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답답하고 시린 가슴을 부여안고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어서 이렇게 글을 끄적여 봅니다.
저는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을 정성껏 키워 장가보내고 이제는 예순 중반을 넘긴 평범한 늙은 어미예요.
제가 젊었던 시절에는 다들 그렇게 팍팍하게 살았듯이 저 역시 제 몸 돌볼 틈 없이 오로지 가족들만 바라보며 정신없이 헌신하며 살아왔어요.
무뚝뚝하고 밖으로 겉돌기 좋아하던 남편과 시부모님의 매서운 시집살이 속에서도 제가 끝까지 버티고 억척스럽게 살아낼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바로 제 품에 안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아들 녀석 하나 때문이었거든요.
저 입을 옷 한 벌 화장품 하나 사는 것도 벌벌 떨면서 아끼고 또 아껴서 우리 아들 좋은 옷 입히고 남부럽지 않게 공부시키려고 제 청춘과 뼈를 다 갈아 넣었어요.
그렇게 온갖 정성을 다해 키운 아들이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고 참하고 예쁜 아가씨를 데려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저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어요.
젊은 애들 전셋집 구하는 데 보탬이 되라고 저와 남편이 평생 안 먹고 안 쓰며 모아둔 노후 자금의 절반 이상을 기꺼이 다 털어서 내주면서도 아깝다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어요.
그저 둘이서 알콩달콩 건강하게만 살아준다면 저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여겼거든요. 제가 겪었던 그 모진 시집살이를 제 며느리에게는 절대 물려주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신세대 시어머니답게 쿨하고 멋지게 뒤에서 묵묵히 응원만 해주는 좋은 어른이 되겠다고 수백 번도 넘게 속으로 다짐을 했어요.
그런데 막상 아들이 가정을 꾸리고 독립을 하고 나니 제가 상상했던 따뜻하고 넉넉한 노후와는 너무나도 다른 차갑고 시린 현실이 제 숨통을 턱턱 조여 오네요.
가장 견디기 힘들고 저를 비참하게 만드는 건 아들 내외의 집에 찾아갈 때마다 느끼는 그 숨 막히는 어색함과 투명 인간이 된 것 같은 철저한 소외감이에요.
며느리는 겉으로는 아주 예의 바르고 깍듯하게 저를 대하지만 그 속에는 제가 감히 넘어갈 수 없는 아주 차갑고 단단한 철벽이 쳐져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되더라고요. 저도 눈치가 있는 늙은이라 애들 피곤할까 봐 평소에는 자주 연락도 안 하고 어쩌다 한 번씩 얼굴이 너무 보고 싶을 때만 미리 며느리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방문을 하거든요.
지난달에는 아들 녀석이 평소에 제일 좋아하던 소갈비찜이랑 며느리 먹으라고 철에 맞는 나물 반찬들을 며칠 전부터 장을 봐다가 허리 한 번 못 펴고 바리바리 만들어서 찾아간 적이 있어요.
제 무릎 연골이 다 닳아서 서서 요리하는 게 지옥같이 아픈데도 애들이 맛있게 먹을 생각만 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무거운 반찬통을 양손 가득 들고 애들 집 현관문을 열었죠.
그런데 제가 들어서자마자 며느리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지는 걸 늙은 제 눈으로 똑똑히 보고 말았어요. 며느리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반찬통을 받아 들었지만 요즘 둘 다 퇴근이 늦어서 집에서 밥을 거의 안 해 먹는다고 냉장고에 빈자리가 없어서 어쩌냐며 아주 에둘러서 차갑게 선을 긋더라고요.
그 짧은 순간 며느리의 말투와 표정에서 제가 밤새 뼈 빠지게 만들어 온 정성스러운 음식들이 졸지에 처치 곤란한 냄새나는 쓰레기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제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지는 듯한 끔찍한 비참함을 느꼈어요.
게다가 옆에 있던 제 친아들 녀석의 태도는 제 억장을 완전히 덧없이 무너뜨려 버렸어요. 평소 같으면 엄마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먼저 안아주었을 녀석이 자기 아내의 굳은 표정을 힐끗 살피더니 저에게 오히려 짜증 섞인 목소리로 타박을 하더라고요.
엄마 무릎도 안 좋으면서 뭐 하러 이런 걸 무식하게 다 싸 들고 왔냐고 요즘은 배달시키면 다 잘 나오니까 제발 다음부터는 이런 거 절대 해오지 말라며 제 정성을 길바닥에 내동댕이치듯 핀잔을 줬어요.
아들은 제 몸을 걱정해서 한 말이라고 변명하겠지만 며느리 눈치를 보며 저를 짐짝 취급하는 그 차가운 목소리를 듣는 순간 평생 아들 하나만 보고 살아온 제 헌신과 세월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것 같은 처절한 배신감이 밀려왔어요.
그날 아들 집의 넓고 푹신한 소파에 엉거주춤 앉아 있는 한 시간 내내 저는 가시방석에 앉은 죄인처럼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보태준 돈으로 장만한 크고 예쁜 집인데도 이 공간 어디에도 저라는 늙은 어미가 편하게 숨 쉴 자리는 단 한 뼘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뼈저리게 다가오더라고요.
며느리는 내온 과일과 차를 탁자에 올려두고는 저만치 멀리 떨어져 앉아 곁눈질로 시계만 쳐다보고 아들 녀석은 어색한 분위기를 핑계로 텔레비전 채널만 이리저리 돌리며 딴청을 피웠어요.
제가 무슨 말을 꺼내도 대화는 뚝뚝 끊어지고 마치 제가 빨리 이 집에서 나가주기만을 온몸으로 기다리는 것 같은 그 차갑고 건조한 공기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요. 결국 차 한 모금 제대로 삼키지 못한 채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나섰고 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가벼운 인사만 건네고 문을 닫아버리더라고요.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꾹꾹 눌러 참았던 서러움이 결국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와 혼자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 내내 미친 사람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고 말았어요.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는데 내 배 아파 낳고 내 모든 걸 다 내어주며 키운 내 새끼가 이제는 남보다 못한 아주 먼 타인이 되어버린 것 같아 가슴을 날카로운 칼로 후벼 파는 것처럼 끔찍하게 아팠어요.
품 안의 자식이라는 옛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다지만 이제는 저보다 자기 아내의 기분과 눈치를 최우선으로 살피며 저를 귀찮고 부담스러운 불청객으로 밀어내는 아들의 변해버린 모습에 제 남은 인생의 모든 의미가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아 뼛속까지 시리고 깊은 절망감에 빠져버렸어요.
그날 이후로 저는 아들 내외에게 제가 먼저 연락을 하는 일은 아예 끊어버렸어요.
전화기를 쳐다보기도 싫고 행여나 명절이나 제 생일 때 의무적으로 걸려 오는 아들의 무미건조한 전화 목소리만 들어도 그날의 비참했던 기억이 떠올라 명치끝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지고 화가 치밀어 올라요.
어쩌다 명절에 아이들이 본가에 와도 예전처럼 반가운 마음은 싹 사라지고 며느리 눈치 보느라 엉덩이를 들썩이는 아들의 모습만 눈에 들어와서 꼴도 보기 싫어지더라고요.
며느리가 거실 구석에 앉아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저는 또 그 눈치를 살피느라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긴장하고 피곤해져서 차라리 애들이 밥만 먹고 서둘러 자기들 집으로 가버리는 게 마음이 더 편안할 지경에 이르렀어요.
명절이 지나고 텅 빈 집 거실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남들은 자식들이랑 여행도 가고 용돈도 받으며 잘만 지내는데 왜 나는 다 늙어서 내 새끼 앞에서까지 쩔쩔매고 상처받으며 살아야 하나 싶어 제 자신이 너무 불쌍하고 서러워 밤새워 눈물을 훔치는 날이 허다하네요.
이런 제 억울하고 섭섭한 마음을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어요.
동네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말해봐야 제 얼굴에 침 뱉기 같고 다들 자기 자식 자랑 며느리 자랑하기 바쁜데 저 혼자 자식한테 소외당하는 못난 어미라는 걸 티 내기 싫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억지웃음을 짓거든요.
늙은 남편에게 털어놓자니 애들 잘살고 있는데 왜 혼자 유난을 떠냐고 되레 저를 타박할 게 뻔해서 아예 입을 꽉 다물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어요. 속으로 삭히고 또 삭히다 보니 이제는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심장이 방망이질 치듯 심하게 두근거리고 원인 모를 두통과 소화불량에 시달리며 깊은 우울감과 화병까지 생겨버렸어요.
남은 제 인생이 그저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외롭게 늙어가는 일만 남은 것 같아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조차 허무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져요.
그래서 밤잠을 설치며 수없이 고민하다가 이렇게 용기 내어 여러분들께 진심 어린 조언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절실하게 여쭤보고 싶은 첫 번째는 며느리와 아들에게서 느끼는 이 지독한 서운함과 배신감을 저 혼자서 어떻게 다스리고 건강하게 마음을 비워낼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마음 챙김의 방법이에요.
머리로는 이제 아들이 내 품을 떠나 독립된 가정을 꾸렸으니 며느리도 남이고 아들도 거리를 두어야 할 타인이라고 수백 번 다짐하고 이해하려고 애를 써요.
하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지난 세월에 대한 보상 심리와 내 새끼를 빼앗겼다는 억울하고 뾰족한 원망의 감정은 제 나약한 의지로는 도저히 통제가 되지를 않네요.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는 이 끔찍한 상실감과 분노를 억누르지 않고 아주 건강하고 부드럽게 흘려보내서 제 곪아 터진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현실적인 비결이 있다면 제발 가르쳐 주세요.
아들 내외의 전화 한 통이나 표정 하나에 제 남은 소중한 하루하루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이 비참한 감정의 굴레에서 이제는 제발 단 하루라도 온전히 벗어나 편안하게 숨을 쉬며 살고 싶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 꼭 알고 싶은 것은 현실적으로 앞으로 명절이나 경조사 때 어쩔 수 없이 아들 내외를 마주쳐야 할 텐데 그때 제가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그 아이들을 대해야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고 평온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지 지혜로운 대처법을 묻고 싶어요.
저도 겉으로는 쿨한 시어머니인 척 억지로 포장하고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는 이 이중적인 생활이 너무나 지치고 버거워요.
며느리 눈치를 보며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전전긍긍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섭섭한 마음에 아들에게 툭툭 쏘아붙이며 비꼬는 옹졸한 늙은이도 되지 않는 그 현명하고 지혜로운 중간 지점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아들 집에 갈 때나 얼굴을 마주할 때 제 섭섭한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내 삶은 내 삶대로 너희는 너희대로 각자 편안하게 존중하며 지낼 수 있는 건강한 선 긋기의 기술을 진심으로 배우고 싶습니다.
이제는 남편이나 자식에게 매달려 제 존재 가치를 확인하려던 과거의 낡고 바보 같은 제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싶어요. 제 금쪽같은 남은 인생을 며느리 원망하고 아들 섭섭해하는 데 다 허비하기에는 제 지나온 세월이 너무나 가엾고 아깝잖아요.
누구의 헌신적인 엄마 착한 시어머니라는 짐을 다 내려놓고 오롯이 제 이름 석 자를 부르며 진정으로 저를 아끼고 사랑하는 당당하고 평안한 노후를 맞이할 수 있도록 따뜻하고 현실적인 혜안을 빌려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릴게요.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했던 제 깊고 어두운 상처를 이렇게 글로나마 쏟아낼 수 있어서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습니다.
두서없이 길고 무거운 제 속마음을 끝까지 정성껏 읽어주셔서 정말 마음 깊이 고맙고 감사합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저에게 밝은 등대가 되어줄 여러분들의 귀한 지혜를 매일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