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추석에 친척집에 가는 게 귀찮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신나는 일이었어요.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을 수 있고, 오랜만에 만난 어른들이 용돈도 주셨으니까요.
물론 가는 길은 힘들었어요. 멀리 이동하는 것도 귀찮았고, 친척집에서 자는 것도 집처럼 편하지 않았죠.
무엇보다 또래가 없으면 정말 할 게 없었어요. 어른들 옆에 계속 앉아 있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하루 종일 TV나 게임만 할 수도 없었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사람이 참 많았던 것 같아요.
추석만 되면 친척들이 하나둘 모였고, 부엌에서는 계속 음식 만드는 소리가 났어요. 탕국 끓이고, 송편 만들고, 동그랑땡 부치고. 할머니가 시골에서 가져오신 고사리나 나물도 있었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 나물을 좋아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많이 먹어서 그런가 싶기도 해요. 지금도 고사리나물을 보면 옛날 생각이 납니다.
부엌에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어른들은 이야기하고 웃고, 누군가는 저한테 이것 좀 가져오라고 시키고.
그때는 그런 게 그냥 추석이면 원래 있는 풍경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제가 이제 아이를 데리고 친척들을 만나러 다니다 보니 조금 다르게 보이네요.
기차를 기다리다가 예전에 저를 데리고 다니셨던 부모님 생각이 나기도 하고, 그때 같이 모였던 친척들도 생각납니다.
어릴 때는 그냥 따라다니기 싫다고 생각했던 길인데, 이제 제가 아이 손을 잡고 같은 길을 가고 있으니까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는 생각도 들고요.
요즘 추석은 예전하고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친척들도 예전만큼 자주 만나지 않고, 명절이라고 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는 일도 줄었죠. 친척집에 가서 밥 한 끼 먹고 오는 정도로 끝나는 경우도 많고요.
그러다 보니 이번에는 아이가 심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어릴 때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게 귀찮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그 안에서 하루를 보냈는데, 지금 아이에게는 제가 기억하는 그런 명절의 모습이 없는 것 같아서요.
가끔은 이런 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안 보이고, 자주 가던 곳도 안 가게 되고, 명절 풍경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으니까요.
평소에는 이런 생각을 별로 안 하는데 명절이 되면 괜히 옛날 일이 생각나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예전의 부모님이나 친척 어른들도 지금 제 나이쯤이었을 텐데, 그때는 왜 그렇게 어른처럼 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그렇게 어른스러운 사람 같지는 않거든요.
내가 지금까지 뭘 이루었나 생각해보면 딱히 대단한 것도 없고, 앞으로 뭔가 크게 이루겠다는 생각도 예전만큼 크지는 않은 것 같고요.
그렇다고 우울하거나 절망적인 건 아닙니다.
그냥 추석이라 그런지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떠오르네요.
올해는 아이한테 제가 어릴 때 먹었던 송편이나 동그랑땡 이야기, 할머니가 가져오셨던 고사리 이야기 같은 옛날 얘기를 좀 해주려고 합니다.
아마 아이한테는 그냥 옛날 이야기겠죠.
그래도 나중에 아이가 커서 추석을 보내다가 지금을 떠올릴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때 아이가 기억하는 추석 속에 저도 한 사람의 어른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빨리 지나갔으면 했던 추석인데, 요즘은 오히려 그때가 조금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