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가족만 바라보고 헌신했는데 이제 와서 텅 빈 집안에 홀로 남겨지니 제 인생 전체가 다 껍데기 같고 끝없는 우울의 늪에 빠져요
안녕하세요. 하루 종일 거실 소파에 미동도 없이 앉아 창밖으로 지는 해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가슴 한구석에 뻥 뚫린 이 시리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볼 길이 없어 조심스레 이곳에 글을 적어 내려갑니다. 저는 올해 60대 중반에 접어든 평범한 주부예요.
젊은 시절에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남편 출근 준비에 아이들 등교 준비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종종걸음을 치며 살았어요. 집안은 늘 아이들이 어질러놓은 장난감과 남편의 허물 벗듯 던져놓은 옷가지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주방에서는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세탁기는 하루에 두 번씩 쉴 새 없이 돌아가며 참 사람 사는 냄새가 났었거든요.
그때는 그 정신없고 고된 일상이 너무나 피곤해서 하루라도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온종일 잠만 자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세월이 훌쩍 흘러서 자식들 다 제 짝을 찾아 번듯하게 독립시켜 내보내고 남편도 퇴직을 하고 나니, 제가 그토록 바랐던 그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이 마침내 찾아오기는 했어요.
하지만 막상 마주한 이 텅 빈 집안의 적막감은 평화로움이 아니라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지독한 고독과 우울감으로 저를 매일같이 짓누르고 있네요. 이제는 아무리 청소를 하지 않아도 집안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고 냉장고를 가득 채워놔도 음식이 줄어들지를 않아요.
예전처럼 식구들 입맛에 맞춰 며칠을 먹을 곰국을 한솥 가득 끓여놓고 나면, 며칠 뒤에 결국 쉰내가 나서 음쓰통에 콸콸 쏟아버리면서 제 헌신과 세월마저 같이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것 같아 부엌에 쪼그려 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어버린 날도 참 많답니다.
요즘 저를 가장 깊은 우울의 늪으로 끌어내리는 건 바로 제 자신에 대한 뼈저린 상실감이에요. 평생을 누구 엄마, 누구 아내라는 이름표를 달고 식구들 입맛, 식구들 스케줄에 맞춰서 로봇처럼 살아왔거든요.
그러다 보니 정작 다 늙어버린 지금 제 자신에게 물어보면 제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색깔의 옷을 입었을 때 기분이 좋은지, 어떤 취미를 가져야 가슴이 뛰는지 도무지 단 한 가지도 대답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거울 앞에 서서 굽은 어깨와 주름진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 청춘과 내 이름 석 자는 가족들을 위해 다 갈아 넣고 잿더미로 타버렸는데 정작 내게 남은 건 텅 빈 껍데기뿐이라는 생각에 왈칵 서러움이 밀려와요.
남들은 다 자기 인생 찾아서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것 같은데, 저 혼자만 세상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유통기한 지난 부속품처럼 덩그러니 버려진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집니다.
가족들에게 서운함을 티 낼 수도 없어요. 다 큰 자식들은 이제 자기들 가정을 꾸리고 밥벌이하느라 쉴 틈 없이 바쁜데, 늙은 에미가 외롭고 우울하다고 전화해서 징징대면 그게 얼마나 큰 짐이 되겠어요.
어쩌다 주말에 아이들이 온다고 하면 며칠 전부터 장을 보고 신이 나서 밥상을 차리지만, 막상 밥만 쫓기듯 허겁지겁 먹고 자기들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그 뒤에 밀려오는 공허함은 평소보다 수십 배는 더 크고 날카롭게 저를 찔러대요.
거실에서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보고 있는 무심한 남편은 제가 창밖을 보며 깊은 한숨을 쉬어도 그저 갱년기 우울증이 길어진다며 동네 아줌마들이랑 등산이나 다녀오라고 쉽게 말해버려요.
평생을 살을 맞대고 살아온 남편조차 제 텅 빈 마음의 무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니, 이 세상에 온전히 내 마음을 알아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생각에 뼛속까지 시린 고독감이 밀려와 얇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남몰래 숨죽여 우는 밤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이제는 너무나 버겁고 지치네요. 동네 친한 지인들이나 모임에 나가면 저도 겉으로는 아주 화목한 가정을 이룬 행복하고 여유로운 사모님인 척 얼굴에 두꺼운 가짜 미소를 띠고 수다를 떨거든요.
남들 앞에서는 자식 자랑도 하고 남편 흉도 가볍게 보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하지만, 그렇게 세네 시간을 바짝 긴장해서 웃고 떠들다가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닫는 순간 그 가짜 미소가 벗겨지면서 온몸에 힘이 쫙 빠지고 바닥에 주저앉게 돼요.
밖에서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은 집에 오면 더 시커먼 괴물이 되어서 저를 집어삼키고, 내가 진짜 우울하고 슬프다는 걸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매일매일 안간힘을 쓰며 연기하는 제 늙은 처지가 너무나 가엾고 처량해서 미칠 것만 같아요.
이렇게 하루하루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시리고 헛헛하다 보니, 이제는 밥을 먹어도 모래알을 씹는 것 같고 밤에 잠자리에 누워도 오만가지 서글픈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제가 걸어온 지난 수십 년의 세월이 그저 남을 위해 내 모든 걸 뜯어 먹힌 바보 같은 시간이었나 싶어서 후회와 자책이 밀려오고, 앞으로 남은 길고 긴 노후를 이 지독한 무기력증과 우울감을 안고 어떻게 버텨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기만 합니다.
더 이상은 저 혼자 이 어두운 감정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힘이 남아있지 않아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곳에 계신 분들께 마음의 위로와 지혜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여쭤보고 싶고 간절히 알고 싶은 것은, 식구들에게 헌신하느라 텅 비어버린 이 공허한 가슴을 어떻게 하면 제 스스로 따뜻하게 다시 채우고 진정한 나를 찾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방법이에요.
평생을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게 미덕인 줄 알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이 늙은 나이에 도대체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제가 다시 살아 숨 쉬고 가슴이 뛴다는 걸 느낄 수 있을까요.
거창한 취미 생활이나 대단한 배움이 아니더라도,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가 끔찍한 우울의 연속이 아니라 아주 조그만 설렘으로 다가올 수 있게 억지로라도 제 일상을 다독이는 아주 작은 마음 챙김의 첫걸음을 꼭 배우고 싶어요.
자식이나 남편의 관심에 목매지 않고 오롯이 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걷는 시간조차 쓸쓸함이 아닌 평안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의 힘을 진심으로 기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꼭 묻고 싶은 것은 겉으로는 멀쩡한 척 억지웃음을 짓고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는 이 지긋지긋한 감정의 연기를 멈추고, 제 우울함과 상처를 남편과 가족들에게 어떻게 지혜롭게 털어놓을 수 있을지에 대한 대화법이에요.
저 혼자 늙고 쓸모없어졌다는 자격지심에 빠져 가족들을 밀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렵기도 해요. 툭하면 눈물이 나고 가슴이 답답한 이 갱년기 우울증 같은 깊은 아픔을, 남편이나 자식들이 부담스럽지 않게 둥글고 부드러운 말로 어떻게 전해야 그들이 저를 불쌍한 환자가 아니라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가족으로 안아줄 수 있을까요.
내가 평생 너희들을 돌보느라 나를 잃어버려서 지금 조금 많이 아프고 길을 잃었다고, 제 진심을 너무 무겁지 않게 차분히 꺼내놓을 수 있는 아주 현명하고 성숙한 말하기 비법이 있다면 제발 가르쳐 주세요.
저도 남은 제 소중한 인생의 후반전은 눈물과 후회로 얼룩진 과거의 그림자에 갇혀서 억울하게 보내고 싶지 않아요. 비록 거울 속 얼굴은 주름지고 예전 같은 기력은 없지만, 누구의 엄마나 아내가 아니라 오롯이 내 이름 석 자를 부르며 예쁘게 화장도 하고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가 활짝 웃고 싶거든요.
평생을 입을 꾹 다물고 속으로만 삭히며 살아온 제 불쌍한 인생이 너무 가여워서 이제는 제가 먼저 저를 꽉 안아주고 싶습니다. 아무도 제 텅 빈 마음을 모르는 것 같아 캄캄한 우물 속에서 매일 밤 피눈물 흘리던 이 늙은 어미에게, 부디 따뜻하고 밝은 등대 같은 위로와 지혜를 나누어 주시길 두 손 꼬옥 모아 간절히 기다리겠습니다.
어디 가서 배부른 투정이라 욕먹을까 봐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던 이 지독한 공허함을 글로 다 쏟아내고 나니 꽉 막혀있던 가슴 한구석이 아주 조금은 뚫린 것 같아 신기하게도 숨쉬기가 한결 편안해지네요. 두서없이 길고 무거운 제 눈물의 넋두리를 끝까지 정성껏 읽어주셔서 정말 마음 깊이 고맙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