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을 20년 가량 해오면서 나름대로 산전수전을 다 겪었고 업무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맷집도 제법 단단하다고 자부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제 성향과 전혀 맞지 않는 상사를 만나 직장 내에서 지속적인 가스라이팅과 인격 모독에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수십 년간 쌓아 올린 마음의 방어선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본인이 지시한 사항조차 기억하지 못하면서 "네 마음대로 해서 일을 망쳤다"며 동료들 앞 면전에서 사사건건 몰아세우는 상황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퇴근 후 집안에 들어와서도 상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에 환청처럼 맴돌았고, 일요일 오후만 되면 다음 날 마주해야 할 비난과 압박감 때문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가장 먼저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것은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수면이었습니다. 밤마다 "내일은 또 어떤 꼬투리를 잡고 지랄을 할까" 하는 불안과 염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침대 위에서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었습니다. 새벽 내내 뒤척이다가 한두 시간 겨우 눈을 붙이고 출근하는 날이 일주일 넘게 지속되었습니다.
극심한 수면 부족 상태가 이어지니 낮 동안 정상적인 사고능력과 판단력이 흐려졌고, 사소한 결정조차 내리지 못해 업무 효율이 극도로 떨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다시 상사의 눈치를 보며 질책을 당하는 최악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 정신과 일상이 피폐해져 정상적인 사회생활 자체가 불가능하겠다는 깊은 위기감이 들었고, 결국 큰 용기를 내어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방문 하게 되었습니다.
병원 진료 과정 및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물 (졸피뎀 계열)
의사 선생님과 그간 직장에서 겪은 부당한 상황들을 털어놓으며 꼼꼼한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진단명은 급성 스트레스로 인해 뇌의 각성 상태가 가라앉지 않는 단기 불면증이었습니다.
신체 긴장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 현재 상태로는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잠들기 어려우니, 강박적으로 자려고 애쓰기보다는 약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뇌와 신체에 강제적인 휴식을 주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처방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졸피뎀 성분의 수면유도제를 처방받아 일정 기간 복용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정신과 진료비와 약값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있었는데, 건강보험이 정상적으로 적용되어 실제 발생하는 비용은 생각보다 훨씬 저렴했습니다. 동네 의원 기준으로 첫날 기본 검사와 상세한 상담을 포함한 초진 진료비가 2만 원대 중반 정도 나왔고, 약국에서 졸피뎀을 포함한 2주 치 약을 받았을 때 약값은 5천원대였습니다.
이후 증상 체크를 위해 방문했던 재진 진료비는 1만 원대 중후반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진료와 약 처방을 모두 합쳐도 한 번 방문할 때 2~3만 원 안팎의 비용이면 충분했기에, 경제적인 부담 없이 온전히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수면제 복용 중에 내가 직접 느낀 효과, 효능
잡념 차단과 신속한 입면이 가능해졌습니다.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 약 기운이 서서히 돌기 시작하면, 밤마다 제 뇌를 지배하며 괴롭히던 상사의 거친 목소리나 내일 업무에 대한 중압감들이 신기할 정도로 뚝 끊어지며 멀어졌습니다.
늘 팽팽하게 곤두서 있던 신경이 가라앉으면서 자연스럽게 수면 단계로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연속적인 숙면 확보가 가능해집니다. 약을 복용하는 동안 중간에 깨서 뒤척이는 일 없이 7~8시간 동안 깊고 연속적인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밤 시간에 충분한 신체적 휴식이 확보되니 다음 날 출근길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낮 동안 상사의 부당한 지적을 마주할 때도 예전처럼 무기력하게 무너지지 않고 감정적으로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마음의 맷집과 에너지가 조금씩 채워지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수면제를 복용하며 내가 직접 겪은 신체적 부작용
효과가 확실한 만큼 일부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도 존재했습니다. 바로 오전 시간의 멍함과잔여 약 기운입니다. 복용 초기에는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날 때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너무 무겁게 느껴져 침대 밖으로 나오기가 힘들었습니다.
머릿속이 개운하지 않고 멍한 상태가 오전 근무 시간 내내 지속되는 바람에, 출근 후 본격적으로 업무에 집중하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리기도 했습니다.구갈 증상도 있습니다. 복용 후 일상생활 중에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는 증상이 자주 나타났습니다. 이 때문에 근무하는 동안 책상에 물을 여유 있게 떠다 놓고 평소보다 훨씬 자주 마셔야 했습니다.
복용 직후의 약간의 건망증도 있었습니다. 약을 먹은 직후 완전히 잠들기 전까지의 행동이나 기억이 다음 날 아침에 가물가물한 경우가 간혹 있었습니다. 약을 먹고 침대에서 보낸 짤막한 카톡을 기억하지 못하는 식의 증상을 겪은 후로는, 반드시 모든 잠자리 준비를 완벽히 마친 뒤 불을 끄기 직전에만 약을 복용하는 규칙을 세웠습니다.
약을 서서히 줄여가며 함께 실천했던 일상 회복 루틴
약물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는 없었기에, 전문의의 지도 아래 증상이 호전됨에 따라 약의 용량을 서서히 줄여가는 동시에 스스로 잠들 수 있는 신체 환경을 만들기 위해 철저한 루틴을 병행했습니다.
오후 카페인 일절 차단을 실시했습니다. 오후 2시 이후에는 녹차나 믹스 커피를 포함한 모든 카페인 음료를 일절 마시지 않았습니다. 입이 심심하거나 수분이 필요할 때는 따뜻한 보리차로 대체했습니다.
침실 공간의 엄격한 통제를 했습니다. 침실은 오직 잠을 자는 공간으로만 제한했습니다.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며 각성 상태를 유지하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스마트폰은 침대와 멀리 떨어진 곳에 두고 눕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주말과 점심시간에 자주 산책을 했습니다.하루에 최소 20분 이상은 야외에서 햇볕을 쬐며 걸었습니다. 멜라토닌 분비를 활성화하여 야간 수면 유도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심리적 방어선 구축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병원 진료를 통해 제가 겪는 불면증이 제 나약함이나 무능함 때문이 아니라 외부의 부당한 자극에 의한 당연한 반응임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상사의 히스테리가 심한 날에는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다'라고 마음속으로 명확히 선을 그으며 감정을 분리하는 연습을 지속했습니다.
불면증으로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전하는 작은 조언
제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에 근사한 대안을 제시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먼저 불면증을 겪어본 선배로서 작은 어드바이스를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치료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오랜 기간 사회생활을 해온 내가 고작 인간관계 스트레스 때문에 약에 의존해야 할 만큼 약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약을 먹지 않으면 다시 예전의 그 끔찍한 불면의 밤으로 돌아갈 것 같다는 두려움과 싸워야 했고, 근본적인 원인인 상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약 뒤로 숨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자책감이 들 때가 가장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치료를 유지하며 확실히 깨달은 점은, 내 수면과 신체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맞출 가치가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몸에 상처가 나면 연고를 바르고 병원에 가는 것이 당연하듯, 외부의 공격으로 인해 마음과 뇌가 지쳐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면 전문가를 찾아 적절한 처방을 받는 것이 나를 지키는 가장 적극적이고 올바른 대처 방식입니다.
제대로 자지 못하면 이성이 흐려지고 판단력이 떨어져 상대의 공격에 더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면제는 평생 의존하는 무서운 약이 아니라, 갑자기 거친 비바람이 몰아칠 때 잠시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우산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니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거나 자책하지 마시고, 본인의 건강과 일상의 회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여 꼭 필요한 의학적 도움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적절한 치료와 마음의 체력을 회복하는 연습을 병행한다면, 지독했던 불면증도 확실히 나아지고 자연히 잠들 수 있는 편안한 밤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