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매일 아침 지옥철을 뚫고 출근해서 웃는 얼굴로 하루를 버텨내는 평범한 30대 직장인이에요.
사내에서 저는 꽤 인정받는 일명 에이스로 통했어요. 상사가 지시한 일은 기한을 넘긴 적이 없고 갑자기 떨어지는 추가 업무도 불평 없이 묵묵히 쳐냈거든요.
후배들이 곤란해하면 나서서 해결해 주고 다른 팀과의 협업에서도 항상 웃는 낯으로 유연하게 대처하다 보니 어딜 가나 일 잘하고 성격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완벽해 보이는 제 모습이 마치 정교하게 짜인 코드를 따라 움직이는 로봇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출근 카드를 찍는 순간부터 제 진짜 감정은 철저하게 스위치를 꺼버리고 그저 회사에서 원하는 유능하고 착한 직원의 가면에 철저하게 숨어버린 것이 제 조용한 번아웃을 불러온 가장 치명적인 계기였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완벽하게 굴러가는 톱니바퀴 같았겠지만 제 내면은 서서히 기름이 말라비틀어져 부서지기 직전이었다는 걸 저조차도 눈치채지 못하고 무식하게 버텼던 거죠.
결정적으로 제 상태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몇 달 동안 밤을 새워가며 준비했던 대형 프로젝트가 아주 성공적으로 끝났던 날이었어요.
대표님까지 나서서 고생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팀원들은 드디어 끝났다며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죠. 그런데 그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정작 그 모든 걸 주도했던 제 마음속에는 아무런 감정도 일지 않았어요. 기쁘거나 후련한 건 고사하고 심지어 고생했다는 억울함이나 화조차 나지 않고 그저 끝났네 이제 집에 가서 누워야지 하는 무미건조한 생각뿐이더라고요.
마치 내 영혼이 내 몸을 빠져나가서 천장에서 무표정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소름 끼치는 이질감과 무슨 일을 겪어도 기계처럼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그 지독한 정서적 마비 상태가 저를 갉아먹고 있던 진짜 무서운 증상이었어요.
슬퍼서 눈물이 나거나 힘들다고 주저앉아 펑펑 우는 번아웃만 있는 줄 알았는데 분노도 슬픔도 기쁨도 완전히 거세당한 채 그저 주어진 일을 기계적으로 처리하며 하루하루 영혼 없이 닳아 없어지는 조용한 번아웃이 훨씬 더 무섭고 잔인하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느꼈어요.
일상생활에서도 그 마비 증세는 아주 깊숙하게 퍼져나갔어요.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씻지도 않고 캄캄한 거실 소파에 그대로 쓰러져서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이 매일 두세 시간씩 이어졌어요. 배가 고프다는 감각도 희미해져서 그저 생존을 위해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배달 음식을 기계적으로 씹어 삼켰고 주말이 되어도 밖으로 나가고 싶은 의욕이 영 퍼센트에 수렴해서 이틀 내내 침대에 미라처럼 결박되어 있었어요.
제일 좋아하던 취미였던 영화 감상도 줄거리가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포기했고 친구들이 술을 마시자고 불러내도 피곤하다는 핑계로 전부 철벽을 쳤죠.
겉으로는 회사에서 가장 성실하고 밝게 일하는 사람이었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있지 않아서 스스로를 텅 빈 껍데기나 쓸모없는 건전지처럼 취급하며 방치했던 시간들이 제 몸과 마음을 더욱 회복 불가능한 늪으로 끌고 들어갔어요.
내일 아침이 밝아오면 또다시 완벽한 에이스의 가면을 쓰고 억지웃음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에 밤마다 가슴이 답답해서 잠을 설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죠.
그 수많은 텅 빈 날들 중에서 제 자신을 가장 비참하게 마주해야 했던 순간은 어느 날 우연히 직무 스트레스 자가 진단 테스트를 해보게 되었을 때예요. 회사 메신저로 동료가 요즘 유행이라며 링크를 하나 보내줬는데 평소 같으면 그냥 무시했겠지만 그날따라 왠지 모르게 한 번 해보고 싶더라고요. 솔직히 저는 제가 번아웃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지각 한 번 한 적 없고 업무 펑크를 낸 적도 없고 주변 사람들과 트러블도 없이 겉으로는 너무나도 멀쩡하게 직장 생활을 잘 해내고 있었으니까요.
그저 요즘 내가 조금 무기력해졌구나 정도로만 가볍게 치부하며 문항들을 클릭해 나갔어요. 그런데 최종 결과 버튼을 누르고 화면에 뜬 이미지를 본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면서 그동안 억눌러왔던 알 수 없는 서러움이 왈칵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화면 한가운데 노란색 경고 아이콘과 함께 주의 필요 상태 16점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어요. 그 아래에 직무 스트레스가 높은 편이라 정서적 소진과 업무 영향에 주의가 필요한 상태예요라는 문장을 읽는데 마치 누군가 제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정곡을 찌른 것 같아 멍해지더라고요.
제가 상위 7% 구간에 위치한다는 사실과 삼십 대 남성 평균 점수보다 무려 이 점이나 높다는 통계를 확인하고 나니 제가 그동안 얼마나 미련하게 제 상처를 외면해 왔는지 뼈저리게 실감이 났어요.
내가 겉으로 아무리 완벽한 척 웃고 떠들며 씩씩하게 일해도 내면은 이미 정서적 소진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려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구나라는 객관적인 현실을 숫자와 그래프로 마주하게 된 그 순간이 제 인생에서 가장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던 고비였어요.
이 충격적인 주의 경고등을 보고 나서 저는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회사 한복판에서 산산조각이 나서 부서져 버리겠다는 끔찍한 위기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살기 위해 아주 조금씩 제 얼굴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가짜 에이스의 가면을 벗어던지는 연습을 시작했어요. 가장 먼저 실천한 건 무조건 할 수 있습니다라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던 제 입을 막고 제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거였어요.
상사가 무리한 일정을 요구할 때 예전 같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해가겠습니다 했겠지만 이제는 현재 진행 중인 업무가 있어서 이 기한은 맞추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명확하게 제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죠.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버리고 욕을 조금 먹더라도 내 몸과 마음의 한계치를 방어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니까 묘하게도 어깨를 짓누르던 거대한 쇳덩어리가 조금씩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어요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아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건 정말 엄청난 수확이었죠.
업무 방식을 바꾸는 것과 동시에 퇴근 후 텅 비어버린 제 일상을 아주 작은 온기로 채우는 작업도 병행했어요. 방전된 체력으로 거창한 운동을 시작하는 건 불가능했기에 그저 퇴근길에 세 정거장 먼저 내려서 집까지 이어지는 하천 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부터 시작했죠.
이어폰도 끼지 않고 흘러가는 강물 소리와 뺨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결에 집중하면서 걷다 보면 회사에서 억지로 꾹꾹 눌러 담았던 복잡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걸음마다 조금씩 흩어져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어요.
또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고 입에 쑤셔 넣던 배달 음식을 완전히 끊고 마트에서 신선한 채소와 고기를 사다가 서툴지만 직접 요리를 해 먹기 시작했어요.
도마 위에서 경쾌하게 칼질을 하고 찌개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냄새를 맡으며 내 손으로 갓 지은 따뜻한 밥을 차려 먹는 그 소박한 행위 자체가 텅 비어있던 제 마음의 구멍을 아주 포근하고 든든하게 메워주는 최고의 심리 치료제가 되어주더라고요.
나를 챙긴다는 감각이 살아나니까 죽어있던 감정들도 서서히 싹을 틔우듯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물론 이런 노력들이 하루아침에 저를 백 퍼센트 생기 넘치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건 아니에요. 지금도 여전히 회사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무의식적으로 방어 기제가 발동해서 감정 스위치를 내리려고 할 때가 있고 피곤함이 극에 달하면 다시 혼자만의 캄캄한 동굴 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충동과 싸우고 있어요.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제가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주말에 무기력하게 누워있어도 그런 제 자신을 탓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아 내 몸이 지금 휴식이 간절하구나 하고 너그럽게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나니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동료들과 웃으며 대화할 수 있게 되었고 억지로 짜내지 않아도 업무의 우선순위를 융통성 있게 조절하는 진짜 에이스의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정서적 소진이라는 끔찍한 병명을 마주했던 그날의 충격이 결국 저를 살린 셈이에요.
마지막으로 이 긴 글을 빌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무실 어딘가에서 겉으로는 너무나도 평온하고 완벽하게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차갑게 재만 남은 화로처럼 식어가고 계실 수많은 조용한 번아웃 겪는 직장인 분들에게 간절한 마음을 담아 위로를 전하고 싶어요.
다들 퇴근하고 나면 씻을 힘도 없이 쓰러지면서 회사에서는 왜 그렇게 바보같이 티도 못 내고 웃고만 계시나요. 남들에게 피해주기 싫어서 그리고 내가 무너지면 모든 게 끝장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꾸역꾸역 부여잡고 있는 그 책임감이 사실은 여러분을 가장 날카롭게 찌르고 있다는 걸 꼭 아셨으면 좋겠어요.
눈물을 흘리거나 비명을 질러야만 아픈 게 절대 아니에요 밥을 먹어도 아무 맛이 안 나고 사람들과 웃고 떠들어도 속이 텅 빈 것처럼 춥고 공허하다면 그게 바로 마음이 피를 흘리고 있다는 가장 확실하고 무서운 증거니까 제발 겉보기에 멀쩡하다는 이유로 여러분의 상처를 방치하고 외면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회사라는 거대한 기계를 굴리기 위해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무감각한 톱니바퀴나 소모품이 아니에요. 여러분 자신의 우주에서 가장 귀하고 소중한 단 하나뿐인 존재랍니다. 오늘 당장 남들의 기대를 조금 실망시킨다고 해도 직장 동료들에게 무능하다는 소리를 한두 번 듣는다고 해도 여러분의 진짜 가치와 인생은 절대 흠집 나거나 무너지지 않아요. 나를 갉아먹으면서까지 지켜내야 할 대단한 직장이나 업무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걸 꼭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혹시라도 나는 멀쩡한데 왜 이렇게 우울하지 싶으시다면 저처럼 마음 건강 테스트라도 꼭 한번 해보시고 객관적인 수치로 뜬 경고등을 핑계 삼아서라도 세상 눈치 보지 말고 아주 이기적으로 여러분 자신만 생각하며 온전하게 푹 쉬어가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해 주세요.
여러분이 잃어버린 그 따뜻하고 다채로운 감정들을 다시 되찾는 날까지 여러분의 회복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또 응원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가면 쓰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부디 오늘 밤만큼은 다 내려놓고 가장 편안하게 달콤한 숙면을 취하시길 바랄게요.
코치님 덕분에 고민이 해결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