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지독하게 겪었던 가난이 뼈에 사무쳐서 이제는 꽤 살 만해졌는데도 누가 조금이라도 음식을 버리거나 낭비하는 걸 보면 발작하듯 화가 치밀어 오르는 제 비정상적인 모습 때문에 매일 밤 눈물로 지새우고 있답니다.
세월이 약이라는 옛말이 무색하게 제 가슴속 깊은 곳에 똬리를 튼 이 가난의 상처는 나이가 들수록 옅어지기는커녕 매일 저를 갉아먹는 무서운 독이 되어버렸네요.
제가 젊었을 때는 정말 하루 세끼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숨이 턱턱 막히는 가난 속에서 살았어요. 남편의 얄팍한 월급 봉투로는 늘 생활비가 턱없이 모자랐고 가끔 남편이 실직이라도 해서 집에 있는 날에는 쌀독에 쌀이 떨어지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공포였거든요.
한창 자라나는 어린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옛말을 저는 문자 그대로 뼈저리게 겪으며 살았어요.
애들한테는 어떻게든 따뜻한 밥 한 술을 든든하게 먹이려고 저는 좁은 주방 구석에 서서 애들이 먹다 남긴 찬밥 덩어리에 맹물을 말아 김치 쪼가리와 허겁지겁 들이마시는 게 제 유일한 끼니였어요. 명절이나 되어야 고기반찬 구경을 할 수 있었고 구멍 난 양말을 꿰매고 또 꿰매 신으며 지독하게 궁핍한 세월을 이 악물고 버텨냈어요.
돈 천 원이 없어서 아픈 아이를 업고 병원 문턱에서 밤새 끙끙 앓으며 피눈물 흘렸던 그 서러운 기억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제 가슴 한가운데 시퍼런 멍으로 고스란히 남아있어요.
세월이 흘러 억척스럽게 모은 돈으로 집도 장만하고 이제는 자식들도 다 번듯하게 자리 잡아서 경제적으로는 아무런 걱정 없이 참 평안하게 살고 있어요.
냉장고에는 철마다 맛있는 과일과 고기가 가득하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지갑을 열어 살 수 있는 그토록 꿈꾸던 여유로운 삶이 드디어 찾아왔거든요. 그런데 제 통장 잔고는 넉넉해졌을지 몰라도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가난의 상처는 조금도 치유되지 않은 채 흉측한 괴물로 남아버렸어요.
가족들이 음식을 먹다가 배가 부르다며 식탁에 남기거나 냉장고 안에서 며칠 지난 반찬을 상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버리려고 할 때면 제 안에서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무서운 분노가 활화산처럼 터져 나와요.
얼마 전에 아이들이 모처럼 본가에 와서 배달 음식을 잔뜩 시켜 먹은 적이 있어요. 자기들 딴에는 엄마 밥하느라 고생하지 말라고 풍족하게 이것저것 시킨 건데 먹다 보니 양이 너무 많아서 절반 가까이 음식이 남았더라고요.
며느리가 남은 음식들을 망설임 없이 쓰레기봉투에 쏟아버리려고 하는 순간 제 눈이 시뻘겋게 뒤집히고 말았어요. 저도 모르게 달려가서 며느리 손을 거칠게 낚아채고는 천벌 받을 짓 하지 말라며 동네가 떠나가라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어요.
피 같은 음식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걸 보니 제 젊은 시절 피눈물 흘리며 굶주렸던 그 처절한 시간들이 다 부정당하는 것 같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더라고요. 아들이 기겁을 하며 엄마 도대체 왜 이러냐고 요즘 누가 먹다 남은 걸 억지로 꾸역꾸역 다 먹냐고 말리는데 그 순간 서운함과 분노가 뒤섞여서 내가 너희들 굶기지 않으려고 어떻게 살았는데 배가 불렀다며 짐승처럼 엉엉 오열을 하고 말았어요.
그렇게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서 애들이 당황한 얼굴로 서둘러 짐을 챙겨 떠나버리고 나면 텅 빈 거실에 덩그러니 남은 저는 또다시 뼈저린 후회와 자책감에 가슴을 쥐어뜯어요. 머리로는 이제 세상이 변했고 먹을 게 넘쳐나는 풍요로운 시대니까 위생을 위해서라도 남은 음식은 미련 없이 버리는 게 맞다는 걸 이성적으로는 너무나 잘 알아요.
하지만 눈앞에서 음식이 버려지는 그 찰나의 순간에는 제 이성이 완전히 마비되고 온몸의 세포가 젊은 시절의 그 지독한 가난과 배고픔의 공포로 휩싸여 방어 기제처럼 거친 화를 뿜어내게 되네요.
남편이 밥을 먹다 반 숟가락이라도 남기면 그걸 꾸역꾸역 제 입으로 털어 넣어야만 직성이 풀리고 샴푸나 치약도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 쓰지 않고 훌쩍 버려버리면 며칠 동안 남편에게 잔소리를 퍼붓고 화를 내는 제 자신이 저조차도 징그럽고 무서워요.
주변 친구들은 이제 그만 돈 아끼고 남은 인생 팍팍 쓰며 편하게 즐기라고 하는데 저는 돈을 쓰는 것 자체가 아직도 너무 큰 죄악처럼 느껴져서 비싼 옷 한 벌 제 손으로 편하게 사 입지를 못해요.
분위기 좋은 식당에 가서도 음식값이 비싸면 체할 것 같아서 메뉴판만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결국 제일 싼 메뉴로 타협하고 만답니다. 풍요로움 속에서도 늘 굶주림의 환영에 시달리고 남겨진 밥알 한 톨에 사시나무 떨듯 발작하는 제 모습은 영락없이 가난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린 중증 환자 같아요.
평생 가족들 위해 희생하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훈장이라고 굳게 믿었던 절약 정신이 이제는 제 영혼을 갉아먹고 곁에 있는 가족들마저 숨 막히게 하는 지독한 외상 후 스트레스가 되어버린 것 같아 몹시 참담하고 서글픕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 살고 비싼 이불을 덮고 자도 매일 밤 제 영혼은 그 옛날 찬바람 불던 비좁은 단칸방에서 굶주림에 떨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우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절박한 심정으로 인생의 깊은 혜안을 가지신 여러분들께 도움을 청해 봅니다.
제가 가장 먼저 여쭤보고 싶은 것은 핏속까지 끈적하게 스며든 이 지독한 가난의 공포와 끔찍한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 이제는 음식과 돈을 좀 더 건강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마음 챙김의 방법이에요.
눈앞에서 음식이 쓰레기통으로 툭 떨어지는 걸 볼 때마다 반사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그 끔찍한 분노와 발작적인 화를 그 찰나의 순간에 어떻게 가라앉히고 제 널뛰는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요. 가족들이 남긴 음식을 기어코 제 입으로 우겨넣으며 처량하게 늙어가는 짓을 당장 멈추고 버릴 건 쿨하게 휙 버릴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진심으로 기르고 싶어요.
가난하고 불쌍했던 젊은 시절의 저를 이제는 과거의 앨범 속에 고이 묻어두고 현재의 넉넉하고 편안한 삶을 있는 그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제가 당장 내일 아침부터 거울 앞에서 어떤 긍정적인 생각으로 제 굳어버린 머리를 다독여야 할지 구체적인 방법을 너무나 알고 싶습니다. 돈을 쓰는 죄책감에서 벗어나 저를 위해 지갑을 여는 연습은 도대체 아주 작은 것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그리고 두 번째로 간절하게 묻고 싶은 건 제가 이미 모진 잣대로 상처를 주어버린 자식들과 남편에게 어떻게 제 이 비정상적인 상처를 지혜롭게 설명하고 따뜻하게 사과해야 할지에 대한 대화법이에요.
툭하면 음식 남긴다고 소리 지르고 구두쇠처럼 굴며 분위기를 망치는 저를 그저 괴팍하고 옹졸한 늙은이로만 생각하는 가족들에게 제 깊고 아픈 가난의 흉터를 어떻게 부드럽게 털어놓아야 그들이 충격받지 않고 제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을까요.
내가 배고픔에 맺힌 한이 깊어서 너희들에게 유난스럽고 예민하게 굴었다고 진심을 꾹꾹 눌러 전하면서도 그것이 가족들에게 무거운 짐이나 억지 강요가 되지 않도록 아주 현명하고 둥글게 소통하는 기술을 꼭 배우고 싶어요. 다 큰 자식들 앞에서 눈물 콧물 흘리며 과거 타령만 하는 구질구질한 엄마가 아니라 내 아픔을 덤덤하게 인정하고 앞으로 달라지겠다고 약속하는 멋진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거든요.
저도 이제는 남은 인생 억울하게 굶주렸던 과거의 짙은 그림자에 발목 잡혀서 매일 화만 내다 늙어 죽고 싶지는 않아요. 예쁜 카페에 앉아 비싼 조각 케이크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아주 맛있게 사 먹고 버려지는 넉넉한 음식 앞에서도 덤덤하게 웃어넘길 수 있는 참으로 온화하고 여유로운 어른으로 제 소중한 마지막 인생을 예쁘게 채워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