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며칠을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답답하고 시린 가슴을 달래볼 길이 없어서 이곳에 조심스럽게 제 속마음을 남겨보아요. 저는 올해 6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평범한 주부예요.
젊은 시절에는 참 안 해본 고생이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어요. 남편 벌이가 넉넉지 않아서 식구들 건사하려고 식당 주방일도 하고 부업도 밤새워가며 정말 하루를 이틀처럼 쪼개 썼거든요. 그때는 몸이 부서져라 힘들어도 내 손으로 번 돈으로 애들 공책 사주고 맛있는 반찬 해 먹이는 낙에 힘든 줄도 모르고 당당하고 씩씩하게 살았어요.
동네에서도 살림살이 야무지게 잘한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활기찬 사람이 바로 저였답니다. 그런데 평생을 가족들만 바라보며 정신없이 헌신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세상은 제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저만치 앞서 달려가 버렸고 저 혼자만 캄캄한 무인도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은 지독한 고립감에 매일 밤 눈물짓고 있어요.
요즘 저를 가장 작고 초라하게 만드는 건 하루가 다르게 변해버린 낯선 세상의 모습들이에요. 며칠 전에는 날씨가 참 좋아서 모처럼 용기를 내어 혼자 동네에 새로 생긴 예쁜 카페에 들어가 봤어요.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며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는데 카운터에는 직원이 없고 커다란 텔레비전 화면 같은 기계만 덩그러니 서 있더라고요.
글씨도 너무 작고 영어로만 적혀 있어서 아무리 화면을 이리저리 눌러봐도 제가 원하는 따뜻한 커피는 고를 수가 없었어요. 손가락은 바들바들 떨리고 등줄기에서는 서늘한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 뒤에 젊은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니까 숨이 턱 막히고 눈앞이 하얘지더라고요.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서 죄송하다고 꾸벅 인사만 연신 하고는 도망치듯 카페를 빠져나오는데 그깟 커피 한 잔도 내 손으로 못 사 먹는 바보 천치가 된 것 같아 길거리 한복판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었어요.
이런 일은 비단 카페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은행에 가서 창구 번호표를 뽑으려고 해도 기계로 다 해야 하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려 해도 테이블에 붙어있는 작은 기계로 주문을 해야 하더라고요. 심지어 병원 진료 예약조차 휴대폰으로 하지 않으면 아침 일찍부터 먼 길을 가서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어요.
자식들한테 물어보려고 전화를 걸어도 애들이 바쁘게 일하는 중에 미안하기도 하고 처음 한두 번은 친절하게 가르쳐 주던 아이들도 자꾸 같은 걸 물어보면 한숨을 푹 쉬며 엄마는 왜 이렇게 못 따라오냐고 짜증 섞인 핀잔을 주더라고요. 그럴 때면 내 배 아파 낳은 자식들한테조차 짐스럽고 귀찮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아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제 자신이 세상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유통기한 지난 폐기물처럼 느껴져서 깊은 우울감에 빠져버려요.
예전의 저는 참 씩씩하고 뭐든 혼자서 척척 해내는 당찬 사람이었어요. 새벽 시장 바닥을 누비며 백 원이라도 더 깎으려고 당당하게 흥정도 하고 복잡한 은행 업무며 관공서 서류 떼는 일도 남편 대신 제가 다 도맡아서 아주 완벽하게 처리했거든요. 내 가정 하나만큼은 내 손으로 완벽하게 지켜낸다는 그 단단한 자부심 하나로 평생을 버텨왔는데 이제는 그 모든 과거의 영광이 한낱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기분이에요.
텔레비전을 켜도 젊은 사람들이 쓰는 줄임말이나 영어투성이 라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고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봐도 저만 이해하지 못하고 겉도는 것 같아 텔레비전 전원을 툭 꺼버리게 돼요. 몸은 멀쩡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데 제 영혼은 이미 이 세상에서 완전히 퇴출당해 버린 것 같아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버텨내야 하나 두려움이 앞서고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아만 있자니 남은 제 인생이 너무 억울하고 불쌍해서 나름대로 용기를 내보려고 속으로 수백 번도 넘게 다짐을 했어요. 구청이나 동네 복지관에서 나이 든 사람들을 위해 스마트폰 교육이나 컴퓨터 교실 같은 걸 연다는 소식을 듣고 거기에라도 등록해서 뭐라도 새로 배워보자 결심을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복지관 문턱을 밟으려니 덜컥 무서운 공포가 저를 짓눌러서 현관 앞에서 발길을 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남들은 다 척척 잘 알아듣는데 저 혼자만 둔해진 머리 때문에 진도를 못 따라가서 강사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너무 컸어요. 나이 먹고 주책맞게 저런 것도 하나 못 알아듣는다고 뒤에서 수군거리며 비웃을 것만 같은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나 두려워서 결국 아무런 새로운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또다시 안전하고 좁은 제 방구석으로 숨어버리는 짓을 반복하고 있어요.
주변에 친한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만나보면 다들 저보다 훨씬 똑똑하고 세상에 잘 적응하며 사는 것 같아 뼈저리게 부러워요. 휴대폰으로 물건도 척척 싸게 잘 사고 예쁜 사진도 찍어서 잘만 올리던데 왜 저만 유독 이렇게 바보같이 기계 하나 무서워서 벌벌 떨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걸 두려워하는지 제 못난 성격이 너무나 원망스럽고 미워요. 친구들 모임에 나가도 다들 자기들끼리 아는 새로운 세상 이야기를 훠이훠이 하는데 저 혼자만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치만 살피다가 집에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텅 빈 거실에 홀로 앉아 있으면 나라는 사람의 존재 가치가 완전히 바닥을 치다 못해 땅속 깊은 곳으로 곤두박질치는 기분이 들어서 심장이 바늘에 찔린 것처럼 아프고 눈물만 하염없이 쏟아져요. 평생 남한테 기대지 않고 꼿꼿하게 살아온 제 마지막 자존심마저 이 낯선 세상 앞에서는 갈기갈기 찢겨나가서 이제는 길거리의 흔한 돌멩이보다도 못한 존재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밤잠을 설치며 수없이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가 이렇게 이곳에 계신 지혜로운 분들께 아주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조언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여쭤보고 싶고 진심으로 배우고 싶은 첫 번째는 이렇게 산산조각이 나버린 제 자존감을 도대체 어떻게 다독이고 스스로를 다시 귀하게 여길 수 있는지 그 현실적인 마음의 처방전이에요.
세상이 너무 빨라서 제가 뒤처진 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그게 도무지 납득이 안 되고 저 자신을 쓸모없는 인간으로만 깎아내리게 되네요. 기계 좀 못 다루고 유행하는 말 좀 모른다고 해서 제 지난 60년의 억척스럽고 숭고했던 삶 자체가 다 부정당하는 건 아닐 텐데 왜 저는 매일 스스로를 이렇게 모질게 괴롭히고 학대하고 있는 걸까요.
남들과 비교하며 한없이 작아지는 이 지독한 굴레에서 벗어나 비록 세상 물정에는 조금 어둡고 행동은 느릿느릿하지만 따뜻하고 정 많았던 예전의 당당한 제 모습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구체적인 마음 챙김의 방법이 있다면 제발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가르쳐 주세요. 스스로를 미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이 지옥 같은 마음의 감옥에서 이제는 제발 단 하루라도 온전히 벗어나 편안하게 제 자신을 안아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꼭 알고 싶은 것은 남들 시선이나 비웃음에 굴하지 않고 뻔뻔하고 당당하게 아주 작은 것부터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첫걸음 떼기의 기술을 묻고 싶어요.
기계 앞이나 젊은 사람들 앞에서 주눅이 들어서 식은땀을 흘리는 대신 모르면 모른다고 당당하게 묻고 다시 끈기 있게 배울 수 있는 그 단단한 용기를 도대체 어디서부터 끌어와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다시 복지관 문을 열고 들어가서 느릿느릿 더듬더듬 스마트폰을 배우다가 실수하더라도 스스로 무너지지 않고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배포를 기르고 싶거든요.
세상이 휙휙 변해도 나는 내 속도대로 천천히 걸어가겠다는 단단한 배짱을 가지려면 거울 앞에서 매일 어떤 긍정적인 말로 저 스스로를 다독여야 할까요. 두려움을 핑계로 계속 도망만 치다 가는 정말 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캄캄한 우물 안에서 억울한 눈물만 흘리다 끝날 것 같아 덜컥 겁이 나서 이제는 기필코 변하고 싶고 용기를 내고 싶어요.
저도 남은 제 소중한 인생은 세상의 빠른 속도에 치여서 전전긍긍하며 눈치 보는 불쌍한 늙은이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신기해하며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움을 누리는 유쾌하고 밝은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아무도 제 이름을 불러주지 않고 세상이 저를 다 지워버린 것 같아 무섭고 외로웠던 제 아픈 속내를 이렇게 글로나마 길게 쏟아내고 나니 신기하게도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던 커다란 바위가 아주 조금은 밀려난 것처럼 숨쉬기가 한결 수월해지네요.
저처럼 나이 들어 세상과 멀어진 것 같아 눈물 흘려보셨거나 그런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신 훌륭한 분들의 뼈 있고 따뜻한 조언이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는 저에게는 세상을 다시 살아갈 튼튼한 생명줄이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