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나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본가에 잘 가지 않던 제가 오랜만에 주말을 맞아 텅 빈 손으로 부모님 댁을 찾았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거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욱신거리는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계신 어머니와 돋보기를 코끝에 걸치고 신문 사이에 끼워진 마트 전단지를 노려보며 몇백원이라도 싼 식자재를 찾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어릴 적 제 기억 속의 아버지는 어떤 무거운 짐도 번쩍번쩍 들어 올리던 든든한 거목 같았고 어머니는 세상에서 제일 활기차고 강한 분이셨는데 어느새 두 분 다 앙상하게 마른 어깨와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을 가진 힘없는 노인이 되어 계셨습니다.
식탁 위에는 제가 온다고 아침 일찍부터 시장을 돌며 사 오셨을 반찬통들이 한가득 쌓여 있는데 그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셨을 두 분의 굽은 등을 상상하니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목구멍으로 뜨거운 덩어리가 훅 하고 올라와서 황급히 신발장 쪽으로 고개를 돌려 눈물을 참아야만 했습니다.
밥을 먹는 내내 밥그릇 위로 보이는 부모님의 주름진 손등과 듬성듬성해진 정수리를 바라보며 저는 밥 대신 씁쓸한 자괴감을 씹어 삼켜야 했어요.
서른이 훌쩍 넘고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라면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부모님께 매달 두둑한 용돈도 쥐여드리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편안한 신축 아파트로 이사도 시켜드려야 하는 게 당연한 아들의 도리일 텐데 현실의 저는 여전히 좁은 원룸에서 제 한 달 앞가림하기도 벅차서 허덕이고 있거든요.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으레 나오는 자식들의 대기업 취업이나 승진 이야기 앞에서 저희 부모님만 조용히 입을 닫고 씁쓸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제가 그동안 헛살았다는 끔찍한 자책감이 명치를 후벼 파서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 저를 믿고 청춘을 다 바쳐 뒷바라지해 주셨는데 정작 장성한 아들이 되어 부모님께 안겨드린 건 끝없는 기다림과 아직도 자식 걱정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팍팍한 현실뿐이라는 사실이 저를 숨 막히는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가장 두렵고 저를 미치게 만드는 건 부모님의 시간은 제 성공을 기다려주지 않고 너무나도 잔인하게 빨리 흘러가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이에요. 가끔 부모님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다는 말씀을 스치듯 하실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만약 내가 온전히 자리를 잡기도 전에 두 분이 큰 병이라도 얻으시거나 갑자기 제 곁을 떠나시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섬뜩한 공포심이 온몸을 휘감습니다.
아직 제대로 된 효도 한 번 해본 적이 없고 근사한 식당이나 좋은 해외여행 한 번 모시고 간 적이 없는데 이대로 무정하게 시간이 다 지나가 버리면 저는 평생을 피눈물을 흘리며 짐승 같은 후회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거든요.
뉴스에서 서글픈 부고 소식을 듣거나 주변 지인들이 부모님 상을 당했다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그게 곧 제게 닥칠 현실 같아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소리 없이 오열하는 날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통장 잔고는 바닥이고 부모님은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시는데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이 지독한 무력감이 매일매일 제 목을 강하게 조르고 있어요.
이런 비참한 속마음을 부모님 앞에서는 절대 티를 낼 수가 없으니 만날 때마다 억지로 괜찮은 척 웃으며 직장 생활 잘하고 있고 돈도 착실하게 모으고 있다는 서글픈 거짓말만 기계처럼 내뱉게 됩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힘든 내색을 하면 안 그래도 주름진 두 분의 얼굴에 더 깊은 근심을 얹어드리는 꼴이 될까 봐 밖에서 온갖 억울한 일을 당하고 멘탈이 부서져도 본가에 갈 때면 아무 일도 없는 척 가장 씩씩하고 밝은 가면을 써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잔인하고 고통스러워요.
현관문을 나서며 저 멀리서 손을 흔들어주시는 부모님의 작아진 실루엣을 등지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와 창밖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속으로 수천 번 수만 번 죄송하다고 빌고 또 빕니다.
내가 왜 20대에 조금 더 독하게 살지 않았을까 왜 중요한 순간마다 회피하고 도망쳐서 이렇게 보잘것없는 어른으로 자라났을까 하는 뼈아픈 과거에 대한 후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당장이라도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극심한 자기 혐오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원망과 아직 오지도 않은 막연한 미래의 성공을 핑계로 현재의 늙어가는 부모님을 뵙는 것조차 죄스러워하며 도망치려는 이 끔찍한 자괴감의 늪에서 도대체 어떻게 빠져나와야 제가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지금 당장 벼락부자가 되어 큰돈을 안겨드리지는 못하더라도 이 초라하고 무능한 서른 중반 아들의 현실을 온전히 인정하면서 동시에 부모님께 훗날 피눈물 흘리며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아주 현실적인 태도와 단단한 마인드 컨트롤 방법을 너무나도 간절하게 배우고 싶습니다.
더 이상 제 무능함이라는 비겁한 변명 뒤에 숨어서 부모님의 굽은 등을 바라보며 자기 연민에만 빠져있는 찌질한 짓거리는 이제 정말로 끝내버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