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라팍신 75mg 복용 중 — 남 눈치 보며 썩어가는 속, 완치는 아니어도 매일 버티는 법

착한 사람 콤플렉스와 극도의 눈치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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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이전 글을 인용하면서 작성하겠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한 번쯤은 겪어보셨겠지만 저에게는 이 증상이 제 삶을 갉아먹는 무서운 질병으로 다가왔습니다.

 

직장 동료가 스쳐 지나가며 지은 무표정이나 짧은 한숨 소리 하나에도 온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내가 아까 한 농담이 선을 넘었나?', '혹시 어제 업무 실수한 것 때문에 뒤에서 내 욕을 하는 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때문에 밤새 심장이 쿵쾅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죠.

 

특히 퇴근 후 카톡 같은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을 때는 이 지긋지긋한 증상이 극에 달했습니다. 메시지를 보냈는데 숫자 1이 안 없어지거나 상대방의 답장이 평소보다 10분만 늦어져도 머릿속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내가 귀찮게 했나?', '나랑 연락하기 싫은데 억지로 받아주는 건가?' 하며 혼자서 비극적인 소설을 수십 편이나 써 내려갔어요.

 

그러다 나중에 상대방으로부터 "미안, 씻고 오느라 늦었어" 같은 지극히 평범한 답장이 오면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곤 했습니다. 정말 억울하고 허탈한 건 다음 날 출근해서 보면 상대방은 어제 소화가 안 돼서 표정이 안 좋았거나 제 말 자체를 기억조차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이런 패턴이 매일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 멘탈이 너덜너덜해지고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무던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강박 때문에 진짜 제 모습은 사라지고 속이 까맣게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죠. '이러다간 진짜 내가 죽겠다' 싶어 떨리는 손으로 '남 눈치 안 보는 법', '불안장애', '무기력함' 등을 포털에 미친 듯이 검색하다가 결국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단을 받고 현재 저는 무기력함을 끌어올려 주는 벤라팍신(이펙사) 75mg과 밤마다 찾아오는 불안을 재워줄 트라조돈 등 저녁 약을 처방받아 꾸준히 복용하고 있습니다.

 

벤라팍신 75mg 복용 중 — 남 눈치 보며 썩어가는 속, 완치는 아니어도 매일 버티는 법

 

아주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저는 아직 우울증을 완치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제 피곤한 성격과 치열하게 싸우며 하루하루 극복해 나가는 과정 속에 있어요.

 

위 사진은 오늘 제가 약을 먹기 직전에 찍어둔 것입니다. 새벽 12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시작된 혼자만의 불안한 상상을 끊어내지 못해 좁은 방 안을 700보 넘게 맴돌며 끙끙 앓다가 지친 마음으로 약봉투를 뜯었죠.

 

처음 약을 먹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부작용 때문에 참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속이 미식거리고 헛구역질이 났으며 머리에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한 브레인포그 증상이 종일 저를 괴롭혔습니다. 수면 유도 성분 때문인지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너무 버거웠고요. '약을 먹는데 왜 더 무기력하고 아픈 것 같지?'라며 중간에 포기하고도 싶었지만 3주 정도 꾹 참고 꾸준히 복용하니 끔찍했던 울렁거림과 멍함은 거짓말처럼 옅어졌습니다.

 

무엇보다 현재 느끼고 있는 가장 큰 약의 효과는 끝도 없이 추락하던 제 불안한 감정에 '안전장치'가 하나 생겼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타인의 기분에 휩쓸려 지하 10층까지 우울감이 떨어졌다면 지금은 지하 2층 정도에서 약이 제 감정을 꽉 붙잡아 지탱해 주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약물 하나만으로 뼛속까지 박힌 이 피곤한 성격이 하루아침에 강철 멘탈로 바뀌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약물 치료에 기대는 동시에 일상생활 속에서 저를 갉아먹는 안테나를 부수기 위해 매일 작은 마인드 훈련들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했던 훈련은 뇌피셜과 팩트를 철저하게 분리하는 연습입니다. 누군가의 표정이나 말투에 꽂혀서 망상이 시작될 때 속으로 '잠깐, 저 사람이 나한테 화났다고 직접 입 밖으로 말했나? 아니지? 그럼 이건 철저한 내 망상이야'라고 억지로라도 선을 긋습니다. 아직도 잘 안돼서 휘둘릴 때가 많지만 의식적으로 망상의 꼬리를 자르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훈련은 밤시간대 스마트폰 멀리하기입니다. 제가 멘탈이 무너지는 시간의 8할은 늦은 밤 상대의 답장을 기다리며 시작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저녁 약을 먹을 즈음엔 아예 폰을 무음으로 돌려 서랍에 넣은 뒤 제가 좋아하는 향초를 켜고 예능을 보는 등 오직 '나 자신'의 기분에만 집중하는 이기적인 시간을 강제로 확보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180도 달라진 대단한 극복 스토리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지레짐작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자책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상상도 못 할 만큼 소중한 변화입니다.

 

여전히 밖에서 남의 눈치를 잔뜩 보고 돌아와 밤새 이불을 걷어차며 스스로의 쪼잔함을 탓하는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그 감정에 완전히 짓눌려 다음 날 일상까지 모조리 망쳐버리고 앓아눕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아, 내가 오늘 또 피곤해서 혼자 북 치고 장구 쳤네. 어쩌겠어, 내일은 안 그러면 되지!" 하고 툭 털어낼 수 있는 아주 얇지만 단단한 마음의 맷집이 자라나고 있으니까요.

 

지금 이 시간에도 상대방은 별 생각 없는데 혼자 지레짐작하며 피가 마르는 밤을 보내고 계실 분들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러분 완벽하게 눈치를 안 보는 사람이 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저처럼 아직 완전한 극복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각자의 속도에 맞춰 하루하루를 잘 버텨내고 있는 중이니까요.

 

여러분이 남들보다 유별나거나 멘탈이 약해서 그런 게 절대 아닙니다. 그저 남들보다 타인의 감정을 읽는 안테나가 조금 더 예민하게 발달했을 뿐이에요. 혼자서 그 무거운 안테나의 무게를 감당하기 벅차다면 지로 참지 말고 언제든 저처럼 용기 내어 병원에 가고 약의 든든한 도움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남 눈치 보느라 수고한 내 자신과 싸우며 버티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매일 넘어지면서도 아직 낫는 중인 저도 이렇게 꿋꿋하게 버티고 있으니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내서 내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뻔뻔한 사람으로 함께 변해가 봐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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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8
  • 익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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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을 드신 덕분에 불안한 감정을 잡아주는 안정 장치가 생겼네요.
    거기에 매일 마인드 훈련들을 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자책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이 엄청난 변화죠.
    앞으로 행복한 날들 되시길 바라요.
  • 익명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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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저도 한동안 상대방의 표정이나 말투 하나에 하루 기분이 좌우될 정도로 눈치를 많이 봤던 적이 있어서 글이 더 와닿았어요. 특히 ‘뇌피셜과 팩트를 분리하는 연습’이라는 부분은 저도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궁금한 점이 하나 있는데요. 약을 꾸준히 복용하시면서 가장 먼저 체감했던 변화는 무엇이었나요? 불안이 줄어든 것이 먼저였는지, 아니면 잠이나 일상생활이 편해진 것이 먼저였는지 경험이 궁금합니다.
  • 익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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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10층에서 지하 2층으로 올라오고 있다니 희망이 느껴지네요..
    일과 개인을 분리하는 방법은 정말 좋은거 같네요..
    꾸준히 치료 받으시고, 지상으로 올라오길 응원할께요
  • 익명5
    멘탈이 강하신 분 같아요.
    뇌피셜과 팩트를 분리한다는 것에서 의지력이 강하신 분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익명2
    작성자
    좋게 봐주시고 든든한 한마디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사실 멘탈이 강하기보다는 더 이상 스스로를 괴롭히고 갉아먹는 감정에 지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훈련이었어요 ㅠㅠ 
    
    처음에는 뇌피셜과 팩트를 분리하려고 해도 억지로 선을 긋는 게 참 어색하고 힘들었는데, 의지가 강해 보인다고 칭찬해 주시니 앞으로 더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연습해 나가야겠다는 큰 힘과 용기가 생깁니다. 제 안의 아주 작은 단단함을 알아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늘 마음 편안하고 단단한 하루하루 보내시길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