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고통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 토마스 칼라일 -
오늘은 영국의 사상가이자 역사가였던 토마스 칼라일이 남긴, 짧지만 아주 매섭고 단단한 이 문장으로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이 글귀를 처음 소리 내어 읽었을 때 어쩌면 누군가는 가슴 한구석이 뜨끔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자기 계발서와 강연을 통해 변화해야 살아남는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막상 내 삶의 궤도를 단 1도라도 수정하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우리는 거대한 두려움과 막막함이라는 이름의 벽에 부딪히며 주저앉고 맙니다.
머리로는 지금 이대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발걸음을 떼려고 하면 온몸의 세포가 저항하는 듯한 엄청난 피로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변화라는 단어가 주는 그 특유의 역동적이고 희망찬 느낌 이면에는, 필연적으로 살갗을 찢고 뼈를 깎는 듯한 날것의 고통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우리 몸이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뇌와 신체는 본래부터 현상 유지를 가장 최우선으로 삼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합니다.
심리학과 생물학에서는 이를 항상성이라고 부르는데, 외부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내부는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강력한 본능입니다. 우리의 뇌는 에너지를 극도로 아끼고 싶어 하기 때문에, 이미 길이 잘 닦여 있는 익숙한 습관과 루틴을 반복하는 것을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상태라고 판단합니다.
설령 그 익숙한 습관이 내 몸을 망치고 있는 나쁜 식습관이거나, 내 자존감을 끊임없이 갉아먹는 유해한 인간관계이거나, 아무런 비전도 없이 하루하루 영혼을 갈아 넣으며 버티기만 하는 직장 생활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에게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가 아니라, 그저 '예측 가능하다'는 사실 하나뿐입니다.
우리가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현재의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쉽게 박차고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내일 당장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두려움보다는 오늘 겪고 있는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불행이 차라리 견디기 편하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익숙함이라는 감옥은 쇠창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솜이불로 만들어져 있어서, 우리가 그곳에 갇혀 서서히 질식해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토록 필사적으로 변화를 거부하고 제자리에 머물려고 발버둥 치는 동안, 과연 우리의 삶은 진정으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는 것일까요.
안타깝게도 세상에 영원히 멈춰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흐르지 않고 고여있는 물은 필연적으로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기 마련이고, 쓰지 않고 가만히 방치해 둔 기계는 녹이 슬어 결국 삐걱거리며 망가지고 맙니다. 우리 인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다고 안도할지 모르지만,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세상과 시간은 단 1초의 멈춤도 없이 거센 물살을 일으키며 앞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결국 세상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데 나 혼자만 안전을 핑계로 고집스럽게 멈춰 서 있다는 것은,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뒤로 무섭게 퇴보하고 침몰해 가는 과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낯선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아서 마음이 편안하고 아무런 고통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변화를 미루고 유예하며 쌓아 올린 시간의 청구서는, 훗날 내 힘으로는 도저히 손쓸 수 없을 만큼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버린 일상과 짙은 후회라는 이름의 눈덩이가 되어 우리의 뒤통수를 매섭게 후려칠 것입니다.
자연 생태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변화가 수반하는 고통의 본질과 그 절대적인 필요성을 아주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바닷속을 기어 다니는 랍스터는 겉은 아주 단단한 껍질로 싸여 있지만 그 안의 속살은 계속해서 성장을 거듭합니다. 시간이 지나 속살이 커져서 기존의 껍질이 숨이 막힐 정도로 몸을 꽉 조여오기 시작하면, 랍스터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가장 취약해지는 끔찍한 고통의 시간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포식자들의 눈을 피해 깊고 어두운 바위 밑으로 기어 들어가, 자신을 평생 보호해주었던 그 단단하고 익숙한 껍질을 스스로 깨부수고 벌거벗은 핏덩이 같은 몸으로 세상에 나오는 것이죠.
새로운 껍질이 단단하게 굳어질 때까지 랍스터는 그 어떤 무방비 상태의 위험과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을 묵묵히 견뎌내야 합니다.
만약 랍스터가 껍질을 깨고 나오는 그 과정이 너무나 두렵고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안전한 예전 껍질 속에 영원히 안주하기를 선택한다면, 결국 자신의 껍질 속에 갇혀 압사당하는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나를 가두고 있던 낡은 세계를 부수고 나오는 찢어지는 고통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이 대자연의 숭고한 진리는, 오늘날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생에도 한 치의 오차 없이 똑같이 적용됩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작든 크든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때 마주하게 되는 고통의 얼굴은 참으로 다양하고 얄궂습니다.
다이어트를 위해 매일 달리기를 시작하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육체적인 고통이 찾아옵니다.
그동안 익숙했던 업무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기술이나 언어를 배우려고 하면, 수십 번씩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내가 이렇게 머리가 나쁘고 형편없는 사람이었나 자책하게 되는 깊은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죠.
때로는 나의 새로운 도전과 낯선 변화를 유별나다고 수군거리거나 은근히 깎아내리려는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라는 사회적 고통을 감내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변화의 초기 단계에서 마주하는 내 모습은 무척이나 서툴고, 어설프며, 때로는 처량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시기에 겪는 혼란과 뼈아픈 감정들은 내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알리는 경고등이 아니라, 낡은 껍질을 벗고 새로운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성장통이라는 사실입니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바벨을 들어 올려 근섬유를 미세하게 찢어내는 뻐근한 고통이 필수적이듯, 내면의 그릇을 넓히기 위해서는 기존의 가치관과 익숙함이 산산조각 나는 불편함을 기꺼이 환영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이 피하고만 싶은 변화의 고통을 조금 덜 두렵게 맞이하고 기꺼이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고통에 대한 우리의 오랜 프레임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고통을 무조건 피해야 할 부정적인 것, 내 삶에 찾아온 불행의 징조로만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변화를 향한 고통은 오히려 생명력의 증거이자 내 삶이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지불해야만 하는 정당한 통행료와 같습니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때 가슴이 답답해지고 스트레스가 밀려오며 포기하고 싶은 고통이 찾아온다면, 아 내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 아니라 드디어 익숙한 안전지대를 벗어나 진짜 성장의 영역으로 발을 내디뎠구나 하고 스스로를 칭찬해주어야 합니다.
고통을 기피해야 할 적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든든한 러닝메이트로 시선을 바꿔 바라보는 순간, 우리를 짓누르던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의 무게는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너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완벽하게 뒤바꾸려는 거창하고 무거운 욕심을 과감하게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새해가 되거나 어떤 큰 자극을 받았을 때, 내일 당장 눈을 뜨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고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이곤 합니다.
식단을 180도 바꾸고, 안 하던 새벽 기상을 시작하며, 퇴근 후에는 자기 계발에만 몰두하겠다는 식의 촘촘하고
숨 막히는 계획들은 결국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참담한 실패로 끝나기 마련입니다. 너무 급격한 변화가 가져오는 어마어마한 고통을 우리의 뇌와 몸이 도저히 견뎌내지 못하고 백기를 들어버리기 때문이죠.
변화라는 무거운 코끼리를 통째로 삼키려 들지 말고, 뇌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작고 사소한 단위로 쪼개어 가랑비에 옷 젖듯 일상에 스며들게 하는 전략이 훨씬 더 현명하고 강력합니다.
하루에 딱 한 장의 책만 읽기, 물 한 잔 더 마시기, 엘리베이터 대신 한 층만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기처럼 고통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가벼운 행동들이 켜켜이 쌓일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 끝없는 회의감이 들고, 눈앞에 놓인 캄캄하고 험난한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이 뼈저리게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예전의 안락했던 내리막길로 냅다 도망치고 싶어지는 순간이 수없이 찾아옵니다.
남들은 다들 편안한 아스팔트 길을 매끄럽게 잘만 달려가는 것 같은데, 왜 나 혼자만 굳이 이 울퉁불퉁하고 가시가 돋친 비포장도로를 선택해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나 눈물이 핑 돌며 억울해지는 밤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발이 부르트고 무릎이 깨지는 고통을 꾹 참고 비 오듯 땀을 흘리며 기어코 산의 정상에 올랐을 때 마주하게 되는 그 압도적이고 장엄한 풍경은, 산 밑에서 편안하게 평지만 걷던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평생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가슴 벅찬 희열과 눈부신 자유를 우리에게 선사해 줍니다.
고통이라는 어둡고 긴 터널을 묵묵히 통과해 낸 사람만이 비로소 낡고 좁은 자아를 허물고, 이전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품어낼 수 있는 거대하고 단단한 그릇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스스로에게 묻고 답해야 할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껍질이 너무 작아져 숨이 막혀오는데도 밖으로 나가는 고통이 두려워 웅크리고만 계신가요, 아니면 살점이 뜯겨나가는 아픔을 감수하고서라도 새로운 바다를 향해 낡은 껍질을 과감하게 깨부수고 계신가요.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그 모든 불안과 흔들림, 눈물겨운 인내의 시간들은 결코 여러분이 무능하거나 잘못된 길을 가고 있어서 찾아온 벌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차원의 눈부신 삶이, 바로 지금 당신의 문을 요란하게 두드리고 있다는 가장 확실하고도 강렬한 축복의 신호입니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 좁디좁은 안전지대의 성벽을 더 높게 쌓아 올리는 대신, 그 성벽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불어오는 거센 비바람을 온몸으로 시원하게 맞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처음 내딛는 낯선 첫걸음은 분명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터질 듯이 두렵겠지만, 그 용기 있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결국 여러분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경이로운 목적지로 안내해 줄 것입니다.
낡은 나를 허물고 찬란하게 빛나는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그 눈물겹고 아름다운 여정을 묵묵히 걸어갈 여러분의 모든 발걸음을 곁에서 열렬히 응원하겠습니다. 익숙함이라는 부드러운 감옥의 문을 박차고 나온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 어떤 두려움도 뛰어넘을 수 있는 압도적으로 자유롭고 눈부신 당신만의 진짜 인생일 테니까요.


![아버지의 낡은 책상 [나태주의 인생 일기] | 한국경제](https://img.hankyung.com/photo/202507/AA.41059042.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