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14년 됐습니다.
아내하고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에요.
크게 싸우는 일도 별로 없고 서로 생활 방식도 어느 정도 맞춰져 있어서 주변에서는 저희 부부를 꽤 사이좋은 부부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얼마 전에 아내에 대해 제가 모르는 부분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별일은 아닌데 그날 이후로 계속 생각이 나네요.
며칠 전 집에서 서류를 찾다가 서랍에 있는 작은 사진 봉투를 발견했습니다.
증명사진이 여러 장 들어 있었는데 전부 아내 사진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까 같은 날 찍은 사진이 아니더라고요.
머리 길이도 다르고 옷도 다르고 어떤 사진은 지금보다 훨씬 어려 보였습니다.
봉투마다 연도가 적혀 있었는데 2018년부터 올해까지 거의 매년 한 장씩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무슨 서류 때문에 찍었나 싶었습니다.
아내한테 물어보니 매년 자기 생일 무렵에 혼자 사진관에 가서 찍은 거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왜 그런 걸 찍었냐고 물으니까 별다른 이유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냥 나이 먹는 모습을 기록해 보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휴대폰에 있는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정말 아이 사진이 대부분이었고 그다음이 제 사진이었습니다.
아내 혼자 나온 사진은 생각보다 별로 없었어요.
가족끼리 어디 놀러 가면 아내가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동안 그걸 별로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나중에 늙어서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일 년에 한 장쯤은 내 사진도 있어야지."
그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 조금 미안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아내한테 사진 찍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고 아내가 저 때문에 뭔가를 포기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본인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아내가 8년 동안이나 혼자 해오던 일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게 좀 이상했습니다.
매일 같은 집에서 자고 밥 먹고 생활하는데도 말이죠.
생각해 보니 아내 생일에도 늘 가족끼리 뭘 할지만 생각했습니다.
외식을 하거나 케이크를 사고, 선물로 뭘 갖고 싶은지 물어보는 정도였죠.
아내가 혼자 뭘 하고 싶은지는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왜 말 안 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웃으면서 그러더라고요.
"말하면 당신도 같이 가려고 할 거잖아."
순간 조금 서운했습니다.
제가 같이 가면 싫으냐고 물었더니 그런 뜻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냥 혼자 사진 찍고 근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생일날 하루 정도는 누구 엄마나 누구 아내가 아니라 그냥 자기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좋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는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부부 사이가 좋으면 웬만한 건 서로 이야기하고 같이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거든요.
특히 결혼한 지 오래됐으니 상대방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정도는 거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제가 모르는 자기만의 작은 생활을 8년이나 이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조금 섭섭했습니다.
왜 나한테는 그런 이야기를 안 했을까 싶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한테도 아내가 모르는 습관이 있더라고요.
가끔 퇴근길에 일부러 먼 길로 돌아오는 것도 그렇고, 혼자 차 안에서 예전에 듣던 음악을 틀어놓고 한참 있다가 집에 들어가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런 걸 아내에게 일일이 이야기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제 행동은 당연한 혼자만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내가 혼자 즐기는 일이 있다는 건 왜 서운하게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
며칠 뒤 아내 사진을 다시 봤습니다.
2019년에 찍은 사진은 머리가 짧았고 2021년 사진은 조금 피곤해 보이더라고요.
그때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 봤는데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저는 회사 일로 바빴고 아이 키우는 문제로 정신이 없었다는 것 정도만 기억납니다.
아내는 그때 어떤 고민을 했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지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괜히 아내에게 그때는 왜 머리를 짧게 잘랐냐고 물어봤습니다.
아내는 그냥 머리 말리기 귀찮아서 잘랐다고 했습니다.
저는 또 혼자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별것도 아니었네요.
그런데 그날 이후로 아내가 혼자 뭘 하는지 괜히 궁금해집니다.
예전에는 아내가 혼자 외출한다고 하면 별생각 없이 다녀오라고 했는데 요즘은 어디 가서 뭘 하는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그렇다고 일일이 물어보는 건 또 이상하잖아요.
아내가 그동안 편하게 즐기던 시간에 제가 괜히 간섭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저는 아내하고 더 가까워지고 싶은 건지, 아니면 제가 모르는 아내의 모습이 있다는 사실이 불편한 건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결혼 생활이 오래되면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저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사이가 나빠진 것도 아니고 아내가 저를 속인 것도 아닙니다.
지금도 저희는 평소처럼 잘 지냅니다.
다만 그 사진 봉투를 발견하고 나서 제가 아내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살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올해 생일에는 제가 먼저 아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할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아내가 혼자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제가 괜히 끼어들어 망치는 건 아닐까 싶어서 관뒀습니다.
혹시 오래 결혼 생활을 하신 분들은 어떠신가요?
배우자가 자신만 알고 있는 취미나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을 때 서운함을 느끼는 것도 자연스러운 걸까요?
그리고 부부 사이가 아무리 좋아도 서로 모르는 부분은 그냥 모르는 채로 남겨두는 게 나을까요?
아내가 사진관에 가는 걸 막고 싶거나 꼭 같이 가고 싶은 건 아닙니다.
그냥 제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도 제가 전혀 모르는 시간이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실감한 것 같습니다.
이걸 계기로 아내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별문제 없이 잘 지내던 저희 관계에 제가 괜히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건 아닌지도 궁금합니다.
부부 인기글
- 01코치 답변글을 읽으면서 작성자님이 얼마나 지치고 서운하셨을지 마음이 쓰였어요. 남편분이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부탁하면 해주시니 오히려 자신의 서운함을 설명하기가 더 어려우셨을 것 같아요. 남편분은 나름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 테니까요. 하지만 작성자님이 힘든 건 집안일을 혼자 다 해야 해서만은 아닌 것 같아요. 집안에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도, 해야 할 일을 기억하는 사람도, 남편에게 부탁하는 사람도 늘 자신이라는 사실이 지치고 서러우셨을 것 같아요. 세제가 떨어졌는지, 수건이 부족한지, 냉장고에 무엇이 남았는지. 누군가는 알아차려야 하는 일인데 그 누군가가 늘 나라는 것. 남편에게 부탁하고 나서도 일이 끝날 때까지 마음 한구석으로 신경을 쓰고 있어야 한다는 것. 정작 나 자신은 집에서도 온전히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없다는 게 참 힘드셨을 것 같아요. 어쩌면 가장 서러운 건 집안일의 양보다도, 내가 이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남편은 잘 모르는 것 같다는 느낌이 아닐까요. 남편분에게는 “말하면 해주잖아”라는 말이 억울함의 표현일 수 있겠지만, 작성자님에게는 그 말조차 외롭게 들렸을 것 같아요. 나는 말하기까지 이미 많은 것을 생각하고 판단했는데, 그 과정은 보이지 않고 부탁한 일만 남는 것 같으니까요. 결국 내가 먼저 알아차리고 말해야만 우리 집이 돌아간다면, 우리는 정말 함께 책임지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드셨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남편을 몰아붙이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시겠지요. 잔소리하고 싶어서 말하는 게 아닌데, 말하지 않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을까 봐 자꾸 이야기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나도 싫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속상하셨을 것 같아요. 편안해야 할 집에서 남편과 같은 편이라는 느낌보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다투게 되는 현실이 더 서글프셨을 것 같고요. 저는 작성자님이 바라는 게 결코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는 완벽한 남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저 나만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 사람 역시 우리 집의 일들을 함께 살피고 있다는 믿음, 나도 힘들 때는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쉴 수 있다는 안도감이 필요하신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매번 부탁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단순히 말 몇 마디를 아끼는 일이 아니잖아요.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이 삶을 함께 꾸려가고 있다는 걸 느끼는 일이니까요. 작성자님도 누군가의 아내이기 전에 지치면 쉬고 싶고, 알아서 챙기지 않아도 누군가 함께해 주기를 바라는 한 사람일 텐데요. 집안일을 잘 해내는 사람으로만 남는 게 아니라, 때로는 남편에게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셨을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을 바라는 자신이 혹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건 아닐까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매번 말해야 하는 사람의 피로와, 말하지 않아도 함께 살피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받을 만한 감정이니까요. 작성자님이 원하시는 건 단지 집안일을 덜 하는 삶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사람과 마음까지 나누며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싶어요.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혼자 짊어져 온 수고가 이제는 작성자님 혼자만의 몫으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110026.10.17
- 02코치 답변아내분은 평소처럼 말을 걸며 화해를 시도하지만, 작성자님은 다툼 중 들었던 말과 감정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아 마음이 남는 것 같습니다. 특히 상처받은 마음을 이야기하려 할 때 “이제 괜찮아졌는데 왜 또 꺼내냐”는 반응을 들으면, 혼자만 문제를 붙잡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두 분의 화해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아내분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갈등을 풀려 하고, 작성자님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갈등을 마무리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다툼이 없는 평온한 시간에 “당신이 먼저 말을 걸어주는 게 싫은 건 아니야. 나도 빨리 풀고 싶어. 다만 마음에 남은 말이 있어서 그 부분을 함께 이야기하고 나면 더 편안하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전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아내분의 화해 시도는 받아들이되, 대화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지요. 또한 모든 갈등을 그 자리에서 완벽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서로 감정이 가라앉은 뒤 다시 이야기할 시간을 정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빨리 괜찮아지느냐가 아니라, 두 사람 모두 괜찮아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것입니다. 작성자님이 원하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따지거나 싸움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마음을 서로 이해하고 편안하게 화해하는 과정일 것입니다. 그 마음을 비난이 아닌 바람으로 전달하면서, 두 분에게 맞는 화해 방식을 함께 만들어 가시길 응원합니다.121026.10.18
- 03코치 답변글쓴님, 남편이 친구를 만나거나 취미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두 사람의 주말인데도 혼자 일정을 정한 뒤 통보하듯 알려주는 방식이 서운하신 것 같아요. 특히 함께하기로 이야기했던 일도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듯하면 나만 부부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가 싶어 마음이 상할 수 있겠습니다. 부부라고 모든 일정을 함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과 서로의 일정을 먼저 배려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글쓴님은 남편의 외출을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시간을 함께 의논하고 존중받고 싶은 것이지요. 남편과 대화할 때는 서운함을 따지기보다 원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세요. “당신이 친구를 만나는 게 싫은 건 아니야. 다만 주말 약속을 잡기 전에 내 일정도 한 번 물어봐 줬으면 좋겠어. 나도 우리 둘이 함께할 시간을 생각하고 있는데, 늘 정해진 뒤에 통보받으면 나만 우리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 서운해”라고 전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매주 주말 계획을 정하기보다는, 둘이 함께하기로 이야기한 일정은 서로 확인해서 확정하고, 개인 약속도 잡기 전에 한 번씩 상의하는 원칙을 만들어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구체적인 약속이 아니더라도 한쪽만 당연히 비워두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서로의 기대를 맞춰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배려는 상대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내 자유만큼 상대의 시간과 마음도 소중하게 여기는 데서 시작됩니다. 글쓴님이 바라는 것은 과한 간섭이 아니라 부부로서의 상호 존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생활을 존중하면서도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을 남편과 차분히 찾아가시길 응원합니다.110026.10.18
- 01코치 답변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 나보다 타인에게 더 살갑게 대하는 남편의 모습에 서운하고 쓸쓸하셨을 마음이 깊이 이해됩니다. 친밀할수록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을 느끼며 대화가 줄어들기도 하지만, 님이 바라는 건 거창한 주제가 아닌 따뜻한 온기니까요. 남편분은 밖에서 에너지를 다 쓰고 집을 온전한 휴식처로 느끼는 중일 수 있지만, 그 방식이 의도치 않게 님을 외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비난이나 요구 대신 "요즘 당신과 소소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그리워"처럼 '나'의 솔직한 감정을 부드럽게 전해보세요. 작고 구체적인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하거나, 함께하는 가벼운 산책부터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사이가 나쁜 게 아니니, 서로의 편안함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작은 온기를 채워나가실 수 있을 거예요.743026.09.30
- 02코치 답변글을 읽으면서 작성자님이 얼마나 지치고 서운하셨을지 마음이 쓰였어요. 남편분이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부탁하면 해주시니 오히려 자신의 서운함을 설명하기가 더 어려우셨을 것 같아요. 남편분은 나름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 테니까요. 하지만 작성자님이 힘든 건 집안일을 혼자 다 해야 해서만은 아닌 것 같아요. 집안에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도, 해야 할 일을 기억하는 사람도, 남편에게 부탁하는 사람도 늘 자신이라는 사실이 지치고 서러우셨을 것 같아요. 세제가 떨어졌는지, 수건이 부족한지, 냉장고에 무엇이 남았는지. 누군가는 알아차려야 하는 일인데 그 누군가가 늘 나라는 것. 남편에게 부탁하고 나서도 일이 끝날 때까지 마음 한구석으로 신경을 쓰고 있어야 한다는 것. 정작 나 자신은 집에서도 온전히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없다는 게 참 힘드셨을 것 같아요. 어쩌면 가장 서러운 건 집안일의 양보다도, 내가 이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남편은 잘 모르는 것 같다는 느낌이 아닐까요. 남편분에게는 “말하면 해주잖아”라는 말이 억울함의 표현일 수 있겠지만, 작성자님에게는 그 말조차 외롭게 들렸을 것 같아요. 나는 말하기까지 이미 많은 것을 생각하고 판단했는데, 그 과정은 보이지 않고 부탁한 일만 남는 것 같으니까요. 결국 내가 먼저 알아차리고 말해야만 우리 집이 돌아간다면, 우리는 정말 함께 책임지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드셨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남편을 몰아붙이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시겠지요. 잔소리하고 싶어서 말하는 게 아닌데, 말하지 않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을까 봐 자꾸 이야기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나도 싫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속상하셨을 것 같아요. 편안해야 할 집에서 남편과 같은 편이라는 느낌보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다투게 되는 현실이 더 서글프셨을 것 같고요. 저는 작성자님이 바라는 게 결코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는 완벽한 남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저 나만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 사람 역시 우리 집의 일들을 함께 살피고 있다는 믿음, 나도 힘들 때는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쉴 수 있다는 안도감이 필요하신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매번 부탁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단순히 말 몇 마디를 아끼는 일이 아니잖아요.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이 삶을 함께 꾸려가고 있다는 걸 느끼는 일이니까요. 작성자님도 누군가의 아내이기 전에 지치면 쉬고 싶고, 알아서 챙기지 않아도 누군가 함께해 주기를 바라는 한 사람일 텐데요. 집안일을 잘 해내는 사람으로만 남는 게 아니라, 때로는 남편에게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셨을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을 바라는 자신이 혹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건 아닐까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매번 말해야 하는 사람의 피로와, 말하지 않아도 함께 살피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받을 만한 감정이니까요. 작성자님이 원하시는 건 단지 집안일을 덜 하는 삶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사람과 마음까지 나누며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싶어요.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혼자 짊어져 온 수고가 이제는 작성자님 혼자만의 몫으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110026.10.17
- 03코치 답변아내를 향한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고 계신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알고 있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아내가 혼자 사진관에 다녔다는 사실보다 어쩌면 그동안 아내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는지, 내가 모르는 아내의 시간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생각하게 되신 게 더 크게 다가오셨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마음이 꼭 서운함이라고만 생각되지는 않아요. 어쩌면 지금까지 익숙하게 곁에 있던 아내를 새삼 한 사람의 독립된 존재로 바라보게 된 순간일 수도 있겠지요. 작성자님은 회사 일과 아이를 키우는 일로 바빴던 시절을 떠올리셨지만, 그때 아내도 나름의 고민과 즐거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살아왔을 거예요. 그 모든 시간을 서로 다 알지는 못했더라도 두 분은 각자의 자리에서 가정을 꾸리고 함께 살아오신 거잖아요. 저는 그 사실이 참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부부라고 해서 서로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뒤에도 새롭게 발견할 모습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 서로를 알아갈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니 아내의 혼자만의 시간을 존중하면서도 조금 더 궁금해하고, 관심을 표현하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꼭 무언가를 함께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연을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저 아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이야기를 들려줄 때 귀 기울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생일에 사진을 찍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참 다정하게 느껴집니다. 아내가 혼자 찍는 시간을 좋아한다면 그 시간을 응원해 주시고, 함께 찍는 것도 좋겠다고 한다면 두 분의 사진 한 장을 남겨보셔도 좋겠지요. 작성자님, 지금까지 아내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이 너무 익숙해서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서 지나온 결혼 생활을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니에요. 오래된 부부 사이에도 새로운 관심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 저는 그것만으로도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도 아직 모르는 모습이 남아 있다는 것. 어쩌면 그건 멀어진다는 신호가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서로를 조금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다는 다정한 기회일지 모르겠습니다.160026.10.13
- 04120026.10.17
-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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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2026.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