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삶.. 끝없는 간병 번아웃과 막막함

사람들은 보통 60대가 되면 자식들을 다 키워놓고 경제적인 은퇴를 준비하며 상대적으로 편안한 노후를 보낼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저 역시 젊은 시절 내내 직장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며 쉬지 않고 일했기 때문에 60대가 되면 남편과 함께 외출도 자주 하고 개인적인 여가 생활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길었던 노동의 시간들을 보상받고, 이제야 비로소 제 자신을 챙기며 살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제 실제 현실은 기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친정어머니의 치매 증상이 심해지고 혼자서 거동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형제들 중 가장 가까이에 살고 있던 제가 주 간병인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식 된 도리로서 아픈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매끼 부드러운 식사를 조리해서 챙겨드리고, 화장실 이동을 돕고, 목욕을 시켜드리는 일상적인 간병 업무를 담담하게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하루 24시간 내내 환자와 단둘이 집 안에 남겨져 모든 요구사항을 처리해야 하는 생활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육체적인 소모가 크더군요.

 

특히 제 몸 역시 이미 병원 치료가 정기적으로 필요한 60대의 노인이라는 사실이 이 간병 생활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머니를 부축해서 화장실에 모시고 갈 때마다 제 허리와 무릎의 관절은 심하게 쑤시고 아픕니다. 제가 허리가 아파서 바닥에 눕고 싶을 때에도 어머니가 부르시면 진통제를 삼키고 당장 일어나야만 합니다. 내 몸이 늙고 병들어가는 과정을 돌볼 시간조차 없이, 나보다 더 늙고 거동이 불편한 사람의 생존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노노케어의 끔찍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 것이죠.

 

간병 생활이 2년 넘게 지속되면서 제 신체와 정신에는 매우 심각한 번아웃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극도의 수면 부족과 만성적인 소화 기능 장애입니다.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는 낮과 밤의 인지가 사라져 새벽마다 집 안을 배회하시거나 저를 깨워 식사를 차려달라고 요구하십니다.

 

저는 혹시라도 어머니가 넘어지셔서 골절상을 입거나 가스레인지를 만질까 봐 밤에도 현관문 소리나 아주 작은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매일 밤 얕은 잠을 자다 깨기를 반복했고, 이러한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낮 시간의 극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을 유발하더라고요.

 

스트레스가 일상화되니 위장 기능도 망가졌습니다. 제때 밥을 먹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억지로 밥을 넘겨도 전혀 소화가 되지 않았으며, 명치끝이 항상 뭉쳐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발생했고 무엇보다 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사회와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지독한 고립감입니다.

 

어머니를 혼자 두고 단 30분도 외출을 할 수가 없으니, 친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거나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가는 아주 평범한 일상마저 완벽하게 통제 되더군요. 

 

명절이나 주말에 다른 지역에 사는 형제들이 가끔 과일이나 반찬을 사 들고 방문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두어 시간 앉아 있다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결국 매일 밤 어머니의 용변을 치우고 인지 저하로 인한 짜증과 억지를 모두 받아내야 하는 것은 오롯이 제 몫입니다. 형제들이 다녀간 날 저녁에는 혼자 남겨졌다는 억울함에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립니다.

 

내가 늙어가는 과정에서 아무런 보상 없이 타인의 병수발만 들다가 내 수명이 끝날 수도 있겠다는 현실적인 공포감이 저를 심각한 무기력증과 번아웃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약 복용을 거부하며 물컵과 약봉지를 바닥에 던져버리신 날이 있었습니다. 바닥에 흩어진 알약과 엎질러진 물을 걸레로 닦아내며, 저는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눈물만 계속 흘렸습니다. 억울하다거나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하고 싶다는 의지조차 생기지 않았고, 그저 제 신체와 정신의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절망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제 인생이 완전히 끝났다고 체감했던 날은 어머니를 모시고 대학 병원에 정기 검진을 방문했던 날이었습니다.

무거운 휠체어에 어머니를 모시고 복잡한 병원 복도를 지나 대기실 의자에 간신히 앉았습니다. 접수를 하고 수납 창구를 오가며 휠체어를 밀고 다니느라 제 옷은 땀으로 다 젖어 있었고, 무릎 관절은 퉁퉁 부어올라 똑바로 걷기조차 힘들었습니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무릎을 주무르며 제 손과 팔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손등에는 굵은 핏줄이 선명하게 튀어나와 있었고 피부 곳곳에 검버섯이 피어 있는, 영락없는 늙고 병든 노인의 손이었습니다.

 

그 순간 아주 무섭고 구체적인 현실을 자각했습니다. 나는 지금 치매에 걸린 80대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에 왔지만, 정작 시간이 흘러 70대, 80대가 되어 내 몸이 지금의 어머니처럼 거동이 불편해졌을 때 내 휠체어를 밀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자식들은 각자의 직장 생활과 육아를 하느라 바쁘고, 저는 제 관절을 치료하고 건강을 챙길 최소한의 시간과 금전마저 어머니의 간병에 모두 소비하고 있습니다.

 

결국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내 자신의 노후 대비는 완전히 사라졌고, 나의 미래에는 망가진 신체와 지독한 가난만 남게 될 것이라는 절망감이 저를 강하게 덮쳤습니다.

 

병원 대기실에서 다른 노인 환자들의 휠체어를 밀고 있는 비슷한 또래의 60대 여성들의 지친 표정을 보며, 저는 제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이 개인의 인내심이나 가족애로 결코 버텨낼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님을 명확히 깨달았습니다. 저는 간병 노동으로 인해 제 남은 수명과 건강을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는 중증의 번아웃 환자입니다.

 

요즘은 아침에 눈을 뜨는 것 자체가 두렵습니다. 오늘은 또 어머니가 어떤 이상 행동을 하실지, 내 삭신은 얼마나 더 쑤시고 아플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져 숨을 쉬기가 곤란합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굴레 속에서 저는 매일매일 조금씩 말라 죽어가고 있습니다. 

 

도망치고 싶어도 병든 어머니를 버린다는 죄책감 때문에 현관문 밖을 나설 용기조차 나지 않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지독하고 어두운 간병의 터널 속에서, 다 늙고 병들어버린 저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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