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울증이 특별한 계기로 생기진 않았어요. 일이 잘 안 풀리거나 한번 실패하면 금방 털어내지 못해서 그 좌절과 우울이 엄청 오래 가는 스타일이고, 다른 사람이라면 지나갈 일도 저는 오래 오래 마음에 담아두는 성격이에요. 스트레스도 쉽게 받고 감정기복도 심한 편이라.. 우울감은 정말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있었어요.
거기에 주변 사람들의 죽음도 저에게는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었고, 병으로 오랫동안 투병하다 떠난 친구도 있었는데.. 연이어 그런 일들을 겪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일상으로 잘 돌아가는데... 저는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저는 흔히 생각하는 중증 우울증은 아니었습니다.
직장도 잘 다니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해 본 적도 없고, 겉으로는 오히려 밝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제가 우울감과 불안을 오래 안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거의 몰랐어요. 저 혼자서만 삭히고 있었어요. 남들에게 더 티내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속은 더 곪았었던 것 가타요. 제 경험으로는 혹시 내가 우울증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면 이미 초기 단계는 지났다고 봐요. 그래서 내가 언제부터 우울증이었을까.. 내가 우울증이 맞나 아닌가 의심해본 적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가족의 권유로 병원에 가게 되었고 처음 먹은 약은 어떤 약인지 정확한 약명이 잘 기억이 나진 않아요. 왜냐하면 그 이후로 약을 바꿔가면서 정말 많이 먹었거든요. 평소에 좀 예민한 스타일이라 그런가 약을 먹을 때마다 크고 작은 부작용이 바로 느껴졌어요. 우울증 약 때문에 겪는 부작용이란 부작용은 다 겪어본 것 같습니다.
제가 그동안 겪었던 부작용은요.
가장 힘들었던 건 소화불량과 구토였어요. 속이 계속 불편하고 메스꺼워서 식사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적이 많았고, 심장이 이유 없이 두근거리는 증상도 있었고, 불안증세가 같이 있다 보니까 한 번 시작된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정말 괴로웠어요.
졸림도 심했어요. 너무 졸려서 자꾸 꾸벅꾸벅 졸 정도였어요. 잠에 취한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거든요. 그리고 다른 부작용은, 약을 먹으면 기분이 나아지고 우울이 나아져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더 사람이 어두워지는 것 같은 증상이 있었어요. 더 기분이 다운되는 그런 증상들이요.
그래서 병원도 바꿔 보고, 약도 여러 번 바꿔 봤어요.
그렇게 많은 약을 바꿔보다가 현재 정착한 약은 데스벤라팍신25 브린텔릭스5입니다. 역시 이 약도 처음에는 소화불량이 있었는데 참고 먹다보니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약을 복용한 지도 어느덧 거의 5년이 되었네요.
복용 후에 제가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무기력이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해야 할 일이 있어도 최대한 미루고 무기력의 끝을 보곤 했어요. 시작 자체를 어려워했었거든요. 지금은 그래도 이걸 해야겠다 마음 먹으면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끝냅니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있거나 정말 말 그대로 저는 침대에 하루종일 누워 있었는데 지금은 활동도 해요
그리고 약 외에 제 기준 좋았던 것 공유합니다
1. 밥 잘 먹기
끼니 거르면 폭식하고, 폭식하면 자괴감이랑 우울증 심해져요. 그래서 저는 삼시세끼 다 먹어요. 대신에 배달음식, 과자, 정크푸드는 안 먹어요.
2. 일용직 경험
본업이 있지만 주말이나 쉬는날에 잠깐 쿠팡을 뛰어봤는데요. 일-잠-일-잠 이렇게 단순하게 사니까 신체는 망가져도 정신건강에는 좋더라고요. 정말 일에만 집중하게 해줘서 좋았어요. 그리고 평온한 삶에 감사하게 됩니다.. 잡생각이랑 반추 심하신 분들에게 살며시 추천해봅니다.
3. 카페인 줄이기
수면의 질이 달라져요. 불안증에 확실한 효과가 있어요.
4. 유튜브, 영상 안 보기
쿠팡 뛸 때 피곤해서 영상도 안 보게 되더라고요. 쓸데없는 정보 안 접하니까 해야할 일에만 집중하고 현실, 현재를 살게 되어서 좋았어요
*번외 - 큰 효과 있는지 모르겠는데 하기는 하는 것들
1. 영양제
정신건강을 위해 이것저것 다 해보고 있다는 데 의미를 두고 먹어요. 영양제 먹으려면 밥을 꼭 먹어야 하니까 밥을 잘 챙겨 먹게 돼요. 비타민B콤플렉스, 벤포티아민, 비타민C,D, 마그네슘(글리시네이트) 먹고 있어요
2. 수영 및 운동
운동할 때 잡생각 없어진다는데... 저는 꼭 그렇진 않아요.. 운동하면서도 생각을 하는 타입이긴 한데 그래도 아무것도 안할 때보단 나아요. 그리고 뇌건강에는 운동이 확실히 좋다니까 하는 중입니다.
우울증은 혼자 이겨낼 수 있는 병이 아니에요. 적절한 약물 치료와 상담이 필요하고 스스로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뭔가 하려고도 하지말고 이기려고도 하지말고 판단하지도 말고, 지금 내가 정상적인 사고판단이 안된다는걸 인정하고 그냥 무작정 기다리셔야해요. 그러다보면 뿅 하고 괜찮아지는 날이 오는데, 그럴때 미뤄뒀던 일들 할 수 있는 만큼 해놓으시고 감사하며 잠드시면 돼요. 만약 다음날에 또 우울해지면 다시 버티면 됩니다.
계속 버티다보면 괜찮아지는 날, 괜찮아지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요. 힘들때보다 괜찮을때가 많아지면 극복한 거예요.
여기서 꼭 조심해야하는 건 아무리 우울해도 먹고, 씻고, 자고, 그리고 본인이 해야 하는 일은 가능한 한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잠깐 괜찮아졌을 때 거울속의 내가 더럽고 초췌하면 자괴감에 더 우울해지니까요.
완벽하게 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저 오늘도 한 끼 먹고, 씻고, 잠을 자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조금이라도 해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버티고 있는 하루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