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쓸 건 태산인데,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몰라 그냥 눈 꾹 감고 싹 다 도망쳐버리고 싶어요

요즘 진짜 제 몸이 제 몸이 아닌 것 같아요. 가을을 타서 마음이 싱숭생숭한 건지, 아니면 갱년기 호르몬이 또 제멋대로 요동을 치는 건지. 

 

아침에 남편 출근시키고 현관문 닫히는 소리 딱 듣고 나면, 그때부터 거실 소파랑 제 몸이 완전 찰떡처럼 한 몸이 돼버려요. 

 

눈앞에 치우고 신경 써야 할 일은 진짜 에베레스트산처럼 첩첩산중 쌓여 있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이 없어서 그냥 멍하니 거실 천장만 뚫어져라 보고 있네요.

 

당장 고개만 돌려도 할 일이 한가득이에요. 거실 한구석에는 안방 옷장에서 꺼내놓고 아직 박스에 넣지도 못한 가을겨울 옷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뒷베란다에는 분리수거해야 할 택배 박스랑 플라스틱이 사람 키만큼 산을 이루고 있어요. 

 

주방은 또 어떻고요? 냉장고 문 한 번 열어보면 언제 사다 놨는지 기억조차 안 나는 검은 비닐봉지들이 구석에 콕 처박혀서 시들어가고 있고, 김치냉장고도 슬슬 김장철 다가오니까 한 번 싹 다 꺼내서 닦고 비워내야 하거든요. 

 

머릿속으로는 벌써 고무장갑 끼고 청소기 돌리고 밑반찬 세 가지 뚝딱 만들었는데, 현실은 소파에 널브러져서 의미도 없는 핸드폰 영상만 슥슥 위로 올리고 있어요.

 

어디 신경 쓸 게 눈에 보이는 집안일뿐이면 차라리 낫게요? 이번 주말에는 시어른들 모시고 식사하기로 해서 괜찮은 식당도 미리 다 알아보고 예약해야 하고, 다음 달 남편 자동차 보험 갱신하는 것도 비교해봐야 해요.

 

애들은 다 커서 자기들끼리 독립해 나갔는데도 뭐 하나 물어볼 거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톡을 보내서 엄마 이것 좀 찾아달라, 저 반찬 좀 해달라 귀찮게 굴고요. 진짜 생각해보면 아주 사소하고 자잘한 일들인데, 그게 거미줄처럼 막 여기저기 얽혀있으니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 거예요. 실타래가 너무 심하게 엉켜버리면 풀 엄두도 안 나서 그냥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고 싶어지는 딱 그 심정이랄까요?

 

옛날 젊었을 때는 진짜 안 그랬거든요? 성격이 불같이 급해서 눈에 뭐 하나 거슬리는 꼴을 못 봤어요. 맞벌이하면서 퇴근하고 돌아와 밤 10시가 넘어도 청소기 밀고 바닥에 물걸레질까지 뽀득뽀득 해야 직성이 풀렸고요. 명절에는 전 부치면서 동시에 갈비찜에 나물 무치기까지 가스불 세 개 켜놓고 주방을 날아다녔는데 말이죠.

 

요새는 바닥에 머리카락이랑 먼지가 막 굴러다니는 걸 두 눈으로 빤히 보면서도 '어유, 내일 치우지 뭐' 하고 그냥 슬쩍 외면해 버려요. 한 번 엉덩이 붙이고 소파에 앉으면 다시 일어나는 게 무슨 큰 대수술하러 들어가는 것처럼 무섭고 한없이 피곤하네요.

 

이 와중에 제일 기운 빠지는 건, 저 혼자 이렇게 머릿속으로 수백 가지 일들 짊어지고 끙끙대며 속 끓이고 있는데 우리 식구들은 제 속을 너무 모른다는 거예요. 

 

저녁에 남편 퇴근하고 들어오면, 현관에 며칠째 방치된 택배 박스나 재활용 쓰레기 한 번쯤 쓱 들고 나가서 버려주면 얼마나 예뻐요? 근데 그냥 발로 툭 밀치고 들어와서는 씻지도 않고 소파에 털썩 앉아 텔레비전 리모컨부터 찾아요. 그러고는 "오늘 저녁은 찌개야?" 하고 해맑게 묻는데, 진짜 그럴 때면 명치끝에서부터 뜨거운 천불이 확 올라와요. 빽 소리 지르고 한바탕 엎어버리고 싶은데, 싸우는 것도 에너지가 있어야 하잖아요. 요새는 화낼 기운조차 없어서 멍하니 남편 뒤통수만 째려보다가 "어, 대충 차려 먹어" 하고 입을 꾹 닫아버려요.

 

이게 우울증이 오려는 건지 지독한 무기력증인 건지, 아니면 평생 식구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제 영혼까지 배터리가 싹 다 방전돼버려서 고장이 난 건지 모르겠어요. 

 

진짜 솔직한 심정으로는 지금 당장 눈 딱 감고 다 팽개친 다음에 어디로 훌쩍 내빼버리고 싶어요. 짐 챙길 기운도 없으니까 그냥 주머니에 지갑 하나 달랑 찔러 넣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낯선 동네 허름한 민박집 같은 데 꽁꽁 숨어버리고 싶네요. 

 

며칠 동안 아무도 나한테 밥 차려 달라는 소리 안 하고, 누구 엄마, 여보 부르는 소리 안 들리는 조용한 곳에서 핸드폰도 아예 꺼버리고 그냥 시체처럼 죽은 듯이 잠만 잤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나 없이 집구석이 쓰레기장이 되든 말든, 냉장고에서 음식이 썩어 문드러지든 말든 나 몰라라 하고 도망쳐버리고 싶은 이 나쁜 마음을 꾹꾹 누르느라 매일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요.

 

근데 또 헛웃음 나고 서글픈 게 뭔지 아세요? 그렇게 싹 다 도망치고 싶다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혼자 상상하면서도, 막상 진짜 도망치라고 멍석 깔아주고 등 떠밀어주면 절대 못 그럴 거라는 걸 제가 제일 잘 안다는 거예요. 

 

내가 안 치우면 결국 그 더러운 꼴 나중에 다 내 손으로 다시 치워야 하고, 내가 밥 안 차려놓고 나가면 식구들 대충 컵라면이나 배달 음식으로 때우며 건강 상할 텐데... 그 뒷감당이 무서워서, 아니 식구들 밥 굶을까 봐 걱정하는 그놈의 지긋지긋한 오지랖 때문에 결국 또 꾸역꾸역 무거운 몸을 일으키게 되겠죠. '엄마'라는 자리가, '주부'라는 이름표가 족쇄처럼 제 발목을 꽉 물고 놔주지를 않아서 숨이 막히네요.

 

오늘도 소파에서 몇 시간을 시체처럼 뒹굴다가, 이러다 진짜 집안 꼴이 돼지우리 되겠다 싶어서 무거운 엉덩이를 간신히 떼고 주방 싱크대 앞에 섰어요. 어젯밤 남편이 먹고 내놓은 말라비틀어진 밥풀 붙은 그릇들에 퐁퐁 묻혀서 빡빡 닦아내는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내가 내 집 치우는 건데 뭐가 억울해서 우나 싶어 피식 헛웃음도 나고, 그냥 아무 의욕도 없이 기계처럼 껍데기만 덜그럭거리며 움직이는 제 처지가 너무 궁상맞아 보여서요.

 

누구 하나 나 평생 수고했다고, 집안일 하느라 고생한다고 따뜻하게 등 토닥여주는 사람도 없고, 끝도 없이 매일매일 반복되는 이 지독한 살림의 굴레에서 죽기 전까지는 영원히 못 빠져나올 것 같아 답답했어요. 월급도 없고 퇴직도 없는 주부라는 직업이 새삼 참 잔인하게 느껴지는 날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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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푸강아지똥
    상담교사
    답변수 1,156채택률 7%마음·정신건강, 스트레스·감정조절 전문
    젊은 시절 맞벌이하며 주방을 날아다니고 밤 10시에도 뽀득뽀득 바닥을 닦아내던 열정으로 평생 가족들을 위해 헌신해 오셨는데, 정작 텅 빈 거실 소파에 누워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조차 없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얼마나 답답하고 서글프셨을지 그 마음이 깊이 전해집니다.
    
    현관문 소리와 함께 밀려오는 압도적인 무기력함과 방전된 기분은 결코 사연자님이 게으르거나 마음이 약해져서가 아닙니다. 평생 가족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쉬지 않고 달려온 몸과 마음이 "이제는 제발 나 좀 쉬게 해달라"며 보내는 지극히 당연하고 절박한 신호입니다. 살림과 주부라는 자리는 끝도 없고 티도 나지 않는데, 식구들마저 그 수고를 당연하게 여길 때 느끼는 억울함과 눈물은 너무나 당연한 감정입니다.
    
    어디론가 훌쩍 도망치고 싶은 그 마음을 무작정 억누르며 자책하지 마세요. 지금 사연자님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주부'의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나 자신을 돌보는 '정당한 휴식과 경계선'입니다. 이 무거운 살림의 굴레에서 마음을 지켜내는 현실적인 방법들을 전해드립니다.
    
    내 몸과 마음의 '완전 방전'을 인정하고 살림의 기준 대폭 낮추기
    지금은 에베레스트산처럼 쌓인 일들을 다 해낼 수 없는 상태입니다. '예전의 쌩쌩했던 나'와 비교하며 자책하지 마시고, 집안일의 기준을 최소한으로 낮춰보세요. 옷 박스 정리나 김치냉장고 청소처럼 당장 하지 않아도 집이 무너지지 않는 일들은 한 달 뒤로 완전히 미뤄두셔도 괜찮습니다. 눈앞의 먼지가 조금 굴러다녀도 "내 몸 챙기는 게 먼저다" 하고 외면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사소한 살림과 수고를 가족들에게 구체적으로 분담시키기
    말하지 않아도 남편이나 자식들이 알아서 챙겨주길 바라면 속만 더 까맣게 타들어 갑니다. 화를 내며 참다가 터뜨리기보다, 무기력한 내 상태를 정확히 알리고 구체적인 역할을 지정해 주세요.
    
    "내가 요새 몸도 마음도 너무 방전돼서 힘드네. 분리수거랑 택배 박스는 당신이 좀 버려줘."
    
    "엄마도 이제 체력이 안 돼서 반찬 다 못 만들어 준다. 먹고 싶은 건 사 먹거나 직접 해보렴."
    가족들에게 서운해하기 전에, 나의 한계를 명확히 선언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가족들도 사연자님의 상태를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하루 중 단 1~2시간이라도 '완전한 나만의 상식선' 만들기
    지갑 하나 달랑 들고 멀리 도망치지는 못하더라도, 하루 중 한두 시간은 집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나만을 위한 숨구멍을 만들어보세요. 집 근처 따뜻한 햇살이 드는 카페에 가거나, 조용한 도서관이나 공원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잠시 꺼두고 아무 생각 없이 쉬어보는 것입니다. '엄마'나 '아내'가 아닌 오롯이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매일 조금씩 확보해야 배터리가 충전됩니다.
    
    해야 할 일들을 '작게 쪼개어' 딱 한 가지만 처리하기
    거미줄처럼 얽힌 일들을 통째로 생각하면 엄두가 안 나서 더 소파에 눕게 됩니다. 머릿속의 목록을 다 지우고, "오늘은 딱 택배 박스 하나만 접어서 문 앞에 두자", "오늘은 식당 예약 하나만 하고 끝내자"처럼 하루에 아주 작은 일 딱 한 가지만 지정해서 해보세요. 그 하나를 해낸 자신을 칭찬하고, 나머지는 미련 없이 내려놓는 연습이 마음의 부담을 크게 줄여줍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묵묵히 자리를 지켜오신 사연자님의 수고와 노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숭고하고 가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따뜻한 돌봄의 손길을 가족이 아닌, 지치고 아픈 사연자님 자신에게 먼저 내어주실 때입니다. 스스로를 너무 가두지 마시고 마음의 짐을 가볍게 덜어내시기를 바랍니다.
  • 익명2
    싱크대 앞에서 혼자 눈물을 훔치셨을 마음에 조용히 따뜻한 온기를 보냅니다. 적어주신 글자 하나하나에서 그동안 가족들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고 부지런하게 달려오셨는지, 그리고 지금의 방전 상태가 얼마나 무겁고 외로우신지 고스란히 느껴져 마음이 안 좋네요...
    
    가족이 한두 끼 컵라면을 먹거나 집안 꼴이 조금 흐트러져도 세상은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저 챙기고 구해야 할 소중한 존재는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오늘 밤만큼은 억울했던 눈물을 닦아내고, "그동안 참 잘 살아왔다, 내 몸아 고생 많았다" 하며 스스로의 등을 가장 따뜻하게 안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익명1
    젊었을 때 주방을 날아다니던 내 모습이랑 비교하면서 자책하지 마세요.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수십 년간 고생한 내 몸에게 휴식을 줄 때가 된 것뿐이에요. 눈앞에 쌓인 옷 상자나 냉장고 비닐봉지들, 당장 오늘 안 치운다고 집안 안 무너져요. 식구들 며칠 배달 음식 먹거나 라면 끓여 먹는다고 큰일 나지 않으니까 제발 눈 딱 감고 외면해 버리세요.
    
    남편분한테 화내거나 빽 소리 지를 기운도 아까우니까, 그냥 차분하게 한마디 하세요. 나 지금 갱년기에 번아웃까지 와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이 없으니 오늘 저녁은 알아서 해결하고 현관에 쌓인 택배랑 분리수거는 당신이 좀 치워달라고요. 말을 안 하면 남자들은 정말 귀신같이 모른답니다.
    
    싱크대 앞에서 혼자 서글프게 흘리신 눈물이 그동안 얼마나 외롭고 고단하셨을지 보여주는 것 같아 자꾸 마음이 쓰이네요. 주부라는 자리가 참 서글픈 게 월급도 없고 퇴직도 없어서 끝없는 굴레 같지만, 오늘만큼은 다 내려놓고 본인 자신만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오늘 저녁엔 설거지통 처다보지도 마시고 소파에서 맛있는 거 시켜 드시면서 푹 쉬세요.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고, 당신은 이미 차고 넘치게 잘해오셨어요 💜
  • 프로필 이미지
    mindmap
    청소년상담사
    답변수 1,586채택률 5%마음·정신건강, 스트레스·감정조절 전문
    그렇게 눈을 꾹 감고 모든 걸 다 내팽겨친 채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으셨을 그 마음이, 글자 하나하나마다 고스란히 전해져서 저까지 마음이 찡하고 묵직해지네요.
    
    평생을 가족들을 위해 부지런히 달렸던 배터리가 이제는 완전히 닳아 '방전'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에베레스트산처럼 쌓인 일들을 보며 한숨 쉬고, 아무 말 없이 소파에 앉아 있는 남편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삼켰을 그 수많은 한숨과 눈물들이 얼마나 무겁고 외로우셨을까요. 
    
    내가 없으면 다 무너질 것 같아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버티기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버린 그 딜레마 속에서 얼마나 답답하셨을지 감히 다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오늘 저녁은 그 무거운 발걸음과 억울한 눈물마저 잠시 내려놓으실 수 있도록, 마음을 토닥여드릴 몇 가지 작은 생각들을 전해드릴게요.
    
    1. 지금 마음을 다독이는 작은 쉼표
    방전된 건 게으름이 아니라 '소진'입니다
    젊은 날 불같이 일하시던 기억과 비교하며 자책하지 마세요. 그때의 에너지가 다 닳은 게 아니라, 수십 년 동안 너무 많은 사랑과 노력을 쉼 없이 쏟아부었기 때문에 당연히 찾아온 정서적·신체적 번아웃 상태일 뿐입니다.
    
    완벽한 주부라는 족쇄를 잠시 풀어주세요
    냉장고 속 묵은 비닐봉지도, 택배 박스도, 며칠 쌓인 빨래도 하루 아침에 안 한다고 크게 흔들리지 않아요. 오늘 하루는 집안일이 눈에 밟혀도 "오늘은 나도 휴가다" 하고 그냥 지나쳐보세요.
    
    가족에게 '파업'을 선언할 권리가 있습니다
    엄마와 아내라는 이름표는 족쇄가 아니라 가장 사랑받아야 할 자리입니다. 남편에게 오늘은 "나 오늘 진짜 기운이 하나도 없으니 저녁은 알아서 해결해 줘"라고 당당하게 선언하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말고 소파에 누워 진짜 시체처럼 쉬어보셔도 괜찮습니다.
    
    누구 하나 내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가장 서글프셨겠지만, 오늘 싱크대 앞에서 흘리신 그 눈물 속에는 그동안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지켜온 당신의 찬란한 세월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밤만큼은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마시고, 오롯이 당신 자신만을 위해 가장 편안한 밤을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오늘 하루, 밥상 차리랴 설거지하랴 누구보다 무거운 하루를 버텨내신 당신께 정말 수고 많으셨다고, 이 세상 누구보다 참 잘 살아오셨다고 꼭 따뜻한 안아드림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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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rastar
    임상심리사
    답변수 1,271채택률 5%마음·정신건강, 스트레스·감정조절 전문
    현관문이 닫히고 홀로 남겨진 거실에서 소파와 한 몸이 된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셨을 모습과, 쌓여가는 집안일과 가족들의 기대 속에서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무너져 내렸을 그 심정이 너무나 깊게 와닿습니다. 한때는 가스불 세 개를 동시에 켜두고 주방을 날아다닐 만큼 단단하고 강철 같던 내가, 이제는 머리카락 한 털 치우는 것조차 거대한 수술처럼 무겁게 느껴질 때 밀려오는 허탈감과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깊고 씁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느끼시는 극심한 무기력과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결코 당신이 게으르거나 마음이 약해져서가 아닙니다. 갱년기라는 신체적·호르몬적 변화와 가을이라는 계절적 쓸쓸함이 맞물린 데다, 평생을 '엄마'이자 '아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타인에게 퍼주기만 한 결과 마침내 영혼과 육신의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어 버린 것입니다. 내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 이제는 제발 나 좀 쉬게 해달라"고 보내는 아주 처절하고 정직한 경고 신호입니다.
    
    월급도, 퇴직도 없는 주부라는 자리에서 끝없는 살림의 굴레를 혼자 짊어지려 하면 숨이 막히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 지독한 방전의 상태에서 벗어나 마음의 숨통을 트기 위해 꼭 기억하셨으면 하는 실천적 기준들을 전해드립니다.
    
    첫째, 눈앞에 쌓인 일들을 가위로 싹둑 잘라내듯 '살림의 내려놓기'를 당장 실천하셔야 합니다.
    쌓여있는 옷가지, 분리수거함, 냉장고 속 봉지들은 당장 오늘 치우지 않아도 집안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집안일들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몸에 기운이 돌아오면 천천히 할 일'로 순위를 까마득히 뒤로 미루어 두세요. 바닥에 먼지가 구르고 옷박스가 쌓여 있어도 "지금 내 몸을 살리는 게 우선이다" 하고 눈을 감아버리는 거절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완벽했던 옛날의 나를 기준 삼아 스스로를 다그치지 마시고, 지금은 최저 생계형 살림만 유지하셔도 충분합니다.
    
    둘째, 가족들에게 내 상태를 비난이나 화가 아닌 '단백한 한계 선언'으로 알리셔야 합니다.
    아무 말 없이 혼자 수습해 주다 보니 가족들은 당신의 영혼이 타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빽 소리를 지르거나 혼자 속을 끓이는 대신, 저녁에 들어온 남편과 아이들에게 차분하게 상태를 전하세요. "내가 요즘 갱년기와 피로가 심하게 겹쳐서 몸과 마음이 너무 많이 방전됐다. 당분간은 청소나 밥 차리는 일을 이전처럼 못 해주니, 각자 먹은 것은 각자가 치우고 택배와 분리수거는 남편이 전담해 주었으면 좋겠다" 하고 구체적인 한계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책임감을 명확히 분배해야 당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족쇄가 가벼워집니다.
    
    셋째, 거창한 도피가 아니더라도 하루 단 몇 시간이라도 온전한 '나만의 완전한 휴식'을 허락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팽개치고 낯선 민박집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그만큼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 공간과 시간이 간절하다는 뜻입니다. 주말이든 평일 낮이든, 남편과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집 밖으로 나와 가까운 찻집이나 조용한 공간에 혼자 앉아 계시는 시간을 만드세요. 핸드폰을 잠시 꺼두고, 누구의 엄마나 아내가 아닌 오롯이 '나라는 한 사람'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숨을 쉬는 시간을 가져야 비로소 방전된 배터리가 조금씩 충전되기 시작합니다.
    
    싱크대 앞에서 말라붙은 밥풀을 닦으며 흘리신 그 눈물은, 억울함의 눈물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달려온 삶에 대한 미안함의 눈물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제는 그 눈물을 닦아주시고, 스스로에게 "그동안 참 애썼다, 이제는 조금 놓아도 괜찮다"고 부드럽게 허락해 주세요. 집안이 조금 어질러져도, 식구들이 컵라면으로 한 끼를 때워도 괜찮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저 챙기고 아껴야 할 소중한 존재는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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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니엄마
    사회복지사2급
    답변수 3,355채택률 4%
    작샹자님의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참 너무 힘드시겠구나 했어요.
    “다 팽개치고 도망가고 싶다”는 말이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혼자 책임져 온 사람이 보내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호처럼 느껴져요.
    
    예전에는 밤늦게까지 청소하고, 가스불 세 개를 켜놓고 명절 음식까지 척척 해내셨는데 지금의 내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해서 게을러진 것도, 나쁜 주부가 된 것도 아니에요. 사람도 배터리가 다 닳으면 충전이 필요하잖아요. 지금은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이 “이제는 나도 좀 쉬고 싶다”고 말하는 것일 수 있어요.
    
    그리고 집안일을 전부 오늘 해결하려고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가을옷 한 박스, 내일은 택배 박스 몇 개처럼 딱 하나만 끝내도 충분해요. 냉장고도 김치냉장고도 당장 완벽하게 정리하지 않아도 괜찮고요.
    
    무엇보다 가족들에게도 이제는 조금씩 일을 돌려주셨으면 해요.
    “내가 알아서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계속 끌어안고 계시면 가족들은 엄마가 힘든 줄 모를 수도 있으니까요.
    
    남편에게도 화내기 전에
    “요즘 내가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어. 집안일을 나 혼자 감당하기가 힘들어. 오늘부터 재활용은 당신이 맡아줘.”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해보세요. 부탁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역할 분담이니까요.
    
    그리고 몇 주째 이런 무기력과 피로가 계속되고 잠·식욕·기분까지 크게 달라졌다면 갱년기 탓이라고만 넘기지 마시고 병원에서 몸 상태와 우울 증상도 한번 점검해보셨으면 해요.
    
    무엇보다 오늘은 스스로에게
    “왜 이것밖에 못 하지?”가 아니라
    “나 정말 오래도록 애썼구나.”
    그 말을 한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주부에게도 퇴근이 필요하고, 엄마에게도 휴일이 필요해요.
    
    집이 조금 어질러져 있어도 괜찮아요. 가족이 며칠 밥을 대충 먹는다고 큰일 나지 않아요. 이제는 가족을 챙기는 만큼 나 자신도 가족의 한 사람으로 챙겨주세요.
    
    정말 많이 지치셨어요. 오늘만큼은 다 해내려고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