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때 끝이 보이지 않는 취준 때문에 번아웃이 세게 왔었습니다.
처음 취업 준비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요.
이력서를 넣으면 면접 연락은 잘 왔고, 1차 2차까지도 무탈하게 간 적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어요.
저는 그래도 제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고 생각해요.
목표로 하는 곳을 정해놓고 자소서도 계속 수정하고
채용공고가 올라오면 빠짐없이 확인하고,
면접 준비 동영상도 찍어가며 연습하고요.
처음 떨어졌을 때만 해도 크게 좌절하지 않았어요.
이번에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서 다음에 붙으면 되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한 번, 두 번 떨어지는 게 반복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지치더라고요.
나중에는 서류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면접을 꽤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는 그 허탈감이 너무 컸어요.
이번에는 운이 없었을 뿐이야
조금만 더 준비하면 다음에는 될 거야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도 다 이런 과정을 겪었겠지.
그렇게 계속 다음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질 때 같이 준비하던 친구들이 하나둘 취업하고
누군가는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저는 여전히 같은 자리더라고요.
축하해주면서도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한 거예요.
가족들도 점점 쓴소리와 타박을 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더 버티기가 힘들었어요.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는 최종 면접에서 탈락했을 때였어요.
그냥 단순히 탈락이 아니라 그 면접은 총 6차까지 있었습니다.
네. 5차까지 붙고 6차에서 떨어졌어요.
정말 정신이 아득해지고, 모든게 다 물거품으로 변해버린 느낌이었어요.
그 뒤부터 제가 조금씩 변했어요.
취업은 하고 싶은데 하기가 싫어지더라고요.
이상한 말이죠?
계속된 실패, 문 앞까지 갔지만 거절당한 기분에 취업 준비조차 하기가 싫어졌어요.
사실 그럴만도 한게, 단 한번도 쉰 적이 없었거든요.
계속 달리기만 했어요.
늘 제 스케쥴러는 빼곡한 글씨로 채워져있었고 친구들과의 만남은 사치라고 생각해서 만남도 줄였고요.
그렇게 너무 달려서 숨이 찼던 걸까요.
숨이 너무 차서 아무 것도 못하겠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숨을 헐떡거리며 정지 상태가 되었고 모든게 다 멈췄어요.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는데도 하지 않았죠.
자소서도 안쓰고, 아무런 준비도 안 하고 예전에는 모든 공고를 다 찾아봤고
혹시 내가 지원할 수 있을까 싶어서 꼼꼼히 확인했는데
나중에는 공고를 아예 찾아보지도 않게 되더라고요.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도 처음에는 속상하고 화가 났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어요.
또 떨어졌네. 그렇군.
그게 끝이었어요.
긍정적인게 아니라 희망의 끈을 제 스스로 놓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전 모든 행동을 다 멈추었고 그냥 잠만 잤어요.
사람이 무기력해지면 정말 아무것도 안 하게 되더라고요.
하루 종일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취미생활도 싹 접고 가끔 만나던 친구들과 만나지도 않았어요.
집에서는 거의 누워서 시간을 보냈고요.
잠만 잤다는 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였어요.
낮에는 걱정과 고민으로 잠을 못 자다가 뒤늦게 새벽에 잠들고
다음날 점심까지 잠을 자는 생활이 계속됐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밥도 제대로 안 먹게 되고
체중도 빠지고 나중에는 엄청난 저체중이 될 정도였죠.
그렇게 먹은게 없다 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피로감이 쉽게 오고 두통도 잦았어요.
불면증도 엄청 심해졌고요.
그때 취업공고를 보지도 않았던 이유는 어차피 지원해도 또 떨어질 것 같아서였어요.
분명 취업은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취업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들을 할 힘이 없는 상태였어요.
그때는 이게 번아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지쳐서 아무것도 못하는 게으른 인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자기비하도 극에 달했고요.
우울감과 번아웃이 깊어지면 무기력감과 자기비하가 심해진다 하더라고요.
그게 딱 저였어요.
가장 힘들었던 건 취업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닌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취업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히 있었어요.
그래서 자소서도 써야 하고 면접 준비도 해야 하고
계속 새로운 곳에 지원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죠.
그런데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었어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하는 불안감과 죄책감은 계속 들었거든요.
결국 하루 종일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도
마음은 계속 쫓기는 상태였어요.
몸은 쉬고 있는데 머리는 쉬지 못하는 느낌이랄까요.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취업 실패 자체보다
그 실패를 제 가치와 연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에요.
나는 왜 이렇게 취업을 못 하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부족한가?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는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가?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어요.
아이러니한 건 저도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다시 생활 패턴도 잡아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방법을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그 방법을 실천할 힘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게 당시 저를 가장 답답하고 힘들게 했던 것 같아요.
취업에 계속 실패한 그 사실보다
그 실패를 제 가치와 연결해서 난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더 힘들었어요.
극복하는 방법은 아는데, 그 방법을 실천한 힘이 없었어요.
하지만 무기력하게 있다가도, 나 지금 뭐하고 있냐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래서 밖에 나가서 무조건 햇빛을 봤습니다.
특별한 방법은 아니지만 번아웃이 온 사람에게 몸을 움직인다는 건 많은 변화거든요.
전에는 집에만 있었고, 최대 2주동안 집 밖으로 안 나간 적도 있었으니까요.
밖에 나가서 어디 들르지 않더라도 산책은 거의 매일 매일 했어요.
공원 가서 운동도 하고 오고요.
번아웃이 오면 운동하러 나가는 것 조차 힘들지만
몇번 하다보면 습관화가 되어서 괜찮아졌고
어느샌가 운동하면서 체력이 올라가고 스트레스도 조금씩 풀렸어요.
그렇게 에너지가 조금 채워진 덕분인지
조금씩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평생 이렇게 살 순 없을테니 할당량이라도 정해보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오늘 하루를 열심히! 아침부터 밤까지 스케쥴을 빡빡하게 세워서 살아야지!
이렇게 다짐하지 않고, 작은 것부터 하나 하나 했어요.
오늘 하루는 취업 공고 알아보기
다음날은 자소서 쓰기
다다음날은 면접 준비 및 공부 이렇게요.
준비량을 정해놓고 그 이상은 억지로 하지 않았어요.
예전처럼 여러 곳에 무작정 지원하기보다 정말 가고 싶은 곳을 찾아보고
자소서도 한 번에 완벽하게 쓰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일부러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용돈 및 생활비는 필요하니까 재택 알바를 시작했죠.
이것도 일이라면 일이었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먹지도 않고 잠자는 것 빼고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하던 제가,
노트북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움직여서 건설적인 일을 해본게 얼마만이었는지 모르겠어요.
내 체력과 에너지를 조금씩 쓰니까 내가 그렇게 쓸모없진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중에 입금된 알바 급여를 보고 그 시간이 정말 유의미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비단 돈 때문은 아니었어요.
오랜만에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일을 하고
그에 대한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사실 자체가 저한테는 꽤 큰 의미였어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는데
작은 일이라도 하나씩 해내다 보니 잃어버렸던 자신감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나 아직 뭔가 할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무기력했던 마음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고, 그때부터 다시 조금씩 취업 준비를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우울감이 심해져서 병원도 다녔고 상담도 받고, 약도 먹었어요.
내 상황을 전문가에서 상세하게 이야기하면서 스트레스를 최소화 했어요.
결과적으로 물리적인 치료를 하니 더 좋아졌습니다.
저는 결국 일을 찾았고 그 시간이 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몸을 움직이고 에너지를 의미있게 쓰는 시간을 가지면서 번아웃에서 회복할 수 있었어요.
같은 상태인 분께 한마디..
나중에 번아웃에 대해 찾아보면서 번아웃이 꼭 업무 과중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저처럼 장기간 스트레스와 부담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충분히 지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저처럼 일상 속 스트레스와 지친 생활이 계속되어서 번아웃이 오신 분들도 계시겠죠.
지금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해서 무조건 내가 게으른 사람이 아니에요.
번아웃은 무기력에서부터 오고 아예 에너지를 잃은 상태니까요.
저도 당시에는 제가 의지가 약하고 쓸모 없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남들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저는 계속 제자리인 것 같으니까 더 조급해졌고요.
탈락이라는 결과를 제 능력이나 가치처럼 받아들였는데...
그건 그냥 여러 조건과 상황이 맞지 않았던 것뿐이더라고요.
휴대전화 배터리도 0%가 될 때까지 방전 시키는 건 좋지 않다고 하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재충전하지 않고 전원이 꺼질 때까지 버티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전원이 꺼져버릴 수가 있어요.
결국 내가 건강하게 버틸 수 있어야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도 한 번 지쳐버리고 나니 예전처럼 바로 달릴 수는 없었지만
잠깐 멈춰서 제 상태를 돌아보고 조금씩 다시 움직이니까 결국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요.
잠시 쉬는 게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져도, 그 시간이 다시 시작하기 위한 시간이 될 수 있어요.
번아웃이 왔다면 꼭 휴식을 취해주세요.
휴식을 통해 재충전을 하고, 그 다음 움직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