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당당한 가장으로 살아왔는데 무인 기계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세상에서 도태되는 기분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처자식 배불리 먹이고 남부럽지 않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쉼 없이 앞만 보며 달려왔습니다. 

 

직장에서 아무리 험한 꼴을 당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내가 한 가정의 든든한 기둥이자 당당한 가장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그 모든 모진 세월을 묵묵히 버텨냈습니다. 

 

땀 흘려 일한 만큼 통장에 월급이 찍히고 내가 번 돈으로 가족들이 따뜻한 방에서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제 인생의 가장 큰 훈장이자 살아가는 유일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부대끼며 살아가던 시절에는 제법 목소리도 크고 어디 가서 주눅 들지 않는 자신감 넘치는 어른이었습니다. 동사무소든 은행이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사람에게 묻고 답을 구하며 해결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사람 사이의 끈끈한 정이 오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시대가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세상이 온통 스마트폰과 차디찬 무인 기계들로 뒤덮이기 시작하면서 제가 알던 상식과 삶의 방식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뼈 깎는 노력으로 단단하게 쌓아 올린 제 알량한 자존심과 어른으로서의 권위가 이름 모를 기계들 앞에서 형편없이 무너지고 세상의 짐짝처럼 밀려나는 것을 매일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아내가 집을 비워서 점심을 해결하려 동네 식당에 들어갔을 때의 일입니다. 

 

매장에는 인사를 건네는 직원이 한 명도 없고 낯선 커다란 화면 기계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더라고요. 제 앞에 있던 젊은 사람들은 화면을 몇 번 가볍게 만지더니 카드를 꽂고 금세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저도 당당하게 기계 앞에 섰지만 막상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그림과 복잡한 글씨들을 마주하니 머릿속이 새카맣게 멈춰버렸습니다. 매장에서 먹을 건지 포장할 건지를 고르는 것부터 결제 방식을 묻는 화면들을 넘기며 저는 완전히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손가락으로 이것저것 더듬거리며 눌러보았지만 화면은 자꾸만 엉뚱한 곳으로 넘어갔고 취소 버튼조차 찾지 못해 진땀만 뻘뻘 흘리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제 뒤로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과 누군가 작게 내쉬는 짜증 섞인 한숨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듯이 그 가게를 빠져나오고 말았습니다. 

 

등 뒤로 꽂히는 그 차가운 시선들이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쓸모없는 늙은이라고 저를 비웃는 것만 같아 길거리에 멍하니 선 채로 지독한 비참함을 느꼈습니다.

이런 굴욕적인 경험은 단지 식당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안 좋아 큰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전처럼 접수 창구에 가서 아픈 곳을 말하고 번호표를 받으려 했는데 간호사는 저기 있는 기계나 스마트폰 앱으로 접수를 하라며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하더라고요. 

 

아픈 몸을 이끌고 기계 앞에 서서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진료과를 찾는데 자꾸만 시간 초과로 처음 화면으로 돌아가 버리는 바람에 결국 삼십 분 넘게 그 앞을 서성이며 진을 빼야 했습니다. 사람의 온기와 배려가 가장 필요했던 병원에서조차 차가운 기계와 씨름하며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거절당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향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기차표를 끊으려고 역에 나갔을 때도 창구에는 표가 전부 매진되었다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제 옆에 서 있던 젊은 학생은 스마트폰을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취소된 표를 척척 구해서 기차를 타러 들어가더라고요. 은행 업무를 보러 가도 평생을 오가며 인사를 나누던 창구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아버리고 지점에 가더라도 직원이 스마트폰 앱으로 하면 수수료도 없다며 저를 다시 화면 앞으로 내몰기 일쑤입니다. 

 

앱을 켜서 송금 하나를 하려고 해도 인증서가 어쩌고 보안 매체가 저쩌고 하며 낯선 화면으로 넘어가니 행여나 잘못 눌러서 내 피 같은 돈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갈까 봐 손이 떨려서 결국 중간에 포기하고 맙니다. 사람의 온기가 사라지고 효율성이라는 이름표를 단 기계들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저 같은 늙은이에게 이 세상은 거대하고 차가운 철옹성처럼 낯설고 두렵기만 합니다. 

 

돈을 내고 정당한 서비스를 이용하려 해도 기계를 다루지 못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과 소외를 온몸으로 감당해 내야 합니다.

 

결국 혼자서 끙끙 앓다가 퇴근하고 돌아온 자식들에게 조심스럽게 도움을 청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속으로 삼키는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시달리다 와서 피곤한 아이들은 제 스마트폰을 휙 빼앗아 들고는 순식간에 자기들끼리 처리를 해버립니다. 

 

아버지는 아직도 이런 거 하나 혼자 못해서 매번 부르냐는 듯한 귀찮은 표정과 퉁명스러운 말투를 마주할 때면 제 자신이 너무나 무능하고 쓸모없는 짐 덩어리로 전락한 것 같아 억장이 무너져 내립니다. 

 

젊었을 때는 전구도 척척 갈아 끼우고 망가진 가전제품도 뚝딱 고쳐내며 가족들의 궂은일을 앞장서서 해결해 주던 만능 해결사 같은 아버지였습니다. 식구들이 행여나 거친 풍파에 다칠까 봐 온몸을 던져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는데 이제는 기본적인 일상생활조차 자식들의 도움 없이는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나약한 노인네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평생을 비바람 막아주며 뼈가 부서져라 당당하게 키워낸 내 새끼들 앞에서도 스마트폰 화면 하나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눈치를 봐야 하는 이 처지가 너무나 서럽고 한탄스럽습니다.

 

저라고 이대로 세상과 담을 쌓고 도태되고 싶어서 가만히 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답답하고 절박한 마음에 동네 주민 센터에서 열리는 어르신 스마트폰 교육도 빠지지 않고 쫓아가서 들어보고 돋보기를 끼고 수첩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가며 순서를 빼곡하게 적어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만 지나면 기계의 화면이 업데이트가 되어버리고 밤새워 외워둔 버튼의 위치가 싹 바뀌어버리니 애써 배운 피눈물 나는 노력들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기 일쑤입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게 변하는 세상의 문법을 기억력이 가물가물해진 몸으로 쫓아가려 발버둥 쳐보아도 결국 거대한 벽에 부딪힌 듯한 지독한 좌절감만 짙어질 뿐입니다. 

 

그렇게 뼈아픈 실패가 거듭될수록 새로운 것을 다시 배우겠다는 의지보다는 또 멍청한 바보 취급을 받을까 두려워 아예 낯선 기계 앞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려는 회피 성향만 제 안에서 무섭게 덩치를 키워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직접 주문을 받는 허름하고 낡은 식당만 찾아다니게 되고 행동반경은 갈수록 비좁아져 스스로를 작은 감옥 안에 철저하게 가두어버리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매일같이 일상 속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쪼그라들다 보니 문밖을 나서는 것 자체가 거대한 스트레스이자 두려움의 연속입니다. 평생을 요령 피우지 않고 정직하게 일궈온 제 삶의 궤적들이 고작 이 기계 조작의 서투름 때문에 아무런 쓸모도 없는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받는 것 같아 억울함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부지기수입니다. 

 

제가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사지가 마비된 것도 아닌데 그저 시대의 낯선 언어를 모른다는 이유로 세상의 구석으로 형편없이 밀려나 숨죽여 살아가야 하는 이 씁쓸한 현실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을 만나도 다들 허허 웃으면서 세상 살기 팍팍해졌다는 한탄만 할 뿐 이 깊숙한 상실감과 갈기갈기 찢겨나간 자존심을 어떻게 다시 이어 붙여야 하는지 길을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다들 속으로는 늙고 작아진 자신을 감추기 위해 애써 빈껍데기 같은 허세를 부리는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세상과 철저하게 단절된 채 기계가 두려워 방구석에만 숨어 지내는 주눅 든 노인으로 비참하게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낯선 상황을 마주했을 때 덜컥 겁부터 먹고 비겁하게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조금 서투르고 남들보다 속도가 느리더라도 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부딪쳐볼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의 용기를 다시 한번 가져보고 싶습니다.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을 멍청하다 깎아내리며 자학하는 어두운 늪에서 빠져나와 늙고 둔해진 제 모습을 온전히 껴안고 세상과 다시 부드럽게 소통할 수 있는 여유로운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비록 반짝이는 기계 앞에서는 답답할 정도로 서투른 사람일지언정 저의 지난 치열했던 삶 전체가 결코 가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진실을 스스로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습니다. 

 

잔뜩 주눅이 들어버린 이 늙은 마음에 굳게 닫힌 길을 열어주시고 험한 세상 밖으로 다시 한 걸음 힘차게 내디딜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삶의 지혜와 방향을 꼭 짚어주시기를 절박한 심정으로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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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8
  • 익명1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코끝이 찡해졌어요, 선생님이 느끼셨을 그 지독한 비참함과 소외감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서 마음이 참 많이 아픕니다.
    
    평생 한 가정을 책임지는 든든한 가장이자 기둥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그 모진 세월을 다 버텨내신 당당한 어른이신데, 고작 차디찬 무인 기계 화면 하나 때문에 진땀을 흘리며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나오셨을 때 얼마나 기가 막히고 서러우셨을까요. 사람의 온기가 가장 절실한 병원에서조차 차가운 기계와 씨름하며 세상으로부터 거절당하는 기분을 느끼고, 평생 비바람 막아주며 키운 자식들 앞에서 스마트폰 화면 하나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눈치를 보셔야 했을 때 무너져 내렸을 그 자존심을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드네요.
    
    주민센터 교육도 찾아가고 수첩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가며 순서를 적어오실 만큼 치열하게 노력하셨는데도, 자고 일어나면 화면이 바뀌어 버리는 야속한 세상 앞에서 느끼셨을 지독한 좌절감은 결코 선생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세상이 사람에 대한 배려도 없이 너무 빠르고 차갑게 변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기계를 다루는 서툰 기술 때문에 선생님이 평생 정직하게 일궈온 삶의 궤적들이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받는 것 같아 억울하셨겠지만, 결코 기계 조작 능력과 한 사람의 삶의 가치는 등호가 성립할 수 없다는 걸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젊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척척 다룬다고 한들, 선생님이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쌓아 올린 책임감과 삶의 지혜는 그 어떤 최신 기계 화면에도 들어있지 않은 값진 자산이에요. 앞으로 기계 앞에서 시간이 좀 오래 걸리더라도,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의 눈총에 미리 주눅 들어 도망치지 마세요. “제가 이게 처음이라 서툽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해도 괜찮고, 직원에게 한 번만 알려달라고 도움을 청하는 건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자식들에게 물어볼 때도 대신 해달라고 폰을 넘겨주기보다, “내가 직접 눌러볼 테니 옆에서 천천히 기다려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셔도 돼요.
    
    세상 문법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선생님이 평생 가족을 지켜온 위대한 가장이라는 사실은 키오스크 화면 하나 때문에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나를 쓸모없다고 깎아내리는 자학의 늪에서 나와, 늙고 둔해진 내 모습을 온전히 껴안고 조금 서툴게 세상을 배워가셔도 충분해요. 기계보다 중요한 건 여전히 사람이고, 무엇보다 선생님이 살아오신 그 치열했던 인생은 세상 그 어떤 화면보다 훨씬 웅장하고 아름답습니다. 잔뜩 웅크렸던 마음에 다시금 당당한 용기가 차오르기를 온 마음으로 응원할게요.💜
    익명2
    작성자
    제 서러운 고백에 이토록 정성스럽고 따뜻한 답글을 남겨주셔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자고 나면 바뀌는 세상 앞에서 혼자 길을 잃고 참 많이 외롭고 비참했는데, 복지사님의 글을 읽으며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습니다.
    
    스마트폰 속도보다 제가 가족을 위해 살아온 책임감이 더 값진 자산이라는 말씀에 주눅 들었던 어깨가 조금은 펴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 자식들 앞에서도, 차가운 기계 앞에서도 뒤돌아 도망치지 않고 당당하게 부딪혀 보겠습니다.
    
    귀한 시간 내어 제 꺾인 자존심을 다시 세워주시고, 진심으로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프로필 이미지
    로니엄마
    사회복지사2급
    답변수 3,168채택률 4%
    이 글은 단순히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를 배우는 문제보다, 평생 가족을 책임져 온 한 사람의 자존감이 시대의 변화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게 먼저일 것 같아요. 그 마음을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기계가 서툴다고 삶까지 작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평생 가족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누구에게도 쉽게 기대지 않고 살아오신 분이라, 이제는 자녀에게 작은 도움 하나를 청하는 것조차 자신의 능력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셨던 것 같습니다. 특히 무인기계 앞에서 당황했던 순간이 단순히 기계를 못 다룬 일이 아니라, ‘나는 이제 세상에서 뒤처진 사람이 된 건가’ 하는 마음으로까지 이어졌을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키오스크를 잘 다루는 능력과 한 사람의 삶의 가치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기계 앞에서 서툴다고 해서 평생 가족을 위해 땀 흘려온 삶이 작아지는 것도 아니고, 자녀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무능한 아버지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오신 세상에는 지금의 젊은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수많은 삶의 기술과 지혜가 있습니다. 전구 하나 갈아 끼우는 손길, 고장 난 물건을 고쳐내던 경험, 가족이 힘들 때 묵묵히 앞장서던 책임감은 어떤 스마트폰에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필요한 것은 모든 기계를 완벽하게 익히는 것이 아니라 ‘모르면 물어봐도 괜찮다’는 마음을 다시 갖는 것 아닐까요.
    
    처음부터 혼자 해내려고 하지 마시고, 자녀에게 “내가 직접 해보고 싶은데 옆에서 한 번만 알려줘”라고 부탁해보세요. 자녀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손을 대지 않고 옆에서 기다려 달라고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또 키오스크나 스마트폰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능 몇 가지만 정해서 반복해보세요. 모든 것을 따라잡으려 하기보다 내가 자주 쓰는 것부터 익히는 겁니다.
    
    그리고 기계 앞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뒤에 사람이 있다고 서둘러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서툽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고 말해도 괜찮습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기계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고,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서 누구도 작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나는 늙어서 못한다’가 아니라 ‘나는 처음이라 서툴다’**라고 생각을 바꿔보셨으면 합니다. 늦게 배우는 것과 못 배우는 것은 다릅니다.
    
    평생 가족을 지켜온 당당한 가장이라는 사실은 키오스크 화면 하나 때문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의 모습은 작아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일 뿐입니다.
    
    조금 느려도 괜찮습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다음 문까지 닫아버리지는 마세요. 기계 앞에서 잠시 멈춰 서더라도 다시 한 번 눌러보고, 모르면 사람에게 물어보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가족을 지켜온 그 단단한 마음으로, 이제는 세상을 조금 서툴게 배워가셔도 충분합니다.
    
    기계보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사람이고, 무엇보다 그동안 살아오신 당신의 삶은 어떤 화면보다 훨씬 값집니다.
    익명2
    작성자
    코치라는 분이 ai 답변을 그대로 사용하시나요? 실망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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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필 이미지
    찌니
    상담교사
    답변수 3,797채택률 3%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모진 세월을 견뎌내신 어르신의 치열했던 삶은 그 자체로 존경받아야 마땅한 훈장입니다. 결코 기계 몇 대 다루지 못한다고 해서 그 숭고한 세월의 가치가 바래거나 무가치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느끼시는 좌절감은 어르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사람에 대한 배려 없이 너무 빠르고 차갑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시대의 진통일 뿐입니다. 스스로를 자책하며 죄송해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기계는 단순한 도구일 뿐, 어르신이 평생 쌓아 올린 지혜와 책임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자산입니다.
    ​서툰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당당하게 "천천히 알려달라"고 요청하시거나, 복지관의 1:1 디지틀 배움터 등을 활용해 차근차근 익혀보세요.
    ​한 번에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한 걸음씩 세상과 다시 소통해 나가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익명2
    작성자
    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배려 없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는 진통일 뿐이라는 말씀이 제게는 너무나 큰 구원이자 위로가 됩니다. 그동안 스스로를 자책하며 참 많이 주눅 들어 지냈는데, 이제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해지려 합니다.
  • 프로필 이미지
    해피데이지
    청소년상담사
    답변수 1,605채택률 4%마음·정신건강, 스트레스·감정조절 전문
    글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무인기계나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것과 한 사람의 능력이나 가치에는 아무런 등호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평생 익숙했던 생활 방식이 빠른 속도로 바뀌었고, 이전에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해결할 수 있었던 일까지 어느 순간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만 가능해졌으니 당황하고 위축될 수 있습니다. 특히 몇 차례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도움을 청했다가 귀찮아하는 반응을 경험했다면, 기계 자체보다 ‘또 못하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나를 답답하게 보면 어떡하지’라는 긴장감이 더 커졌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긴장하면 평소 알고 있던 것도 순간적으로 생각나지 않고 화면의 많은 정보 가운데 필요한 것을 찾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그러다 실패하면 ‘역시 나는 못해’라고 생각하고 다음에는 기계를 피하게 되고, 사용할 기회가 줄어드니 더욱 낯설어지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모든 디지털 기술을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이 악순환부터 조금씩 끊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기계 앞에서는 ‘남들처럼 빨리 해야 한다’는 목표부터 버리셨으면 합니다. 뒤에 사람이 기다리더라도 모르면 직원에게 “제가 이 기계가 익숙하지 않은데 처음 한 번만 알려주세요”라고 당당하게 요청해도 됩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무능함의 증거가 아닙니다. 젊은 사람 역시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서는 누군가의 설명을 필요로 합니다. 다만 익숙한 기술의 종류가 서로 다른 것이지요.
    
    배우는 방법도 버튼 위치를 전부 외우기보다 자주 사용하는 몇 가지부터 반복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 주에는 식당 주문, 다음에는 기차표 예매처럼 하나씩 정하고 직접 해보세요. 자녀에게 부탁할 때도 대신 처리해달라고 하기보다 “네가 하지 말고 옆에서 천천히 알려줘. 내가 직접 해볼게”라고 요청해보시면 좋겠습니다. 한 번에 성공하는 것보다 막혔을 때 도움을 받아 다시 이어갈 수 있다는 경험을 쌓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리고 뒤에서 누군가 한숨을 쉬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쓸모없는 노인이라고 비웃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기다리느라 답답했을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이유였을 수도 있습니다. 상처를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사람들의 작은 표정이나 반응까지 자신을 평가하는 신호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내가 지금 느린 것은 사실이다’와 ‘그래서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를 반드시 분리해보셨으면 합니다. 앞의 것은 상황에 대한 설명이지만 뒤의 것은 자신에게 내리는 가혹한 판결입니다.
    
    무엇보다 글쓴이님이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것은 단순히 기계 사용 능력이 아니라 ‘나는 내 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오랜 자부심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은 키오스크 하나가 평생 지켜온 가장으로서의 자존심까지 흔드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도움을 받지 않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는 기준도 조금 바꿔볼 필요가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모르면 배우고, 어려우면 물어보고, 그래도 안 되는 것은 도움받으면서 살아가는 것 역시 충분히 독립적인 삶입니다.
    
    또 앞으로의 목표가 젊은 세대의 속도를 따라잡는 것이 될 필요도 없습니다. 기술은 계속 바뀌기 때문에 그것을 기준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면 끝없는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글쓴이님이 평생 쌓아온 경험과 책임감, 가족을 돌본 시간은 스마트폰을 얼마나 빠르게 다루느냐에 따라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젊은 세대에게 능숙한 기술이 있다고 해서 그들이 글쓴이님이 살아온 삶의 경험까지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최근 이러한 경험 때문에 외출이나 새로운 장소를 점점 피하고 행동반경까지 줄어들고 있다면 그 부분은 그대로 두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편한 곳만 가야겠다’고 피할수록 당장은 마음이 편해지지만 낯선 상황은 점점 더 무서워질 수 있습니다. 부담이 작은 상황부터 하나씩 직접 해보고, 성공 여부보다 도망가지 않고 시도했다는 경험을 남겨보세요.
    
    세상이 빠르게 변한 것은 글쓴이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세상과의 연결을 포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 필요한 당당함은 모든 것을 혼자 척척 해내는 예전의 모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게 익숙하지 않습니다. 천천히 알려주세요”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모르는 것을 배우면서도 자신의 지난 삶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는 것. 어쩌면 지금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자신감은 그런 모습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익명2
    작성자
    말씀해 주신 대로 제가 정말 괴로웠던 건 기계를 못 다루는 것 자체가 아니라, 평생 내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하며 살아왔던 '가장으로서의 자부심'이 무너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혼자 하려다 긴장해서 악순환에 빠졌다는 말씀도 참 크게 와닿습니다.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도 충분히 독립적인 삶'이라는 말씀, 그리고 젊은이들의 빠른 기술이 제 평생의 경험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격려를 마음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남들과 속도를 맞추려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알려달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