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매일 회사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30대 직장인이에요.
다들 직장 생활하면서 가장 힘든 게 산더미 같은 일 자체보다 숨 막히는 사람 관계라고 하잖아요?
저 역시도 그 끔찍한 늪에 아주 깊게 빠져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지독한 번아웃을 겪었어요.
제 번아웃의 가장 큰 계기는 바로 거절하지 못하는 미련한 성격 탓에 부서 내에서 남들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자처했던 것이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었고 둥글둥글하고 모난 데 없는 성격 덕분에 회사에서도 선후배 할 것 없이 저를 아주 편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동료들이 저를 믿고 의지한다는 생각에 내심 뿌듯하기도 했고 조직 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어요.
점심시간마다 상사의 불합리한 지시를 욕하며 분통을 터뜨리는 동기부터 시작해서 출근길 지옥철에서 짜증 났던 이야기 퇴근 후 밤늦게까지 메신저로 자기 팀원들 뒷담화를 길게 늘어놓는 타 부서 선배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하소연을 묵묵히 다 들어주었죠.
내가 조금 피곤하더라도 꾹 참고 맞장구쳐 주며 위로해 주면 이 사람들의 팍팍한 스트레스가 조금이나마 풀리겠지라는 얄팍한 오만함과 무조건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바보 같은 강박이 제 감정의 우물을 서서히 바닥까지 말려버리고 있다는 걸 그때는 정말 1%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어요.
그렇게 매일같이 남들이 쏟아내는 분노와 우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의 배설물들을 고스란히 뒤집어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제 몸과 마음에 아주 심각한 이상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라고요.
가장 먼저 찾아온 건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느껴지는 걷잡을 수 없는 피로감과 뒷목이 뻣뻣해지는 원인 모를 두통이었어요. 출근해서 누군가 제 자리로 다가와 한숨부터 푹 쉬며 말을 걸려고 폼을 잡으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명치가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져서 숨쉬기조차 버거웠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저를 가장 공포스럽게 괴롭혔던 증상은 바로 타인의 감정에 동화되는 공감 능력이 완전히 거세되어 버렸다는 거예요.
예전 같으면 동료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씩씩거리면 저도 같이 화를 내주고 슬퍼하면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위로의 말을 건넸거든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누군가 제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힘든 상황을 토로해도 마음속으로는 어쩌라고 그래서 나보고 도대체 어쩌라는 거지라는 차갑고 냉소적인 생각만 맴돌 뿐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어요.
얼굴로는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유 정말 힘드시겠네요라고 기계적인 위로의 멘트를 자동 응답기처럼 뱉어내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찌푸린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빨리 이 끔찍하고 소모적인 대화가 1초라도 빨리 당장 끝나기만을 바라는 제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스스로가 소름 끼치고 덜컥 겁이 나기도 했어요.
이 조용하고도 지독한 감정 노동 번아웃을 겪으면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순간은 회사 밖의 소중한 일상과 진짜 내 사람들마저 산산조각이 났다는 걸 깨달았던 어느 주말 저녁이었어요. 오랜만에 정말 친한 10년 지기 친구를 만나 밥을 먹는데 그 친구가 최근에 겪은 아주 슬프고 절망적인 개인사를 털어놓으며 눈시울을 붉히더라고요.
평소의 저라면 마땅히 같이 마음 아파하고 손을 맞잡으며 진심 어린 위로를 펑펑 건넸어야 할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그 눈물 나는 순간조차 제 머릿속에는 아 또 부정적인 이야기네 내 감정까지 축 처진다 그냥 집에 가서 빨리 눕고 싶다라는 이기적이고 차가운 생각만 스멀스멀 기어올랐어요.
가장 소중한 친구의 찢어지는 아픔 앞에서도 0.1%의 공감이나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완전히 고장 난 안드로이드 로봇처럼 무미건조하게 앉아있는 제 모습을 스스로 자각했을 때의 그 끔찍한 절망감과 자괴감은 세상 어떤 단어로도 다 표현할 수가 없어요.
매일 회사 사람들의 징징거림을 들어주느라 억지로 감정을 쥐어짜 낸 탓에 정작 내가 진짜 사랑하고 챙겨야 할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따뜻한 감정의 여유조차 0%로 텅 비어버렸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고 내가 사람으로서 진짜 심각하게 망가졌구나 뼈저리게 느꼈던 가장 비참하고 끔찍한 순간이었어요.
내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망가지고 파괴되었을까 혼란스러워하며 괴로워하던 찰나에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직무 스트레스 자가 점검 테스트를 해보게 되었어요.
질문들에 하나씩 답을 클릭하면서도 저는 속으로 그저 남들 이야기 좀 들어준 것뿐인데 남들처럼 매일 야근을 한 것도 아닌데 스트레스 수치가 뭐 얼마나 높게 나오겠어라며 반신반의했어요. 그런데 모든 문항을 마치고 모니터에 뜬 최종 테스트 결과를 마주한 순간 뒤통수를 아주 커다란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화면에 뜬 제 점수는 주의 필요 상태를 알리는 15점이었어요.
전체 참여자 16,010명 중에서 제가 상위 19% 구간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도 덜컥 겁이 났지만 직무 스트레스가 높은 편이라 정서적 소진과 업무 영향에 주의가 필요한 상태예요라는 노란색 경고 문구가 제 텅 빈 가슴 한가운데에 날카로운 비수처럼 꽂혔어요.
심지어 30대 남성 평균 점수인 14점보다도 1점이나 더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죠.
남들처럼 과도한 실적 압박이나 살인적인 철야 근무에 시달린 것도 아닌데 오직 사람들의 감정을 쓰레기처럼 받아내는 감정 노동만으로도 이렇게 정서적 소진이라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걸 객관적인 지표로 확인하니 헛웃음이 다 나오더라고요.
내가 남들의 스트레스를 덜어주겠다고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며 내 속을 까맣게 태워가는 동안 내 마음의 건강 수치는 서서히 100% 회복 불가능한 위험 수위를 향해 미친 듯이 치닫고 있었다는 걸 이 성적표 같은 결과를 통해 아주 명확하고 냉정하게 직면할 수 있었어요.
이대로 가다가는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한 괴물이나 감정 없는 돌덩이가 되어버리겠다는 끔찍한 위기감에 저는 그날 이후로 독하게 마음을 고쳐먹고 저를 지키기 위한 저만의 생존 회복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가장 먼저 실천한 건 바로 타인과 제 사이에 아주 높고 견고한 심리적 방어벽을 세우는 차가운 선 긋기 연습이었어요.
출근해서 누군가 또 습관적으로 탕비실이나 휴게실에서 저를 붙잡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려 하면 예전처럼 다정하게 눈을 맞추며 들어주는 대신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 아 제가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급한 문서가 있어서요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대화를 싹둑 끊어내는 훈련을 했어요.
처음에는 상대방이 당황하거나 섭섭해하는 기색이 역력해서 미안한 마음에 하루 종일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마음이 지옥 같았어요.
하지만 1번 2번 거절의 횟수가 쌓일수록 기적처럼 사람들이 더 이상 저를 만만한 감정 쓰레기통으로 대하지 않게 되었고 저 역시 불필요한 타인의 감정을 뒤집어쓰지 않게 되면서 묘한 해방감과 안도감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점심시간에도 무리 지어 다니며 남의 험담을 안주 삼아 떠드는 소모적인 식사 자리를 핑계를 대고 과감하게 피한 뒤 혼자 근처 공원을 30분씩 묵묵히 걷거나 벤치에 앉아 조용히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제 텅 빈 마음을 고요하게 정화하는 시간을 가졌더니 바짝 메말랐던 감정의 샘이 아주 미세하게나마 다시 촉촉하게 차오르는 게 느껴졌어요.
억지로 착하고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그만두고 회사에서 융통성 없고 차가운 사람 취급을 조금 받더라도 내 다친 마음을 가장 먼저 챙기기로 결심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저는 예전보다 훨씬 몸이 가볍고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어요.
물론 아직도 누군가 곁에서 우는 소리를 하거나 짜증을 내면 무의식적으로 숨이 막히고 1분이라도 빨리 도망치고 싶어지는 방어기제가 튀어나오지만 적어도 퇴근 후 제가 진짜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에는 다시 100% 진심으로 공감하고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평범한 감각을 꽤 많이 되찾았거든요.
지금 이 순간에도 직장에서 혹은 어느 모임에서 누군가의 끝없는 징징거림과 뾰족한 분노를 묵묵히 다 받아내며 속이 숯검댕이처럼 새까맣게 썩어 들어가고 있는 착한 분들이 분명 어딘가에 계실 거예요.
그분들께 같은 지옥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여러분은 세상 그 누구의 불행이나 감정도 대신 감당하고 책임져 줄 의무가 1도 없고 그들의 쓰레기를 아무 말 없이 받아주는 만만한 쓰레기통은 더더욱 아니랍니다.
남들에게 매정하고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을 절대 두려워하지 마세요 남의 감정을 애써 챙기느라 정작 가장 소중한 내 감정이 0%로 모조리 소진되어 잿더미처럼 무너져버리면 이기적인 그 사람들은 절대 여러분의 망가진 마음을 대신 고쳐주거나 1%라도 책임져주지 않거든요.
당장 내일 아침 출근해서라도 꾹 참고 있던 불편한 대화의 자리를 박차고 핑계를 대며 일어나는 아주 작은 용기를 내보시길 바라요.
코치님 덕분에 고민이 해결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