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논란으로 지금은 이름을 거론하기 불편한 사람이 되었지만
십여년 전 굉장히 인기가 많았던 여성 오지 여행 전문가이자 국제 구호 전문가가 있습니다.
그 분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자신은 일도 많지만 굉장히 의욕적인 사람이라
'이틀에 한 번만 잔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훗날 그녀가 논란의 중심이 되었을 때 이 발언 또한 상당한 논란이 되었지요.
사람들은 사람이 어떻게 이틀에 한 번만 자고 살 수 있냐고 비난했지만
솔직히 저는 그럴 수도 있지 않나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바로 제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다만 그녀와 저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녀는 의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 잠을 줄인 것이고
저는 자고 싶어도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점일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잠으로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무조건 잠을 자지 못했어요.
초등학교 1학년이던 시절, 일요일 밤만 되면 다음 날 학교에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잠을 설칠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저의 이상한 수면 패턴은 조금 더 나이가 들었을 때도 여전했습니다.
마음이 조금만 불편해도 그 날은 잠은 다 잔 날이었죠.
아예 한숨도 못 자는 날도 있었고, 길어야 두세 시간 정도 잘 수 있었어요.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날 잘 자는 것도 아니었지만요.
성인이 된 후 제 수면이 완전히 무너지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아예 한숨도 자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죠.
몸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눈은 빠질 것 같은데도 정작 잠은 오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정신이 맑은 것도 아니었죠.
머리는 늘 멍하고 기운이 없는데도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었어요.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데도 토할 것 같고 헛구역질까지 나오는 상태로 몇 날 며칠을 지냈습니다.
잠이 안 오면 몸을 움직이라는 말은 불면증 환자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 시절에 저는 복싱을 하고 있었거든요.
매일 격렬한 운동을 하는데도 잠을 자려고 누우면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어요.
건강해지려고 운동을 하는건데 목적과는 정 반대로 귀신 같이 퀭한 몰골을 하고 다닌 덕분에
관장님이 복싱장 출입금지 명령을 내리실 정도였지요.
그 시절 저는 잠이 온다는 모든 방법을 다 해본 것 같습니다.
3초 만에 잠이 든다는 호흡법, 명상, 운동, 햇빛 쬐기..
상추도 한 트럭은 먹었고요.
자기 전에 따듯한 우유도 엄청 마셨습니다.
아기 때도 이 정도로 우유를 마시지는 않았을거예요.
하지만 정말 단 한 가지도 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미국에 살던 친구가 멜라토닌을 보내줘서 처음으로 복용해보았어요.
그 시절은 지금처럼 우리나라에 멜라토닌이 흔하지 않던 때였는데 외국에서는 흔하게 먹는 영양제라면서
알약, 스프레이형 등등을 브랜드별로 잔뜩 보내줬죠.
그 때 친구가 손편지도 같이 보내줬는데, 사진을 찍어두고 지금도 마음이 힘들 때면 종종 그 편지를 읽어보곤 한답니다.
어쨋든 친구의 정성이 무색하게 멜라토닌 또한 저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어요.
그 다음은 수면유도제라고 불리는 항히스타민제도 복용해봤지요.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면 가끔 약사님이 "졸음이 올 수도 있으니 운전하실 때 조심하라"는 말씀을 하실 때가 있잖아요.
감기약에 들어있는 항히스타민제 성분의 부작용이 졸림인데 이런 부작용을 이용한 것이 약국 수면유도제입니다.
하지만 저는 '졸릴 수 있다'라는 안내를 수없이 들어봤지만 단 한번도 약을 먹고 졸린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 역시도 실패였어요.
지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그 때의 저는 정말 딱 죽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죽으면 이 고통이 사라질까 싶어서요.
그렇게 깨어 있어도 깬 것 같지 않은 상태로 두 달 가까이를 지내다 보니 사람이 점점 무너지더군요.
연예인 장나라씨가 가장 바쁘던 시기에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차 밖으로 모든 물건을 집어 던지고 있었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는데
저는 그 말을 너무나 이해합니다.
수면 박탈은 사람을 정말 미치게 만들거든요.
그 지경이 될 때쯤 저는 처음으로 정신과를 찾았습니다.
사실 불면증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공부를 하거나 유명하다는 병원을 찾아본 것도 아니었어요.
그럴 에너지도 정신도 없었죠.
정신과를 가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아니고
그냥 길을 걷다가 우연히 보인 정신과에 홀린 듯이 들어간거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택이 저를 살린거나 다름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제 무의식이 마지막 힘들 내어 저를 그곳으로 이끌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태어나서 처음 정신과를 찾아가 본건데 내부는 생각보다 평범했어요.
다른 과목의 병원과 마찬가지로 상담 선생님과 간단한 초진 상담부터 했지요.
언제부터 잠을 못 잤는지,
하루에 몇 시간 정도를 자는지,
잠드는 것이 어려운지, 아니면 자꾸 깨는지
최근에 스트레스 받은 일은 없었는지 등등이요.
이후에 진료실에서 주치의 선생님이 저의 초진 상담 내용을 보시고 더 자세한 상담을 진행했고요.
얼마 전에 예전 처방전을 모두 다시 꺼내보았는데 제가 기억하는 것보다 약을 훨씬 더 여러 번 바꿔가며 치료를 했더라고요,
처음 처방 받은 약은 스틸녹스 10mg 였고 처음 복용하는 약이니 5일치만 처방을 해주셨어요.
처음 스틸녹스를 복용했던 날의 기억은 아직도 꽤나 또렷해요.
약을 먹자마자 거의 바로 빨려 들어가듯이 잠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어요.
잠을 자지 못한 날 보다 더 약을 복용한 날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고
점심 시간이 다 될 때까지 머리가 멍하고 토할 것처럼 머리가 아팠어요.
자꾸 발음도 꼬이고 생각과 다른 말도 튀어나오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새벽에 깨는 일은 여전했어요. 약을 복용하기 전보다 빈도는 훨씬 줄어들었지만요.
그 다음에 처방 받은 약은 스틸녹스 서방정 12.5mg과 데파스 1mg이었어요.
처방을 변경한 이유는 잊어버려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는데
아마 그때 선생님은 제가 새벽에 자꾸 깨는 이유를 불안과 긴장 떄문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하지만 두통과 새벽에 깨는 일도 계속되어서
그 다음은 스틸녹스를 6.25mg으로 줄이고 트라조돈을 추가했죠.
이후에는 스틸녹스는 중단하고 데파스와 트라조돈만 복용해보기도 하고
다시 스틸녹스와 트라조돈 조합으로 바꾸기도 했다가
데파스를 알프람으로 변경하기도 했었어요.
정말 여러 번의 시행착오을 겪은 뒤 저에게 가장 잘 맞았던 조합은 트라조돈 25mg과 데파스 1mg이었습니다.
한동안 이 약으로 유지하다가 수면 패턴이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용량을 줄이고
필요 시에만 복용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며 총 8년 동안 약을 복용했고
현재 저는 완전히 약을 끊은 상태입니다.
저는 잠드는 것과 잠을 유지하는 것 모두 어려운 불면증을 앓았고
흔히 사용하는 졸피뎀 계열의 역 부작용도 심한 편이라 약을 선택하는 것에 꽤 어려움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선생님은 졸피뎀 계열의 약과 비졸피뎀 계열을 약을 여러 차례 조정하며
저에게 가장 안정적이며 잘 맞는 조합을 찾아주셨던 것 같습니다.
약은 주치의와 상의 하에 1년 정도는 꾸준히 복용하며 수면 패턴을 안정시켰어요.
이후로는 약의 용량을 조금씩 바꿔보거나 필요시에만 복용하는 방식으로 하여
저의 컨디션에 따라 조절하는 방식으로 바꾸었고요.
약에만 평생 의존하며 잠을 잘 수는 없으니
제 몸이 정상적인 수면 패턴을 스스로 잡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보조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요.
약을 복용하지 않은 뒤로도 몇 년 정도는 불안감에 약을 계속 처방 받아서 가지고는 있었고
지금은 완전히 약을 끊은 상태입니다.
물론 타고나기를 잠에 예민한 제가 불면증을 싹 고친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잠에 드는 시간도 확실히 줄었고
여전히 새벽에 깨는 날도 있지만 깨지 않고 잠을 자는 날도 많아졌어요.
일단 수면의 질이 달라지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저의 마음가짐이에요.
어릴 때부터 잠을 못 자다 보니 저는 어느 순간부터 잠을 '해야만 하는 숙제'처럼 느끼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확실히 마음이 편해졌어요.
오늘 못 자면 내일 자면 되지,
내일도 못 자면 약을 먹으면 되지. 이런 식으로요.
예전에는 잠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든 잠을 자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은데
지금은 나가서 산책을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해요.
뭐.. 잠을 자지 않으니까 하고 싶었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어서 좋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중입니다.
그래도 제 나름의 수면 루틴은 잘 지키는 중이에요.
저는 확실히 심리적인 상태에 큰 영향을 받더라고요.
조금만 마음이 불안해도 여전히 잠을 잘 자지 못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날은
예전에 행복했던 일을 떠올려 보거나 다른 생각을 하며 제 스스로를 달래고 있어요.
그리고 잠들기 전에 핸드폰은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하고요.
특히 숏츠나 릴스는 보다 보면 뇌가 각성 되는 것이 느껴지더라고요.
차라리 영상을 볼 거라면 영화나 드라마 위주로 보고 있어요.
혹시 저처럼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해 괴로운 분이 계시다면
혼자 버티려고만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불면증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저는 비록 실패했지만 효과를 보신 분들도 많으니
처방약이 부담스러우신 분들은 멜라토닌이나 마그네슘 같은 영양제부터 시작해보시는 것도 추천드려요.
그리고 제가 다녀보니 정신과에 불면증으로 내원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니 내원하시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의 밤이 늘 편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