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몸의 이곳저곳이 예전 같지 않게 삐걱거리고 아파오는 것은 진작에 자연스러운 섭리로 받아들였지만 마음까지 이렇게 나약해지고 널뛰듯 변덕스러워질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요.
젊은 시절 한창 바쁘게 일하며 살아갈 때만 해도 아무리 밖에서 힘들고 억울한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어도 속으로 꾹 누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참 많이 노력하면서 버텨왔거든요.
직장에서 부당한 일을 겪거나 껄끄러운 인간관계에서 피곤한 갈등이 생겨도 소주 한잔에 허허 웃어넘길 수 있는 넉넉한 여유가 있었고 제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겉으로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은 결코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라고 굳게 믿으며 평생을 지내왔어요.
그런데 현업에서 퇴직을 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언제부턴가 제 안의 감정 조절 장치가 완전히 고장 나버린 것 같은 기분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요.
예전 같았으면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털어버리고 넘겼을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나 상대방의 무심한 행동 하나에도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한 섭섭함이 해일처럼 밀려오고 욱하는 분노가 터져 나와서 저 자신조차 이런 제 모습을 감당하기가 너무나 벅차고 당혹스럽더라고요.
이런 통제되지 않는 감정의 변화가 가장 뚜렷하고 심하게 나타나는 대상이 바로 하루 종일 집에서 가장 오랜 시간 얼굴을 맞대고 있는 아내예요.
며칠 전에는 아내가 동네 친구들과 오랜만에 약속이 있다며 거울 앞에서 외출 준비를 하길래 저는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어요.
평소의 제 모습이었다면 오랜만에 나가는 거니 맛있는 것도 먹고 잘 다녀오라고 웃으며 기분 좋게 인사를 건넸을 텐데 그날따라 아내가 저녁은 알아서 챙겨 먹으라며 툭 던진 그 평범하고 일상적인 한마디에 갑자기 가슴속 깊은 곳에서 억울함과 서운함이 확 치밀어 오르더라고요.
내가 지금 혼자서 밥 한 끼도 제대로 못 챙겨 먹는 쓸모없는 사람으로 보이나 싶기도 하고 나만 이 적막한 집에 덩그러니 남겨두고 자기들끼리만 밖에서 즐겁게 놀러 나간다는 생각에 묘한 소외감과 배신감마저 불쑥 들었어요.
결국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나가려면 조용히 나가지 굳이 밥 타령은 왜 하냐며 날이 바짝 선 목소리로 예민하게 쏘아붙이고 말았어요.
아내는 황당하고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저를 한참 쳐다보더니 한숨을 푹 쉬고는 대꾸도 없이 그냥 현관문을 닫고 나가버렸고 아무도 없는 텅 빈 거실에 혼자 남겨진 저는 그깟 일로 옹졸하게 화를 낸 제 자신이 너무나도 싫고 한심해서 하루 종일 짙은 우울함에 시달려야 했어요.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편안하게 서로를 품어주어야 할 부부 사이인데 요즘은 제 이런 변덕스럽고 날카로운 감정 기복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다툼이 끊이지를 않고 집안 분위기가 금세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일이 무한 반복되고 있어요.
아내가 텔레비전 채널을 저에게 묻지 않고 무심코 돌리는 행동이나 저녁 찌개 반찬 간이 평소보다 조금 짜게 된 것 같은 정말이지 객관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상조차도 제게는 큰 공격으로 다가와서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요.
속으로는 이러면 안 된다고 나이 먹고 주책맞게 왜 이렇게 밴댕이 소갈딱지처럼 구느냐고 수백 번 수천 번 제 자신을 엄하게 타일러 보지만 안타깝게도 입 밖으로는 이미 퉁명스럽고 가시가 잔뜩 돋친 말들이 날카로운 화살처럼 쏟아져 나간 뒤더라고요.
사랑하는 아내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서 그러는 게 절대 아닌데 순간적으로 끓어오르는 원망과 서운함을 이성적으로 통제하지 못해 엉뚱하게 짜증과 화로 표출해버리고 나면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지독한 자괴감과 뼈저린 미안함뿐이에요.
하지만 막상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를 하려니 평생을 뻣뻣하게 살아온 알량한 자존심이 끝내 허락하지 않아서 헛기침만 큼큼거리다가 사과할 타이밍을 영영 놓쳐버리고 결국 부부 사이의 감정적인 골만 점점 더 깊어지고 있는 것 같아 하루하루가 참 괴롭고 답답해요.
이런 제 못난 모습이 비단 아내에게만 한정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 커서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자식들을 향해서도 자꾸만 섭섭하고 야속한 마음이 커져서 정말 큰일이에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회생활하느라 바쁜 아이들에게 제 존재가 방해나 짐이 될까 봐 제가 먼저 연락하는 것조차 몹시 조심스러웠고 그저 아이들이 자기 자리에서 밥 안 굶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만 들어도 배가 부르고 고마운 마음뿐이었거든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요즘은 주말에 아이들한테서 먼저 안부 전화 한 통이 안 오면 그게 그렇게 괘씸하고 서운할 수가 없어요.
참다못해 어쩌다 제가 먼저 전화를 걸었을 때 아이가 회의 중이라거나 이동 중이라 바쁘다며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고 급하게 툭 끊어버리면 마치 늙고 쓸모없어진 퇴물 아버지를 귀찮아하고 고의로 피하는 것만 같아서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것처럼 차갑게 시려오더라고요.
명절이나 제 생일 때 아이들이 양손 무겁게 선물을 들고 집에 찾아와도 반갑고 기쁜 마음이 들기보다는 평소에는 연락 한 번 제대로 없다가 이렇게 의무적이고 형식적으로 찾아왔다는 꼬이고 비뚤어진 생각이 먼저 앞서서 오랜만에 마주 앉은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말 대신 뼈 있는 농담이나 날 선 잔소리를 툭툭 던지며 애써 좋은 분위기를 제 손으로 다 망쳐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아이들이 서둘러 짐을 챙겨 각자의 집으로 쫓기듯 떠나고 나면 정적이 흐르는 빈방에 우두커니 홀로 앉아 내가 도대체 아까 왜 그런 몹쓸 소리를 했을까 하며 멍든 가슴을 퍽퍽 치며 뼈저리게 후회해요.
겉으로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짜증 섞인 훈계를 부리지만 사실 한 꺼풀 벗겨내어 제 마음 깊은 곳의 밑바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저 사랑하는 내 가족들에게 여전히 관심받고 싶고 외롭다는 어린아이 같은 유치한 투정이라는 것을 세상 누구보다 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어요.
평생을 한 가정의 기둥이자 가장이라는 무거운 책임감 하나로 온갖 수모를 흉터처럼 견디며 버텨왔는데 이제는 그 잘난 역할마저 모두 끝나버리고 세상의 튼튼한 중심에서 밀려나 위태로운 변두리에 서 있는 것 같은 깊은 허탈감이 저를 이렇게 예민하고 뾰족한 고슴도치로 만드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고 머리에 흰 눈이 내릴수록 둥글둥글해지고 세상사에 너그러운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속이 한없이 좁아지고 스스로 만든 부정적인 감정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 같아 제 자신이 너무나도 처량하고 불쌍하게 느껴질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에요.
이대로 가다가는 제 주변에 온기를 나눌 사람 하나 없이 완벽하고 처절하게 고립될 것만 같아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혼자서 나름대로 이 끔찍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고 정말 숱하게 몸부림치며 노력해 봤어요.
텔레비전의 건강 정보 프로그램에서 의사들이 나와서 설명하는 것을 보니 이게 전형적인 남성 갱년기 증상이나 노인성 우울증의 초기일 수도 있다고 하길래 몸이라도 지치게 만들면 잡생각이 사라질까 싶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저녁으로 규칙적으로 동네 근처 공원과 산책로를 돌며 이마에 땀이 흠뻑 날 때까지 무작정 걷기 운동도 시작했어요.
그리고 화가 치밀어 오를 때는 뇌가 이성을 찾을 수 있도록 속으로 천천히 숫자 열까지 세어보라는 조언을 듣고는 실제로 욱하는 순간에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감은 채 숫자를 세며 깊은 심호흡을 해보기도 했고요.
요동치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데 탁월하다는 명상 음악이나 자연의 소리도 인터넷에서 찾아서 매일 밤 틀어놓고 복식호흡도 따라 해봤지만 야속하게도 머리로 이성적인 통제를 시도하기도 전에 이미 서운함과 분노라는 시뻘건 감정이 제 온몸의 핏줄을 타고 올라와 이성을 완전히 집어삼켜 버리더라고요.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나는 그 짧은 순간에는 눈앞이 하얘지고 오직 내가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나만 억울하고 서운하다는 극단적인 생각에만 사로잡혀서 낮에 연습했던 그 어떤 이성적인 노력이나 다짐도 단숨에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비참한 상황이 계속 쳇바퀴 돌듯 반복되고 있어요.
심지어는 제 요동치는 감정을 한 발짝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어서 서랍 속에 굴러다니던 빈 수첩을 꺼내어 일기장처럼 그날그날 느꼈던 감정들을 아주 솔직하고 여과 없이 적어보기도 했어요.
내가 오늘 아내의 어떤 말 때문에 화가 났고 아이들의 어떤 행동에 왜 그토록 섭섭했는지를 볼펜으로 종이가 찢어질 만큼 꾹꾹 눌러 쓰다 보면 아주 잠깐이나마 끓어오르던 속이 진정이 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것 역시 근본적인 뿌리를 뽑는 해결책은 되지 못하더라고요.
오히려 방에 혼자 앉아 화가 났던 상황을 아주 구체적으로 다시 복기하고 글자로 적다 보면 그때 화김에 다 뱉지 못하고 삼켰던 더 모진 말들이나 예전에 섭섭했던 묵은 기억들까지 줄줄이 딸려 올라와서 도리어 억울한 마음에 혼자서 주먹을 쥐고 분통을 터뜨릴 때도 있었어요.
이렇게 답답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위로라도 받고 싶어도 다 늙어서 가족들 흉이나 보고 징징대는 못난 늙은이처럼 보일까 봐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도 차마 자존심에 입이 떨어지지 않아요.
결국 밖으로 빼내지 못한 감정을 속으로만 끙끙 앓다 보니 가슴 한가운데에 커다란 맷돌이 얹힌 것처럼 항상 답답하고 숨이 막혀서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어두운 천장만 바라보며 뒤척이는 날들이 하루 이틀 늘어가고 있어요.
이러다가는 제 명에 못 살겠다 싶을 정도로 몸도 마음도 겉잡을 수 없이 곪아가고 피폐해지고 있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어서 코치님께 정말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간절한 심정으로 묻고 싶어요.
도대체 제 안에서 시도 때도 없이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이 주체할 수 없는 섭섭함과 욱하는 분노의 불길을 대체 어떻게 다루고 다스려야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요.
가족들의 아무런 악의 없는 평범한 말이나 사소한 행동에도 과도하게 상처받고 억측하며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어버리는 제 꼬여버린 생각의 회로를 다시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요.
화가 났을 때 그 감정을 앞뒤 재지 않고 무작정 폭발시켜서 주변을 초토화시키지도 않고 그렇다고 미련하게 속으로만 썩히다가 병을 만들지도 않으면서 상대방의 기분을 불쾌하게 상하게 하지 않고 제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을 부드럽고 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화의 기술이나 화법이 있다면 너무나도 절실하게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은퇴 이후 바닥까지 텅 비어버린 것 같은 제 마음의 공허함을 다시 건강하게 채우고 흔들리는 제 삶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으려면 앞으로 남은 노년의 시간들을 도대체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살아가야 할지 인생의 지혜를 꼭 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내도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아이들도 모두 제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지하고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소중한 사람들인데 다름 아닌 제 이놈의 못난 성질머리와 피해의식 때문에 그 소중한 사람들을 제 손으로 거칠게 밀어내고 상처 주고 있다는 사실이 매일 밤 저를 너무나도 끔찍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어요.
나이가 육십이 훌쩍 넘어서 평생 굳어진 성격을 하루아침에 개조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기적 같은 일이라는 건 저도 뼈저리게 알고 있지만 만약 이대로 아무런 변화 없이 시간이 흘러간다면 머지않아 제 주변은 온통 저에게 상처받고 등 돌린 사람들만 남게 될 것이 뻔해요.
저 역시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차갑고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가장 비참하고 쓸쓸한 노후를 홀로 맞이하게 될 것 같아 그 상상만으로도 덜컥 두려움이 밀려와 숨을 쉬기가 힘들어요.
하루빨리 이 스스로 만든 지옥 같은 감정의 굴레에서 빠져나와 아내와 아이들과 예전처럼 별거 아닌 농담에도 박장대소하며 편안하고 웃음 묻어나는 평범한 일상의 식탁을 다시 되찾고 싶어요.
저도 이제는 가슴에 품이 넓고 여유로운 미소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을 줄 아는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품어주는 진짜 따뜻한 어른이 되고 싶은데 엉켜버린 실타래를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못 잡겠어요.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끝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이 막막하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첫발을 무사히 내디딜 수 있도록 코치님의 따뜻하면서도 정신 번쩍 들게 따끔한 조언을 꼭 좀 부탁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