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치열한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 모든 청춘과 에너지를 쏟아부었습니다.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 소리와 사람들의 고함 소리 그리고 주말이면 아이들이 거실에서 뛰어노는 시끌벅적한 소음들이 제 삶을 가득 채우는 당연한 배경음악이었습니다.
그 치열하고 시끄러웠던 수십 년의 세월을 무사히 마치고 드디어 현업에서 은퇴를 맞이했을 때 저는 남은 인생을 아주 평온하고 여유롭게 쉴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알람 소리 없이 늦잠을 자고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빈집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는 그 고요함이 제게 주어진 가장 달콤한 보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그 적막한 고요함이 어느 순간부터 저를 숨 막히게 조여오는 끔찍한 공포의 진원지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그 무서운 증상을 겪은 것은 은퇴 후 반년쯤 지났을 무렵의 어느 평범하고 나른한 오후였습니다. 식구들은 모두 각자의 일터로 나가고 혼자 거실 소파에 앉아 조용히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슴 한가운데에 커다란 쇳덩이가 얹힌 것처럼 숨을 들이마시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뚜렷하게 신경을 쓸 일이나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외부 자극도 전혀 없었는데 순식간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온몸의 핏기가 가시면서 식은땀이 쏟아졌습니다.
당장이라도 숨이 멎어 이대로 거실 바닥에서 아무도 모르게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 같다는 원초적인 공포가 제 모든 이성을 집어삼켰습니다. 바닥을 기어가다시피 해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실려 갔지만 심전도와 온갖 복잡한 검사를 다 해보아도 심장이나 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황당한 진단만 돌아왔습니다.
의사는 억눌렸던 스트레스와 환경 변화로 인해 찾아온 공황 발작 같다고 조심스럽게 설명했지만 저는 그 말을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몸 어딘가에 심각한 병이 생겼다고 하면 수술이라도 받고 입원이라도 할 텐데 겉으로는 이렇게 멀쩡한데 언제 다시 그 끔찍한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올지 모른다는 사실이 저를 더 깊은 지옥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제 평화로웠던 일상은 완전히 망가져 버렸습니다. 집 안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주변이 조금만 고요해져도 제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가에 천둥처럼 크게 울리는 것 같아 온몸의 신경이 칼날처럼 곤두섭니다. 밥을 먹고 소화가 안 되어 가슴이 조금만 답답해도 혹시 심장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또다시 그 질식할 것 같은 발작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덜컥 겁부터 집어먹게 되는 예기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가장 견디기 힘들고 비참한 것은 이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세상에서 가장 친밀해야 할 가족들에게조차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서만 끙끙 앓아야 한다는 지독한 고립감입니다.
평생을 거친 비바람 막아주며 흔들림 없는 든든한 가장으로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마음의 병에 걸려 벌벌 떠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아내와 다 큰 자식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고 저를 짐스럽게 여길지 너무나도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있는 주말이나 저녁 시간에 갑작스럽게 숨통이 조여오고 어지럼증이 찾아오면 저는 속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황급히 화장실로 숨어들어 갑니다.
문을 굳게 잠그고 변기 옆 차가운 타일 바닥에 웅크려 앉아 제발 이 발작이 무사히 지나가 주기만을 속으로 수백 번 빌며 홀로 식은땀을 흘려냅니다. 당장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거실에 있는 식구들이 눈치챌까 봐 입을 틀어막고 버텨야 하는 이 처절한 외로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병원에서는 증상을 단번에 가라앉히기 위해 신경안정제나 항우울제 같은 정신과 약을 처방해 주겠다고 강력하게 권유했지만 저는 끝내 그 약을 거부하고 받아오지 않았습니다. 평생 제 굳건한 정신력과 끈기 하나로 이 험한 세상을 버텨왔는데 이제 와서 독한 정신과 약물에 의지해 제 뇌를 마비시키고 몽롱한 상태로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약에 한번 기대기 시작하면 영영 제 스스로의 힘으로는 일어설 수 없는 중증 환자가 되어버릴 것만 같은 알량한 자존심과 부작용에 대한 깊은 두려움도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약을 먹는 대신 일주일에 한 번씩 전문 심리 상담 센터를 찾아가 상담 선생님과 긴 대화를 나누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제 과거를 돌아보고 억눌렸던 감정들을 천천히 말로 뱉어내는 시간이 마음의 위안이 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상담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와 텅 빈 거실에 홀로 앉으면 여전히 가슴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이 흐르는 신체적인 고통은 전혀 나아지지 않으니 이 지루하고 고독한 싸움을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지 가끔은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차라리 교통사고처럼 명확한 상처가 있으면 꿰매기라도 할 텐데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병을 약도 없이 말로만 치료하려니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막막하기만 합니다. 새벽에 발작의 공포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새울 때면 내가 도대체 무엇을 그리 대역 죄를 짓고 잘못 살았기에 인생의 황혼기에 이런 끔찍한 형벌을 받아야 하나 하는 억울함이 가슴을 칩니다.
젊은 시절 남들처럼 좋은 구경 다니지도 못하고 그저 처자식 건사하겠다는 책임감 하나로 제 몸을 혹사시키며 성실하게 살아온 죄밖에 없는데 그 길고 긴 고생의 대가가 평안한 노후가 아니라 이유 없는 죽음의 공포라니 하늘이 너무나도 야속하고 원망스럽습니다.
은퇴라는 것은 저에게 온전한 자유와 쉼을 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저를 빈틈없이 보호해주던 소속감이라는 갑옷을 강제로 벗겨내고 세상의 가장 취약한 사각지대로 저를 무참히 내동댕이친 것만 같습니다. 그동안 제 삶의 목적이자 단단한 정체성이었던 직장과 역할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니 텅 비어버린 제 내면이 갈 곳을 잃고 이 끔찍한 불안과 공포로 그 빈자리를 스스로 채워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서글픈 자각마저 듭니다.
하루 온종일 제 온 신경은 심장 박동 수와 호흡의 깊이에만 쏠려 있습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심장이 빨리 뛸까 봐 두려워 맹물만 들이켜고 행여나 발작이 와서 쓰러졌을 때 발견되지 못할까 봐 외진 공원이나 사람 없는 길은 아예 피해 다니게 됩니다.
내 몸뚱어리 하나 내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얼음판 걷듯 조심해야 하는 제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하고 가엾습니다. 차라리 현역 시절처럼 몸이 부서져라 바쁘게 일하고 머리를 굴려야 했던 그때가 백번 천번 행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생을 꿈꿔온 고요함이 축복이 아니라 생명을 갉아먹는 독약처럼 변해버린 이 역설적인 현실 속에서 저는 매일매일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며 천천히 침몰해 가고 있는 낡은 배와 같습니다.
코치님께 벼랑 끝에 선 절박하고 간절한 심정으로 인생의 길을 묻고 싶습니다. 약물 치료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제 굳은 의지와 현재 받고 있는 상담 치료만으로 이 깊고 어두운 공황장애의 늪에서 완전히 빠져나올 수 있는 희망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요. 혼자 있는 고요한 집안에서 예고도 없이 미친 듯한 공포가 파도처럼 덮쳐오려고 할 때 제 스스로 요동치는 심장을 가라앉히고 이성을 되찾을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호흡법이나 대처 방법이 있다면 제발 저를 살려주는 셈 치고 가르쳐 주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책임져야 할 역할도 일도 모두 끝나버린 이 막막하고 적막한 노년의 시기를 도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채워나가야 이 원초적인 죽음의 두려움을 몰아내고 다시 단단하게 땅에 발을 딛고 설 수 있을지 현명한 조언이 필요합니다.
남은 제 소중한 인생을 공포라는 감옥에 가두어 두고 억울하게 허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 예전처럼 맑은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며 아주 평범하지만 온전하고 편안한 일상의 호흡을 되찾을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는 삶의 나침반을 꼭 쥐여 주시기를 애타게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