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하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너희 커플은 참 싸우지도 않고 예쁘게 잘 만난다라는 칭찬을 자주 듣는 편이에요. 겉으로 보기에는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서로에게 다정하게 잘 맞춰주는 평화롭고 이상적인 관계처럼 보일 테니까요.
하지만 사실 그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이면에는 여자친구와 부딪히는 것이 미치도록 두려워서 제가 느끼는 모든 서운함과 불만을 목구멍 깊숙이 꾹꾹 눌러 담으며 버티고 있는 제 처절한 희생과 인내가 숨겨져 있어요.
여자친구가 저를 무심하게 대하거나 무언가 서운한 행동을 했을 때 그 자리에서 솔직하게 기분이 상했다고 말하면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질까 봐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괜찮다고 웃어넘기는 게 이제는 거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버렸더라고요.
마음속으로는 이미 서운함이 턱끝까지 차올라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데 겉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이해심 넓고 쿨한 남자친구 연기를 하느라 매번 데이트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온몸의 기운이 쏙 빠져나가서 화장실 불도 켜지 못한 채 침대에 쓰러지듯 눕게 됩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제 진짜 감정을 철저하게 숨기고 미련하게 참는 이유는 연인과 갈등을 빚고 다투는 상황 자체가 저에게는 너무나도 끔찍한 공포로 다가오기 때문이에요.
서로 언성을 높이고 차가운 눈빛을 주고받으며 싸우는 그 숨 막히는 공기를 견디느니 차라리 제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더라도 그냥 저 혼자 입을 다물고 참고 넘어가는 게 당장에는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혹시라도 제가 불만을 뾰족하게 이야기했다가 여자친구가 저에게 질려서 혹은 저의 이런 쪼잔하고 예민한 모습에 실망해서 매몰차게 떠나버리면 어쩌나 하는 버림받을 것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 마음속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어서 제 입을 꽁꽁 틀어막고 있는 것 같아요.
연인 사이라면 당연히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맞춰가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걸 머리로는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막상 여자친구의 표정이 조금이라도 굳어지거나 목소리 톤이 아주 미세하게라도 낮아지면 심장이 덜컹 내려앉으면서 반사적으로 제가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버리고 어떻게든 상황을 둥글게 무마시키려고 바둥거리게 되더라고요.
가장 끔찍하고 저를 병들게 하는 건 이렇게 제 감정을 꾹꾹 참다 못해 이제는 서운함을 느끼는 제 자신을 스스로 공격하고 악의적으로 가스라이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거예요. 분명히 여자친구가 저와의 약속을 새카맣게 잊어버리거나 저보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매번 더 우선시해서 제가 명백하게 상처를 받은 상황인데도 어느새 저는 혼자서 변명거리를 찾으며 오히려 제가 너무 속이 좁고 예민해서 이 정도 일도 쿨하게 이해를 못 해주는 거라고 제 탓으로 멍에를 씌워버립니다.
그 사람은 정말 아무런 악의가 없었는데 내가 연애라는 핑계로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집착하며 피곤하게 구는 건 아닐까 남자가 되어서 조금만 더 이해심을 넓히고 마음을 비우면 다 평화롭게 해결될 문제인데 왜 이렇게 혼자 유난을 떠는 걸까 라며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가혹하게 탓하다 보면 어느새 제가 세상에서 제일 찌질하고 못난 남자친구가 되어 있더라고요.
명백한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이나 무심함마저도 제 탓으로 합리화하며 억지로 이해하려고 피눈물을 흘리며 발버둥을 치다 보니 제 자존감은 이미 바닥을 뚫고 지하 깊은 곳까지 처박혀서 이제는 제가 연애에서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마땅한 사람처럼 느껴져 매일 밤 너무나도 비참하고 처량해서 눈물이 나요.
얼마 전에도 저와 미리 정해둔 중요한 선약이 있었는데 갑자기 친한 친구가 우울하다며 부른다고 약속을 당일 아침에 미루자고 통보를 하더라고요. 머릿속에서는 나랑 먼저 약속을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서운하다고 당장 화를 내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막상 제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그래 친구가 많이 힘든가 보네 조심히 잘 다녀오고 내 걱정은 하지 말라는 가증스러운 거짓말이었어요.
전화를 끊고 나서 혼자 텅 빈 방에 덩그러니 앉아있는데 왈칵 씁쓸함이 밀려오면서 내가 대체 누구를 위해 이렇게까지 내 본래의 감정을 무참히 난도질하며 껍데기만 남은 연애를 하고 있나 하는 지독한 회의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덮쳐왔어요.
화를 내고 따져 물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조차 다정하고 배려심 넘치는 든든한 남자친구라는 그 징그러운 프레임에 스스로 갇혀서 단 한 번의 투정조차 제대로 부리지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 바보 같고 한심하게 느껴져서 가슴을 치며 소리 없이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이렇게 제 진짜 속마음은 철저하게 숨긴 채 온갖 거짓된 배려로 포장하여 억지로 관계의 끈을 이어가는 게 과연 진짜 사랑이 맞긴 한 걸까 하는 근본적인 의구심마저 들어서 매일매일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시리고 공허해요.
가장 사랑하고 저를 이해해 주어야 할 사람과 마주 보고 앉아 있으면서도 혼자 방에 갇혀 있을 때보다 더 지독한 외로움과 섬뜩한 고립감을 느낀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상상조차 못 할 거예요.
여자친구는 제가 매번 다정하게 웃으며 다 넘어가 주니까 제가 진짜로 아무렇지 않고 화가 나지 않은 줄 알고 똑같은 무심한 실수를 악의 없이 계속 반복하고 저는 그걸 또 바보처럼 꾸역꾸역 삼키며 참아내는 이 지옥 같은 악순환의 굴레 속에서 이제는 정말 숨이 턱턱 막히고 가슴에 커다란 쇳덩이를 얹어놓은 것처럼 무겁고 답답합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억눌린 섭섭함과 분노를 가슴속에 시한폭탄처럼 위태롭게 품고 지내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정말 사소하고 엉뚱한 일에 제 이성의 퓨즈가 끊어져서 여자친구에게 말도 안 되는 미친 사람처럼 신경질을 부리거나 홧김에 이별을 통보하며 모든 걸 망쳐버릴까 봐 제 자신조차도 너무 두렵고 통제가 안 될 것 같아요.
차라리 시원하게 한바탕 바닥을 치며 싸우고 속마음에 있는 찌꺼기들을 다 털어놓으면 이 답답함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듯 개운해질 텐데 그놈의 갈등이 무섭고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비겁하고 찌질한 성격 때문에 오늘도 입술을 꽉 깨물고 아무렇지 않은 척 억지웃음을 연습하며 데이트를 나갈 준비를 하는 제 모습이 너무나 혐오스러워서 거울을 깨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제 인생과 사랑을 갉아먹는 이 끔찍한 마음의 병을 고치고 싶어서 정말 지푸라기라도 꽉 잡는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실질적인 조언을 엎드려 구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갈등을 빚고 내 주장을 내세우며 부딪히는 상황 자체에 대한 이 극도의 비정상적인 공포심을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료하고 덜어낼 수 있을까요.
제가 연애를 하면서 느끼는 수많은 서운함과 불만이 결코 제가 남자로 태어나서 유별나게 속이 좁고 쪼잔한 이기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연인 관계에서 누구라도 당연히 느낄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럽고 정당한 감정이라는 걸 제 스스로 단단하게 인정하고 타인으로부터 나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현실적인 마인드 컨트롤 훈련법이 너무나도 절실해요.
모처럼 좋은 데이트 분위기를 망치지 않고 상대방의 자존심이나 기분을 극도로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제가 받은 상처와 고치기를 바라는 서운한 점들을 감정적이지 않고 차분하고 지혜롭게 전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소통의 기술과 대화법을 당장 내일부터라도 실전에 적용할 수 있게 꼭 가르쳐주세요.
갈등을 피하려고 무조건 제가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이 파괴적이고 불행한 연애 패턴을 이제는 제발 멈추고 싶어요.
서로의 다름을 건강하게 부딪히고 맞춰가며 굳이 억지로 쿨한 척 꾸며내지 않은 제 본연의 찌질하고 솔직한 모습으로도 온전히 사랑받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진짜 건강하고 숨통 트이는 연애를 제 인생에서도 꼭 한 번쯤은 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