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사랑이 머무는 이번 추석 이야기
이번 추석, 우리 가족의 명절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추석이 다가오면 저는 유난히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오릅니다.
1985년 추석이었어요.
그때 저는 지금의 남편과 연애 중이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말했지요.
“이번 추석에 우리 집에 같이 가자.”
결혼 이야기도 구체적으로 오가지 않았던 때라 저는 별생각 없이 “그래, 갈게.” 하고 대답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무것도 모르고 용감했던 것 같아요. ㅎㅎ
막상 남편의 집에 도착하니 일이 생각보다 커졌어요.
동네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저를 보러 오셨거든요.
“아이고, 새색시가 참 곱구나~.”
그 말에 저는 쑥스러워하며 인사를 했지요.
“안녕하세요~.”
남편 어머님께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드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처음 보는 분들과 함께 추석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고도 웃음이 나는 일이에요.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자친구 집에 가서 명절을 보냈으니 말입니다.
그때 당시 저는 정말 철이 없었어요. ㅎㅎ
남편이 자기 집에 가자고 하니 그냥 따라갔고, 가족들과 음식을 나누며 즐겁게 명절을 보냈지요.
그날의 추석은 결국 제 인생의 중요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저는 그 집의 며느리가 되고, 남편과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추석만 되면 그 순간이 떠오릅니다.
‘내가 그때 참 철이 없었구나.’ 하면서 혼자 미소 짓곤 합니다.
세월이 참 빠르지요.
1985년 추석날, 남자친구 집에서 명절을 보내던 젊은 여자가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이제 아이들이 자라 저를 바라보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추석은 또 다른 의미로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의 풍경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거든요.
딸은 작년에 결혼했고, 오는 9월 22일에는 제왕절개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추석에는 딸이 친정에 오는 대신 산후조리원에서 아기와 함께 몸을 회복하고 있겠지요.
‘우리 딸이 이제 엄마가 되는구나.’
생각하면 대견하고, 마음 한쪽이 짠해집니다.
딸을 보고 싶어도 친정에 오라고 할 수 없는 상황.
무엇보다 딸과 아기의 건강이 최우선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올해 추석을 새로 태어날 손주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보내려 합니다.
며칠 전 아들이 손주를 데리고 집에 왔다가 제게 말했지요.
“엄마, 이번 추석에는 음식 하지 마세요. 힘들잖아요. 그냥 식당 가서 먹어요.”
그 말에 저는 묘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추석에 음식도 안 하고 식당에서 먹는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마웠고, 조금은 서운한 마음도 들었어요.
저는 여전히 명절이면 가족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차려주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가족들이 오면 좋아하는 음식 하나라도 더 준비해 맛있게 먹이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저에게는 음식을 준비하는 게 가족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아들의 말을 돌아보니 그 마음도 이해되었습니다.
“엄마가 힘들잖아.”
그 말 속에는 저를 향한 배려와 사랑이 담겨 있겠지요.
예전에는 명절이면 며칠 전부터 장을 보고, 전을 부치고, 나물을 만드는 등 하루 종일 부엌에서 분주했던 때가 있었지요.
저 역시 그런 시간을 지나왔고, 그 시절엔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아들은 다릅니다.
엄마가 힘들까 봐 음식 준비를 줄이고, 편하게 식당에서 먹자고 합니다.
며느리도 명절에 무리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겠지요.
이렇게 많이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많이 차려내는 것이 사랑이라 생각했다면, 이제는 서로의 수고를 덜어주는 배려가 진정한 사랑임을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아들의 마음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음식은 조금만 준비하고, 함께 식당에서 편하게 밥을 먹으려 합니다.
그리고 식사 중엔 딸과 아기에 관한 이야기를 실컷 나누겠지요.
“지금쯤 조리원에서 잘 쉬고 있겠지?”
“아기는 잘 자고 있나?”
딸이 곁에 없어도, 그렇게 마음을 나누다 보면 우리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듯한 행복함이 느껴질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가족의 모습은 늘 조금씩 변해왔습니다.
1985년, 아무것도 모른 채 남자친구 집에 따라가 얼떨결에 명절을 보냈던 제가 있었고,
그 후 세월이 지나 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그 아이들은 자라 어느새 저와 함께 명절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이 되었고,
지금 저는 엄마가 된 딸과 할머니가 된 자신을 바라보고 있네요.
아들은 이제 엄마에게 “힘들면 하지 마세요”라고 조심스레 말하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참 살아온 시간이 느껴지지요?
그러니 올해 추석은 조금 다르게 보내려 합니다.
많이 차리지 않아도 괜찮고,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딸은 산후조리원에서 아기와 건강하게 쉬고,
아들은 엄마 걱정 없이 편안한 명절을 보내고,
저는 오랜만에 아들과 손주를 만나 가벼운 웃음 속에 밥 한 끼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딸에게 말할 겁니다.
“올해 추석에는 오지 않아도 괜찮아.
엄마는 네가 건강하게 아기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아마 다음 추석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겠지요.
아기를 품에 안은 딸이 친정에 오고, 손주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리 집 안이 시끌벅적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때 저는 또 음식을 준비하며 투덜거리겠죠.
“아이구, 힘들어 죽겠네.” 하면서도 웃음이 떠나지 않을 겁니다.ㅎㅎ
명절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때론 고생스럽고, 서운하고, 또 웃음이 나오다가,
지난 뒤엔 결국 그리움이 되는 시간이니까요.
그리고 세월이 지나 돌아보면, 가족과 함께 만든 소중한 추억으로 마음에 깊이 새겨집니다.
1985년 추석날,
아무 것도 모르고 남자친구 집에 따라갔던 철없던 아가씨가,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딸을 키우고, 손주를 기다리는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참 세월 빠르지요. ㅎㅎ
올해 추석에는 음식보다 사람을,
준비보다 마음을 더 챙겨보려 합니다.
딸이 곁에 없어도 마음으로 함께하고,
아들이 차려주는 조금은 편안한 명절도 기꺼이 받아들이며요.
어쩌면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까지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가족의 이번 추석 풍경은 예전과 조금 달라도,
그 안에 담긴 사랑과 마음만큼은 여전히 따뜻합니다.
1985년의 추석도,
2026년의 추석도,
돌아보면 제 인생에서 오래 기억될 명절이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께도 추석이 되면 떠오르는 오래된 추억 한 자락 있으시길 바랍니다.