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안젤루의 명언으로 보는 과거의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그때 나는 내가 아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이제 더 잘 알게 되었으니, 나는 더 잘한다.”

 

흑인여성 최초 미 화폐 모델 된 마야 안젤루 < 미국·중남미 < 세계 < 기사본문 - 여성신문

 

특히 밤에 휴대폰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예전 대화 캡처나 메모를 발견하면 위험해요. 당시에는 나름 심각하고 진지하게 썼던 글인데, 지금 읽으면 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죠. 누군가에게 보낸 장문의 메시지를 다시 읽고 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지금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선택을 했던 내 모습을 보면 “내가 왜 그랬지”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와요.

 

사람은 이상하게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의 자신을 심문하는 데 아주 능숙해요.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사람을 조금 더 알게 됐고, 상황을 보는 눈도 조금 넓어졌고,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어느 정도 알게 됐어요. 그러니 과거의 내가 답답해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해요. 그런데 우리는 그 당연한 차이를 너무 잔인하게 사용해요. 과거의 나를 이해하기보다, 지금의 지식으로 과거의 나를 혼내는 데 쓰죠.

 

“그때 왜 몰랐어.”
“그런 사람인 줄 진작 알았어야지.”
“그걸 왜 참았어.”
“그걸 왜 믿었어.”
“조금만 생각했으면 안 당했잖아.”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몰랐을 수 있어요. 누군가가 나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관계가 내 마음을 계속 깎아 먹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견딜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요. 처음 겪는 상황에서는 누구나 서툴 수밖에 없어요. 연애도, 인간관계도, 일도, 돈 관리도, 내 감정을 다루는 일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A cartoon illustration shows a man in a blue shirt and a woman in a pink shirt, both with eyes closed and smiling, each holding a watering can above their head to water a small green plant growing from the top of their head.

 

마야 안젤루는 미국의 시인이자 작가, 배우, 인권운동가로 살아가며 자신의 삶과 사회가 가진 폭력과 차별, 상처를 글로 꺼내 보였던 인물이에요. 그래서 이 문장은 단순히 후회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가벼운 위로로 들리지 않아요. 과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과거에 평생 붙잡혀 있지 말자는 태도에 가까워요. 

 

이 말은 과거의 실수를 없던 일로 만들자는 말이 아니에요. 그때도 최선을 다했으니 아무 잘못 없다고 무조건 감싸자는 말도 아니고요. 오히려 더 현실적이에요. 그때의 나는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선택했고, 지금은 더 많이 알게 되었으니 다음에는 다른 선택을 하면 된다는 말이에요.

 

A woman in a green hoodie sits at a table with a steaming mug and a potted plant, resting her chin on her hand while looking up at a large scribbled thought bubble above her head.

 

생각해 보면 우리는 과거의 나에게 너무 높은 기준을 요구해요. 지금의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그때의 나도 알았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건 마치 드라마를 다 본 사람이 첫 화를 보고 있는 사람에게 범인을 왜 모르냐고 화내는 것과 비슷해요.

 

우리는 결말을 알고 있어요. 그 관계가 어떻게 끝났는지,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렀는지, 그 사람이 결국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죠. 그러니 과거의 내가 답답해 보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때의 나는 결말을 몰랐어요. 다음 장면이 어떻게 흘러갈지 몰랐고, 지금처럼 단단한 기준도 없었고, 누군가의 진심과 거짓을 구별할 경험도 부족했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과거의 나를 볼 때는 왜 저렇게 했어보다 저때는 저걸 몰랐구나라고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계속 맞춰 주고 상처받았던 기억이 있다고 해볼게요. 지금의 나는 말할 수 있죠. 그건 명백히 이상한 관계였어. 왜 빨리 끊지 못했어. 그런데 그때의 나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괜찮아질 거야. 이 사람이 힘든 시기라서 그래. 내가 예민한 건 아닐까. 이번만 넘어가면 달라질지도 몰라.

 

A watercolor illustration shows two vintage rotary telephones on wooden nightstands, connected by a tangled and knotted cord against a muted beige and blue background.

 

그 마음이 바보 같아서 그런 건 아니에요. 누군가를 믿고 싶었고, 관계를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내가 나쁜 사람이 되기 싫었던 거예요. 물론 이제는 그런 마음이 나를 계속 다치게 하는 관계까지 붙잡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겠죠. 하지만 그 배움은 아프지 않고는 얻기 어려웠을 수도 있어요.

 

돈에 관한 후회도 비슷해요. 예전에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쇼핑 앱을 열었을 수도 있고, 남들이 다 한다는 투자에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따라 들어갔을 수도 있어요. 지금 보면 왜 그랬지 싶지만, 당시의 나는 불안을 달래는 방법을 잘 몰랐거나, 돈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를 배울 기회가 없었거나, 남들만 잘되는 것 같은 마음에 조급했을 수 있어요.

 

A person's hand in a cozy sweater holds a pen and writes in an open notebook on a wooden table next to a steaming mug, with warm sunlight streaming in from a window in the background.

 

그렇다면 필요한 건 과거의 나를 비웃는 일이 아니라, 다음의 나에게 다른 방법을 만들어 주는 일이에요.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쇼핑 말고도 쉴 방법을 찾아보고, 돈을 쓰기 전 하루만 더 생각해 보고, 모르는 투자라면 일단 공부부터 하겠다는 기준을 세우는 거죠.

이게 바로 더 잘 알게 되었으니 더 잘한다는 말의 실제 모습이에요.

 

사람은 완벽해져서 더 잘하는 게 아니에요. 실수한 적이 있어서 조금 더 조심하게 되고, 상처받은 적이 있어서 내 경계를 세우게 되고, 잘못 믿은 적이 있어서 다음에는 확인하는 법을 배우게 돼요. 그러니 과거의 실수는 자랑할 일은 아니어도,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자료가 될 수는 있어요.

 

A 2D illustration of a woman with long dark hair hugging herself with eyes closed and a smile, surrounded by hearts and leaves against a yellow background.

 

물론 여기서 주의할 점도 있어요. 그때는 몰랐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누군가에게 준 상처까지 지워 주지는 않아요. 내가 실수로 다른 사람을 아프게 했다면 인정하고 사과하고 고칠 책임은 있어요. 과거의 나를 이해한다는 건 책임을 피하는 일이 아니에요. 내가 무엇을 몰랐는지 정확히 보고, 다음에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행동으로 보여 주는 일이죠.

 

그래서 진짜 성장은 말이 아니라 태도에서 보여요.

예전에는 감정이 상하면 연락을 끊어 버렸다면, 이제는 나는 지금 서운했다고 말해 보는 것. 예전에는 부탁을 받으면 무조건 들어줬다면, 이제는 내 상황을 생각하고 어렵다고 말하는 것. 예전에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흔들렸다면, 이제는 그 말이 정말 사실일까 하고 한번 멈춰 보는 것. 예전에는 실패하면 나 자신을 미워했다면, 이제는 무엇이 잘 안 됐는지 기록하고 다음 계획을 세우는 것.

 

이런 변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작아 보여도 실제로는 아주 큰 차이를 만들어요.

사실 우리는 과거의 나를 쉽게 용서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때의 선택 때문에 잃어버린 시간이나 돈, 관계, 기회를 생각하면 억울하고 화가 나기도 하죠. 내가 그때 조금만 더 현명했더라면이라는 생각이 계속 따라오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생각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으면, 과거의 실수가 끝난 일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계속 벌주는 일이 돼요. 이미 지나간 일을 바꿀 수 없는데도 우리는 머릿속에서 같은 장면을 반복 재생하며 나 자신에게 벌을 줘요. 마치 오래된 드라마를 보면서 결말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매일 첫 화부터 다시 보는 것처럼요.

 
An illustration of a woman sitting by a large window, holding a steaming cup of coffee while looking out at rain falling on a tree with leaves.
 

그 시간을 조금씩 줄여야 해요.

과거를 잊으라는 뜻은 아니에요. 잊지 않아도 돼요. 다만 그 기억을 꺼낼 때마다 나를 때리는 도구로 쓰지 않았으면 해요. 나는 왜 이렇게 멍청했지 대신, 그래서 지금 나는 무엇을 배웠지라고 질문을 바꿔 보면 좋아요.

과거의 나는 그때의 정보와 감정, 환경 안에서 살았어요. 지금의 나는 그 시간을 지나오며 조금 달라졌고요. 둘은 같은 사람이지만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아니에요. 그러니 과거의 나에게 지금의 기준만 들이대며 화내기보다, 그 사람이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서툴고 불안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봐도 괜찮아요.

 

특히 예전의 나를 떠올리며 부끄러워진다는 건, 사실 지금 내가 달라졌다는 증거일 수도 있어요. 예전의 말과 행동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면, 그때와 지금 사이에 아무 변화가 없다는 뜻일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 갑자기 과거 생각이 나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날에는 이렇게 생각해 봐도 돼요.

 

A digital illustration depicts a winding dirt path ascending a lush green hill towards a bright sunrise, with rays of light breaking through colorful clouds over distant mountain ranges.

 

아, 내가 그만큼 달라졌구나.

 

우리는 누구나 서툴렀고, 앞으로도 어느 부분에서는 또 서툴 거예요. 지금의 내가 몇 년 뒤의 나에게는 또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어요. 그때도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때는 내가 아는 만큼 했고, 지금은 더 알게 되었으니 더 잘하면 된다고 말해 주면 좋겠어요.

오늘 문득 예전의 내가 떠올라서 마음이 복잡하다면, 너무 오래 재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때의 나는 그때의 방식으로 버텼고, 지금의 나는 그 경험 덕분에 조금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 이제 남은 일은 하나예요.

 

과거의 나를 벌주는 대신, 지금의 내가 더 잘하는 것.

 

마야 안젤루의 말처럼요. 그때는 내가 아는 방식으로 했고, 이제 더 잘 아니까 더 잘하면 돼요. 그것이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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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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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니엄마
    과거의 자신과 마주할 때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 그리고 그 감정들이 현재의 나를 계속 괴롭히는 모습을 정말 깊이 이해합니다. 예전에는 서운할 때 연락을 끊거나 무조건 부탁을 들어주고, 남의 말 한마디에 크게 흔들리고, 실패하면 자신을 미워하던 내가 이제는 조금씩 다른 태도를 갖게 된 과정, 그 변화는 보이지 않는 큰 성장이에요.
    
    우리는 누구나 과거의 선택과 행동 때문에 후회하거나 자책할 때가 많습니다. 잃어버린 시간, 놓친 기회, 상처 입은 관계들이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그걸 너무 오래 붙잡고 있으면 과거의 일에 나 자신을 벌주는 일이 되죠. 이미 지나간 일은 바꿀 수 없기에, 같은 장면을 반복 재생하며 스스로 괴롭히는 대신, ‘왜 그랬지?’보다는 ‘그래서 지금은 무엇을 배웠을까?’로 질문을 바꿔 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때의 나는 그 시절의 정보와 감정, 환경 속에 있었고, 지금의 나는 그 시간을 지나며 조금씩 달라졌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과거의 자신에게 지금의 눈높이를 들이대며 냉정하게 자책하기보다, ‘그토록 서툴고 불안했지만 잘 버텼구나’라고 따뜻한 시선을 주는 것이 성장의 시작입니다. 부끄러움이 느껴진다면 이는 지금 달라졌다는 증거일 뿐, 변화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작은 신호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모습은 계속 변할 것입니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며 답답함을 느낄 테지만, 그때도 서로를 너무 미워하지 않고 ‘그때는 알던 만큼 최선을 다했어’라고 다독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벌하지 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니까요.
    
    마야 안젤루의 말처럼 “그때는 내가 아는 방식으로 했고, 이제 더 잘 알기에 더 잘하면 된다.” 이 말이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 문득 예전의 내가 떠올라 마음이 복잡하다면, 그때의 나는 그때의 방법으로 버텼고, 지금의 나는 그 경험 덕분에 더 많이 알게 되었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그러니 과거의 나에게 매이지 말고, 지금의 나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데 집중하는 하루가 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