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 갑자기 숨이 막혀서 눈을 뜬 적 있으신가요. 미용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이유 없이 식은땀이 흐르고 그 자리에서 뛰쳐나온 적은요. 아니면 텔레비전에 나온 어떤 연예인의 이야기를 듣다가 “어, 저거 완전 내 얘기인데” 하고 가슴이 철렁했던 적은 없으신가요.
이 세 장면은 전혀 다른 상황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하나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걸 두고 “내가 갑자기 왜 이렇게 됐지”, “심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심지어는 “내가 너무 예민해진 건가” 하고 스스로를 탓합니다. 하지만 이건 성격의 문제도,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일도 아닙니다. 건물에 설치된 화재감지기가 토스트를 살짝 태운 연기 한 줌에도 스프링클러를 전관에 걸쳐 한꺼번에 터뜨려버리는 것과 비슷한 상태에 가깝습니다. 실제 화재는 없는데, 경보 시스템 자체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해서 온몸에 비상사태를 선포해버리는 것이지요.
경보를 울리는 뇌, 그리고 신경전달물질의 균형
공황발작이 일어나는 순간, 뇌 안에서는 몇 가지 부위가 동시에 오작동을 일으킵니다. 먼저 편도핵이라는, 위협을 감지하고 경보를 울리는 부위가 실제로는 위험하지 않은 자극(지하철의 인파, 미용실의 냄새, 고속도로의 속도감 같은 것들)을 위협으로 잘못 해석해 과잉으로 반응합니다. 이 신호는 시상하부와 청반이라는 부위로 전달되어 순식간에 자율신경계 전체에 비상사태를 선포합니다.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이 가빠지고, 식은땀이 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편 위험 여부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전전두엽 피질(위험을 판단하는 지휘센터)이 이 순간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도망가거나 얼어붙는 반응을 실행하는 중뇌수도주변 회백질이 먼저 몸을 장악해버립니다. 지휘센터가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비상벨이 눌린 셈입니다. 이 모든 과정의 배경에는 노르에피네프린(각성·긴장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기분·불안 조절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 GABA(신경을 진정시키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 세 가지 물질의 균형이 무너지는 현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이 균형을 흔들어놓으면,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았을 자극에도 경보가 울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여기에 더해 과호흡처럼 몸 안의 산-염기 균형을 흔드는 호흡 방식, 그리고 카페인이나 이산화탄소 같은 물질도 공황발작을 촉발하는 방아쇠가 될 수 있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나서 유독 가슴이 두근거렸던 경험이 있다면, 우연이 아니라 실제로 뇌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반응 때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기전을 이해하는 것이 3편에서 다룰 약물치료의 원리와도 바로 연결됩니다.
타고난 성향과 살아온 환경이 함께 작용합니다
공황장애 환자의 가족을 조사해보면, 일반인보다 공황장애가 생길 위험이 4~8배 정도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또한 유전자를 완전히 공유하는 일란성 쌍둥이 쪽이, 유전자의 절반만 공유하는 이란성 쌍둥이보다 공황장애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는 분명한 유전적 경향성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다만 “바로 이 유전자다”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있는 특정 유전자나 염색체 부위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겁이 많고 사소한 자극에도 불안을 잘 느끼는 기질(불안감수성이 높은 성향)을 타고난 경우 공황장애가 더 잘 생기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고난 성격 탓”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한 시기, 수면이 무너진 생활, 과도한 업무나 인간관계의 갈등 같은 환경적 요인들이 함께 겹쳐야 실제로 발작이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유전적 경향이 있다고 해서 그 운명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뇌의 화학적 균형은 치료를 통해 다시 맞춰질 수 있고, 실제로 많은 분들이 적절한 치료 이후 몇 년째 발작 없이 지내고 계십니다. 유전은 성향의 일부일 뿐, 결론이 아닙니다.
역학으로 보는 공황장애
(2016년 조사)
(2016년 조사)
평생 유병률
2016년 국내 조사에 따르면 공황장애의 평생 유병률(살면서 한 번이라도 진단 기준을 충족할 확률)은 0.5%, 1년 유병률은 0.2%로 나타났습니다. 2006년과 2011년 조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이 수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호주 같은 서구권 국가의 평생 유병률(1.6~6.8%)과 비교하면 아직 국내 수치가 낮은 편이지만, 이는 실제 발생률의 차이라기보다 병원을 찾아 진단받는 비율의 차이일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 자주 묻는 질문
상담실에 처음 오시는 분들 중 상당수가 “제가 너무 예민한 사람인가 봐요”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심장 검사도, 뇌 검사도 다 정상이라는 말을 듣고 나면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지죠. 몸에는 이상이 없는데 몸이 계속 이상 신호를 보내는 상황, 그게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 글에서 가장 전해드리고 싶은 건 하나입니다. 지금 겪고 계신 그 증상은 의지가 약해서도, 성격이 유별나서도 아닙니다. 경보 시스템 하나가 예민하게 맞춰져 있을 뿐이고, 이 시스템은 다시 조정할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혹시 나도 해당될까” 궁금하셨던 분들을 위해 구체적인 자가진단 방법과,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 힘든 분들의 이야기를 함께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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