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검사 후기, 원인 모를 통증과 불면증, 30점 심한 우울.

저는 평생 가족 앞에서는 약한 소리 한번 내뱉지 않고 살아온 60대 중반의 평범한 가장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또 아버지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고단한 훈장 같은 것이지요.

 

힘들어도 힘들다는 내색조차 사치라 여기며 묵묵히 제 자리에서 책임을 다해왔습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나이가 60 줄을 훌쩍 넘어가니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더군요.

 

어느 순간부터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가 않고 어깨부터 등허리까지 짓누르는 듯한 뻐근함이 훈장처럼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한 탓이려니, 혹은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온 육체가 이제야 비명을 지르는 것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증상은 걷잡을 수 없이 심해졌습니다. 밤이 되면 찾아오는 불면증은 그야말로 지옥 같았습니다. 거실 시계가 새벽 2시, 3시를 가리키도록 눈은 말똥말똥하고 가슴 한가운데에는 큼지막한 돌덩이를 얹어놓은 것처럼 답답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허다해졌습니다.

 

소화도 안 되고 늘 속이 더부룩하니 밥맛도 떨어졌죠. 견디다 못해 동네 내과와 한의원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습니다. 피검사도 해보고, 침도 맞고, 좋다는 영양제도 챙겨 먹어봤지만 의사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특별한 이상은 없다, 스트레스성인 것 같으니 마음을 편히 먹어라"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되풀이할 뿐이었습니다. 내 몸은 이렇게 찢어지게 아프고 고통스러운데 병명조차 제대로 알 수 없으니,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안에 쌓인 고통과 억울함은 엉뚱하게도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분노'라는 형태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에 대한 서러움을, 평생 나만 희생했다는 보상 심리를 아내에게 짜증으로 쏟아부었습니다.

 

국이 짜다며 숟가락을 탁 내려놓기 일쑤였고 늦게 귀가하는 자식들에게는 괜한 트집을 잡아 언성을 높였습니다. 제 속마음은 그게 아닌데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언제나 가시 돋친 칼날이 되어 가족들에게 상처를 입혔습니다. 

 

화를 내고 돌아서면 내가 또 왜 그랬을까 자책하며 괴로워했지만 굳어버린 제 성격은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건네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집안에서 점점 외딴섬처럼 고립되어 갔고 가족들의 눈빛에는 저를 향한 걱정보다 피로감과 두려움이 짙어지는 것을 보며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습니다.

 

그 무렵, 제가 쓰던 낡은 휴대폰이 액정도 깨지고 자꾸 전원이 꺼지자, 얼마 전 아들 녀석이 쓸만한 새 스마트폰으로 하나 싹 바꿔주고 갔습니다. 화면도 큼직하고 빠릿빠릿한 최신형 폰을 사 들고 와서는, 예전 폰에 있던 연락처며 사진들까지 통째로 다 옮겨주더군요.

 

그날 밤, 아들이 만져주고 간 새 폰이 신기해서 잠도 안 오는 김에 이것저것 기능들을 눌러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화면에 뜬 '마음 건강 이벤트'라는 글귀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남사스럽다며 지나쳤겠지만, 그날따라 '자가점검'이라는 단어가 제 발목을 강하게 붙잡았습니다. 

 

혹시 이 지독한 불면증과 가슴 통증이 진짜 마음의 병에서 온 건 아닐까? 볏짚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화면을 터치해 검사를 시작했습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지, 피로감을 쉽게 느끼는지,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나고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지, 내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지는지... 하나같이 제가 매일 밤 뜬눈으로 지새우며 괴로워했던 그 증상들이었습니다. 

 

우울증이라고 하면 그저 방구석에 앉아 우울해하는 병인 줄로만 알았는데 제가 겪고 있던 이 모든 신체적 고통과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모두 마음이 보내는 구조 신호였다는 사실을 검사를 진행하며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문항에 체크를 마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짧은 몇초가 저에게는 몇시간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화면에 떠오른 제 점수를 보고 저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우울증 검사 후기, 원인 모를 통증과 불면증, 30점 심한 우울.

 

제 점수는 무려 30점이었습니다. 붉은색 글씨로 선명하게 찍힌 '심한 우울 상태'라는 글자 아래로, 일상 유지가 어려울 만큼 우울감이 깊어져 적극적인 돌봄이 필요하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일상 유지가 어려우니 적극적인 돌봄이 필요하다는 문구를 읽고 나니 처음엔 덜컥 자존심부터 상했습니다. 평생 험한 세상 거뜬히 버티며 가족들 건사했는데 고작 이깟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해 이 모양이 됐나 싶어 허탈했지요. 

 

하지만 매일 밤 온몸이 쑤시고 잠 못 이루던 그 지독한 고통들이 그리고 아내에게 앞뒤 없이 쏟아내던 그 못난 짜증들이 실은 내 마음이 곪아 터져서 지르던 비명이었다고 생각하니 뒤통수가 얼얼했습니다.

 

다음 날 저녁, 밥상머리에서 헛기침을 몇 번 하다가 아내 쪽으로 스마트폰을 쓱 밀어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요새 별것도 아닌 일에 당신한테 화내고 윽박지른 거... 다 이거 때문인가봐. 나도 내 맘대로 안 되네." 평생 살가운 미안하다는 소리 한 번 안 해본 놈이 불쑥 내민 결과지에 아내는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적잖이 놀란 눈치였습니다. 

 

한참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쯧쯧 혀를 차며 "알면 됐네. 내일 당장 동네 의원이라도 가봅시다" 하더군요. 원망 대신 돌아온 그 무뚝뚝한 대답 한마디에 꽉 막혀있던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당장 정신과에 가서 약을 타 먹거나 한 건 아닙니다. 대신 제 일상에 작은 규칙을 세웠습니다. 예전 같으면 욱해서 소리부터 질렀을 상황에 무조건 입을 꾹 닫고 베란다로 나가 심호흡을 열 번 하는 겁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는 핑계 대고 안 가던 뒷산 약수터에 매일 아침 오르고 있습니다. 땀을 쫙 빼고 찬물 한 바가지 마시고 내려오면 밤에 뒤척이는 것도 덜하고 밥맛도 조금 돕니다. 

 

주말이면 웬일로 일찍 깼냐며 핀잔을 주는 아내를 따라 마트 장보기도 짐꾼 자처해서 따라나서고 있습니다. 거창한 치료는 아니지만 내가 아프다는 걸 인정하고 굽히니 집안에 맴돌던 날 선 공기가 많이 누그러졌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60대 남자분들. 몸 쑤시고 잠 안 온다고 애먼 내과나 한의원 전전하며 진통제만 타 먹지 마십시오. 나이 먹고 무슨 우울증이냐고 내가 정신력이 약해서 그렇다고 고집부리다가 가족들 다 떠나고 후회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몇 분이면 하는 검사, 자존심 한 번 굽히고 해보십시오. 결과가 엉망으로 나오면 아내든 자식이든 보여주고 "나 요새 힘들다, 좀 도와달라" 하십시오. 

 

평생 가족 위해 뼈 빠지게 살았는데 그깟 소리 한 번 못 하겠습니까. 약한 모습을 인정하는 게 사내대장부의 진짜 용기입니다. 혼자 끙끙 앓지 마시고, 당장 이 검사부터 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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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8
  • 익명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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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읽으며 참 남 일 같지 않아 한참을 머물다 갑니다. 평생 내 아픔이나 힘든 것은 사치라 여기고 묵묵히 버텨온 삶이 참 닮아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이가 들면서 마음의 병이 우울감 대신 원인 모를 신체 통증이나 불면증으로 먼저 찾아온다는데, 그동안 내과나 한의원을 전전하며 병명도 없이 얼마나 답답하고 외로우셨을까요....
    
    낡은 휴대폰을 최신형으로 바꿔주며 살뜰하게 챙겨준 아드님의 깊은 마음과, 남편의 툭 던진 한마디에 내일 당장 병원에 가보자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아내분의 반응을 보면서 참 따뜻하고 훌륭한 가정을 일구셨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가족분들도 그동안 달라진 아버님의 모습에 서운하기보다는 어디가 편치 않으신 건 아닐까 내심 걱정이 가득하셨을 겁니다.
    
    평생 가족을 지켜온 가장으로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나 요새 힘들다, 좀 도와달라'고 솔직하게 손을 내미신 것은 약함이 아니라 정말 큰 용기입니다. 그 무거운 첫마디를 떼어주신 덕분에 가족들도 비로소 마음의 짐을 덜고 함께 도울 방법을 찾았을 거예요.
    
    매일 아침 뒷산 약수터에 오르고 아내분과 장을 보며 일상의 작은 규칙들을 채워나가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고 응원하고 싶어집니다. 꾹 참고 혼자 삼키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담담하게 일깨워주신 귀한 글, 비슷한 마음으로 힘들어하는 많은 분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기운 내시고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 익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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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으로서 평생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고 오셨는데, 몸과 마음의 비명을 외면하지 않고 용기 내어 직면하신 모습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나이가 들면서 몸이 아프면 당연히 기력이 떨어져서 그런가 보다 하기 쉬운데 그게 마음이 보내는 구조 신호였다는 걸 알아차리기가 정말 쉽지 않거든요. 원인 모를 통증과 불면증으로 밤마다 얼마나 외롭고 답답하셨을지 감히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스마트폰 검사를 계기로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마주하신 건 정말 다행이에요.
    
    무엇보다 아내분께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검사 결과를 쓱 내밀며 마음을 표현하셨다는 글을 읽고 가슴이 뭉클해졌어요. 평생 살가운 말 한마디 안 해본 가장이 그렇게 다가왔을 때 아내분도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여도 속으로는 남편분의 힘듦을 알아채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거잖아요. 알면 됐다고, 병원 가보자고 해주신 아내분의 그 한마디가 백 마디 위로보다 더 큰 힘이 되었을 것 같아요.
    
    지금 당장 거창한 치료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도, 욱할 때 베란다로 나가 심호흡을 하거나 뒷산 약수터에 오르고 아내분 장보기를 도와주시는 일상의 작은 변화들이 정말 멋져요. 나 자신을 돌보고 가족들과 다시 연결되려는 노력이 이미 치유의 길로 접어드신 증거 아닐까 싶어요.
    
    약한 모습을 인정하는 게 사내대장부의 진짜 용기라는 말씀은, 지금도 혼자 속으로 삼키며 힘들어하고 있을 수많은 다른 아버지들에게도 정말 큰 울림과 위로가 될 것 같아요.
    
    앞으로도 매일 가시는 뒷산 약수터 길처럼, 아버님의 마음 건강도 조금씩 더 가벼워지고 맑아지기를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힘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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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니엄마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버티고 책임져 온 분일수록 정작 자신의 마음이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 더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왜 이러지’ 하며 자책하기보다, 평소와 달라진 내 모습을 하나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특히 아내분께 검사 결과를 보여드리고 “나도 내 맘대로 안 되네”라고 털어놓으신 장면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거창한 말보다 그런 솔직한 한마디가 오히려 가족에게는 큰 용기와 신뢰로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혼자 참고 견디는 것이 늘 강한 모습은 아니니까요.
    베란다에 나가 심호흡을 하고, 아침마다 산을 오르고, 아내와 장을 보며 일상을 조금씩 회복해 가는 모습도 참 좋습니다. 물론 이런 생활 습관만으로 모든 어려움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필요할 때 가족이나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겠지요.
    무엇보다 나이와 상관없이 마음이 지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평생 가족을 지켜온 사람도 때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경험을 솔직하게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
    익명3
    작성자
    말씀해주신 것처럼 일상의 작은 노력들만으로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저 자신을 인정하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라 믿고 꾸준히 해보려 합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지칠 수 있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진짜 용기라는 말씀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따뜻한 응원과 지혜로운 말씀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보내주신 격려 잊지 않고 마음 건강 잘 돌보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십시오.
  • 익명2
    글 제목부터 마음이 무겁네요. 원인 모를 통증에 불면증까지 겹치면 정말 하루하루 버티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검사에서 30점이 나왔다면 혼자 참고 넘기기보다는 꼭 전문가와 상담하면서 현재 상태를 제대로 살펴보셨으면 좋겠어요.
    
    몸이 아픈 것까지 마음의 문제라고 단정할 필요도 없고요.
    통증과 수면 문제를 함께 의료진에게 이야기하면서 하나씩 도움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익명3
    작성자
    이 나이 먹도록 내 몸 하나 돌볼 줄 몰라 미련하게 끙끙 앓기만 했습니다. 통증이랑 불면증 다 의료진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도움받으라는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좋은 글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