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셔요
살다 보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어느 순간 갑자기 밀려올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정말 남들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아침에 눈뜨면 집안일 하고, 남편 출근시키고, 오후엔 시장 봐서 저녁 준비하고.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하루하루였지만, 그게 제 삶의 전부였고 저는 그걸로 충분히 만족했었어요.
그런데 몇 년 전, 남편이 추진하던 사업이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정말 순식간이었어요.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겠거니 했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거지, 하고요. 근데 집으로 빚 독촉 전화가 하루가 멀다 하고 걸려 오고, 평생 티브이에서나 보던 빨간 딱지라는 걸 실제로 마주하게 되니까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평온하던 삶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어요. 당장 내일 아침이 오는 게 무서웠습니다. 밤마다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천장만 바라봤어요. 옆에서 곤히 잠든 남편 숨소리를 들으면서도 저는 한숨도 못 자고, 머릿속으로는 계속 최악의 상황들만 그려졌습니다.
그렇게 불면증이 시작됐어요.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가슴이 턱 막히고 숨이 안 쉬어지는 증상까지 찾아왔습니다. 집 전화벨만 울려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어요. 혹시 또 빚 독촉인가 싶어서 손이 벌벌 떨리고, 받기도 전에 이미 숨이 가빠지곤 했습니다.
근데 제일 무서웠던 건 그게 아니었어요. 제 감정을 제가 통제할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별일 아닌 걸로 남편이나 애들한테 버럭 소리를 지르고, 그러고 나면 방문 닫고 들어가서 몇 시간씩 훌쩍이며 울었어요. 그러다 문득 거울 속 제 모습을 보면, 이게 정말 나인가 싶고, 내 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웠습니다.
밤마다 핸드폰 붙잡고 검색했어요. 가슴 답답할 때, 잠 안 올 때 정신과, 공황장애 초기증상. 이런 걸 몇 시간씩 들여다보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붙이고, 그마저도 얕은 잠이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우연히 앱으로 우울증 자가점검이라는 걸 해봤어요. 큰 기대는 안 했는데, 결과가 21점이 나오더라고요. '우울 상태'라는 문구 밑에 무기력, 외로움, 흥미 저하로 일상이 버거울 수 있다는 설명이 쭉 떠 있었어요.
그 글자들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아, 내가 그동안 정말 많이 힘들었구나, 이게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었구나 싶어서요. 60대 이상 여성 평균이 26점이라고 하니 저는 그보다 5점 낮은 거였지만, 그게 위안이 되진 않았어요. 이미 제 마음은 바닥까지 내려가 있었으니까요.
그 결과를 보고, 더는 이렇게 혼자 끌어안고 있으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집 근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어요.
병원 앞에서 정말 오래 서성였습니다. 문고리를 잡았다 놨다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몰라요. 내가 정신과라니, 하는 생각도 들고, 남들이 알면 어쩌나 하는 겁도 났고요. 그래도 그날 용기를 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 얘기를 정말 차분하게 들어주셨어요. 중간에 말이 막히고 눈물이 나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셨고요. 그러고는 우울증과 불안 증상이 함께 온 상태라며, 약물 치료를 병행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처방받은 게 렉사프로정 10mg이었어요.
처음 한두 달은 아침마다 그 작은 알약 하나 삼키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걸 먹는다는 게 내가 정말 환자구나, 하는 걸 매일 확인하는 기분이었거든요. 속이 더부룩하고 입이 마르는 부작용도 며칠 있었고요.
근데 신기하게도, 3개월, 6개월 꾸준히 먹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가슴을 짓누르던 그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지더라고요. 밤에 잠드는 것도 훨씬 수월해졌고, 전화벨이 울려도 예전만큼 심장이 덜컥하지 않았습니다.
약을 먹는다고 형편이 갑자기 좋아지거나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적어도 그 상황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힘, 버텨낼 수 있는 마음의 체력 같은 걸 만들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요즘은 약 복용이랑 같이 마음을 돌보는 시간도 꾸준히 가지려고 해요. 심리상담도 정기적으로 받으면서 그동안 속에 꾹꾹 눌러뒀던 것들을 조금씩 꺼내놓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이런 얘기를 남한테 한다는 게 낯설었는데, 이제는 상담 시간이 한 주 중에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이 됐어요.
아침에는 10분이라도 가만히 앉아서 명상을 하고요. 집 근처 산책로를 30분씩 걷는 것도 빼먹지 않으려고 해요. 예전 같으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 바람 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같은 게 요즘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몰라요. 별것 아닌 것 같은 이런 시간들이 요즘 제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자가점검 버튼 하나 누르는 것조차 망설이고 계신 분이 있다면 꼭 한번 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점수가 어떻게 나오든, 그건 여러분이 잘못 살아서가 아니에요. 그냥 그동안 너무 무거운 걸 혼자 짊어지고 오느라 마음이 지친 것뿐이에요.
혼자 끙끙 앓지 마시고, 필요한 도움은 꼭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을 먼저 챙기는 게 결국 제일 중요한 일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