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그냥 착하게 살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남한테 피해 주지 않고, 맡은 일 열심히 하고, 누가 어려워하면 가능한 선에서 도와주고, 욕심 조금 덜 부리면서 살면 언젠가는 그만큼 돌아오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엄청난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손해 보는 인생은 아닐 거라고 믿었죠...
그런데 30대가 되고 직장생활을 오래 할수록 그 믿음이 점점 깨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오히려 제가 너무 순진하게 살았던 건가 싶어요.
회사에서도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일을 잘하고 성실하게 하면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누가 하기 싫어하는 일이 생겨도 팀에 필요한 일이니까 했고, 동료가 급한 일이 있다고 부탁하면 제 일이 남아 있어도 먼저 도와줬습니다. 회의할 때 의견이 충돌하면 굳이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제가 한발 물러서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니까 인정받는 사람이 된 게 아니라 부탁하기 편한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급한 일이 생기면 저부터 찾습니다. 다른 사람이 실수해서 일이 꼬여도 제가 어느 정도 처리할 줄 아니까 자연스럽게 넘어옵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저를 믿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했습니다. 책임은 계속 늘어나는데 권한이나 보상은 크게 달라지는 게 없었거든요.
반대로 자기 일 아니면 칼같이 선을 긋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기 싫은 일은 적당한 이유를 만들어 피하고, 문제가 생기면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빠르게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오히려 회사생활을 편하게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저는 괜히 책임감 때문에 일을 붙잡고 스트레스받는데 그 사람은 퇴근 시간이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집에 가더군요. 그러면서 평가받아야 할 순간에는 본인이 한 일을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필요한 건 당당하게 요구하더라고요.
예전에는 그런 모습을 보면 너무 계산적으로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가 틀렸던 건가 싶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했어요. 누가 저한테 서운하게 해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생각했고, 약속을 몇 번 어겨도 크게 따지지 않았어요. 친구가 힘들다고 하면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들어줬고 제가 조금 손해 보는 정도라면 관계를 위해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힘들 때가 되니까 생각보다 제 옆에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요.
평소에는 필요할 때마다 연락하던 사람이 제가 힘들다고 하면 갑자기 바빠지고, 제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그대로 몇 달씩 연락이 끊기는 관계도 있었습니다. 제가 상대방에게 했던 만큼 돌려받아야 한다고 계산하면서 사람을 대한 건 아닙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일방적이었나 싶으니까 허무했습니다.
가끔은 제가 착했던 게 아니라 거절을 못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 게 무서웠던 건 아닐까요?
누가 부탁하면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분위기가 이상해질까 봐 참았습니다. 화가 나도 티를 내면 제가 예민한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삼켰고, 손해를 봐도 돈 몇 푼이나 일 조금 가지고 사람 사이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면 상대방이 언젠가는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부분은 제가 괜찮으니까 참는다고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양보하면 다음에는 상대방도 양보할 줄 알았는데 그냥 제가 양보하는 사람으로 굳어졌습니다.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면 좋은 관계가 유지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만만한 사람이 된 관계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니까 사람을 보는 제 시선까지 이상해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자기 이익을 잘 챙기는 사람을 보면 너무 각박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저 사람이 오히려 현명한 건가 싶습니다. 회사에서 자기 성과를 적극적으로 말하는 사람, 싫은 부탁은 바로 거절하는 사람, 필요하면 관계를 정리하는 사람을 보면 예전처럼 나쁘게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왜 그렇게까지 남의 기분을 신경 쓰면서 살았나 싶어요.
누가 저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했고, 누가 저 때문에 불편해질까 봐 걱정했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잃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정작 그렇게 신경 쓰면서 살아온 제 마음은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반대로 확 변해버리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앞으로는 남이 어떻게 되든 제 것만 챙기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탁받아도 모른 척하고, 회사에서도 딱 제 몫만 하고, 손해 볼 것 같으면 바로 선을 긋고 싶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도 이 사람이 나한테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부터 따지는 게 차라리 현명한 것 아닌가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또 그렇게 사는 게 맞나 싶습니다. 제가 싫어했던 사람이 결국 제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요.
착하게 산 시간이 후회되면서도 악착같이 제 이익만 챙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문제는 그 중간을 모르겠습니다. 어디까지가 배려고 어디부터가 호구처럼 행동하는 건지, 어디까지 이해해줘야 좋은 사람이고 어디부터는 그냥 이용당하는 건지 그 기준을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억울한 마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원래 공평하지 않다는 말도 알고 있습니다. 착하게 살았다고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못되게 살았다고 반드시 벌을 받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압니다. 그런데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더라고요.
가끔은 얄밉게 자기 것만 챙기던 사람이 잘되는 모습을 보면 속에서 화가 올라옵니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눈치 보고 참고 살았나 싶습니다. 그 사람이 잘되는 게 싫다기보다 제가 살아온 방식이 틀렸다는 증거를 보는 것 같아서 더 괴로운 것 같습니다.
요즘은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말을 들으면 솔직히 허탈합니다. 세상이 그런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은 기분입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사람을 전부 의심하고 계산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를 도와줄 때도 나한테 무엇이 돌아올지부터 따지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더 이상 착하다는 이유로 손해를 당연하게 감수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코치님께서는 이런 마음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착하게 사는 것과 만만하게 사는 것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요?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면서도 제 몫을 확실하게 챙기는 사람이 되려면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할까요?
이제는 막연하게 좋은 마음으로 살면 언젠가 알아줄 거라는 기대부터 버려야 하는 건지도 궁금합니다. 남에게 베풀었으면 그 순간 그것으로 끝내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애초에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냉정하게 선을 그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듣기 좋은 위로보다는 조금 독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제가 그동안 착하게 산 게 아니라 거절할 용기가 없었던 거라면 그렇게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남에게 미움받지 않으려고 제 권리를 스스로 포기했던 거라면 그것도 인정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세상이 갑자기 공평해질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이유로 저까지 냉소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착함은 지키면서 호구는 되지 않는 방법이 정말 있을까요? 이제부터라도 남의 평가보다 제 기준으로 사람을 대하고 제 몫을 챙기려면 어떤 생각부터 뜯어고쳐야 할지, 현실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