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해진 것은
네가 그 장미꽃을 위해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들려주는 이 말은 짧지만 오래 마음에 남아요. 우리는 흔히 특별한 것을 찾아다녀요. 남들이 인정하는 사람, 눈에 띄는 결과, 처음부터 반짝이는 재능, 쉽게 자랑할 수 있는 관계를 원하기도 하죠. 그래서 가끔은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이 평범하게 느껴져서, 더 멋진 무언가가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아요.
그런데 어린 왕자는 수많은 장미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아요. 자신이 살던 작은 별에 있던 장미가 세상에 하나뿐인 줄 알았는데, 지구에는 똑같이 생긴 장미가 아주 많았기 때문이에요. 겉모습만 보면 어린 왕자의 장미는 특별할 것이 없는 꽃처럼 보였겠죠.
하지만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줘요. 그 장미가 특별한 이유는 꽃 자체가 세상에 단 하나라서가 아니라, 어린 왕자가 그 꽃을 위해 시간을 썼기 때문이라고요. 물을 주고, 유리 덮개를 씌워 주고, 벌레를 잡아 주고, 투정을 들어 주며 함께 보낸 시간들이 장미를 유일한 존재로 만들었다는 뜻이에요.
생각해 보면 우리 삶에도 그런 장미가 있어요. 처음에는 별다를 것 없던 동네 카페가 어느 순간 편안해지는 이유는, 그곳에서 보낸 오후들이 쌓였기 때문일 거예요. 처음에는 어색했던 친구가 유난히 소중해지는 것도 함께 웃고, 고민을 나누고, 서운함을 풀어 낸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고요.
오래 쓴 물건도 그래요. 새것일 때는 그저 물건 하나일 뿐이지만, 자주 쓰다 보면 손에 익고 추억이 붙어요. 오래된 가방의 작은 흠집이나 자주 입던 옷의 낡은 부분이 이상하게 아쉽고 쉽게 버릴 수 없는 것도 그 안에 내 시간이 들어 있기 때문일 거예요.
우리는 종종 관계가 자연스럽게 유지되기를 바라요. 좋아하면 알아서 이어지고, 친하면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하지만 여우는 관계를 맺는 일을 ‘길들인다’는 말로 설명해요. 여기서 길들인다는 말은 누군가를 내 뜻대로 바꾼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서로에게 조금씩 익숙해지고, 수많은 사람 가운데 서로를 특별하게 만드는 과정에 가까워요.
그래서 관계에는 시간이 필요해요. 매일 길게 연락하지 못하더라도 안부를 묻는 마음, 바쁜 와중에도 약속을 기억하는 태도, 상대의 말을 대충 넘기지 않고 들어 주는 시간이 쌓여야 해요. 그 시간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어느 날 돌아보면 관계를 붙잡고 있는 가장 단단한 힘이 되어 있어요.
물론 모든 관계를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나를 계속 힘들게 하거나 일방적으로 지치게 하는 관계라면 거리를 두는 선택도 필요해요. 책임은 나를 희생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성의를
다하는 일이니까요.
이 말은 사람에게만 적용되지 않아요. 내가 오래 붙잡아 온 꿈도 그렇고, 아직 서툰 취미도 그래요. 처음에는 눈에 띄는 결과가 없어서 괜히 시작했나 싶을 수 있어요. 남들보다 느린 것 같고, 더 잘하는 사람을 보면 자신감이 흔들릴 수도 있죠. 그래도 내가 그 일에 시간을 쓰고, 조금씩 익숙해지고, 다시 시도하는 날들이 쌓이면 그것은 어느새 내 삶에서 쉽게 놓을 수 없는 무언가가 돼요.
특별한 것은 멀리 있는 완벽한 무언가가 아닐지도 몰라요. 오늘 내가 물을 주고, 마음을 쓰고, 시간을 내는 대상이 언젠가 나에게 가장 특별한 장미가 될 수 있어요.
그러니 오늘은 한 가지를 조금 더 잘 돌봐 보면 어때요. 오래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짧게 안부를 전해도 좋고, 미뤄 둔 내 일을 십 분만 다시 시작해도 좋아요. 수많은 장미 중 하나였던 존재가 단 하나의 장미가 되는 일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내가 건네는 작은 시간에서 시작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