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의 저는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는 것을 그 누구보다 좋아하던 활기차고 외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20대와 30대의 치열했던 직장 생활 속에서도 퇴근 후면 늘 동료들이나 친구들을 이끌고 시끌벅적한 고깃집이나 선술집으로 향하곤 했습니다.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고 사람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는 좁고 허름한 식당 안에서도 저는 전혀 답답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온기와 넘치는 에너지를 온몸으로 즐기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버리곤 했습니다.
어디를 가든 분위기를 앞장서서 주도하고 목소리를 높이며 당당하게 사람들을 이끌던 호탕하고 거침없는 성격이 제 인생의 가장 큰 자랑거리 중 하나였습니다. 남들 앞에서는 한 번도 주눅 든 적이 없었고 낯선 모임 자리에 가서도 금세 새로운 사람들과 형 동생 하며 어울릴 수 있는 뛰어난 친화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은퇴를 하고 머리가 하얗게 센 지금 제 삶은 과거의 빛나던 영광이 무색할 정도로 철저하게 망가져 버렸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조금만 붐비는 식당이나 낯선 이들이 모여 있는 닫힌 공간에 발을 들이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끔찍하고 원초적인 두려움이 되어버렸습니다.
처음 그 무서운 증상을 겪었던 것은 몇 달 전 동네에 새로 개업한 유명한 식당에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였습니다. 워낙 인기가 많은 곳이라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고 커다란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와 수많은 사람들의 말소리가 뒤엉켜 무척이나 소란스러운 분위기였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잡고 앉아 기분 좋게 식사를 주문했을 텐데 그날따라 식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가슴 한가운데가 꽉 막힌 것처럼 심하게 답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실내 공기가 탁하고 환기가 안 되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찬물을 연거푸 들이켰지만 증상은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습니다. 제 굳건한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심장이 귓가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목구멍에 커다란 돌덩이가 꽉 걸린 것처럼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조차 불가능한 지독한 질식감이 덮쳐왔습니다.
시야는 점점 좁아져서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흐릿하게 뭉개졌고 당장 이 식당을 빠져나가지 않으면 이대로 숨이 멎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질 것만 같은 극도의 공포가 제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켜 버렸습니다. 결국 주문한 음식이 채 나오기도 전에 아내에게 속이 너무 안 좋다는 다급한 핑계를 대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날 겪었던 원초적인 공포의 기억은 제 뇌리에 깊은 트라우마로 잔인하게 박혀버렸고 이후 제 일상은 두려움이라는 거대한 감옥 안에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평범하고 즐거운 외출조차 저에게는 가슴을 졸여야 하는 끔찍한 시험대가 되었습니다. 식당 문을 열기 전부터 밖에서 유리창 너머로 안에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테이블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비좁은지를 병적으로 살피며 덜컥 겁부터 집어먹게 됩니다.
사람들이 꽉 들어찬 좁은 실내 공간이나 창문이 전혀 없는 구석 자리에 앉게 되면 또다시 그날처럼 끔찍한 발작이 일어나 내 몸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게 될까 봐 미리부터 심장이 뛰고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예기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아 밥을 먹게 되더라도 행여나 쓰러질 때를 대비해 언제든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는 출입문 바로 앞자리만 고집하게 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음식을 입에 넣어도 오로지 이 닫힌 공간을 무사히 빠져나가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 하나에만 사로잡혀 있어서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그 맛조차 전혀 느낄 수가 없습니다.
만약 제가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해 헐떡거리며 쓰러진다면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저를 이상한 정신병자 취급하며 쳐다보고 비웃을 것 같다는 극도의 수치심이 겹쳐지면서 이제는 아예 사람이 붐비는 시간대나 유명한 식당은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피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런 끔찍한 공포는 단순히 밥을 먹는 식당을 넘어서 지인들의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 그리고 낯선 사람들이 모이는 모든 모임 자리로 무섭게 번져나갔습니다. 예전에는 수십 명이 모인 동문회나 지역 사회 모임 같은 곳에 나가서 호기롭게 마이크를 잡고 건배사를 외치며 분위기를 띄우던 저였지만 이제는 다수가 모여 있는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제 숨통을 조이는 엄청난 압박감으로 다가옵니다.
모임 중간에 제가 마음대로 일어설 수 없거나 분위기를 깨면 안 된다는 무언의 사회적 규칙들이 저를 밧줄로 꽁꽁 묶어놓은 것 같은 극심한 답답함을 유발합니다. 혹시라도 제가 갑작스러운 발작을 일으켜 좋은 모임의 분위기를 망치고 남들에게 씻을 수 없는 큰 민폐를 끼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다 보니 이제는 아예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모임 자체를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와 낯선 시선들 속에서 오직 나 혼자만 산소가 부족해 허덕이는 것 같은 지독한 고립감과 통제 불능의 공포는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생지옥 그 자체입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게 사람들을 이끌던 과거의 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저 낯선 사람들의 시선과 닫힌 공간의 공기가 두려워 쥐구멍으로 숨어드는 나약하고 한심한 겁쟁이만 남아버렸습니다.
가장 저를 비참하고 서글프게 만드는 것은 제가 이렇게 형편없이 작아지고 병들어 가고 있다는 뼈아픈 사실을 제 주변의 그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평생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호탕하고 강인한 사내대장부로 꼿꼿하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다 늙어빠진 몸으로 식당에 사람이 많아 숨을 못 쉬겠다고 낯선 모임 자리가 무서워서 도저히 못 가겠다고 고백하는 것은 제 알량한 자존심이 도저히 허락하지를 않습니다. 수십 년을 함께해 온 오랜 친구들이 왜 요즘 그렇게 얼굴 한 번 보기가 힘드냐며 서운함을 토로할 때마다 집에 급한 일이 있다는 식의 뻔한 거짓말로 씁쓸하게 상황을 모면합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텅 빈 거실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참아왔던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 가슴을 치며 억울한 눈물을 삼키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사람을 그토록 좋아하고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삶의 에너지를 얻던 사람이 제 스스로를 철저하게 고립시키고 세상과 단절된 외로운 삶을 선택해야만 하는 이 잔인한 현실이 너무나도 원망스럽습니다.
제 굳은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몸과 마음이 제멋대로 오작동을 일으키며 자유롭고 평범했던 일상의 당연한 권리를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억울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 시커먼 숯덩이처럼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평생을 살면서 남에게 크게 해를 끼친 적도 없고 그저 가족들 건사하겠다는 일념으로 정직하게 살아왔을 뿐인데 어쩌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런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된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어 매일 밤 답답함에 뜬눈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다 늙어서 정신과 문을 두드리고 공황장애 약을 처방받아먹자니 그 독한 정신과 약물에 의존해서 남은 여생을 내 정신이 아닌 흐리멍덩한 상태로 보내게 될까 봐 덜컥 두려움이 앞서고 부작용이 무서워 선뜻 병원 문턱을 넘지도 못하고 있는 어리석은 겁쟁이입니다. 차라리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눈에 훤히 보이는 깊은 상처라면 당장 수술이라도 받고 꿰매기라도 할 텐데 사람이 많은 곳만 가면 어김없이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이 미친 듯한 두려움을 도대체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갈피를 잡지 못하겠습니다.
이 숨 막히는 공포의 짙은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 다시 예전처럼 사람들과 기분 좋게 어울리며 편안하게 밥 한 끼를 마주할 수 있는 평범한 기적이 과연 제 남은 생에 다시 찾아오기는 할까요. 그저 숨을 쉬고 밥을 먹는 일상적인 행동조차 매 순간 생사를 넘나드는 아찔한 전쟁이 되어버린 제 처지가 가엾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벼랑 끝에 위태롭게 선 절박하고 캄캄한 심정으로 인생의 깊은 지혜를 가지신 분들께 간절하게 도움의 손길을 청해봅니다.
낯선 사람들이 모인 답답한 모임 자리나 꽉 막힌 식당 한가운데서 갑작스럽게 숨통이 조여오고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원초적인 공포가 덮쳐올 때 비겁하게 핑계를 대고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요동치는 심장을 가라앉히고 제 스스로의 이성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마음 챙김이나 호흡법이 있다면 제발 저를 좀 살려주는 셈 치고 명쾌하게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자 위안이었던 사람들과의 만남과 소박하고 따뜻한 저녁 자리를 이렇게 허무하고 비참하게 영영 포기한 채 방구석에만 갇혀 죽어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형편없이 쪼그라든 제 늙은 마음에 굳게 닫힌 빗장을 시원하게 풀고 다시 험한 세상 속으로 당당하게 걸어 나가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의 호흡을 온전하게 되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