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내가 세워둔 계획들이 한순간에 다 무너지고, 생각지도 못한 짐을 짊어진 채 그저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래전, 저희 집은 부모님 사업 실패와 거기다 악의적인 사기까지 겹치면서 하루아침에 벼랑 끝으로 내몰렸어요. 정말 순식간이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했던 집이 하루 만에 빚더미로 변해버린 거죠.
부모님 명의로 남겨진 그 감당하기 힘든 빚 때문에, 스무 살 갓 넘긴 제가 꿈꾸던 것들은 다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취업 준비하고 자기계발한다고 학원 다니고 그럴 때, 저는 그럴 여유가 없었어요. 그냥 하루라도 빨리 이 빚을 갚아서 가족을 이 진흙탕에서 건져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낮에 일하고 저녁에 또 다른 일을 하고, 주말도 없이. 제 20대는 그렇게 통째로 빚 갚는 데 다 써버렸어요.
그렇게 거의 10년을 쥐어짜듯 버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빚도 거의 다 갚고, 상황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어요.
이제 정말 한숨 돌려도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던 바로 그 순간, 이상하게도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번아웃이 찾아왔습니다.
상황이 좀 나아지니까, 그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친구들 SNS를 보는데, 다들 이미 번듯한 직장에 자리 잡고, 결혼하고, 아이 키우면서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넘어가고 있었어요.
근데 제 손을 내려다보니까, 그 손엔 몇 년 동안 빚 갚느라 거칠어진 손만 남아 있더라고요. 서른이 넘도록 저는 뭘 했나. 그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자꾸 남들이랑 저를 비교하게 됐어요. 나는 도대체 지금까지 뭘 위해서 이렇게 피 말리며 살아왔나, 이런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밀려왔습니다.
그 비교와 허무함이 얼마 안 가서 몸으로, 마음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제일 먼저 불면증이 왔습니다. 침대에 누우면 그동안 눌러왔던 억울함이랑 불안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밤을 꼴딱 새우는 날이 많았어요. 겨우 잠들어도 새벽에 가슴이 두근거려서 눈이 번쩍 뜨이고요.
거기다 갑자기 가슴이 턱 막히고 숨이 안 쉬어지는 증상까지 예고도 없이 찾아왔어요. 평소엔 그런 사람 아니었는데, 사소한 일에도 확 화가 치밀거나, 아니면 반대로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가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무기력에 빠지곤 했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도 무서워지더라고요. 그냥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어요.
그중에서도 제일 힘들었던 건, 내 인생은 이미 늦었고 완전히 실패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였어요. 그렇게 치열하게 버텨온 지난 시간들이 다 부정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앞으로 뭘 목표로 살아야 하는지 방향을 완전히 잃어버렸고요.
아침에 눈뜨는 게 고통이었어요. 이 넓은 세상에 저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은 그 막막함은, 말로 다 설명이 안 됩니다.
이렇게는 도저히 못 살겠다는 위기감이 들었을 때, 저는 저를 구하기 위한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어요.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심리상담이었습니다. 그동안 누구한테도 꺼내놓지 못했던 부모님 빚 이야기, 청춘을 다 바쳐야 했던 억울함, 친구들 보면서 느꼈던 열등감. 그런 것들을 있는 그대로 다 털어놓았어요.
상담사님이랑 얘기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이 번아웃이라는 게, 제가 약해서 온 게 아니라 그동안 너무 큰 짐을 오래 짊어져 왔기 때문에, 제 몸과 마음이 이제 좀 쉬자고 정당하게 신호를 보내는 거였다는 걸요.
그때부터 정신뿐만 아니라 몸도 함께 챙기기로 했어요. 퇴근하고 나서 밤산책을 시작했고, 조금씩 러닝도 늘려갔습니다.
퇴근 후 밤공기 마시면서 30분 정도 가볍게 걷는 그 시간이, 하루 종일 과부하 걸렸던 머릿속을 비워주는 시간이 되어줬어요. 그렇게 몸을 좀 풀고 나면 운동화 끈을 다시 조여 매고 달렸습니다. 10킬로미터 정도를 한 시간쯤, 일정한 속도로 땀 흘리면서요.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온몸이 땀범벅이 되는 그 순간만큼은, 이상하게 남들과의 비교나 지난날 자괴감 같은 게 다 사라지더라고요. 그냥 제 발걸음, 제 숨소리, 지금 이 순간 살아 움직이는 제 몸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한 시간 달리고 나면 뭔가 몸속 독소랑 마음속 찌꺼기가 땀이랑 같이 다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오늘 하루도 내 힘으로 달렸다, 이런 작은 성취감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고요. 그리고 그렇게 달리고 난 뒤 찾아오는 깊은 잠은, 저를 오래 괴롭혔던 불면증을 이겨내는 데도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렇게 심리상담으로 마음의 짐을 조금씩 덜어내고, 밤산책이랑 러닝으로 몸을 다잡으면서 몇 달을 보냈어요. 그러니까 제 머릿속을 채우던 어두운 생각들이 조금씩 다른 색으로 바뀌기 시작하더라고요.
남들보다 조금 늦었을지는 몰라도, 나는 내 가족과 내 삶을 지켜낸 사람이다. 이런 생각이 마음속에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혹시 과거의 상처나 남들과의 비교 때문에 번아웃에 빠져 계신 분이 있다면, 꼭 이 말씀 드리고 싶어요.
남들 속도랑 내 속도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지 마세요. 여러분이 지나온 그 힘든 시간은 절대 헛된 게 아니에요. 지금 겪고 계신 그 무기력은, 더 멀리 가기 위해 잠깐 멈춰서 숨을 고르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혼자 끙끙 앓지 마시고 전문가의 도움도 꼭 받아보시고요, 오늘 밤 운동화 끈 한번 묶고 밖에 나가서 가볍게 걸어보시거나 달려보셨으면 좋겠어요. 땀 흘리면서 내 숨소리에 집중하는 그 작은 습관 하나가, 여러분 마음에 다시 힘을 채워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치신 마음과 몸에, 다시 건강한 에너지가 차오르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