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추석이오면)

의례껏 추석이면 삼형제는 시댁에 모여 연휴 내내

꼼짝없이 시간을 보내곤 했었는데 가장 가까운 우리부부가 도착했고 멀리사는 형님네는 조금 늦게

아랫동서네도 느긋하게 함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연휴 내내그렇게 삼형제가 아이들까지 합치면 14명이었는데 그야말로 지금 표현대로 하자면 돌밥돌밥의 시간들이었었죠.

 

14명이 함께 식사를 하다보니 늘 설거지는 산더미였고 준비하는 과정도 만만찮았었지요.

 

그렇게 지내는 시간중에 시어머님은 가까이 사는 시누이들을 기다렸고 시누이들이 오면 힘드니 부엌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은근히 표현하기도 했었는데 며느리들의 힘 듦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 딸들이 편하게 있다 가기를 원하셨었죠.

 

난 같은 시내에 친정이 있었음에도 연휴 마지막날이 되어도 친정에 가란 말씀을 안하셨고 그땐 그래야되는 줄 알았더랬습니다. 손 윗 형님도 미찬가지였었고요. 그러다가 가장 먼저 형님네가 내려가고 우린 같은 시내권이라고 저녁까지 먹고 가라며 붙잡았는데..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눈치없는 남편도 먼저 가자소리를 못했고요.

지금같은 마음이라면 나도 친정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텐데 그땐 그래야되는 줄로만 알았고 또 그렇게 했답니다. 

 

세월이 지나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이젠 3형제가 각자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모이지는 않습니다.

 

명절의 의미는 이제 없어지고

마음도 몸도 편안한 이시간이 너무 좋습니다.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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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니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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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으면서 참 마음이 먹먹해지네요.
    
    그때는 정말 ‘며느리라면 그래야 하는 줄 알고’ 명절 내내 부엌을 지키고, 14명의 식사를 준비하고 치우면서도 내 마음 하나 제대로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겠지요.
    
    특히 친정이 같은 시내에 있었는데도 마지막 날까지 가지 못하고, 남편조차 먼저 가자는 말을 못 했다는 대목에서는 그 시절 며느리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바라본다면 “너도 친정에 가고 싶다고 말해도 괜찮았어” 하고 꼭 안아주고 싶을 것 같아요.
    
    세월이 흐르고 시어머님도 떠나시고, 이제 삼형제가 각자의 가정에서 명절을 보내게 되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힘들었던 시간도, 지금의 편안함도 모두 한 시대를 살아낸 우리의 모습이겠지요.
    명절의 의미가 예전과 달라진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누군가 한 사람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명절보다, 각자의 삶을 존중하면서 편안하게 만나는 명절이 더 따뜻할 수도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이제는 “나는 이렇게 하고 싶어”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참 다행이고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시절 말 한마디 못 하고 묵묵히 명절을 보내셨던 며느리들에게
    늦게라도 꼭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그동안 정말 애쓰셨어요.
    이제는 편안해도 됩니다.
    명절에도 나를 조금 먼저 챙겨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