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 모든 비밀과 찌질한 모습까지 전부 공유하며 친형제보다 더 끈끈하게 지냈던 인생의 하나뿐인 절친이 있었습니다. 피를 나눈 가족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할 깊은 고민이나 부끄러운 과거마저도 그 녀석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을 수 있었고 서로의 부모님 경조사까지 제 일처럼 챙기며 평생을 함께 늙어갈 진짜 내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어요.
제가 힘들 때면 언제든 달려와 소주잔을 기울여 주었고 저 역시 그 친구가 어려움에 처하면 제 간과 쓸개라도 다 빼줄 수 있을 만큼 그 우정에 제 20대와 30대의 모든 진심을 다 바쳤습니다.
주변에서도 저희 둘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평생지기를 만났냐며 부러워할 정도로 단단한 관계였기에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저를 등져도 그 친구 하나만큼은 영원히 내 편일 거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살아왔어요. 하지만 그 견고했던 10년의 세월과 맹목적인 믿음이 단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돈 앞에서는 얼마나 허망하고 우스운 쓰레기로 변해버리는지 뼈저리게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몇 달 전 그 친구가 세상이 다 무너진 것 같은 핼쑥한 얼굴로 저를 찾아와서는 집에 정말 감당할 수 없는 큰일이 터졌다며 눈물을 펑펑 쏟아냈습니다.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 계신 데다가 집안 사업에 압류까지 들어와서 당장 급한 돈을 막지 못하면 온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며 제 앞에서 무릎까지 꿇고 오열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자존심 강하고 당당하던 녀석이 식당 바닥에 엎드려 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한 번만 살려달라고 빌며 우는데 그 순간 저는 이 친구를 무조건 살려야겠다는 생각 외에는 이성적인 판단이 전혀 서지 않았습니다.
비록 제 전 재산까지는 아니었지만 제가 그동안 안 먹고 안 입으며 훗날 제 가정을 꾸리고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악착같이 모아두었던 피 같은 재산의 꽤 큰 부분을 단 하루 만에 그 친구의 계좌로 이체해 주었어요.
수천만 원이라는 그 막대한 금액을 차용증 한 장 쓰지 않고 덥석 빌려주면서도 오히려 당장 더 많이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제발 가족들 잘 챙기고 훌훌 털고 일어나라고 진심 어린 위로까지 건넸던 제 멍청하고 순진했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정말 제 눈을 찌르고 싶을 만큼 끔찍한 자기 혐오에 시달립니다.
돈을 빌려 간 직후부터 친구의 연락은 눈에 띄게 뜸해졌고 아버님 병간호 때문에 정신이 없겠거니 하며 먼저 연락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던 어느 날 저는 다른 지인을 통해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적인 진실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친구 아버지는 아주 정정하게 잘 계시며 집안에 압류가 들어왔다는 것도 전부 저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해 치밀하게 꾸며낸 악마 같은 거짓말이었더라고요.
제가 땀 흘려 일하며 차곡차곡 쌓아 올렸던 그 소중한 목돈은 전부 그 녀석의 불법 도박과 상장 폐지 직전의 코인판으로 흘러 들어갔고 단 며칠 만에 허공의 먼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얼어붙고 심장이 멎는 듯한 극도의 공포와 배신감이 저를 덮쳤습니다.
손발이 덜덜 떨리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패닉 상태로 그 녀석에게 미친 듯이 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제 번호는 차단되어 있었고 자취방으로 찾아가 봐도 이미 짐을 싹 빼서 야반도주를 해버린 텅 빈 방만 저를 조롱하듯 반기고 있었어요.
10년이라는 그 길고 찬란했던 우리의 우정이 고작 자기 도박 빚을 메꾸기 위한 호구 잡이용 미끼로 철저하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에 길바닥에 주저앉아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오열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간신히 다른 번호로 그 녀석과 통화가 닿았을 때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저에게 석고대죄를 하고 핑계라도 댈 줄 알았던 제 예상은 아주 처참하게 빗나갔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 악마 같은 목소리는 전혀 미안한 기색 없이 오히려 짜증을 내며 나 지금 돈 다 날려서 한 푼도 없으니까 마음대로 하라며 법대로 하든지 감방에 처넣든지 알아서 하라는 식의 뻔뻔한 배째라 태도로 일관하더라고요.
내가 널 어떻게 생각했는데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피를 토하듯 소리치는 제 절규에 그는 그저 콧방귀를 뀌며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순진하게 큰돈을 덥석 빌려주냐며 오히려 저의 멍청함을 비웃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그 순간 제 안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마지막 남은 가느다란 신뢰의 끈마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저는 그 길로 완전히 이성을 잃고 방 안의 물건들을 다 때려 부수며 밤새도록 미친 사람처럼 분노와 절망 속에서 몸부림쳤습니다.
당장 길거리에 나앉을 정도로 전 재산을 날린 건 아니지만 제 미래를 위해 깎고 다듬어온 거대한 자산의 한 축이 무너져 내렸다는 상실감보다 제가 제 목숨처럼 믿고 아꼈던 사람의 본성이 이토록 추악하고 교활한 괴물이었다는 사실이 제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놓아서 도무지 맨정신으로는 단 일 분도 버틸 수가 없더라고요.
그 끔찍한 배신의 날 이후로 제 삶은 그야말로 지옥의 밑바닥을 기어 다니는 처참한 폐허로 변해버렸습니다. 매달 통장 잔고를 확인할 때마다 혹은 미래를 위해 세워두었던 재무 계획들을 다시 들여다볼 때마다 그 녀석이 훔쳐 간 제 20대와 30대의 피와 땀이 커다란 구멍으로 뚫려있는 걸 보며 피가 거꾸로 솟고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억울함에 매일 밤 눈물로 베개를 적시고 있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왜 그 악마 같은 새끼의 도박 빚을 대주기 위해 그토록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다 참아가며 미련하게 살았나 하는 끓어오르는 분노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당장이라도 식칼을 들고 그놈을 찾아가 같이 죽어버리고 싶다는 끔찍하고 극단적인 살의가 머릿속을 지배합니다.
길을 걷다가 그 녀석과 비슷한 체형이나 뒷모습만 봐도 숨이 턱 막히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며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심각한 트라우마가 생겨서 이제는 밖에 나가는 것조차 두렵고 사람의 눈을 쳐다보는 것 자체가 극한의 공포로 다가와요.
직장에서도 업무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다가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라 화장실로 달려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일이 반복되면서 제 커리어와 일상마저 완벽하게 붕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경찰서에 찾아가 사기죄로 고소를 하려고 발버둥을 쳐봐도 차용증 하나 없이 자발적으로 송금한 내역뿐이라 법적으로 완벽하게 처벌하기도 까다롭다는 경찰관의 건조한 대답을 듣고는 경찰서 문을 나서며 세상이 핑 도는 어지러움을 느꼈습니다.
법마저도 선량하게 믿었던 피해자인 저를 보호해주지 않고 교활하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은 사기꾼의 편인 것 같아서 이 세상 전체가 저를 버리고 조롱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아봐도 수임료만 몇백만 원이 깨진다는 말에 이미 그놈에게 거액을 뜯겨 막대한 금전적 타격을 입은 저는 또다시 돈을 허공에 날리게 될까 봐 무기력하게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고 그놈은 이런 법의 맹점까지 철저하게 계산하고 제 등을 쳐먹었다는 생각에 치가 떨려 매일매일 피가 마르고 있습니다.
밥을 먹어도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고 잠을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 그 녀석의 비웃는 얼굴이 떠올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불면증에 시달리다 보니 몸무게는 몇 달 새에 10kg 가까이 훅 빠져버렸고 거울 속에는 생기라곤 하나도 없는 시체 같은 모습의 껍데기만 남아있어요.
부모님이나 가족들에게도 제가 이렇게 엄청난 액수의 돈을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아서 혼자서 그 거대한 상실감과 끔찍한 배신감을 온몸으로 견뎌내느라 하루하루 피눈물을 삼키며 숨만 간신히 쉬고 있습니다.
가장 저를 미치게 만드는 건 이제 이 세상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지독한 인간 불신과 뼈저린 고립감입니다.
가족이나 다른 주변 지인들이 저를 걱정하며 다가와도 저 사람들이 속으로는 또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나한테 잘해주는 걸까 언젠가 저 사람들도 내 등에 아주 잔인하게 칼을 꽂고 비웃으며 돌아서겠지 라는 병적인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제 스스로 모든 인연을 차갑게 끊어내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렸습니다.
가장 투명하고 순수하게 빛났던 십 년의 우정이 가장 역겹고 더러운 사기로 변질되는 것을 겪고 나니 사람의 미소 뒤에 숨겨진 탐욕과 이기심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여서 이제는 누군가와 웃고 대화하는 평범한 인간관계 자체가 저에게는 구역질이 날 만큼 징그럽고 끔찍한 고문이 되어버렸어요.
차라리 생면부지 강도에게 돈을 빼앗겼다면 운이 없었다 치고 어떻게든 털어냈을 텐데 제 가장 찬란했던 이십 대의 추억과 우정을 송두리째 강간당하고 짓밟힌 이 정신적인 상실감은 그 어떤 약이나 시간으로도 절대 치유될 수 없을 것 같아서 매일 밤 차가운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저 하나 바보 만들고 제 목돈으로 어디선가 배를 두드리며 희희낙락 살아가고 있을 그 악마 같은 놈을 떠올리면 제발 벼락이라도 맞아서 찢겨 죽어버리기를 온 우주의 저주를 모아 매일 기도하지만 현실은 그저 구멍 난 통장을 끌어안고 시들어가는 제 처참한 모습뿐이라 억울해서 피를 토할 지경입니다.
저 정말 하루하루가 생지옥이고 온몸에 독이 퍼져서 썩어 들어가는 기분이에요. 재산의 꽤 큰 부분을 날려버린 금전적인 타격과 허탈감도 숨이 막히지만 그것보다 제 영혼을 완전히 파괴해 버린 이 지독한 인간에 대한 환멸감과 배신감을 도대체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그 쓰레기 같은 놈에게 철저하게 속고 놀아났다는 끔찍한 자기 혐오와 매일 밤 제 목을 조르는 복수심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이 난도질당한 멘탈을 꿰매고 다시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는 현실적이고 아주 독한 마인드 컨트롤 처방이 지금 제게는 생명줄처럼 절실합니다.
피 같은 제 돈을 떼먹고 도망간 그 악질적인 인간을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지워버리고 이 억울하고 피 끓는 분노의 감정 스위치를 차갑게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요.
모든 사람이 다 그놈처럼 교활하고 악하지 않다는 걸 머리로는 알려고 노력해도 이미 바사삭 부서져 버린 제 마음의 방어막은 사람들의 작은 호의조차 공포로 받아들이며 저를 끝없는 동굴 속으로 파묻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이 끔찍한 과거의 망령과 배신감에 제 남은 소중한 인생 전체를 저당 잡혀 폐인처럼 썩어가고 싶지 않으니 부디 이 잔인한 트라우마를 끊어내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을 아주 천천히라도 다시 쌓아 올리며 오직 제 자신만의 평온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가장 날카롭고 현실적인 지혜를 제게 나누어주세요.
숨을 쉬고 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닌 이 끔찍한 지옥에서 저를 구출해 주시기를 엎드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