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누군가의 답장이 늦어지면 머리로는 바쁜가 보다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쪽이 조용히 서운해질 때가 있지 않나요.
그럴 때 상대가 말해요. “미안해. 나 원래 I라서 연락을 잘 못 해.” “나는 T라서 공감하는 말을 잘 못 해.” “나는 J라서 갑자기 약속이 바뀌면 너무 힘들어.”
처음에는 그 말이 참 편했어요.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설명 하나를 얻은 것 같았거든요. 어떤 사람은 혼자 있어야 충전되고, 어떤 사람은 말로 마음을 정리하고, 어떤 사람은 약속이 바뀌는 순간 하루의 균형이 무너지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정말 MBTI 때문에 그러는 걸까. 아니면 그 말 뒤에 조금 더 솔직해지기 어려운 마음이 있는 걸까.
“나는 I라서 연락을 잘 못 해”라는 말에는 혼자 있을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마음이 있을 수 있어요.
“나는 T라서 위로를 잘 못 해”라는 말에는 감정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는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 마음을 안다면 조금 덜 서운해지고, 조금 더 천천히 기다려 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반대로 내 MBTI를 방패처럼 내세운 적도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원래 낯가려.” “나는 원래 표현을 못 해.” “나는 원래 계획이 틀어지면 예민해져.”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에요. 나를 설명하는 꽤 정확한 문장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문장 뒤에 숨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미루고, 상대의 서운함을 가볍게 넘기고, 내가 바뀌기 싫은 이유를 만들고 있었던 건 아닐까. 가끔은 조심스럽게 돌아보게 됩니다.
저도 예전에는 “내 성격이 원래 이래서”라는 말을 참 자주 했어요. 낯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건 부담스럽고, 마음이 복잡할 때는 연락 하나 보내는 일도 버거웠어요. 그래서 아무 설명 없이 조용해질 때가 많았죠.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네가 혼자 있고 싶은 건 이해해. 그런데 아무 말 없이 사라지면 나는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나는 나를 지키려고 조용해진 건데, 누군가는 그 침묵 속에서 자기 탓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어요. 그 뒤로는 완벽하게 바뀌진 못해도, 혼자 있고 싶은 날에는 짧게라도 말하려고 해요.
“오늘은 조금 지쳐서 쉬고 싶어. 내일 내가 먼저 연락할게.”
단 한 문장인데도 상대가 불안해할 자리를 조금 줄여 주더라고요.
MBTI는 나를 가두는 네 글자가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을 조금 더 천천히 이해하게 해 주는 힌트였으면 좋겠어요.
I 라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고,
E 라서 누군가와 이야기하며 에너지를 채울 수 있어요.
T 라서 해결책부터 떠올릴 수 있고,
F 라서 말보다 먼저 마음을 살필 수도 있죠.
“나는 원래 이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런 편이지만 너를 위해 조금 더 설명해 볼게.”
저는 이 마음이 관계를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해요. 오늘은 내 MBTI를 떠올리며 내가 이해받고 싶었던 순간 하나, 그리고 누군가에게 더 이해를 건넬 수 있었던 순간 하나를 가만히 생각해 보고 싶네요.
여러분도 ‘내 MBTI니까 어쩔 수 없지’라고 넘겼다가 나중에 다시 생각난 순간이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