 그저 묵묵히 평소처럼 담담하게 자리를 지켜주시면 됩니다. 3. 갑작스럽지 않게 거리를 좁히는 '옆모습 대화법'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는 정면 대면은 아이들에게도 아버지에게도 부담스럽고 어색합니다. 시선이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는 상황을 활용하면 훨씬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습니다. * 차 안에서의 대화: 어디를 이동할 때 운전석과 조수석, 혹은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자연스럽게 음악이나 라디오 이야기를 매개로 툭 던지듯 말을 건네보세요. 시선이 정면을 향해 있어 아이들도 방어적인 태도를 풀기 쉽습니다. * 행동 뒤에 가벼운 메모 남기기: 아이가 좋아하는 과일이나 음식을 사서 식탁 위에 올려둘 때, 퉁명스럽게 말로 전하는 대신 작은 포스트잇에 "지치고 힘들 때 이거 먹고 힘내라, 울 아들 최고" 같은 짧은 세 줄짜리 글을 붙여두세요. 말로는 못 하던 온기가 글을 통해 스며들게 됩니다. 4. 아이들에게 다가갈 때 꼭 지켜야 할 마음가짐 * 변화를 서두르지 않는 인내: 아버지가 몇십 년 동안 유지해 온 단단한 벽을 허무는 데 시간이 걸리듯, 아이들이 아버지의 변화를 믿고 마음을 열기까지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곧바로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역시 안 되는구나" 하고 옛날의 무뚝뚝한 모습으로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 서툴러도 괜찮다는 용기: "아버지, 저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게 아직도 너무 쑥스럽고 어색하다"고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고백해 보세요. 완벽하고 멋진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 서툴지만 노력하는 아버지의 인간적인 모습이 오히려 아이들의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들고 깊은 울림을 줍니다. 반백 년의 세월 동안 굳어진 습관을 고치는 일은 산을 옮기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 밤, 아이들을 향한 그 절절한 후회와 사랑을 품고 계신다면 아버지의 남은 시간은 분명 이전과 완전히 다른 온기로 채워질 것입니다. 오늘 퇴근길, 혹은 내일 아침 아이를 마주할 때 3초만 숨을 고르고 "오늘도 참 고생 많았다"는 그 한마디부터 아주 낮고 편안한 목소리로 건네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가 내딛는 그 조심스럽고 따뜻한 한걸음을, 아이들도 기꺼이 마주 잡으며 다가와 줄 것입니다. 지금의 이소중한 출발이 절대 늦지않은 감동의 물꼬가 될것임을 확신하며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