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인데 아버지가 밉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입니다.

제목에 보셨듯이 아버지가 너무 싫습니다.

 

 

 

먼저 추가적인 설명부터 하자면,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시거나 폭력성이 높으신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더 절연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들수록 제 자신이 정말 못된 자식 같다는 생각이 들고, 제가 왜 이런 마음을 가지는지 의문이 들곤 했습니다.

자라면서 왜 그럴까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데요.

 

 

 

먼저 아버지와는 어릴 적 정서적 교류를 한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무뚝뚝하신 편에 가깝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친절하시고, 정말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때는 텐션도 높아지십니다. 아내에게는 그래도 때리는 남편보다는 낫다는 말을 들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정말 친한 사람들과만 어울리시지만 인간관계도 나쁘지 않으신데, 딸인 저와는 놀아 주신 적도, 진지한 대화를 하거나 소통을 한 적도 없으십니다.

 

 

 

어릴 적 저에게 아버지는 게임을 하시거나, “엄마를 도와주면 놀아주겠다”고 항상 조건을 거시곤 하셨습니다. 하지만 막상 도와드려도 놀아주지 않으셨고, 저를 시킴으로써 자기 만족을 하시는 분처럼 느껴졌습니다.

 

 

 

두 번째로, 집안일을 하지 않으십니다. 살면서 아버지 손에 물 묻히는 것을 본 적이 없고, 항상 어머니 혼자 일을 하셨으며, 궂은일에는 손도 대기 싫어하셨습니다. 가족 중 한 명이 아프더라도 말로만 “어떡하냐” 하시고는 방으로 들어가시거나 출장을 가시곤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일이 겹쳤기에 이런 일들은 어머니도 저도 그러려니 하고 넘겼습니다.

 

 

 

세 번째로, 어린아이 같으십니다. 중학생 때 저는 학원을 다니지 못했는데, 그 돈으로 아버지는 바이크를 사고 취미 생활을 즐기시는 데 급급하셨습니다. 행동도 아직 철없는 중학생과 다를 바 없고, 불리한 일이 생기면 빠져나갈 생각만 하십니다.

 

 

저는 어릴 때 유독 어른스럽고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게 아버지처럼은 되기 싫어서 반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집에서 겨우 공부를 해도 TV나 휴대폰 게임 소리는 매일 켜 두셨고요. 집안의 가장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고 신뢰감도 없습니다.

 

 

 

네 번째로, 자기 자신만 생각하십니다. 이것도 세 번째 이유와 비슷한데요. 저는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물체를 보면 보기 힘든 편입니다. 살면서 물이나 다른 물체가 흔들리는 상황을 피할 수는 없지만, 어릴 때는 그 증상이 특히 심했습니다. 정신과 진료도 받아 봤는데 불안이 심해서 그런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불안하지 않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도 들었습니다.

 

 

 

지금은 불안해도 참고 살고 있는데, 아버지께 차 안에 음료수를 두는 것만은 피해 달라고 수십 번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도 그것 하나가 불편하신지 나중에는 제 욕만 하시더라고요. 일부러 제 눈앞에서 물을 흔드는 등, 짜증이 나시면 그런 행동도 많이 하십니다.

 

 

 

이런 것 말고도 행동 하나하나가 자기중심적인 경우가 많고, 친척들 앞에 있으면 허드렛일을 전부 저에게 시키십니다. 가장으로서의 위엄을 보이고 싶다고 말씀하시기도 했고요. 친척들에게 물을 떠 드리거나 그릇과 수저를 챙기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설거지까지 하라고 하시니 나중에는 화도 나더라고요.

 

 

 

친척들뿐만 아니라 밖에 나가서도 세상 모든 사람들을 저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부당한 일을 이야기해도 결국은 제 탓으로 돌리시고, 언제나 굽신거리며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십니다. 덕분에 학교에서 자존감 검사를 하면 항상 최하위 수준이 나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넘기는 편이고요.

 

 

 

어머니가 암에 걸리셔서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있는데요. 어머니가 암에 걸리셨을 때 아버지가 제 탓을 하시는 것도 너무 속상해서 말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거기에 어린아이처럼 하지 말라는 행동은 일부러 더 하시니 너무 답답합니다.

 

 

 

평소 행동에도 눈치가 없으시고 깊게 생각하시는 편도 아니라서, 최근에는 제 약봉지를 모르고 버리신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과는커녕 제가 앓았던 게 독감인지 감기인지 알레르기인지도 모르시면서 “이미 다 나았으니까 안 먹어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고는 제가 기침을 하면 기침하는 척하지 말라며 비꼬시고요.

 

 

 

이런저런 이유들로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너무 미웠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항상 저를 다그치셨고, 요즘도 다른 곳에 계신 어머니가 “네가 더 참아야지. 아버지는 원래 그런 분이야.“라고 말씀하시면 뭔가 속에서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아버지와 진심으로 절연하고 싶지만 어머니는 완강히 반대하십니다. 또 아버지가 이런 점들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폭력을 쓰시는 분은 아니라서 마냥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아버지와 이야기도 하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둔 채 성인이 될 때까지 조용히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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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데이지
    청소년상담사
    답변수 1,156채택률 3%마음·정신건강, 스트레스·감정조절 전문
    질문자님의 글을 끝까지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껴진 것은, 아버지가 밉다는 감정보다도 오랫동안 혼자 참고 견뎌오셨다는 점이었습니다.
    
    글을 보면 아버지께서 폭력을 사용하시는 분은 아니지만, 질문자님의 감정을 공감해 주거나 정서적으로 돌봐주신 경험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고, 질문자님의 불안이나 어려움을 가볍게 여기셨으며, 억울한 상황에서도 질문자님의 편이 되어주기보다 오히려 탓을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었다면 부모를 신뢰하기 어렵고 미운 감정이 생기는 것은 충분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또 “폭력을 쓰는 사람은 아니니까 내가 너무 못된 자식인가?“라는 죄책감도 느끼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모와의 관계는 폭력 유무만으로 판단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는 부모에게 사랑받고 이해받고 보호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 정서적인 욕구가 오랫동안 채워지지 않았다면 마음에 상처가 남을 수 있습니다.
    
    특히 어머니께서 “네가 더 참아야지”라고 말씀하실 때 가장 억울하셨다는 부분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질문자님은 오랫동안 참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다고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아버지를 바꾸려고 애쓰기보다, 질문자님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성격이나 행동은 질문자님이 노력한다고 쉽게 달라질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다. 오히려 필요 이상의 대화를 줄이고, 감정적으로 휘말리는 상황에서는 거리를 두며, 공부나 친구, 자신의 미래에 에너지를 쓰는 것이 질문자님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성인이 될 때까지 무조건 참기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학교 상담교사나 믿을 수 있는 어른, 청소년 상담기관 등을 통해 지금의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하나쯤 만들어 두셨으면 합니다. 혼자 견디는 것과 도움을 받으며 견디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질문자님은 글에서 자신을 어른스럽게 만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부모를 대신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호받아야 할 고등학생입니다. 부모의 부족한 부분까지 질문자님이 책임질 필요는 없습니다.
    
    당장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아지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지금의 목표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자님의 마음과 자존감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언젠가 독립할 수 있는 날을 준비하며 자신의 삶을 차근차근 만들어 가는 것이, 지금 질문자님이 할 수 있는 가장 건강한 선택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