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아침을 먹기도 전에 불가능한 일 여섯 가지를 믿었단다.”
이 말을 처음 들으면 조금 황당해요. 아침을 먹기도 전에 불가능한 일 여섯 가지를 믿었다니요. 보통 사람이라면 알람을 세 번쯤 끄고, 침대 밖으로 나갈지 말지와 싸우고, 냉장고에 먹을 게 있는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잖아요. 그 와중에 불가능한 일을 여섯 개나 믿을 여유가 어디 있나 싶어요.
게다가 세상에는 너무 많은 ‘현실적인 사람’이 있어요. 누군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하면 “그걸로 돈은 돼?”라는 질문이 먼저 나오고, 조금 색다른 길을 말하면 “그래서 성공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데?”라는 이야기가 따라와요. 내가 무언가 하고 싶다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시작하기도 전에 안 될 이유부터 스무 개쯤 떠올라요. 시간도 부족하고, 돈도 부족하고, 재능도 부족하고, 이미 잘하는 사람은 너무 많고, 실패하면 민망하고, 지금 시작하기에는 늦은 것 같고요.
오늘의 명언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아니라, 정확히는 그 다음 이야기인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 에서 가져왔어요. 거울 나라에서 앨리스는 하얀 여왕과 대화를 나눠요. 앨리스는 “불가능한 것을 믿으려고 해도 소용없어요”라고 말해요. 그러자 여왕은 아주 태연하게 대답하죠. 연습이 부족해서 그렇다고요. 자신은 앨리스 나이였을 때 매일 반 시간씩 불가능한 것을 믿는 연습을 했고, 가끔은 아침 식사 전에 불가능한 일 여섯 가지를 믿었다고요.
이 장면은 동화답게 엉뚱하고 우스워요. 여왕은 말하는 중에도 숄이 자꾸 풀리는 바람에 정신이 없고, 앨리스는 그런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나 당황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대화를 오래 생각하게 돼요. 왜냐하면 우리도 매일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쓰고 있기 때문이에요.
“나는 원래 사람들 앞에서 말 못 해.”
“지금 와서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건 불가능하지.”
“내가 그 일을 해내는 건 무리야.”
“저 사람과 다시 편하게 지내는 건 안 될 거야.”
“이번에는 또 실패할 게 뻔해.”
물론 어떤 일은 정말 어렵고, 현실적인 조건을 무시한 채 무조건 믿기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에요. 월세가 내일인데 “통장에 돈이 생길 거야”라고 여섯 번 외친다고 자동으로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죠. 마감이 오늘인데 노트북을 덮고 누워서 “나는 이미 완성했어”라고 생각한다고 글이 알아서 써지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의미에서 여왕의 말은 현실 도피를 권하는 명언은 아니에요.
오히려 이 말은 우리가 너무 빨리 가능성의 문을 닫아 버리는 습관을 건드려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성공한 사람의 결과를 보고 나서야 “원래 저 사람은 될 사람이었어”라고 말하기 쉬워요. 하지만 그 사람이 처음 시작했을 때도 주변 사람들이 다 확신했을까요.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 손님이 없던 날도 있었을 테고, 첫 작품을 만들었을 때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처음 영상을 올렸을 때 조회수가 거의 없었을 수도 있고,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문장 하나를 붙잡고 몇 시간씩 고민했을 수도 있죠.
지금은 너무 자연스러워 보이는 일도 처음에는 대개 조금 우스워 보여요. 누군가 “나는 앞으로 이걸 할 거야”라고 말했을 때, 아직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으면 사람들은 쉽게 고개를 갸웃해요. 사실 그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직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세상에 새롭게 생기는 일들은 대부분 증명되기 전까지는 이상해 보일 수밖에 없어요.
"불가능한 것을 믿는다는 건, 터무니없는 망상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아직 결과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내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일"
예를 들어 이런 거예요. 지금 글을 쓰는 사람이 “나는 언젠가 내가 쓴 글로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를 줄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아직 운동이 서툰 사람이 “몇 달 뒤에는 계단을 올라가도 숨이 덜 찰 거야”라고 믿는 것. 사람들 앞에서 말하면 목소리가 떨리는 사람이 “그래도 언젠가는 내 이야기를 끝까지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연락이 뜸해진 친구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내며 “조금은 다시 가까워질 수 있겠지”라고 기대하는 것.
이런 마음은 대단히 거창하지 않아요. 오히려 아주 평범해서 더 중요해요. 큰 꿈은 멋있지만, 큰 꿈만으로는 매일을 버티기 어려울 때가 많으니까요. 그럴 때 필요한 건 ‘언젠가 대단한 사람이 될 거야’ 같은 압도적인 다짐보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나아질 수 있어”라는 작고 조용한 믿음일지도 몰라요.
하얀 여왕이 말한 “연습”이라는 단어도 마음에 남아요. 믿음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이니까요. 우리는 보통 공부나 운동, 요리처럼 눈에 보이는 기술만 연습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스스로를 믿는 마음도 연습하지 않으면 금방 약해져요. 한 번 실패하면 “역시 나는 안 돼”라고 결론 내리는 쪽이 훨씬 익숙해지고, 누군가의 차가운 말 한마디에 계획 전체를 접는 일도 생겨요.
그래서 믿음은 감정이 좋을 때만 생기는 게 아니라, 잘 안 되는 날에도 아주 조금 남겨 두는 선택에 가까워요.
가령 새벽까지 준비한 일이 기대만큼 되지 않았다고 해볼게요. 그날은 솔직히 아무 말도 듣기 싫고, 모든 게 귀찮고, 내가 왜 이걸 시작했나 싶을 수 있어요. 그럴 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같은 말이 오히려 피곤하게 들릴 수도 있어요. 억지로 괜찮은 척할 필요는 없어요. 실망한 날에는 실망했다고 인정하는 게 먼저예요.
다만 그날의 실패를 내 인생 전체의 판결문으로 만들지는 않았으면 해요.
“이번 결과가 아쉬웠다”와 “나는 재능이 없다”는 전혀 다른 말이에요.
“오늘 계획을 못 지켰다”와 “나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다”도 달라요.
“누군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와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는 더더욱 같지 않고요.
그 차이를 알아차리는 것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을 믿는 첫 번째 연습일 수 있어요. 한 번의 결과만으로 나를 완성된 사람처럼 단정 짓지 않는 것. 아직 모르는 내 모습을 남겨 두는 것. 지금의 부족함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고 미리 결정하지 않는 것 말이에요.
사실 우리 마음속에는 작은 재판관이 한 명씩 사는 것 같아요.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하면 팔짱을 끼고 나타나요. “그래서 네가 그걸 할 수 있어?”라고 묻죠. 준비가 부족하면 준비가 부족하다고 하고, 준비를 하면 늦었다고 하고, 용기를 내면 괜히 나섰다고 말해요. 잘되면 운이 좋았다고 하고, 안 되면 거봐라 하며 고개를 끄덕여요. 꽤 피곤한 재판관이에요.
이 재판관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려워요. 현실을 살피고 위험을 따져 보는 마음도 필요하니까요. 문제는 그 목소리가 너무 커져서 내가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게 될 때예요. 계획을 세우기도 전에 포기하고, 연락을 보내기도 전에 거절당한 기분이 들고, 도전하기도 전에 창피해할 일을 미리 상상하는 순간들이요.
그럴 때 하얀 여왕의 이상한 조언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그럼 일단 불가능한 일 하나만 믿어 볼래?”
꼭 여섯 개가 아니어도 돼요. 여왕은 아무래도 왕국을 운영하는 분이라 아침부터 스케일이 컸던 것 같고, 우리는 보통 사람이라 하나로 충분해요. 오늘 나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일 하나를 골라서, 완전히 믿지는 못하더라도 ‘혹시 가능할지도 모른다’ 정도의 틈을 내주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나는 아직 내 일을 좋아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나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편해질 수 있다.”
“나는 지금보다 건강한 생활을 만들 수 있다.”
“나는 내 마음을 더 잘 설명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다시 무언가를 기대해도 괜찮다.”
“나는 생각보다 오래 버텨 온 사람이다.”
이 문장들은 거창한 성공 선언이 아니에요.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도 아니고요. 다만 지금의 나를 너무 좁은 상자 안에 가두지 않겠다는 다짐에 가까워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말은 편해요.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기대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 말은 때로 내가 아직 만나지 못한 나의 모습을 함께 가둬 버려요. 사람은 생각보다 자주 변하고, 예상보다 늦게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한참 뒤에야 자기다운 길을 찾기도 해요.
처음에는 전혀 관심 없던 일이 삶의 중심이 되기도 하고, 별 기대 없이 배운 기술이 나를 먹여 살리기도 해요. 만나기 싫어했던 사람이 가장 든든한 친구가 되기도 하고, 끝났다고 생각한 마음이 다른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기도 하죠. 그러니 지금의 나만 보고 미래의 나까지 결론 내릴 필요는 없어요.
물론 믿는다고 해서 언제나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아요. 여기서 조금 솔직해져야 해요. 어떤 꿈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어떤 관계는 최선을 다해도 끝날 수 있어요. 어떤 도전은 실패로 남고, 어떤 계획은 접어야 할 수도 있죠. 하지만 그 과정이 헛된 것은 아니에요.
무언가를 믿고 시도했던 시간은 결과와 별개로 나를 바꿔 놓아요. 글을 쓰다가 문장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운동을 하다가 내 몸의 신호를 알아차리게 되고, 사람을 좋아하다가 내 마음의 경계를 배우게 돼요. 실패한 프로젝트를 정리하면서 다음에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도 알게 되고요.
불가능한 일을 믿는 태도는 결과를 장담하는 약속이 아니라,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내가 움직일 이유를 만들어 주는 마음
어쩌면 우리는 매일 이미 여러 가지 불가능한 일을 해내고 있는지도 몰라요. 어제 힘들었는데도 오늘 눈을 뜨는 일. 한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일. 낯선 길을 찾아가는 일. 다시 계획표를 펴는 일. 마음이 무너졌는데도 해야 할 일을 조금 해내는 일.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순간의 나에게는 꽤 어려운 일이었을 거예요.
그러니 오늘은 아침을 먹기 전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이미 하루가 한참 지나갔어도 괜찮고, 밤이 깊어서 아무것도 시작하기 싫은 시간이어도 괜찮아요. 마음속에 불가능해 보이는 일 하나를 떠올려 보고, 이렇게만 말해 보면 돼요.
“아직은 모르겠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닐지도 몰라.”
그 한 문장은 당장 인생을 뒤집지는 않아요. 하지만 문이 잠겼다고 믿었던 마음에 아주 작은 틈을 만들 수는 있어요. 그리고 변화는 대개 거창한 확신이 아니라, 그 틈으로 들어오는 작은 가능성에서 시작되더라고요.
하얀 여왕은 아침 식사 전에 불가능한 일 여섯 가지를 믿었다고 했어요. 우리는 오늘 한 가지만 믿어도 충분해요. 아직 내 앞에 오지 않은 좋은 일 하나, 아직 해보지 않은 선택 하나, 아직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나 자신 하나요.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하얀 여왕은 앨리스에게 불가능한 것을 믿는 데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자신은 하루 30분씩 그 연습을 했다고 들려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