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요즘 프로작 먹으면서 우울증 치료받고 있는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에요.
밖에서 보면 그냥 똑같이 출근하고 사람들이랑 웃으면서 얘기하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사실 하루의 거의 대부분은 "오늘 하루만 어떻게든 넘기자" 이 생각 하나로 버티는 거예요.
이상하다 싶었던 게 작년 가을쯤이었어요. 출근하다가 회사 건물 보는 순간 갑자기 눈물 날 것 같아서 지하철역 구석에 서서 한참 못 움직였어요. 딱히 뭔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아 또 오늘 하루 버텨야 되네" 이 생각에 숨이 턱 막히면서 그대로 멈춰버린 거죠.
그 뒤로 검색 기록이 좀 바뀌더라고요. 원래는 일 관련 검색이랑 취미 영상 이런 거밖에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출근하기 진짜 싫다", "회사 생각만 하면 울컥함" 이런 게 쌓이고, 거기다 "우울증 자가진단", "항우울제 후기", "우울증 치료 얼마나 걸리나" 이런 검색어가 계속 늘어나는 거예요.
처음엔 그냥 번아웃인 줄 알았어요. "좀 쉬면 나아지겠지, 요즘 일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이러면서 주말에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었거든요. 근데 쉬는 날인데도 침대에서 못 일어나고, 씻는 게 무슨 큰 이벤트처럼 느껴지고, 평소 재밌게 보던 것도 하나도 재미가 없으니까 그때 진짜 이상하다 싶었어요.
결국 정신과 갔고 상담이랑 검사받고 중등도 우울증 진단받았어요. 의사쌤이랑 얘기하면서 제가 그동안 "괜찮은 척" 얼마나 오래 했는지, 실제로는 훨씬 전부터 무너져 있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날부터 프로작(플루옥세틴) 20mg 먹기 시작했고, 치료는 아직도 진행형이에요.
약 먹고 처음 2~3주는 진짜 힘들었어요. 머리가 멍하고 집중이 하나도 안 돼서 글 읽어도 눈으로만 보고 있고 머리엔 하나도 안 들어오는 날이 많았어요. 입맛도 없어서 밥도 대충 넘기고, 잠은 많이 자는데 일어나도 개운한 게 없고, 아침부터 이미 지친 상태로 하루 시작하는 느낌이었어요.
근데 진짜 무서웠던 건 감정이 무뎌지는 느낌이었어요. 예전엔 힘들어도 좋아하는 뮤비 보거나 재밌는 거 보면 잠깐이라도 기분이 풀렸는데, 약 먹고 나서는 웃긴 장면 봐도 그냥 "아 웃기네" 정도에서 끝나는 거예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그 밋밋한 느낌이 너무 낯설어서 "나 이러다 감정 자체를 잃어버리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그래서 중간에 약 끊을까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어요. "차라리 힘들어도 제대로 느끼는 게 낫지 않나" 싶어서 약 먹으려다 몇 번을 멈칫했거든요. 근데 그때마다 의사쌤이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감정을 아예 없애는 게 아니라 바닥으로 훅 꺼지는 속도를 좀 늦춰주는 거라고. 그 말 믿고 부작용 계속 얘기하면서 용량이랑 먹는 시간 맞춰가고 있어요.
지금은 프로작 먹은 지 6개월 정도 됐고 아직도 치료 한가운데예요. 예전처럼 하루 종일 침대에서 아무것도 못 하는 날은 좀 줄었고,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할 일 한두 개 적어보고 그중 하나라도 하면 "오늘은 이 정도면 됐다" 이렇게 스스로 말해주려고 해요. 아직 불안하고 멍해지는 순간도 많은데, 예전처럼 매일 "그냥 다 끝났으면" 이런 생각하면서 살진 않아요.
약 말고도 붙잡고 있는 게 있어요. 퇴근하면 업무 메신저 끄고 노트북 닫는 거, 이건 저랑 한 약속이에요. 대신 집 앞 10~15분 걷거나 씻고 나서 조용한 음악 틀어놓고 그냥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 만들고 있어요. 대단한 운동이나 자기계발 이런 거 아닌데 이 작은 루틴이 하루가 완전히 무너지는 걸 조금은 막아주는 것 같아요.
상담도 같이 받고 있어요. 지금 우울한 것뿐 아니라 예전부터 쌓여있던 것들도 하나씩 꺼내고 있어요. 학생 때부터 "잘해야 한다", "실수하면 안 된다" 이런 걸 스스로한테 얼마나 심하게 강요했는지, 그게 결국 지금의 저를 어떻게 지치게 만들었는지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에요. 누군가한테 안전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요즘 치료 계속 이어갈 수 있는 큰 이유예요.
솔직히 저 아직 "다 나았다"랑은 거리가 멀어요. 내일 또 갑자기 기분 바닥칠 수도 있고 아무 이유 없이 눈물 날 수도 있어요. 근데 예전이랑 다른 게 있다면, 이제 그럴 때 혼자 버티지 않고 병원, 상담, 약, 일상 루틴 이런 걸 같이 붙잡고 있다는 거예요. "혼자 책임져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같이 다루고 있는 내 상태"라고 생각하려고 해요.
혹시 이 글 보시는 분 중에도 요즘 검색 기록이 "무기력함", "우울증 자가진단", "항우울제 후기" 이런 단어로 가득 차 있다면, 그거 그냥 지나가는 기분 아닐 수도 있어요. 병원 가보는 거, 약 고민해보는 거, 상담 시작해보는 거 이 중에 하나라도 해보는 게 스스로를 포기 안 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저는 그 작은 선택 하나가 생각보다 큰 방향 전환이 될 수 있다는 걸 직접 느끼면서 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