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처자식 배불리 먹이고 남부럽지 않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쉼 없이 앞만 보며 달려왔습니다.
직장에서 아무리 험한 꼴을 당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내가 한 가정의 든든한 기둥이자 당당한 가장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그 모든 모진 세월을 묵묵히 버텨냈습니다.
땀 흘려 일한 만큼 통장에 월급이 찍히고 내가 번 돈으로 가족들이 따뜻한 방에서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제 인생의 가장 큰 훈장이자 살아가는 유일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부대끼며 살아가던 시절에는 제법 목소리도 크고 어디 가서 주눅 들지 않는 자신감 넘치는 어른이었습니다. 동사무소든 은행이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사람에게 묻고 답을 구하며 해결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사람 사이의 끈끈한 정이 오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시대가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세상이 온통 스마트폰과 차디찬 무인 기계들로 뒤덮이기 시작하면서 제가 알던 상식과 삶의 방식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뼈 깎는 노력으로 단단하게 쌓아 올린 제 알량한 자존심과 어른으로서의 권위가 이름 모를 기계들 앞에서 형편없이 무너지고 세상의 짐짝처럼 밀려나는 것을 매일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아내가 집을 비워서 점심을 해결하려 동네 식당에 들어갔을 때의 일입니다.
매장에는 인사를 건네는 직원이 한 명도 없고 낯선 커다란 화면 기계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더라고요. 제 앞에 있던 젊은 사람들은 화면을 몇 번 가볍게 만지더니 카드를 꽂고 금세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저도 당당하게 기계 앞에 섰지만 막상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그림과 복잡한 글씨들을 마주하니 머릿속이 새카맣게 멈춰버렸습니다. 매장에서 먹을 건지 포장할 건지를 고르는 것부터 결제 방식을 묻는 화면들을 넘기며 저는 완전히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손가락으로 이것저것 더듬거리며 눌러보았지만 화면은 자꾸만 엉뚱한 곳으로 넘어갔고 취소 버튼조차 찾지 못해 진땀만 뻘뻘 흘리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제 뒤로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과 누군가 작게 내쉬는 짜증 섞인 한숨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듯이 그 가게를 빠져나오고 말았습니다.
등 뒤로 꽂히는 그 차가운 시선들이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쓸모없는 늙은이라고 저를 비웃는 것만 같아 길거리에 멍하니 선 채로 지독한 비참함을 느꼈습니다.
이런 굴욕적인 경험은 단지 식당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안 좋아 큰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전처럼 접수 창구에 가서 아픈 곳을 말하고 번호표를 받으려 했는데 간호사는 저기 있는 기계나 스마트폰 앱으로 접수를 하라며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하더라고요.
아픈 몸을 이끌고 기계 앞에 서서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진료과를 찾는데 자꾸만 시간 초과로 처음 화면으로 돌아가 버리는 바람에 결국 삼십 분 넘게 그 앞을 서성이며 진을 빼야 했습니다. 사람의 온기와 배려가 가장 필요했던 병원에서조차 차가운 기계와 씨름하며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거절당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향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기차표를 끊으려고 역에 나갔을 때도 창구에는 표가 전부 매진되었다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제 옆에 서 있던 젊은 학생은 스마트폰을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취소된 표를 척척 구해서 기차를 타러 들어가더라고요. 은행 업무를 보러 가도 평생을 오가며 인사를 나누던 창구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아버리고 지점에 가더라도 직원이 스마트폰 앱으로 하면 수수료도 없다며 저를 다시 화면 앞으로 내몰기 일쑤입니다.
앱을 켜서 송금 하나를 하려고 해도 인증서가 어쩌고 보안 매체가 저쩌고 하며 낯선 화면으로 넘어가니 행여나 잘못 눌러서 내 피 같은 돈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갈까 봐 손이 떨려서 결국 중간에 포기하고 맙니다. 사람의 온기가 사라지고 효율성이라는 이름표를 단 기계들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저 같은 늙은이에게 이 세상은 거대하고 차가운 철옹성처럼 낯설고 두렵기만 합니다.
돈을 내고 정당한 서비스를 이용하려 해도 기계를 다루지 못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과 소외를 온몸으로 감당해 내야 합니다.
결국 혼자서 끙끙 앓다가 퇴근하고 돌아온 자식들에게 조심스럽게 도움을 청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속으로 삼키는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시달리다 와서 피곤한 아이들은 제 스마트폰을 휙 빼앗아 들고는 순식간에 자기들끼리 처리를 해버립니다.
아버지는 아직도 이런 거 하나 혼자 못해서 매번 부르냐는 듯한 귀찮은 표정과 퉁명스러운 말투를 마주할 때면 제 자신이 너무나 무능하고 쓸모없는 짐 덩어리로 전락한 것 같아 억장이 무너져 내립니다.
젊었을 때는 전구도 척척 갈아 끼우고 망가진 가전제품도 뚝딱 고쳐내며 가족들의 궂은일을 앞장서서 해결해 주던 만능 해결사 같은 아버지였습니다. 식구들이 행여나 거친 풍파에 다칠까 봐 온몸을 던져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는데 이제는 기본적인 일상생활조차 자식들의 도움 없이는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나약한 노인네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평생을 비바람 막아주며 뼈가 부서져라 당당하게 키워낸 내 새끼들 앞에서도 스마트폰 화면 하나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눈치를 봐야 하는 이 처지가 너무나 서럽고 한탄스럽습니다.
저라고 이대로 세상과 담을 쌓고 도태되고 싶어서 가만히 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답답하고 절박한 마음에 동네 주민 센터에서 열리는 어르신 스마트폰 교육도 빠지지 않고 쫓아가서 들어보고 돋보기를 끼고 수첩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가며 순서를 빼곡하게 적어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만 지나면 기계의 화면이 업데이트가 되어버리고 밤새워 외워둔 버튼의 위치가 싹 바뀌어버리니 애써 배운 피눈물 나는 노력들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기 일쑤입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게 변하는 세상의 문법을 기억력이 가물가물해진 몸으로 쫓아가려 발버둥 쳐보아도 결국 거대한 벽에 부딪힌 듯한 지독한 좌절감만 짙어질 뿐입니다.
그렇게 뼈아픈 실패가 거듭될수록 새로운 것을 다시 배우겠다는 의지보다는 또 멍청한 바보 취급을 받을까 두려워 아예 낯선 기계 앞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려는 회피 성향만 제 안에서 무섭게 덩치를 키워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직접 주문을 받는 허름하고 낡은 식당만 찾아다니게 되고 행동반경은 갈수록 비좁아져 스스로를 작은 감옥 안에 철저하게 가두어버리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매일같이 일상 속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쪼그라들다 보니 문밖을 나서는 것 자체가 거대한 스트레스이자 두려움의 연속입니다. 평생을 요령 피우지 않고 정직하게 일궈온 제 삶의 궤적들이 고작 이 기계 조작의 서투름 때문에 아무런 쓸모도 없는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받는 것 같아 억울함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부지기수입니다.
제가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사지가 마비된 것도 아닌데 그저 시대의 낯선 언어를 모른다는 이유로 세상의 구석으로 형편없이 밀려나 숨죽여 살아가야 하는 이 씁쓸한 현실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을 만나도 다들 허허 웃으면서 세상 살기 팍팍해졌다는 한탄만 할 뿐 이 깊숙한 상실감과 갈기갈기 찢겨나간 자존심을 어떻게 다시 이어 붙여야 하는지 길을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다들 속으로는 늙고 작아진 자신을 감추기 위해 애써 빈껍데기 같은 허세를 부리는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세상과 철저하게 단절된 채 기계가 두려워 방구석에만 숨어 지내는 주눅 든 노인으로 비참하게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낯선 상황을 마주했을 때 덜컥 겁부터 먹고 비겁하게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조금 서투르고 남들보다 속도가 느리더라도 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부딪쳐볼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의 용기를 다시 한번 가져보고 싶습니다.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을 멍청하다 깎아내리며 자학하는 어두운 늪에서 빠져나와 늙고 둔해진 제 모습을 온전히 껴안고 세상과 다시 부드럽게 소통할 수 있는 여유로운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비록 반짝이는 기계 앞에서는 답답할 정도로 서투른 사람일지언정 저의 지난 치열했던 삶 전체가 결코 가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진실을 스스로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습니다.
잔뜩 주눅이 들어버린 이 늙은 마음에 굳게 닫힌 길을 열어주시고 험한 세상 밖으로 다시 한 걸음 힘차게 내디딜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삶의 지혜와 방향을 꼭 짚어주시기를 절박한 심정으로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