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메모를 잘합니다. 장 볼 목록, 아이 준비물, 고장 난 가전 모델명까지 휴대폰에 적어놔요. 제가 좋아하는 과자나 싫어하는 음식도 기억합니다. 처음엔 참 세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 메모 때문에 기분이 좀 이상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지나가듯 '요즘은 시끄러운 데 가기 싫다'고 했더니 다음 외식 장소를 고르면서 조용한 곳만 찾아봤더라고요. 여기까지는 고맙죠. 문제는 제가 몇 주 뒤 시끌벅적한 시장에 가자고 했을 때입니다. 남편이 '당신 그런 데 싫다며' 하면서 의아해했어요.
사람 마음이 매번 같을 수는 없잖아요. 그날은 북적거리는 데서 떡볶이 먹고 싶었던 것뿐인데, 제가 예전에 한 말을 번복한 사람이 됐습니다. 남편은 그런 뜻이 아니라고 했어요. 자기가 잘못 기억한 줄 알았다고요.
얼마 전엔 더 사소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좋아한다고 했던 향초를 선물해 줬는데, 지금은 그 향이 조금 질렸다고 말했습니다. 남편 표정이 순식간에 난처해졌어요. 분명 나를 위해 고른 선물인데 제가 괜히 평가한 것 같아 미안했습니다.
물론 메모하는 게 잘못은 아닙니다. 남편은 제 취향을 알아두면 실수를 덜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오히려 실수해도 괜찮으니 그때그때 물어봐 주면 좋겠어요. 옛날의 제가 남겨놓은 답을 오늘의 저에게 적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제는 '그냥 오늘 뭘 먹고 싶은지 물어봐 줘'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잠깐 웃더니 바로 물어봤어요. 저는 막상 대답을 못 했고요. 이렇게 사소한 일로 마음이 복잡할 줄은 몰랐습니다. 세심한 배려에 고마워하면서도 그 배려 안에서 조금 답답함을 느끼는 제가 이상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