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면서 몇 번이나 "이제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요?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 없어 보이는 사람도
마음속 싶은 곳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처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지요.
그 상처를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때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면서 살아가지만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한 사람의 말이나 관심으로 인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니까요.
얼마 전에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은 한 마디를 들었습니다.
자세하게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우연히 처음 보는 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거든요.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가셨지만 그 내용이 마음이 쓰여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렸어요.
- 저는 당신이 진심으로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라고요.
그랬더니 그 분이 눈을 동그랗게 뜨시더군요.
- 태어나서 모르는 사람에게 그런 말, 처음 들어봐요.-
그리고 지금까지 담담한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나가시던 분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 그렇게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그 말이 너무 듣고 싶었어요.-
그 말을 듣고 우리 두 사람 모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저는 특별한 말을 한 것도 아니었어요.
마음이 쓰이던 그 분이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 마음을 전한 것 뿐이었지요.
그런데 그 짧은 한 마디의 말은 누군가는 오랫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이었던 것입니다.
행복하라는 말은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흔하게 쓰이는 말이라 어쩌면 진심을 담기에는 조금 가벼워진 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그 분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본 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자주 다른 사람에게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분에게 저의 흔적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을 던진 저에게 오히려 깊은 흔적이 남은 것을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무심코 건넨 한 마디가 상처가 되기도 하고 하루를 버틸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2006년 개봉한 송해성 감독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의 삶을 변화시키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사람은 정말 사람을 통해 변할 수 있는지,
그리고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 사람이 된다."
- 데스몬드 투투
주인공 문유정은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인물입니다.
빼어난 외모에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게 자랐죠.
한 때는 이름이 알려진 가수였고 지금은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비록 학교에서는 꼴통 교수로 정평이 났지만요.
세 번째 시도에서도 실패한 유정은 고모인 모니카 수녀의 권유로 교도소에 가서 사형수 정윤수를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결코 따뜻하지는 않습니다.
유정은 윤수가 불편했고
윤수 역시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모니카 수녀에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죠.
하지만 유정과 윤수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둘 다 세상에 상처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었죠.
한 사람은 죽고 싶어 하고 한 사람은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떠한 희망도 갖지 못한채로요.
"우리는 서로를 통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
- 데스몬드 투투
그렇게 시작된 이상한 만남은 매주 목요일마다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약간의 적개심도 가졌지만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 가족에 대한 상처, 그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 사람은 어느 순간 서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요.
유정은 윤수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윤수는 유정을 통해 닫았던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합니다.
아무 것도 달라진 것 같지 않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사형수 미화' 이슈로 논쟁이 많았습니다.
꼭 윤수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한 사람을 그 사람이 했던 행동으로 정의하곤 합니다.
뉴스에 나오는 범죄자들을 보면서
그 사람들의 어린 시절이나 상처, 두려움,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의 범죄를 상처받은 마음 때문이라며 용서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한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죄에 대한 책임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니까요.
유정 역시 처음에는 윤수를 '사형수' 라는 틀 안에 넣고 바라보지요.
윤수 또한 유정을 '부모 잘 만나 팔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삶을 알게 되면서 시선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지금의 각자가 있기 전에 존재했던 한 사람으로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지요.
저는 이 부분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어려운 질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잘못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그 사람을 한 사람의 온전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어쩌면 누군가를 이해한가는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을 이해하거나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를 끝까지 바라보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둠은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
오직 빛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미움은 미움을 몰아낼 수 없다.
오직 사랑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 마틴 루터 킹
아무리 윤수의 어린 시절이 애처롭더라도 그가 저지른 범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죄를 이해한다고 해서 용서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유정과 윤수를 서로를 만나면서 상처와 미움 속에 갇혀 있던 자신의 삶을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을 만난다고 내 아픈 과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을 통해 과거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달라질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군가 때문에 상처받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를 통해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기도 한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의 삶을 깊이 있게 알 수는 없지요.
겉으로는 밝고 씩씩해보이는 사람도 말하지 못한 상처가 있을 수 있고
우리가 쉽게 판단했던 사람에게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삶의 이야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보는 것,
그리고 내가 건넨 한 마디가 상대방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 생각해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삶에 조금은 따뜻한 흔적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당신이 진심으로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