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과 손님은 사흘이 지나면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 벤저민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1736)

처음 이 명언을 읽고 웃음부터 나왔어요.
아무리 그래도 손님을 생선에 비유하다니,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이 생각보다 장난기가 많았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묘하게 공감되는 말이더라고요.
얼마 전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어요.
원래는 하룻밤만 묵고 갈 예정이었는데 사정이 생겨서 이틀을 더 머물게 됐죠.
첫날에는 정말 반가웠어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 할 이야기도 많았고, 저녁에는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면서 늦게까지 수다도 떨었어요.
평소보다 집이 조금 어수선해져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죠.
그런데 이틀째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평소처럼 혼자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친구도 일어나 있으니까 같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더라고요.
텔레비전도 평소 보던 프로그램 대신 함께 볼 만한 것을 찾게 되고, 식사 시간도 서로 맞춰야 했고요.
물론 친구가 불편하게 행동한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설거지도 도와주고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써줬죠.
그런데 이상하게 제 생활이 조금씩 낯설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사흘째 아침.
거실에서 친구가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소리가 들리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슬리퍼가 원래 저렇게 소리가 컸나?'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어요.
첫날에는 전혀 들리지 않던 소리가 사흘째 되니까 들리기 시작한 거예요.
첫날에는 반가운 손님, 사흘째에는 함께 사는 사람
생각해 보면 손님을 맞이한다는 건 평소의 생활을 잠시 바꾸는 일이기도 해요.
평소에는 아무 때나 식사를 하고,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보고, 피곤하면 그냥 조용히 쉬면 되잖아요.
그런데 집에 손님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신경 쓰게 돼요.
아침에 몇 시쯤 일어나는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 불편한 건 없는지 살피게 되죠.
첫날에는 이런 과정도 즐거워요.
누군가를 대접한다는 기분도 들고 오랜만에 함께하는 시간이 반갑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그 상태가 며칠씩 계속될 때예요.
평소에는 당연했던 혼자만의 시간이 조금씩 그리워지기 시작하거든요.
재미있는 건 손님이 특별히 잘못한 일이 없어도 그런 마음이 들 수 있다는 거예요.
저도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 들었어요.
잘 지내고 있는 사람에게 괜히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과 그 사람과 하루 종일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은 꼭 같은 건 아니겠죠.
친한 친구라고 해서 모든 생활 습관이 똑같을 수는 없으니까요.
가까운 사람일수록 적당한 거리가 필요할 때가 있어요.
우리는 보통 친한 사이일수록 편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가까운 사이에도 서로 지켜줘야 할 생활의 경계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말을 많이 하는 걸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한동안 조용히 있어야 정신이 돌아오기도 하죠.
누군가는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은 혼자 밥을 먹는 시간도 필요할 수 있고요.
이런 차이가 평소에는 별문제가 되지 않아요.
서로 다른 집에서 각자 생활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오래 머물게 되면 사소한 습관들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해요.
화장실을 사용하는 시간부터 실내 온도, 조명 밝기, 텔레비전 소리까지 생각보다 맞춰야 할 게 많더라고요.
저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친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이 편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도 조금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아하는 사람과도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그런 시간을 서로 존중해 줄 수 있다면 관계가 더 편안해질 수도 있겠죠.
그런데 남의 집에 놀러 갔을 때의 저는 어땠을까요?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조금 찔렸어요.
저도 다른 사람 집에 놀러 가서 비슷한 행동을 했을 테니까요.
예전에 지인 집에서 하룻밤 묵었던 적이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냉장고에 있는 물을 꺼내 마시고,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봤던 기억이 났어요.
그때는 상대방이 편하게 있으라고 했으니까 정말 편하게 있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제가 편했던 만큼 그 집 주인은 조금 신경을 쓰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불편했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손님 입장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주인 입장에서 느끼는 편안함이 반드시 같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우리 집처럼 편하게 있어"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기분이 좋잖아요.
그런데 그 말을 정말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우리 집처럼 편하게 있으라고 했지, 실제로 그 집의 주인이 되라는 뜻은 아닐 테니까요.
이쯤 되면 프랭클린이 왜 손님과 생선을 함께 언급했는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해요.
오래 머무는 것보다 좋은 기억을 남기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생각해 보면 친구를 만나 즐거웠던 기억은 대부분 몇 시간 동안 나눈 대화나 함께했던 경험에서 나왔어요.
오랜 시간 붙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운 기억을 보장해 주는 건 아니었죠.
오히려 아쉬움이 조금 남을 때 헤어지면 다음 만남이 더 기다려지기도 해요.
예전에 친구와 만나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일정이 있어서 일찍 헤어진 적이 있었어요.
그날은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가 많아서 집에 돌아온 뒤에도 메시지를 주고받았죠.
다음에 만나면 그 이야기부터 다시 하자고 약속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반대로 너무 오래 함께 있다 보면 나중에는 딱히 할 이야기가 없어질 때도 있더라고요.
물론 말없이 함께 있어도 편한 사이가 가장 친한 사이라고들 하죠.
그 말도 맞는 것 같아요.
다만 아무 말 없이 편하게 있는 것과 상대방을 계속 신경 쓰느라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다른 상황일 수 있겠죠.
어쩌면 관계의 깊이를 함께 보낸 시간의 길이로만 판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짧게 만나도 서로 기분 좋게 헤어질 수 있다면 그것도 충분히 좋은 관계니까요.
프랭클린의 명언이 지금도 재미있는 이유
벤저민 프랭클린은 정치가이자 과학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재치 있는 격언도 많이 남긴 사람이에요.
특히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에는 일상생활을 풍자하는 짧은 문장들이 많이 실려 있어요.
그런데 손님이 사흘 지나면 냄새가 난다는 표현은 지금 읽어도 제법 독하죠.
물론 사람을 생선처럼 취급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죠.
저는 이 명언을 상대방의 호의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는 유머로 이해했어요.
누군가 자신의 공간을 내어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배려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반대로 손님을 초대한 사람도 처음부터 자신이 편하게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무조건 오래 머물러도 괜찮다고 말해놓고 나중에 혼자 불편해하는 것보다는 서로 일정을 미리 정하는 편이 낫겠죠.
이런 이야기를 너무 계산적으로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그게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친하니까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생각보다 친하기 때문에 조금 더 배려하는 태도가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요.
친구가 돌아간 날, 조금 웃긴 일이 있었어요.
사흘째 되는 날 오후에 친구가 집으로 돌아갔어요.
현관에서 인사를 나누고 문을 닫았는데 집 안이 갑자기 조용해지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거실을 둘러봤어요.
테이블에 놓인 컵을 정리하고, 손님용 이불을 접고, 소파에 앉았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잠깐 조용히 앉아 있으니까 친구가 떠나기 전에 했던 농담이 생각나더라고요.
혼자 피식 웃었습니다.
그러고는 휴대전화를 꺼내서 메시지를 보냈어요.
"잘 도착했어? 다음에 또 보자."
친구에게서 바로 답장이 왔어요.
"응. 다음엔 네가 우리 집으로 와."
그 메시지를 읽으면서 또 웃었어요.
이번에는 제가 손님이 될 차례였으니까요.
아마 그 친구도 이번에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어요.
같이 지내는 건 즐거웠지만 역시 자기 집이 제일 편하다고요.
좋은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도 필요한 것 같아요.
이번 일을 겪고 나서 프랭클린의 명언이 단순히 손님을 오래 재우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 사이에는 아무리 가까워도 서로의 생활을 존중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더라고요.
친구든 가족이든 함께 있을 때 즐거운 것만큼 각자의 시간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것도 중요할 거예요.
상대방을 좋아한다고 해서 항상 함께 있어야 하는 건 아니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상대방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어쩌면 좋은 관계는 서로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보다 언제 한 발 물러서야 하는지를 아는 데서 만들어지는지도 모르겠어요.
다음에 누군가의 집에 놀러 가게 된다면 저도 조금 더 신경 써보려고 해요.
특히 "우리 집처럼 편하게 있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대답하려고요.
'고맙지만 진짜 우리 집처럼 행동하지는 않을게.'
여러분은 어떠세요?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집에 오래 머물면 조금 불편해지는 편인가요?
아니면 며칠씩 함께 지내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편이신가요?
프랭클린의 명언처럼 꼭 사흘을 기준으로 삼을 필요는 없겠지만, 사람마다 편안하게 느끼는 거리와 시간이 얼마나 다른지도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