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약간 불편한 일이 생기거나 앞으로 해야 할 말이 있으면, 실제로 그 사람과 이야기하기도 전에 머릿속에서 대화를 몇 번이고 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누군가에게 조금 서운한 일이 있었으면 집에 오는 길부터 시작합니다.
‘다음에 또 저렇게 말하면 나는 이렇게 이야기해야지.’
그러면 머릿속의 상대방이 또 뭐라고 대답합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데요?’
그러면 저는 거기에 다시 대답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해도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여기서 끝나면 괜찮은데 이상하게 계속 이어집니다.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는 버전, 제가 말을 너무 세게 해서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버전, 반대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집에 와서 후회하는 버전까지 혼자 다 만들어봅니다.
심지어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그 사람과 한바탕 대화를 끝낸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가끔은 샤워하면서도 하고, 운전하면서도 하고, 잠들기 전에도 합니다.
더 웃긴 건 그렇게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준비해놓고 실제로 그 사람을 만나면 별일 없이 “안녕하세요” 하고 지
나갈 때가 많다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지난밤에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대화는 대체 뭐였나 싶습니다.
예전에는 이걸 그냥 ‘생각이 많은 성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피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벌어진 일 하나를 가지고 과거의 대화도 다시 돌려보고,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르는 대화까지 미리 만들
어놓으니 머리가 쉴 시간이 없는 느낌입니다.
특히 상대방의 말투나 표정이 조금 애매했던 날은 더 심합니다.
“그 말에 다른 뜻이 있었나?”
“내가 뭔가 잘못했나?”
“다음에 비슷한 말을 들으면 어떻게 대답하지?”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실제 사실과 제가 상상한 상황의 경계도 애매해집니다.
가만히 따져보면 실제로 확인된 사실은 별로 없습니다.
그 사람이 한 말 한두 마디가 전부인데, 나머지 이야기는 제가 머릿속에서 거의 장편으로 만들어낸 셈이죠.
그래서 요즘은 생각이 시작되면 혼자 이렇게 물어보려고 합니다.
‘지금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 아니면 내가 미리 만들어보고 있는 일인가.’
이렇게 생각하면 잠깐 멈춰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오래된 습관인지 어느새 또 머릿속에서 다음 장면을 만들고 있네요.
사람에게 상처받는 것도 힘들지만, 어쩌면 저는 실제 사람보다 제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사람과 더 오래 싸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다른 분들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대화를 머릿속에서 미리 해보시나요?
그리고 그 생각이 시작됐을 때 어떻게 끊으시는지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