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사람들과 지낼 때는 별것 아닌 일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잘하는 편입니다. 약속 시간에 조금 늦거나 상대방에게 작은 부탁을 해도 미안하다고 먼저 말하게 되지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신경도 많이 쓰게 되고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족에게는 오히려 그 말을 잘 안 하고 지내는 것 같습니다.
가족이 뭔가 해주는 것도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제가 기분이 좋지 않아서 말을 퉁명스럽게 해놓고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냥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때가 있습니다. 남이었다면 바로 미안하다고 했을 일인데 가족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겠지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가족끼리 지내다 보면 서로 기분 상하는 일이 생겨도 제대로 사과하기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풀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처음에는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도 며칠 지나면 평소처럼 이야기하고 밥도 같이 먹습니다. 그러면 그 일이 해결된 것처럼 생각하게 되고요.
그런데 정말 해결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겉으로 다시 평소처럼 지낸다고 해서 그때 들었던 서운함까지 없어지는 건 아닐 테니까요.
저 역시 가족에게 서운한 말을 들었을 때 그 자리에서는 별말 하지 않고 넘어간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가면 별것 아닌 일인데도 마음 한쪽에 남습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반대로 가족에게 똑같이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가까운 사이니까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필요한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요즘 듭니다. 그런데 막상 가족 앞에서는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왜 그렇게 어색한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시간이 조금 지나버리면 더 그렇습니다. 그때 바로 말했으면 됐을 일을 며칠 지나서 다시 꺼내려니 괜히 일을 크게 만드는 것 같고, 이제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나 싶어 그냥 넘어가게 됩니다.
가족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누가 잘못했는지 분명한 상황에서도 미안하다고 하기보다 밥 먹었느냐고 묻거나 평소처럼 말을 걸면서 화해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게 우리 나름의 사과 방식인가 싶기도 합니다.
말로 꼭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게 가족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래 지내다 보니 그것 때문에 오히려 표현을 너무 아끼게 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고맙다는 말도 비슷합니다. 밖에서는 누가 조금만 도와줘도 몇 번씩 고맙다고 하는데 가족이 해준 일에는 그냥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가족이니까 당연히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행동은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네요.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져서 기본적인 말을 생략하고 사는 건 아닌지 한번씩 돌아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미안하다, 고맙다 하면서 갑자기 표현을 많이 하는 것도 어색할 것 같습니다. 평생 해오던 방식이 있으니까 마음먹는다고 바로 달라지지는 않겠지요.
다른 분들 가정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가족끼리 서운한 일이 생겼을 때 미안하다는 말을 직접 하는 편이신가요? 아니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평소처럼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풀리는 편인지요. 가까운 가족 사이에서도 사과만큼은 말로 분명하게 하는 게 좋은 건지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