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이고 미루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삶은 우리 곁에서 도망친다.
위대한 철학자 세네카가 남긴 이 서늘하고도 묵직한 문장을 오늘 글의 첫머리에 띄워봅니다. 이 짧은 한 줄의 문장을 마음속으로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가다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뜨끔해지면서 깊은 탄식이 새어 나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나중'이라는 막연한 시간표 속으로 밀어 넣으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당장 오늘 해야 할 작은 정리 정돈부터 시작해서, 오랫동안 가슴속에 품어왔던 가슴 뛰는 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일, 심지어는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온전한 휴식을 취하는 일조차 우리는 습관적으로 내일의 나에게 떠넘기곤 합니다.
마치 우리의 인생이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혹은 언제든지 원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무한한 시간의 창고를 가진 것처럼 오만하게 하루하루를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저리게 돌아보게 만드는 문장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끊임없이 미루고 망설이는 심연의 밑바닥에는 사실 '완벽주의'라는 아주 교묘하고 매혹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져야 한다는 굳건한 믿음, 실패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 그리고 타인에게 결코 어설픈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얄팍한 자존심이 얽히고설켜 우리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는 것이죠.
'지금은 너무 바쁘니까 여유가 생기면 시작해야지', '아직은 자금이 부족하니까 돈이 좀 더 모이면 제대로 해봐야지', '내 실력이 아직 부족하니 완벽해질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 해'라는 수많은 변명들은 겉보기에는 무척이나 합리적이고 신중한 태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완벽한 타이밍이라는 것은 마치 사막의 신기루와 같아서 우리가 아무리 애타게 쫓아가도 영원히 닿을 수 없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만 합니다.
모든 조건이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기적 같은 순간은 인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을 확률이 무척이나 높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우리는 지갑 속에 들어있는 몇만 원의 돈을 허투루 쓰는 것에는 벌벌 떨면서도, 돈으로는 결코 환산할 수 없는 억만금의 가치를 지닌 '시간'이라는 자원은 너무나도 헤프게 길바닥에 흩뿌리며 살아갑니다.
돈은 쓰다가 잃어버리면 밤을 새워 일을 하든 투자를 하든 어떻게든 다시 벌어서 채워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흘러가 버린 시간은 이 우주상의 그 어떤 억만장자라 할지라도 단 1초조차 다시 사들일 수 없는 절대적인 비가역성을 지니고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 자주 삶의 진정한 주도권을 '내일'이라는 불확실한 미래에 양도해 버립니다. 오늘 하루 몫의 행복을 기꺼이 포기하고 억누르면서, 언젠가 성공하고 나면, 언젠가 돈을 많이 벌고 나면, 언젠가 은퇴를 하고 나면 비로소 내 삶을 맘껏 누리겠다고 다짐하죠.
하지만 세네카의 뼈아픈 지적처럼, 우리가 그렇게 오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맹목적으로 희생하며 망설이는 그 찰나의 순간순간마다, 우리에게 허락된 진짜 '삶'은 소리 없이 우리 곁을 빠져나가 영영 도망치고 맙니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무언가를 유예하고 미루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지도록 교육받아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생 때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당장의 즐거움을 모두 미뤄야 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또다시 행복을 유예했습니다.
막상 원하던 직장에 들어가고 나면 이번에는 승진을 위해, 집을 사기 위해,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또다시 오늘 피어나는 벅찬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으며 버티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렇게 '나중'을 위해 인생의 모든 아름다운 순간들을 저축해 두었다고 굳게 믿었지만, 막상 그토록 기다리던 '나중'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이미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시작할 에너지를 잃어버렸거나, 심지어는 그토록 미뤄두었던 행복이 과연 어떤 모양이었는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리는 서글픈 비극을 맞이하게 되곤 합니다.
행복은 은행에 차곡차곡 예금해 두었다가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꺼내 쓸 수 있는 적금 통장이 아니라, 오늘 당장 느끼고 호흡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리는 아침 이슬 같은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우리의 지난날들을 찬찬히 되짚어볼까요?
살면서 우리 가슴속에 가장 크고 깊은 회한으로 남는 기억들은 대체 어떤 것들이었나요.
놀랍게도 우리는 '내가 그때 왜 그런 바보 같은 시도를 했을까' 하며 섣불리 행동했던 것에 대한 후회보다는, '아, 그때 남들 눈치 보지 말고 그냥 한번 저질러볼걸', '그때 조금 더 용기 내서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 볼걸' 하며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망설였던 그 미련스러운 순간들을 훨씬 더 뼈저리게 후회하며 살아갑니다.
실패해서 넘어진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새살이 돋고 훌륭한 인생의 교훈이라는 훈장으로 남지만,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미뤄두었던 일들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묵직한 응어리가 되어 우리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괴롭힙니다.
내가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그 덧없는 '만약에'라는 가정법의 늪에 빠져, 우리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를 지독하게 갉아먹곤 하잖아요.
그렇다면 이 지독하고 끈질긴 미루기의 굴레에서 벗어나 도망치는 삶을 다시 내 곁으로 꽉 붙잡아 두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답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단순하고 명쾌한 곳에 숨어 있습니다. 거창하고 완벽한 계획을 세우느라 에너지를 소진하는 대신, 지금 당장 내딛을 수 있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첫걸음을 일단 떼어보는 것입니다.
책을 한 권 쓰겠다는 거대한 목표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당장 컴퓨터를 켜고 단 한 줄의 볼품없는 문장이라도 적어 내려가는 것, 건강을 위해 매일 한 시간씩 격렬한 운동을 하겠다는 다짐이 부담스러워 자꾸 내일로 미루고 있다면 지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5분 동안 가볍게 동네 한 바퀴를 걷고 돌아오는 것.
그렇게 볼품없고 어설퍼 보이는 아주 작은 행동 하나가 고요했던 우리 삶의 수면 위에 파장을 일으키고, 멈춰있던 관성을 깨뜨리며 우리를 더 먼 곳으로 이끌어가는 가장 강력한 마법의 엔진이 되어줍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결코 헛된 옛말이 아닙니다. 시작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를 그토록 짓누르던 거대한 두려움은 생각보다 별것 아닌 얕은 허들이었음을 온몸으로 깨닫게 되니까요.
또한 우리는 실패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시도했다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처참하게 실패하는 것을 우리는 인생의 큰 오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진정한 실패는 넘어지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넘어질까 봐 아예 출발선에서 한 발자국도 떼지 않고 영원히 주저앉아 있는 바로 그 상태입니다.
엉성하게라도 일단 부딪혀보고 실수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이 길이 나와 맞는지 아닌지를 명확하게 배울 수 있는 값진 데이터를 얻게 되잖아요.
그렇게 직접 온몸으로 뒹굴며 얻어낸 흉터들은 오직 살아 움직이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영광스러운 흔적입니다.
완벽주의라는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무결점의 도화지를 유지하는 삶보다는, 이리저리 물감이 튀고 선이 엇나가더라도 온갖 다채로운 시도들로 빽빽하게 채워진 엉망진창의 스케치북이 훗날 훨씬 더 눈부시고 가치 있는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시간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무심하고 잔인할 정도로 빠릅니다. 엊그제 새해의 첫해를 보며 가슴 벅찬 다짐을 했던 것 같은데 달력은 어느새 속절없이 넘어가 있고, 조금만 지나면 또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오게 되죠.
이렇게 속도감 있게 흘러가는 인생이라는 열차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창밖의 풍경만 우두커니 바라보며 내가 내려야 할 정차역을 하염없이 미루기만 하는 수동적인 승객으로 남아서는 안 됩니다.
내가 원하는 목적지가 있다면 두려움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고, 열차의 문이 열리는 그 찰나의 순간에 미련 없이 발을 내디뎌야만 합니다.
설령 그곳이 내가 상상했던 것만큼 아름다운 곳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나는 내가 선택한 길을 걸어보았다는 벅찬 자유와 주체성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도망치는 삶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내 삶의 멱살을 단단히 쥐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힘차게 끌고 나가는 그 역동적인 주도권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누릴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특권입니다.
혹시라도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품어두고 차마 꺼내지 못했던 일이 있다면, 오늘 단 하루만큼은 내일의 나에게 그 책임을 미루는 비겁한 짓을 멈춰보시기를 간곡히 권해드립니다.
그 일이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새로운 취미이든,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누군가와의 화해이든,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훌쩍 떠나는 짧은 여행이든 상관없습니다.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나는 날을 기다리지 마세요. 조금 서툴러도 좋고, 결과가 조금 실망스러워도 괜찮습니다.
오늘 당장 용기 내어 그 일을 향해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하나 던져보세요. 당신이 망설임의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작은 발자국을 찍는 바로 그 순간, 도망치려던 당신의 삶은 비로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당신의 곁에 온전히 머물러 줄 것입니다.
우리에겐 오늘이라는 기적이 주어졌고, 지금 내쉬는 이 숨결만이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입니다.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걱정이나 이미 엎질러진 과거의 후회로 이 소중한 현재를 갉아먹도록 내버려 두지 마세요.
세네카의 묵직한 통찰처럼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짧은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충분한 시간들을 망설임과 미루기라는 몹쓸 습관으로 낭비하기 때문에 스스로 인생을 짧게 만들어버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핑계와 타협하지 않는 단호한 용기로, 당신의 일상 속에 아주 작은 변화의 씨앗을 과감하게 심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작은 씨앗이 훗날 어떤 거대하고 울창한 나무로 자라나 당신의 인생에 시원한 그늘과 달콤한 열매를 내어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지금 당장, 벅찬 마음으로 당신의 진짜 삶을 힘껏 끌어안는 눈부신 하루가 되기를 진심을 다해 열렬히 응원하겠습니다. 망설이기에 우리 인생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귀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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