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마트폰 켜기가 가끔은 참 겁나고 피곤할 때가 있어요.
특히 우리 동네 친한 친구들이나 지인들 십여 명씩 묶여 있는 단톡방 카톡 알림음이 연달아 까톡 까톡 울리면 솔직히 반가운 마음보다 한숨부터 푹 나올 때가 있거든요.
옹기종기 모여서 수다 떠는 방이 서너 개 되는데, 아침이든 저녁이든 열어보면 죄다 자기 손주들 사진 아니면 자식들이 철마다 용돈 보낸 거 캡처해서 올린 자랑 글들이 태반이에요.
옛날에는 찜질방이나 카페에 모여서 얼굴 마주 보고 차 한잔 마시면서 은근슬쩍 하던 자랑들을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사진으로 들이미니까 피할 길도 없고 안 볼 수도 없네요.
아예 카톡방 알림을 꺼놓고 살 때도 많은데, 그래도 가끔 들어가서 안 읽은 숫자 지우려고 보면 위로 쫙 올라가 있는 자랑의 향연에 기가 팍 죽을 때가 많아요.
"우리 강아지 오늘 유치원에서 학예회 했어~" 하면서 삐약거리는 손주 동영상 올라오고, 며느리가 비싼 한우 세트 보낸 사진을 떡하니 올리기도 해요.
또 한참 조용하다 싶으면 "딸내미가 가을이라고 옷 사 입으라고 백만 원을 툭 보냈네. 내가 미쳐~" 이러면서 은행 입금 내역을 버젓이 찍어서 올려요.
어제는 한 친구가 아들이 환갑 기념으로 동남아 여행 보내줬다며 풀빌라에서 수영복 입고 찍은 사진을 도배하더라고요.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자식이 잘 챙겨주고 손주 예쁜 거 자랑하고 싶은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에요.
저도 내 자식 귀하고 내 가족 좋은 일 생기면 막 동네방네 떠들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오죽 좋으면 저럴까 싶어서 이해도 돼요.
그래서 겉으로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이모티콘 막 하트 뿅뿅 날려주면서 답장을 써요.
"아이고 손주가 인물이 훤하네. 나중에 연예인 시켜야겠다", "자식 농사 아주 기가 막히게 지었다.
언니는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겠네", "부러워서 어떡해~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 하면서 온갖 축하의 말들을 다다다 쳐서 올려줘요. 남들 다 축하해주는데 저 혼자 가만히 있으면 꼭 시샘하는 것 같고 옹졸해 보일까 봐 제일 먼저 호들갑을 떨면서 댓글을 달아주기도 해요.
근데 그렇게 한참 맞장구쳐주고 나서 폰을 탁 내려놓고 멍하니 텔레비전 화면이나 거실 천장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참 묘해요.
방금 전까지 하하 호호 이모티콘 날리던 그 들뜬 기분은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찬물 훅 끼얹은 것처럼 가슴 한구석이 휑하고 씁쓸해지더라고요.
거실은 절간처럼 조용하고 남편은 안방에서 쿨쿨 낮잠이나 자고 있는데, 내 처지가 갑자기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저희 애들은 아직 자리 잡느라 팍팍하게 살아서 결혼도 미루고 있고, 어쩌다 명절에나 와도 용돈은커녕 지들 밥벌이하고 사는 것만으로도 벅차 보이거든요.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늦게까지 일한다는 애들 전화 받으면 안쓰러워서 밥은 잘 챙겨 먹는지 눈물부터 날 지경인데, 남들 자식들은 어쩜 저렇게 여유가 있어서 부모 용돈도 챙겨주고 여행도 척척 보내주나 싶어서 마음이 복잡해져요.
요즘 애들 취업하기도 힘들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솟아서 다들 살기 팍팍하다는 거 뉴스 봐서 뻔히 아는데, 내 자식이라고 뭐 뾰족한 수가 있겠어요.
애들 고생하는 거 눈에 훤히 보이니까 제가 뭐 큰 용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결혼해서 손주 안겨달라고 재촉할 마음도 진짜 눈곱만큼도 없어요. 그냥 지들끼리 안 아프고 건강하게만 제 앞가림하면서 살아주면 그게 최고의 효도지 하고 평소에는 늘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위안을 삼으며 살거든요.
그런데 그놈의 단톡방 자랑만 보고 나면 꼭 저 혼자만 60대 인생 농사 잘못 지어서 한참 뒤처진 기분이 들고, 우리 애들만 세상에서 제일 짠하고 불쌍한 것 같아서 막 속상해져요.
옛날에 같은 동네에서 전세 살면서 고만고만하게 애들 키웠던 친구들인데, 누구는 자식들이 척척 자리 잡아서 효도하고 손주들 안겨주는데 나는 평생 똑같이 애들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했는데 왜 남들 다 받는 용돈 한 번 시원하게 못 받아보나 싶고, 아직도 손주 재롱은 남의 집 구경하듯 쳐다봐야 하나 싶어서 솔직히 아주 쪼잔하고 서글픈 질투심이 훅 올라오는 걸 어쩔 수가 없네요.
머리로는 '다 각자 때가 있는 거고,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남들 자랑하는 거에 흔들리지 말자' 수백 번 다짐하죠. 어차피 단톡방에는 다들 자기 좋은 것만 올리는 거고, 그 이면에는 남모르는 속앓이도 있을 거라는 것도 알아요.
막상 눈앞에 떡하니 줄줄이 찍힌 입금된 사진이랑 뽀얀 예쁜 아기 사진을 보면 마음이 그렇게 이성적으로 딱 무 자르듯 정리가 안 되더라고요.
단톡방을 확 나가버리고 싶다가도, 그러면 진짜 삐져서 나간 속 좁은 아줌마 될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카톡 감옥에 갇힌 기분이에요.
남들 자랑 끝날 때쯤 슬쩍 다른 화제로 돌려보려고 날씨 얘기나 동네 마트 세일 얘기도 꺼내보는데 결국 다시 손주 얘기로 돌아가면 그냥 폰을 엎어버리게 돼요.
남편한테 이런 속마음 털어놓으면 "아이고 참, 별걸 다 부러워한다. 남들 사는 거 신경 끄고 우리나 잘살면 되지 왜 그런 걸로 스트레스를 받아?" 하고 면박이나 줄 게 뻔해서 말도 아예 안 꺼내요.
무뚝뚝한 남편은 이런 미묘한 여자의 속마음을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 하거든요. 자식들한테는 더더욱 이런 헛헛한 마음 티 낼 수 없고요.
행여나 애들이 엄마가 다른 집 자식들이랑 자기들 비교한다고 눈치채고 상처받거나 주눅 들까 봐 너무 조심스러워요. 엄마가 친구들한테 기죽어 있는 거 알면 애들 마음은 또 얼마나 무겁겠어요. 그래서 그냥 나 혼자 삭히고 나 혼자 우울해하다가 훌훌 털어버리려고 애를 써요.
이곳에 계신 분들도 저처럼 단톡방 자랑 보면서 겉으로는 물개 박수 쳐주고 이모티콘 날려주다가, 뒤돌아서 홀로 멍하니 남몰래 한숨 쉬어보신 분들 또 계신가요?
다들 60대 넘어가면서 그렇게 속으로 조금씩은 부러워하고 내 처지랑 비교하면서 헛헛하게 사는 건지, 아니면 제가 유독 속이 좁고 못나서 이런 쓸데없는 감정에 널을 뛰며 휘둘리는 건지 참 답답해요.
친한 친구한테도 자존심 상해서 차마 못 하는 넋두리를 여기 익명의 힘을 빌려 한 번 길게 주절주절 적어봤어요.
저만 이런 옹졸한 마음 안고 사는 게 아니라고, 다들 겉으로만 웃고 속으로는 씁쓸할 때가 있다고 비슷하게 느끼신다면 그나마 위로가 될 것 같아서요. 욕하지 마시고 그냥 나이 든 아줌마의 부질없는 투정이라 생각하고 따뜻하게 들어주셨으면 좋겠네요.
오늘 저녁에는 이 싱숭생숭한 마음 달래게 남편 꼬셔서 동네 한 바퀴 걷고 시원한 맥주나 한 캔 해야겠어요.
내일 아침에 또 단톡방에 빨간 불이 들어와도 내일은 조금 덜 흔들리기를 바라면서요.
다들 편안한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