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에도 면책조항이 있나요?

성격을 설명하는 네 글자가 어느 순간 행동을 정당화하는 네 글자가 되었다.

MBTI에도 면책조항이 있나요?

 

언젠가부터 사람들 사이에 아주 편리한 표현이 하나 생겼습니다.

"나 원래 그런 사람이야."

예전에는 이 말을 하면 고집이 세다는 소리를 듣기 쉬웠는데, 요즘은 뒤에 알파벳 네 글자만 붙이면 그럴듯한 설명이 완성됩니다.

"나 T라서 돌려 말하는 거 못 해."

"난 P라서 계획 세우는 게 안 맞아."

"내가 I라서 연락을 잘 안 해."

듣고 보면 모두 성격에 대한 설명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언제부터 성격을 설명하는 말이 행동에 대한 책임까지 대신해 주기 시작했을까요?

01. 솔직한 것과 무례한 것은 다릅니다

친구가 새로 산 옷을 입고 나왔습니다.

"어때? 괜찮아?"

한 사람이 대답합니다.

"솔직히 너한테 별로 안 어울려. 난 T라서 빈말 못 하거든."

물론 솔직한 의견을 원해서 물어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생각이라도 "전에 입었던 스타일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는 것과 상대방을 불필요하게 상처 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논리적으로 판단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해서 표현까지 거칠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건 T냐 F냐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어떤 말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지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02. 즉흥적인 것과 무책임한 것도 다릅니다

이번에는 약속 시간에 20분 늦은 사람입니다.

미리 연락도 하지 않았고, 도착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 미안. 내가 원래 P라서 시간에 좀 자유로워."

여기서 재미있는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자기 시간에 자유로운 것과 남의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은 같은 일일까요?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할 수는 있습니다.

여행 일정을 촘촘하게 짜지 않을 수도 있고, 그날 기분에 따라 계획을 바꾸는 게 더 즐거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정한 약속은 다른 문제겠죠.

성격 유형은 취향과 선호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허가증은 아니니까요.

03. 혼자가 편한 것과 상대를 무시하는 것도 다릅니다

세 번째는 연락 문제입니다.

누군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상대방은 이틀 동안 아무런 답이 없습니다.

나중에 이유를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 I잖아. 원래 사람들하고 연락 자주 하는 거 힘들어."

물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습니다.

답장을 즉시 해야 한다는 압박을 싫어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모든 연락을 바로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중요한 연락에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 것은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혼자 쉬는 시간이 필요해서 답장이 좀 늦을 수 있어."

이렇게 미리 한마디만 해도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은 꽤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내 성향을 존중받고 싶다면 상대방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MBTI에도 면책조항이 있나요?

04. 사실 MBTI가 가장 억울할지도 모릅니다

생각해 보면 MBTI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외향성과 내향성, 감각과 직관, 사고와 감정, 판단과 인식이라는 선호 경향을 구분하려는 도구일 뿐이니까요.

문제는 우리가 그 네 글자에 너무 많은 일을 시킨다는 겁니다.

연애가 잘 안 풀리면 궁합 탓을 하고,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면 유형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부족한 행동조차 타고난 성격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MBTI는 자신을 이해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을 바꾸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건 따로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MBTI를 핑계로 삼으면 쉽게 불편해하면서, 정작 자신이 설명하기 어려운 행동을 했을 때는 비슷한 말을 꺼내기도 한다는 겁니다.

"나는 원래 이런 스타일이라서."

어쩌면 이 문장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자기변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MBTI에도 면책조항이 있나요?

성격은 출발점이지, 종착지가 아닙니다

내향적인 사람도 필요한 순간에는 먼저 말을 걸 수 있습니다.

즉흥적인 사람도 중요한 약속을 지킬 수 있습니다.

논리적인 사람도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할 수 있습니다.

이런 행동을 한다고 본래 성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죠.

오히려 자신의 성향을 이해하고 상황에 맞게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 더 성숙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MBTI를 아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걸 알게 된 다음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주변에서 "내 MBTI가 원래 이래서"라는 말을 핑계처럼 사용하는 사람을 본 적 있나요?

반대로 자신도 모르게 MBTI를 이유로 어떤 행동을 정당화했던 경험은 없으신가요?

개인적으로는 이 질문도 궁금합니다.

'나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은 어디까지 이해해 줘야 할까요?

성격을 존중하는 것과 행동을 이해해 주는 것 사이에는 분명 어떤 경계선이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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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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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a
    나는 이런 성향이지만 너를 위해 이 상황을 위해 조금 더 노력해 볼게라고 한 발짝 나와주는 태도가 관계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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